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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혐의로 기소된 희생자는 우선 몸에서 악마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하여 (사실상 수치심을 주기 위하여) 전신의 체모(體毛)를 깎이고, 특히 음부(陰部) 등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검사받는가 하면, 그 "악마의 흔적"에 바늘을 찔러서 아프지 않고 피가 나지 않으면 마녀라고 하기도 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게, 살아가면서 흉터건 반점이건 굳은 살이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물론 그런곳이라고 바늘로 찔리면 아프지 않고 피가 나지 않을리가 없으니 상관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마녀 사냥꾼들이 가지고 다니는 바늘은 찌르면 속이 빈 통 안에 바늘 끝이 들어가 사실상 교묘하게 "찌르는 척"만 하는 그런 물건이였다는게 문제. 심지어는 평범한 바늘끝과 뭉툭한 바늘끝을 남 모르게 교체할 수 있는 그런 바늘을 들고와 일단 평범한 바늘로 맨살을 찔러 실제 바늘임을 남에게 보여주고 "악마의 흔적"은 뭉툭한 바늘끝으로 찌르는 시늉을 해 피가 안 나오게 하는 전문 마녀사냥꾼용 도구도 있었다고.
체포 후 자백을 하지 않은 사람은 손발을 묶어 물 속에 던져 가라앉으면 무죄이고 떠오르면 유죄라는 감별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명 물의 길. 돌에 묶어서 빠뜨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알다시피 사람은 기본적으로 물에 살짝 뜬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 물고문 당하고 끌려나와서 화형.이걸 감별방법이라고 생각한 자들은 평생 수영도 안해본건가.
또 다른 감별법인 일명 불의 길의 경우 달궈놓은 쇠판을 걷게 하여 사망하면 무죄, 살아나면 마녀로 보아 화형이라는, 어찌되었건 죽는 그런 재판도 있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한데 정말로 악마의 종복이라면 자연물도 그 자를 거부할 터인즉 불에 닿아도 타지 않고 물에 빠져도 익사하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따지면 자연물도 거부한다면 화형으로 죽지도 않을 것이라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걸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마녀사냥 따위를 했을 리가 없다. 또한 그런 판단이 가능한 이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 입밖으로 꺼냈다간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런 즉각적인 감별법 외에도, 희생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각종 고문을 가했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고문 묘사를 보면 쏘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람을 고깃덩이마냥 취급했다는걸 알 수 있다. 신체 위에 몇백 kg에 달하는 무게추를 올려놓거나, 목구멍에 깔때기를 꽂고 계속 물을 퍼붓거나, 사지를 죄거나, 가시투성이 의자에 앉히거나, 등 뒤로 손을 묶은 다음 높은 곳에 매다는 등... 끝끝내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은, 풀려날 만한 사건이 생기거나, 자백을 할 때까지 몇 달이건 붙잡혀 고문을 당하곤 했는데, 연이은 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을 보다 못한 감옥 간수가, 차라리 없는 사실을 날조를 해서라도 빨리 인정하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기록도 있다.
보통 마녀임이 인정되면 즉시 화형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희생자는 극렬하게 자신이 마녀임을 부정하는데, 생살이 갈리는 고문을 받고 나면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 거짓 자백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 가톨릭 신부가 이걸 우연히 보고나서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결국 일단 한 번 마녀 혐의로 기소된 사람의 최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다만 얼마나 빠르게 마녀임을 인정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죽을 것인지가 정해지는 셈이었다.
때때로 마녀사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진해서 재산을 헌납하거나, 권력층에 연줄이 있는 경우거나, 지역에 따라서는 '가임기 여성'인 경우에 방면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 마녀 행위의 주도자를 많이 밀고한 사람이 방면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는 '마녀들의 집회에 참석한 다른 마녀를 대라.'는 질문에 살기 위해 자기가 아는 사람 이름을 줄줄이 읊는 것이다.
실제로 한 할머니가 길을 잃고 인근 숲을 헤매다가 마녀로 찍혀 고문을 받던 중 '또 다른 마녀'로 한 남자를 지목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할머니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지나친 무고한 시골 총각이었다.[23] 영문도 모르고 마녀로 지목당해 끌려가는 총각이 억울해하자 할머니 왈,
"나도 자네가 마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네. 자네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지. 나를 용서하게. 그러나 만약 또 그 고문을 받게 된다면 난 또 다시 자네의 이름을 댈 수 밖에 없을 걸세."
이 사례만 들어봐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안 봐도 뻔하다. 동시에 마녀사냥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마녀사냥은 사실 유럽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기록을 보면 상당수의 고대 사회에서 소위 '마법사'들이 탄압받으며 죽는 이야기가 나오고[24] 이와 같은 악습은 아프리카나 인도, 파푸아뉴기니의 오지에서는 아직까지 일어나고 있다. 당장 구글신에서 검색만 좀 돌려봐도 마을 주민들에게 몇몇 사람들이 마법사라고 구타받는 비디오가 나돌 정도니...
마녀사냥이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글로벌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마녀사냥이 단순히 유럽에서만 일어난 종교적, 역사적인 이벤트이기보다는 인간의 집단 폭력성을 배출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25]
유럽사에서의 마녀재판은 지역마다 워낙 양상이 다양해서 연구자들이 머리칼을 쥐어뜯는 주제 중 하나다.
독일은 마녀사냥이 가장 심한 곳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역마다 서로 대단히 달랐다. 해당 지역을 통치하는 권력자의 성향에 따라 강하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가끔 어떤 재판은 10년이 넘게 계속 됐으며, 혐의자가 석방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심문받고, 다시 훈방 조치되고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도시처럼 번화한 곳보다 시골에서 더 잔인하게 시행된 경우가 많았다. 도시에서는 고문을 하더라도 법대로 하라고 따질 사람이 많지만 시골에서는 법에서 정한 제한 따위 다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렇다. 또한 마녀라고 해서 여자만 잡은 게 아니었다. 기회만 되면 마녀라고 몰아갈 수 있을 만한 독거 노인을 몰아서 잡았는데 그 중에는 남자도 상당했다고 한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면 여성 희생자가 더 많지만 모스크바의 경우 희생자의 70% 이상이 남성이였다. 독일에서는 17세기 중엽의 10년 동안에 2살 난 어린이를 포함하여 1,000여 명이 처형된 데 비해, 영국의 경우 알려진 것과 달리 마녀사냥은 적은 편이였으며 처형당한 숫자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마녀로 고발되어도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독일과는 반대로 마녀를 처형하는 것이 죽인 마녀에게서 압수한 것보다 돈이 더 드는 데다가 마녀사냥이 미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또 독일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마녀를 사형에 처할 때 때 화형이 아닌 교수형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다만 교수형에 처한 뒤 시체를 불로 태웠다.
개신교 국가에서도 마녀사냥은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마녀가 종교적·사회적으로 위험시되지 않게 된 18세기에 와서는 박해가 격감하여 병리학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이주한 미국에서는 꽤 근대까지 자행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일럼 재판으로 이때 이 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유명한 작가 너새니얼 호손[26]의 조상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호손은 자기 성을 'Hathorne' 에서 'Hawthorne' 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세일럼 재판은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완전 무죄는 거의 2000년대에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아서 밀러가 이 사건을 걸작 희곡 크루서블로 남겼고 영화화도 되었다. 아서 밀러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풍자했는지는 상상 가능한 일이다.
파푸아뉴기니에서도 마녀 사냥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병사한 사람이 나오면 고문을 하고 화형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역 경찰도 마녀 사냥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고 하니...
4. 그 밖의 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가에서 나서서 '마법 사용자'들을 처벌한다. 물론 실제 마법 사용자는 없으니까 유럽의 마녀사냥처럼 정적이나 껄끄러운 인사들 제거를 위해 사용된다는 의견이 지배적.
1594년 독일 뇌르틀링겐에서는 11달동안 약 56번에 걸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끝까지 마녀가 아니라고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엔 고향인 울름의 도움으로 풀려났다는 마리아 홀린(Maria Hollin)이라는 이름의 강철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56번 정도 고문을 당했는데도 마녀라는 자백을 얻지 못하면 풀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녀사냥은 경제적 갈취가 목적인데 이 당시 고문은 사형집행관이 했는데 이들은 고문을 하거나 사형을 집행할 때마다 돈받고 일했다. 그런데 한 일로 56번이나 고문을 했다는 건 그만큼 고문하는 측에서 돈이 줄줄 샜다는 얘기가 된다. 56번이나 고문했는데도 굴하지 않았으니 한번 더 한다고 자백을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며 설령 자백을 받아냈다 쳐도 이미 56번이나 고문했던터라 이문도 (보통 상황에 비해서) 별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잡아와 고문해서 자백받아내는게 더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담당자들 심리에서도 생각해보면 저 질긴 여인을 계속 고문하는 것도 못할 짓일테고...
2000년대 케냐에서 마녀사냥으로 인해 성공한 사업가와 그 가족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단체로 화형당해 세계에 충격을 주었는데 이를 조사한 경찰발표에 따르면 부자가 된 사업가의 재산을 노린 친척들이 마을 주술사와 짜고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여 사업가와 그 가족들을 죽이고 재산을 강탈한 것으로 밝혀졌다.
잔 다르크도 마녀라는 죄목으로 기소당했다. 다른 마녀사냥들과 마찬가지로 잘 살펴보면 다른 내막이 있으니, 높으신 분들의 정치적 거래의 희생자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친영국파 가톨릭 교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희생양이 된 경우이다. 잉글랜드 측에서는 백년전쟁 말기의 잉글랜드군을 무찌른 잔 다르크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프랑스는 국왕보다 인기가 높아지는 잔 다르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잉글랜드는 부르고뉴파의 도움으로 잔 다르크의 신병을 양도받았고 프랑스 국왕은 잉글랜드로부터 적절한 뒷돈을 받으면서 그것을 묵인했다. 친영파 가톨릭 교회는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잔 다르크의 이단 혐의를 입증했으며 이를 문서화시킨 뒤에 잉글랜드 국왕에게 넘겨버렸다.
잔 다르크가 서명한 자백서에는 '자신은 자신의 이단 행위를 회개하며 다시는 정통된 신앙에 도전하지 않겠다' 는 내용이 적혀있었으며 동시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이때 문맹이었던 잔 다르크는 자신이 어떤 문서에 서명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나 그 뒤에 잉글랜드에서 다시 한 번 잔 다르크를 마녀로 기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잔 다르크는 화형대로 올라갔다.
로텐부르크의 고문 박물관에는 마녀재판을 체험해볼수 있는 기계가 있다. AB 선택지를 고르는 식으로 진행되나 애석하게도 결론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한겨울에 기온이 너무 낮아서 주석으로 만든 물건들이 회색으로 변색되었다 바스라졌는데[27], 성당의 주석제 성물들까지 바스라지는 바람에 185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겨울마다 마녀사냥이 종종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동소체 구조 변화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 입증된 건 수십년 뒤였다.
초대 기독교인들도 로마 대화재 때 흑마술을 사용해 재난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고문 및 사형을 당한 적 있다.
마녀사냥의 역사로 인해 기독교권에선 여성을 보고 마녀라고 하는 건 아주 심한 욕이 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영국에서는 명목상 마녀 처벌이 일어났다. 당시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4번함인 버럼과 연관된 일. 버럼은 1941년 11월 독일의 U보트에게 격침당했는데, 당시 영국 정부는 한동안 비밀에 부쳤다. 다만 버럼의 승조원의 가족들에겐 은밀하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헬렌 던컨((Helen Duncan)이란 영매술사는 이 정보를 몰래 입수한 뒤, 영국 당국에서 격침 사실을 공개하기 전에 자신이 강령술을 통해 버럼이 격침되었다고 먼저 주장한 것. 당연히 영국 당국에서는 그녀를 잡아들였다. 그런데, 정작 재판을 열고 보니 그녀를 처벌할 법적 혐의가 마땅치 않았다. 던컨은 끝까지 '나는 버럼에서 전사한 승조원의 영혼에게 들었을 뿐이다'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하던 검찰 측에선 당시 이미 사문화되었던 법률인 마녀 처벌법(Witchcraft Act of 1735)을 적용해 구형했다. 던컨은 이 마녀 처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약 9개월 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이 마녀 처벌법은 공식 폐지되었으며, 던컨은 영국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공식 처벌을 받은 마녀'로 기록에 남았다.
5. 마녀사냥이 등장하는 창작물
변옥의 슈베스터 -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당한 유족의 딸들을 수도원에서 데려가 3년간 수녀로 생활하게 하며 수도원을 탈출하려고 하거나 수도원의 비밀을 알게되면 죽임을 당한다. 수도회의 마녀사냥으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죽이도록 명령한 수도회 총장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 중세시대 일반인들이 벌인 마녀사냥에서 운나쁘게 마녀사냥에 걸린 일부 뱀파이어들이 죽음을 당하자 이에 깜짝 놀란 뱀파이어들은 지금까지 인간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정체를 드러내며 활동하던 노선을 바꾸어 인간 사회에 숨어들어가 이른바 마스커레이드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더 큰 진짜 이유는 트레디션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거머쥔 오더 오브 리즌이 그 동안 가만히 두었던 초자연체들을 대대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평범한 인간들이 일으킨 마녀사냥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수천 명의 계몽된 자들의 지휘를 받고 각종 과학병기로 무장한 수만 명에 이르는 오더 오브 리즌의 군대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그로 인해 인간들 사이로 숨어들어가는 일이 가속화된다.
마녀, 소녀: 위의 마녀사냥도 나오기는 하지만 아래의 마녀사냥이 주로 다뤄진다.
마녀에게 내리는 철퇴 - 마녀로 몰려 참혹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된 소녀들이 악마와 계약하고 마녀가 되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며 쌓인 원한을 마력의 원천 삼아 자신을 죽인 고문 도구, 혹은 처형법을 마법으로 연성해내 교회와 전면전쟁을 벌인다는 내용.
마녀의 속죄 - 에로게인지라 화형이나 고문은 검열삭제(작 중에서는 속죄의 의식으로 표현)로 대체된다.
멋진 징조들 - 작중 주인공의 조상인 예언가 아그네스 너터가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는데 예언가 답게 그것을 알고 있었고 치마 속에 수십킬로그램의 화약과 못조각을 숨겨둔 체로 화형을 당했다고, 그리고 너터의 화형을 계기로 영국에서 마녀사냥이 끝나게 되었다고 한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 - 베디비어 문서로.
바카노! - 1700년대 편에서 다뤄진다.
베르세르크 단죄편
아이반호 - 유대인 처녀 레베카가 성전기사단에 의해 마녀로 고발되고, 재판을 맡은 주교는 결투 재판을 통해 유죄 여부를 가리고자 한다. 주인공인 아이반호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상대 기사와 마상 시합을 벌였다가 낙마하지만 기이하게도 상대는 주인공의 창이 살짝 닿기만 했는데 목숨을 잃었다. 정말로 신의 심판이 이루어진듯.
사형집행인의 딸 - 마을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친하게 지내던 산파가 마녀로 몰린다. 산파의 무고함을 알고있는 사형집행인과 그의 딸, 의사의 아들이 진실을 추적해 무죄를 입증한다.
신세계에서 - 배경 설정으로만 언급되는 수준. 초능력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현되면서 초능력자들의 범죄와 일탈이 문제가 되자 미국을 위시한 일반인 세력들이 마녀사냥과 비슷한 초능력자 사냥을 벌이고 이에 초능력자들이 반격하여 세계는 멸망하고 만다. 후반부에 초능력자를 단번에 죽여버리는 세균 병기인 '사이코 버스터'가 나오는데 거기에 동봉된 설명서를 보면 초능력자를 악마라고 부르며 과거의 마녀사냥도 초능력자들의 존재를 어렴풋히 눈치챈 선조들의 지혜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당시 초능력자들에게 일반인이 느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 사실 이렇게 취급받아도 할 말 없는 짓을 초능력자들이 저지르긴 했다. 초능력자들이 처음 등장하고 나서 한 일이 선행이 아니라 강간살인 같은 범죄였는데다가 몇 명이서 대도시 내의 수천만명을 깡그리 몰살시켰고 전쟁 후 초능력자들 세상이 된 후에도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다.
음마요녀 - 4번째 에피소드
위쳐 시리즈 - 이쪽은 마법사나 마녀가 원래 가진 능력을 활용해 사회 상류층으로 살았고, 일반인이라도 원한을 품었거나 특정한 주술적 의식을 행한다거나 하면 상대방에게 저주를 걸거나 죽었어도 유령으로 되살아나거나 하는 게 가능하다. 중세 유럽의 미신이나 주술, 설화가 정말로 사실인 세상이 배경이기 때문. 그러나 인류 사이에서 이터널 파이어 교단이 득세하면서 마법사와 마녀, 엘프나 드워프 등의 이종족, 주술 사용자 및 신봉자, 약초사, 연금술사들을 마구잡이로 화형시키고 있다. 이쪽 세계 마녀는 곱게 죽어주지 않기 때문에 칼과 마법 무효화 수갑으로 무장한 전문 마녀사냥꾼도 존재한다.
애스커 - 캐릭터 중 템페스트가 튜토리얼에서 마녀사냥으로 불태워지려다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다.
해리 포터 시리즈 - 대개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언급되지만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희생자라고 나온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간단한 불꽃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마법을 부려 고통스러운 연기만 하면서 죽지 않았고 심지어 화형을 즐기는 괴짜 마법사도 있었다지만, 마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어린 마법사나, 성인이어도 지팡이를 빼앗긴 경우엔 실제로 잡혀 처형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닉은 지팡이를 빼앗겨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한다.
Fate/Grand Order - 1.5부 4장의 배경과 주요 소재가 세일럼 마녀 재판이다.
라스트 위치 헌터 - 빈 디젤, 일라이저 우드 출연의 영화.
나의 마녀 - 코델리아의 사랑을 위해 필리파는 마을에서 코델리아가 마녀라고 불려 박해받게 만들고 사실을 자신이 마녀였다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알려 사람들에게 삽으로 맞아 땅 속 깊이 파묻힌다. 그럼으로서 코델리아는 마녀가 아니었다며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마녀 사냥을 비판했다.
6. 비유적 의미에서의 마녀사냥
Witch hunt / public shaming[28]
현대 인터넷 등에서 마녀사냥이란 말이 나온다면 보통 이것을 뜻한다. 사회 안의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 혹은 소수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을 말하며, 마녀재판이라고도 한다. 개인정보 유포죄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개인정보 유포죄가 상대방의 사생활 등의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포하는 행위에만 국한된다면, 마녀사냥은 허위사실을 퍼트려 소수의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행위로, (허위) 개인정보 유포 외에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걸리는 행위도 마녀사냥의 범주에 들어간다. 유의어로 인민재판이 있다. [29]
한때 신상털이로 유명했던 코갤과 일베저장소는 마녀사냥의 온상으로 꼽힌다. 특히 코갤 등 신상털이를 자주 하는 곳은 실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얼굴이나 전화번호 등의 신상까지 까고 보니 전혀 다른 무고한 사람이었던 사례도 꽤 있다. 당연하지만 잘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작정 신상부터 까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녀'들의 신상 중 이런 사례가 많았다. 웬만한 루머도 여기서 생산되거나 커지고 아니라는게 완전히 밝혀져도 계속 깔 정도니 말 다했다. 해당 문서로. 이외에도 여성시대나 메갈리안 등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특정 사이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디시인사이드같은 SNS에서는 하루가 머다하고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상 지금 일어나는 마녀사냥의 대부분은 이런 SNS가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굳이 신상털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비판을 하다가 그게 선을 넘어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공격적인 언행을 저지를 때도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엄연한 비난이자 일종의 폭력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비판도 싸잡아서 '마녀사냥하지 말라'고 변호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나, 너무 앞뒤 가리지 않고 맹렬하게 비난하거나 인신공격, 신상털이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상대가 명백히 죄를 치렀거나 상대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 이를 근거로 비판을 하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쳐 욕설을 퍼붓거나 나쁜 놈으로 매도하는 등 상대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행위는 실제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공격적인 언행이 된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비판하고자 하는 점만 정중하게 비판을 해야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다.
냉전 이후 현대사회의 체계와 법적 이론, 윤리관들은 시민 저항권외에 사적 권력의 행사를 엄중하게 경계하고 있다.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의 성립요건이 까다로운 것이 그 일례이다. 집단적 광기에 편승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회의 통념에 반하고 인권, 자유 같이 현재의 보편적인 권리와 상식에 반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해서 마땅한 비난과 처벌을 받는 자를 옹호하기 위해서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의미로 소위 물타기를 시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30] 자신이 사회의 통념에 반하는 짓을 하고 이에 대한 비난을 받고서는 이를 사적제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건 용어를 잘못 이용한 것이다. 사적제재는 죄에 대한 처벌을 국가 대신에 개인이 하는 것을 뜻하지 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한 비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비난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죄형법정주의를 들이대며 자신이 행한 비윤리적 행동이 처벌 받을 이유가 없다며 비난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용어를 잘못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법으로 규정한 범죄만 처벌하자는 국가의 원칙이지 범죄가 아니니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비난을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니다. 무고는 피해야 하겠지만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물타기를 하는 경우도 없어야 할 것이다.
6.1. 실제 마녀사냥자가 될 경우의 삶
개인적인 마녀사냥은 대체로 어그로, 법적 대응, 도피성 출국, 잠적, 범죄로 끝난다. 반면 유죄추정의 원칙을 법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정치적 마녀사냥은 양상이 다양하다. 정치인, 법조계 등의 기득권 고위직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왠만큼 불리하지 않는 한 상대 세력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중산층 이하의 서민층 중 적극적으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벌이는 부류는 당원, 시민단체, 네티즌, 언론계, 폴리페서, 좌파 유튜버, 우파 유튜버, 사이버 렉카, 각 업계의 정치 활동이 활발하지만 기득권까진 되지 못한 고위직으로 움직여 음모론과 버금가는 부정적인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거슬리는 적대 세력의 정치적 영향이 큰 인물을 지목한다. 왠만큼 대형사고가 아닌 한 마녀사냥이 정치인과 법조계를 향하는 일이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흐지부지되거나 음모론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어용과 정치병자로 주화입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병자계 서민층의 마녀사냥이 실패에 가깝게 끝나는 원인은 개인적 조사로 자신이 지지하는 고위직에게 불리한 정보가 사실일 경우 수습하기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정치병자계 서민층만을 마녀사냥하게 된다. 고위직부터 개혁하겠다는 포부가 있을지라도 개혁 의지와 방향이 하부조직의 신뢰도를 손상시키는 데에 그치며 실제 성과가 지지부진해진다.
마녀사냥이 실패에 가깝게 되면 서민층은 자신이 믿었던 정의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아노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내부 불만이 쌓이게 되고 분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실패하기 직전의 정의를 정당화할 구실이 필요하게 된다. 정치인과 정치적 영향이 큰 인물을 지목하는 것은 이미 반복되어 지지부진해진 일이라, 그들의 정의는 광기로 변해 하위계층이라도 개혁하겠다는 명분으로 정치를 멀리하는 시민마저 사상검증하게 된다.
인터넷 탄생과 스마트폰 발명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주화입마가 서민층의 내부에서만 끝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온라인 공간의 파급력이 조명되면서 서민층은 떼법과 국민정서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고위직을 직접적으로 개혁하기보단 간접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방법으로 법을 천천히 바꾸되, 완전히 바꿀 때까지 반대세력을 여론전으로 막아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반대세력을 막는 데에 집중하는 졸속개정이 시민 전체를 사상검증하는 방향으로 타락한지라 실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시민의 반발을 산다. 고위직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막연한 하나의 결과를 위해 달려온 서민층은 지금까지 잃어버린 자신의 것을 똑바로 볼 용기마저 잃어버린 채 모든 것이 정의를 위해서였다고 합리화하였다. 남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취업에 투자할 시간까지 정치활동에 갈아넣었는데 얻는 것이 없고 잃는 것만 있고 소수의 정치인과 정치 유튜버만 주목 받으며 그마저도 법적 대응을 잘못하면 순식간에 적자행으로 추락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했다. 물러나면 일자리에서 암묵적으로 기피 대상이 될 것이 뻔하고 승진이 어려워져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남보다 뒤쳐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 네티즌은 익명성으로 기피 대상이 되거나 승진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없겠지만, 스펙을 기르는 대신 투자한 체력, 마음, 시간은 정치권조차 되돌리지 못하여, 정치에 관심이 없던 다른 경쟁자에게 뒤쳐질 것이 뻔했다. 보수우파 측이 신자유주의적이라 실업에도 특혜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미지로 정착했고, 진보좌파측은 여성할당제, 여성가산점,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등의 특혜 및 특권 논란을 일으켰기에, 정치권의 특혜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정치권의 특혜를 위해 욕을 먹어서라도 생계를 유지하거나, 정치에서 멀어져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잠적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삶을 택한다면 현실에서 뒤쳐졌다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기에 직시하더라도 용기가 필요했고 남은 것은 해방감이나 죄책감[31]일 뿐이다.
6.2. 마녀사냥이 묘사된 창작물
귀전구담 - 그 소녀의 진실이야기편
앙상블 스타즈! - 오기인 숙청
나루토 - 나뭇잎 마을/문제점
작중에서 별 것도 아니거나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누명을 씌우거나 트집을 잡아 이지메를 하는 일이 잦다. 특히 하타케 사쿠모 건에 대해선 진짜 문제가 많은 게 사쿠모는 오랜 닌자 생활로 인해 정신력도 상당히 강한데다가 어린 아들도 있는데도 마을 사람들의 이지메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임무를 실패해서인데 이게 일부러 실패한 게 아니라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도로헤도로 - 인간들이 마법사를 사냥한다.
6.3. 실제 마녀사냥 사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및 성폭행 가해자의 꽃뱀 주장
헛지목: 사건이 벌어지고 언론에 알려지면 범인의 얼굴이나 신상을 알아내 사적제재를 가하기 위해 알 권리를 주장하여 신상털기를 하는데, 이때 종종 헛지목이 발생해서 마녀사냥이 일어난다, 예로 들자면 조두순 헛지목 사건이 있다.
여성시대/사건 사고의 마녀사냥 사례들. 여성시대에서 장동민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레바 마녀사냥을 위해서 조직적인 조작을 감행한 사건 등이 일어났다.
마인드C 강간 무고 사건
시카고 컵스 스티브 바트먼 사건. 자세한 건 2003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과 시카고 컵스에서 2003년도 부분으로.
폰 모르가나 버그 악용 선동사건: 2015 MSI 결승에서 SKT를 꺾은 허원석 선수가 마지막 세트에서 버그를 이용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트려 누명을 씌우려 한 사건이다. 자세한 건 허원석 문서로.
위의 사건 간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팀의 극성 팬층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정의당 내부에서의 특정 계파의 반대파 축출 모의(정의당/사건사고 문서로.) : 정의당이 메갈당으로 낙인 찍힌 원인이 정의당 내부의 다수의 여론이 아닌 특정 계파의 여론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 그러나 정작 심상정을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윤두준 보겸 구독 해명사건
하이라이트 멤버 윤두준이 과거 보겸 채널 구독자며 보겸 애청자라고 했던 발언에 유언비어가 붙어 확산된 사건.
하트 커넥트 성우 낚시 사건: 두 마토메 블로거가 몰래카메라 내용을 심각한 이지메로 과장시켜서 작품의 이미지는 물론 애꿎은 성우들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킨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1] Compendium maleficarum(마녀 전서), 1626년, Francesco Maria Guazzo. 마녀가 악마에게 세례를 받는다고 묘사되어있다. 당대 유럽인들은 마녀들이 '조직적'이고 '의례적'인 반교회라고 상상하곤 했다. 또한 이 그림에서 보듯이, 마녀사냥의 배경에는 음모론적 공포도 있음을 알 수 있다.[2] 로마 가톨릭 + 개신교[3] 그런데 사실 이 로마법도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아무 때나 들먹이지는 않았다.애초에 황제 시해 음모가 아무 때나 들먹여진다는 것 자체가 그 황제의 통치가 막장이라는 이야기일 테니...[4] 종교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재판은 이단심문을 포함하는 의미이지만, 이단심문 외에도 혼인 문제 등 주민과 밀접한 문제도 다루었다.[5] 존 비드마(Jojn Vidmar), 「십자군과 이단심문 Q&A 101」(번역: 이영욱)[6] 사실 스페인의 경우는 정말로 억울한 경우인데, 스페인은 마녀사냥도 적었을 뿐더러, 이단심문 역시도 알려진 것보다는 덜 광폭했다. Helen Rawlings의 통계(저서인 The Spanish Inquisition에서 인용)에 의하면 사형이 집행된 희생자 숫자는 최대한도로 올려잡아서 1480년부터 1530년까지 약 2000명이며 이마저도 1540년대부터는 콘베르소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고, 재판에 체계가 잡혀가면서 1700년까지 에스파냐 이단심문의 모든 관할권을 합쳐 총 826명만이 처형되었다. 롤링스의 통계를 토대로 최대한도로 잡는다면 가장 참혹했던 1480년부터 1530년까지 연간 40명이 처형된 것인데, 이는 끔찍한 희생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타국가들보다 스페인이 더 잔혹했다고 말하기엔 힘든 숫자이다. 또한 유대인 역사학자 Henry Kamen의 저서 The Spanish Inquisition에 의하면 스페인 이단심문에서는 10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경우 한두명만 사형이 집행되었고 나머지는 인형을 처형했는데, 이것이 사형 집행자 숫자가 터무니없이 오해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특히 스페인 이단심문에서 40만이 처형되었다는 황당한 정보도 많이 돌아다니므로 주의. John Vidmar의 저서 「십자군과 이단심문 Q&A 101」에 의하면 17세기 스페인 톨레도 법정의 경우 151건의 마녀재판을 다루었는데, 이는 연간 약 1.5건이다. 또한 이들 전체가 처형된 것도 아니다.(이 문서에 자주 인용된 Peter Marshall에 의하면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유럽 전체에서 약 10만명이 고발당해 4만명이 사망)[7] 영국 워릭 대학 역사학과 교수[8] 1590년부터 1680년까지 약 4,400명이 연루된 걸로 추정. 비슷한 시기 잉글랜드에서 200년간 교수형으로 처형한 일반범죄자가 1천명에 불과한것에 비하면 꽤나 많은 숫자이다.[9] 마르틴 루터가 살던 비텐부르크에도 1540년 마녀사냥이 처음 있었다고 한다.[10] 출처: 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11] 출처: Peter Marshall, 「종교개혁」[12] 아래에서 쓰여있지만 마녀감별법 중 바늘로 찔러보는 방법이 있었다. 아파하지 않거나 피를 흘리지 않으면 마녀로 간주했다고.[13] 아이러니하게도 공인되기 이전의 기독교도들 또한 고대 로마에 의해 이러한 잔혹한 탄압을 받은 적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인된 지 1000년은 더 된 시점이니 그 시절 기독교인과 동일시할 순 없지만....[14] 전통적으로는 교황권이 약해지면서 발악한 거라는 견해가 많았으나, 교황권이 종교개혁 시기를 기점으로 과연 약해졌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반론의 등장(특히 트리엔트 공의회), 개신교 지역에서도 가톨릭 못지 않게 마녀 사냥이 많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교파화'라는 현상에서 주로 일컬어진다. 자세한 건 후술.[15] 이 시기 일본에서는 텐메이 대기근이, 조선에는 경신대기근 등이 일어났다.[16] 대부분의 마녀들이 기소당할 당시에 질병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를 당했다.[17] 당시에는 중앙권력보다 각 장원의 지방 권력이 더욱 강했다. 영주는 그 땅에 오랫동안 군림하는 왕 수준이었기 때문에 중앙의 왕이라 해도 함부로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다만 흑사병 이후 인구가 줄어들어 농노들이 강해졌고 이들 중에 자영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노들 중에 일부가 반기를 들기도 했다.[18] 다만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소수종파들 사이에서는 '폭군살해론', 다시 말해서 폭군의 살해는 정당하다는 인식이 퍼져갔다. 지역적으로는 잉글랜드 치하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과, 스코틀랜드의 칼뱅주의자들을 예시로 들 수 있다.[19] 네덜란드가 독립해버린 이유 중 하나는, 펠리페 2세가 이 지역에 근대적 신학교를 짓고 성직자 양성 시스템을 쇄신하려고 하면서, 네덜란드의 도시들이 이를 중앙의 과도한 간섭이라고 받아들인 탓이다. 자세한 것은 네덜란드/역사 문서로. 교황의 경우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속권은 약해졌으나, 교권은 상승했다. 다시 말해, 종교적 분야에서 전세계의 사제들에게 행할 수 있는 통제력이 커졌다.[20] 케플러가 자기 엄마는 외계인과 결혼한 마녀라는 내용의 소설을 썼는데 그걸 진짜로 믿은 사람이 있었다. 케플러가 변론을 잘 해서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에 사형까지는 안 가고 어찌저찌 풀려났지만 후유증으로 다음해에 사망한다. 그래도 이 사건 덕분에 그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주춤해지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21] 즉 살아있는 채로 태우지는 않는 것.[22]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기 때문에 라틴어-영어 대역판이 미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더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23] 심지어 이 시골총각은 처음에 길 잃은 할머니를 도와주려 했었다고 한다.[24]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마술 행위로 사람을 고발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조항이 있었다.[25] 현대에도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처럼 자신이 위협을 느끼는 대상에게 극도로 잔인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단지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집단 광기가 종교적인 이유로 배출되었던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이념적인 이유로 배출되는 것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26] 유명한 <큰 바위 얼굴>, <주홍글씨>의 저자이다.[27] 이 현상을 주석페스트라고 한다.[28] 공개적 모욕.[29]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데 마녀사냥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마녀로 멀쩡한 사람을 몰듯이 잘못이 보통 없는 멀쩡한 사람을 몰아가는 걸 많이 이야기하고, 인민재판은 (보통) 잘못이 있지만 사소한 수준인걸 공개적으로 조리돌림 한다는 차이가 있다.[30] 실제로 2010년대 들어서 꽃뱀, 메갈, 성폭력 무고범, 페미니스트들이 여자가 죄를 범한 사건이나 본인들이 죄를 범한 사건에서 자신들이 이에 대한 비난을 받게 될 때 고소 운운하기와 더불어서 즐겨 사용하는 것이 "마녀사냥하지 마세요"이다. 보통 형태는 "마녀사냥을 방지하기 위해 제가 올린 게시글들을 삭제합니다."나 "마녀사냥을 막기위해 댓글창을 막겠습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해 비방성 댓글은 고소하겠습니다."로 즐겨 사용된다.[31] 서민층이 죄책감을 갖는 심리는 정치적 마녀사냥에 익숙해진 나머지 뒤틀려 있다.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마녀사냥에 의해 희생된 진짜 피해자보다 친밀도를 쌓은 다른 정치병자에게 같이 인생을 갈아넣었다는 동정심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정치조직에게 뉘우치자고 말하는 간접적인 의미가 담긴지라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조직의 역린을 건드려 추방 수준으로 토사구팽당한다. 닫힌 사회처럼 내부고발자나 비판자나 죄책감을 자극하는 자를 불순분자라고 합리화하여 추방시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다. 개방적인 외부인일수록 정치병자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망가진 심리에 불과해진 것이라는 공포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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