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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산행의 매력은 소박함과 호젓함이다. 도시의 번잡과 그 속에서의 무거운 삶을 피해 섬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 보다 몇 배의 가치를 지니고도 남는다. 그 동안 다녀온 청산도와 사량도, 그곳에서 여유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왔다면 이번 비금도는 순수(純粹)를 느끼고 왔다. 그러나 그 섬들은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일부러 맘을 굳게 먹지 않고서는 그 품에 들어갈 수 없다. 그렇지만 가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결정이 된다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비금도를 가자면 목포까지 내려가야 한다. 목포에서 연안 섬으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수 많은 검색과 확인으로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해상교통은 날씨와 시즌에 따라, 또는 해운 회사에 따라 변동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려간 날도 광복절 연휴 및 해무로 인하여 착오가 생겨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여행이란 이런 어려움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재미가 있다. 일행 중 김 화용(KT 근무)씨의 수소문으로 ‘농협 철부선’이 있다는, 의외의 소식을 접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목포 북항으로 달려가야 했다.
8월의 한가운데를 내려쬐는 땡볕은 지상의 모든 물체를 고문하듯이 익혀가고 있다. 모처럼 선 여행에 나선 많은 사람들과 그들을 싣고 갈 자동차들이 배를 기다리며 그 더위를 꾹 참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배를 탄 이후 사람들의 얼굴엔 안도의 모습으로 환해졌다. 오래 묵은 에어콘의 불량스런 바람을 정지시키고 차창을 여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들어왔다. 피서객들은 맨 바닥에 이리저리 가장 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 뜨거운 도시를 떠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작은 섬 사이로 배는 느리게 털털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 낭만적이다.
이 섬들을 안고 있는 신안군은 일 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하여 ‘1004의 섬’이라 지칭하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마치 충주호 유람선을 탄 것 같은 착각이 이는 것은 그 주위의 섬들의 편안하고 다양한 모습들이 계속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바닷바람의 기세에 피부는 시원함에 안주하는 것 같다.
1시간 40분의 긴 시간 끝에 배는 드디어 비금도 가산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우뚝 솟은 독수리상이 인상적이다. 비금도(飛禽島), 한자를 풀이하면 새가 나는 섬, 그리하여 독수리상이 서있나? 이미 업체에 예약된 관광객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우리는 대합실에 썰렁하게 남았다. 섬에서의 적막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8월의 대낮에 이 모습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편안한 적막과 호기심있는 외로움이다. 이 적막은 우리를 마중 나온 트럭소리에 의하여 깨졌다. 이 화용씨의 직장의 직원이 이곳에 근무하셨기 때문이다. 멀리 타향에서 이렇게 연줄이라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우리는 그 트럭을 타고 초등학생 마냥 얼굴에 큰 웃음을 그리며 어딘지 모르게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야 했다.
비금도는 우리나라 소금 생산지로서 유명한 섬이다. 주변의 풍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밭의 연속이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은 소금밭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다. 태양을 먹고 소금꽃이 만들어가는 과정이 트럭을 타고 휙휙 지나가는 가운데서도 잘 보인다. 와인을 태양을 먹는 액체라고 한다면 소금은 그래서 ‘태양을 먹는 고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택시 운행과 소금 도매를 하고 있는 이 명옥씨의 수소문 끝에 간신히 ‘느티나무민박’에 숙소를 정해 짐을 풀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부터 우리의 스케줄은 그림산과 선왕산을 오르는 일이다. 민박집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그림산의 장엄한 모습이 마치 월출산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전체 산의 형세는 섬의 남쪽으로 사선으로 서쪽으로 그리며 그림산과 선왕산의 봉우리를 연결한 모습이다. 그리하여 그림산 들머리는 읍에서 남쪽의 수대선착장으로 가는 길옆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8월의 성하(盛夏)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길옆의 풀은 진녹색으로 짙어가고 매미의 고창(高唱)으로 한 여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느낄 뿐이다. 패랭이와 찔레꽃은 벌에게 열심히 꿀을 내주고 있다. 땀으로 끈적이던 목덜미는 봉우리가 하나 나타나서야 바람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세정 화백님은 즉시 스케치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경치를 맞았다. 시원한 청량감이 더 없이 좋다. 더움을 느껴야 시원함을 안다. 봉우리는 바람만 주는 것이 아니다. 넓게 펼쳐진 평야와 염전과 갯벌의 장쾌한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작은 봉우리마다 앉아있는 벤치는 나그네에게 땀을 닦을 수 있는 고마움이다. 숲이 우거져 있지 않지만 작은 오솔길이 정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길은 낮았다가 적당히 오르더니 바위가 나타나고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나타나곤 한다. 그 뒤에 나타나는 시원한 바람, 저 멀리 바다에서 갯벌과 소금밭과 익어가는 벼 알갱이를 스치고 지나온 바람이 내 이마에 닿아 향기를 내뿜고 있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간식을 들었다. 소박한 감자 부침개와 과일 몇 조각, 이 지은씨가 가져온 수박 냉차가 목덜미 땀을 식혀 버렸다. 산행 중에 먼저 나타난 그림산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우리로 오르는 길 중에 재미있는 곳은 작은 굴을 통하여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 굴이 좁아 몸을 움찔거리며 나오는 자세와 그 구멍에서 나올 때의 모습이 마치 어머니 자궁에서 아이가 갓 태어나는 형태여서 나는 그 사진을 찍을 때 “응애”라고 소리치며 주문하였더니 모두들 웃어 죽겠단다.
그림산 정상은 대형 망원경이 설치되어 섬 주위를 재미있게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저 멀리 이세돌이 태어났다는 마을과 그 건너편의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두 개의 풍차, 전설이 깃든 떡메산과 그 아래 펼쳐진 염전,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봉우리인 선왕산을 향해 출발했다. 바위마다 ‘바위손’이 기묘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바위는 울퉁불퉁하게 형성되어 미끄럽지 않아 좋다. 안부에 내려오니 산죽 밭이 시작되는데 아주 부드럽고 싱싱한 모습이 이채롭다. 능선을 따라 성곽처럼 돌을 쌓아 놓았다. 이곳에서는 ‘우실’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바람을 막고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책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돌무더기에는 인동초(忍冬草)와 아이비가 제멋대로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산줄기 가운데 지점인 ‘죽치(竹峙)우실’을 통과하여 이제 점점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마 이곳은 남쪽의 죽치마을에서 북쪽의 한산마을까지 고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서향(西向)의 태양에 선왕산 능선의 실루엣이 선명한데 그 바위의 모습이 재미있다. 어느 노인이 뒷짐을 지고 손수레를 끈 채 산을 오르고 있고 그 뒤로 원숭이인가 미어캣(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망보는 녀석들)인가 졸졸 따라가고 있다.
가끔 산 아래에서 “뻥-”하고 대포 쏘는 소리가 난다. 광복절 기념 축포 소리인가 봤더니 벼 이삭을 보고 달려드는 새를 쫓는 소리이다. 바위는 기기묘묘하여 어떤 것은 마애불 형상을 하기도 하고 독수리며 닭의 형상을 하고 있다. 풍수지리와 역학에 조애가 깊은 강 달형 선생은 산의 전체 형체가 독수리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그래서 선착장의 독수리상이 있는 이유이다).
선왕산(仙王山)의 높이는 고작 255m지만 산세는 유려하며 아기자기한 맛이 그만이다. 바위틈으로 남서쪽의 다도해상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임에 따라 만물은 황금색으로 변화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정상비 앞에서 강 선생의 특별한 의식이 진행되었다. 제물을 차려놓고 참신과 발원의 의식이다. 이 의식은 생명 존중과 인간지도(人間之道)의 뜻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휴식과 여유를 가지고 때를 기다렸다. 잠시 있으면 낙조의 아름다움이 몰아칠 것이다. 하산길은 정면에 망망대해의 바다가 파노라마 화면처럼 펼쳐져 있어 우리는 최고의 비경을 걷고 있는 셈이다. 저 아래는 비금도에서 유명한 하트 모양의 ‘하누넘 해수욕장’이 지척이다. 바닷가에 서면 바다와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붙여진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작은 해수욕장과 바다와 작은 섬 하나, 그리고 붉은 태양이 수직으로 이어졌다. 일출이 장엄하다면 일몰은 숭고하다. 그 동안 주간 산행만 바쁘게 해 온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황혼의 부루스다. 인생의 현재까지 온 것이 숭고하지 않는가? 이제는 황혼의 부루스로서 멋진 삶을 기약해 본다. 태양이 숨을 죽이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상은 순간 적요(寂寥)했다.
하누넘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들으며 내려가야 했다. 자갈길이 이어지다 돌로 쌓아 만든 큰 웅덩이를 만났다. 옛날 일본군의 진지란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고초를 겪었을까? 이어 해송 관목지대를 만났는데 7부 바지 아래로 종아리에 억센 가지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누넘 해수욕장은 마치 동남아 휴양지처럼 대나무 방갈로 몇 채가 서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다. 황혼과 해변을 보니 ‘해변의 여인’ 노래가 생각났다.
“물 위에 떠 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드는 여인의 눈동자…”
그 곳에 숙소를 정한 젊은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우리는 택시를 불러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8월 비금도의 아침은 안개로 시작되었다. 동이 트자 안개는 그림산 주위를 머금고 신비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부지런한 주인장의 인기척을 느끼며 조용하고 자유로운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멀리 예초기의 간헐적인 기계음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하다. 오늘, 이제 떠나는 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이렇게 괴로워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기계적으로 바쁘다. 콜택시를 몰고 온 이 명옥씨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재촉한다. 그 녀는 섬 주민답지 않게 도시적인 차림으로 나타났다. 전문 가이드처럼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우리는 차 안에서 순한 양이 되었다. 다시 광활한 염전지대를 지나 가산선착장으로 인도되었다. 바다는 해무로 인하여 어디가 바닷길이며 어디가 섬인지 전혀 분간이 안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섬은 태양을 먹고 점점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오랜 기다람 끝에 해무 사이로 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장 자끄’ 감독의 영화 ‘연인’의 그 배처럼…
* 비금도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섬이 가장 많은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섬으로 천일염이 최초로 만들어 진 섬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그 소금이 유명하다. 겨울에는 시금치의 일종인 ‘섬초’와 마늘이 많이 알려져 있어 실제 이 섬의 주 수입은 농업과 염업이 주 대상이며 섬 주민의 90%가 종사하고 있다. 비금도 남쪽으로 도초도와 다리로 연결되었으며 그 아래에 김 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나신 하의도가 지척에 있다.
* 비금도 및 목포 연안의 섬으로 가는 여객선은 변동 사항이 항상 존재하므로 전국연안여객선 안내(1544-1114)나 island.haewoon.co.kr으로 수시 확인해야 하며 참고로 목포 북항에는 비금도 농협 철부선이 운행하므로 임시로 이용할 수 있다(061-244-5251)
* 비금도 내 교통은 배 도착에 맞추어 공영버스가 운행하나(1,000원)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섬에 대한 안내 및 편의를 제공하여 섬의 여행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이 재철/이 명옥 부부는 천일염 도매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언제든지 천일염을 택배로 판매하고 있으며 개인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010-4631-5454)
* 비금도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인 하누넘 해수욕장은 비금면사무소에서 직영하여 요금이 매우 저렴하나(1동 35,000원) 매점이 없고 취사도구 및 취침 장구는 개인이 준비해야 할 듯하니 비금면사무소에 문의해야 하며 다른 해수욕장으로 4Km의 광활한 모래사장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 그림산 ~ 선왕산 종주 코스는 5.4Km로서 4시간이면 여유로운 산행이 가능하고 하산 후에 하누넘 해수욕장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어 가족 산행의 최적지로서 강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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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제의 졸필입니다. 아이구 힘드는데요? 재미있게 감상해 주시면 좋지요...
숨도 안쉬고 댓글란까지 왔답니다 휴우!!! 황제님! 졸필아닌 달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ㅡ
훌륭한 비금도 선왕산 산행기 감동깊게 잘 심독 했습니다. 화실에 나오면 고맙다는 답례로 순대국에 쐬주 한잔 사드릴께.
달아놓세요
산행기를 읽으니그날의 감동이,,,,,황제님 께서 자세하게 적어주셔서 전 우리들이 목포에서 끊여먹었던 낙지라면 사진 올렸어요 수고 많이 하셨어요
황제님의 산행후기글을 읽고 가지않아도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이 보이는듯 정말 자세하게 깔끔하게 정리하신글 잘 보고갑니다 또한 수고하셨구요 !너무 멋진 곳을 아쉬움만 더해지네요
담엔 같이 갑시강 감솨!
헤헤 사진 안올려주어도 멋진 그림과 글이 나왔는걸요~~ 또 가고 싶어져요 겨울에 다시 가봐야 할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