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서쪽 10km근방엔, '대소원'이라는 역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예로부터 서울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의 역원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하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당시 일제 멋대로 주덕이라는 지명을 만들면서,
대소원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잊혀져갔고, 주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또다시 개발에 소외되면서 주덕이라는 이름조차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최근 들어서 고속도로와 기업도시가 들어서는 등 서서히 옛 빛을 받고는 있지만,
원래 있던 '대소원'이라는 동네와는 별 연관이 없는 일일 뿐.
아직도 이 지역은 옛 모습 그대로고, 옛 '역원(驛阮)'을 대신하는 버스터미널 또한 몇 십년 전의 시간에 멈춰서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 상념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본다.

주덕역에서 내려 골목길을 투벅투벅 걸어나오니, 커다란 덩치의 시외버스 두 대가 나란히 눈앞에 들어온다.
하나는 청주가는 버스, 또 하나는 서울가는 버스인가 보다.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 모두 각기 제각각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제 갈길을 떠나니 갑자기 침묵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마을이 되어버린다.

적응되지 않는 낯선 분위기에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빛에 물든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어느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골창고 같이도 생겼지만,
'버스터미널' 간판을 단 것을 보니 어엿한 터미널이긴 한가보다.


하지만 터미널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익숙하지만 낯선 자국들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하지만 인심만큼은 넉넉했던 그때 그 시절 그대로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이 곳의 터줏대감으로 으시대고 있었던걸까.
당당하게 고개를 펴고있지만 낡은 '운수간판'도 문지방도 너무나 닳고 닳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정말로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대신 얻어쓰는듯,
조그만 창문과 문턱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줄기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온만큼 따스한 기운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는 듯도 했다.

한 계단, 두 계단 내려오고 나면 왼쪽으로 '매표실'이 있다.
조금 웃긴게 있다면 매표소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팔면서 정작 내부는 금연이라는 것.
하지만 오랫동안 터미널을 이용해온 노인 분들에겐 그것마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들어올때 이미 뿌연 담배연기가 코를 자극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눈을 돌리니 낡은 의자와 연탄처럼 촘촘히 놓여진 벽돌, 그리고 번듯한 시간표가 걸려있다.
왠지 학교 칠판이 걸려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 반짝이는 새 시간표가 있으니 조금 안 어울린다 싶다.
저 앞의 낡디낡은 의자엔 누가 앉겠나 싶지만..
힘들게 농사짓고 잠시 더위를 식히러나온 노인분들.
등교하기 위해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어린이들.
장보러 시내로 나가기 위해 분주하게 기다리는 아줌마들이 몇 십년간 든든히 지켜주었던 것마냥,
먼지 하나 안 묻어 있는게 다소 놀랍다.

무상한 세월 속의 기억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단단히 매듭지어지다가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소리없이 녹아 없어진다.
그 모든 것들을 말 못하는 조그만 거미줄이 마치 하나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수많은 동네를 쉼없이 연결시켜주는 버스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거미줄이 우리네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구슬프게.
시간이 흐름이 뚝 끊겨버린 이 곳에선 거미줄마저도 소리없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첫댓글 기다리던 글이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잘 보고 갑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간만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뵙네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스위스관광님도 오랫만이군요. 조만간 또 올리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좋은 기행문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도 감사합니다~
항상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정말 오랜만에 올라오네요...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항상...이 나라에 터미널은 아직 많지요???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울 정돕니다. ㅎㅎ
많이 기달렸는데 이제서야 뵙네요~~반갑고 좋은글 읽고 갑니다^^
호남고속님도 오랫만이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많이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그 기다림이 짧았으면 합니다.
ㅎㅎㅎ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입대 전까진 주기적으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Maximum님의 기행문을 통해 가보지 못한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주제는 버스면서 항상 내용은 산을 타는것 같네요. 충남고속매니아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흑백사진 너무 잘 어울리네요.. 잘 봤습니다.
여기선 사진이 찌그려져서 보기 흉하던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_ㅜ
예전 화물차할때 3번국도를 쭉 달려 이천-장호원-생극 -주덕-충주-상주-김천까지 다닐때 주덕을 지나다녔는데
(대소원)이란 옛지명도 있었군요.그나저나 주덕이면 읍소재지인데 아무리 충주시내하고의 거리가 지척이라고 하나
터미널이 너무 작고 초라하네요....
대소원의 정확한 위치는 주덕읍은 아니고 바로 옆의 이류면사무소 인근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덕 자체가 95년 통합때 어거지로 읍이 된 케이스라 터미널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너무 작기는 하죠;;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70~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네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어이쿠... 읽는 분들의 기대치를 너무 높이면 안되는데...ㅎㅎ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해야겠습니다.^^
대소원이라고 정류장이 옛날에 있었읍니다 (시내버스만 서는곳) 아마지금도 그럴것 같은데 주덕 정류장 정말 반갑네요
82년도에 청주서 장호원 가는 차를 놓치고 주덕에 와서 장호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종종 타느라 저곳에서 기다리곤 했는데 그때 표파시던 아저씨 모습이 생각납니다
덕분에 추억 여행 떠나는 기분입니다 ---충주에서 어린시절 보내고 81년에 제대하고 음성 주덕 생극 장호원에서 2년정도 생활하면서 자주 들렀던곳이라서 더욱 감회 깊읍니다 ----- 여행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소원은 아직도 시내버스만 서고, 30년전 매표소 아저씨는 지금쯤 하얀 머리 무성한 할아버지가 되셨겠죠.. 좋은 추억을 꺼내어드린 것 같아 괜히 뿌듯합니다 ^^;
인근 부대에 복무 했던 사람으로써.. 다신 안 볼 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게되네요 -_-;;
크흑... 의도치 않게 여기서 악몽을 떠올리게 해드렸네요. -_-;;
저도 이 근처에서 병복무 했죠....;; 02군번이고요. 터미널을 보니 어렴풋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