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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음식점은 산 아래에 있었다. 작은 계곡을 내려오다 이어지는 들에 잔가지 연녹색 풀잎들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었다. 그 길가에 건물 지붕이 낮으며 때가 묻은 가옥이 하나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 등산화를 벗고 사내들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엉덩이 밑으로 방석을 깔며 준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와서 어쩌란 말입니까?’
‘집을 사주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준은 핏발선 아들의 눈을 외면했다. 그들의 대화는 엉클어지고 있었다. 준은 식탁의 잔을 훌쩍 마셨다.
‘왜, 자꾸 화제를 돌리세요?’
그의 아들은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보았다. 자리를 피한 준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머뭇거렸다. 그 순간 문이 확 열리며 문의 모서리가 준의 옆머리를 강타했다. 아들의 몸은 화장실 앞에서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뭐라고? 오히려 귀싸대기를 네가 맞았다고?”
준의 두 배 되는 문호가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는 알코올 온도가 급격히 상승함을 느꼈다. 기영이가 재빨리 빈 잔을 채웠다. 준은 한 달 전의 그 일을 말하며 슬그머니 오른손을 옆머리로 가져갔다. 한층 다가온 그의 아들 결혼과 신혼집 구함이 문제였다. 밖에는 해가 낮게 내려왔다. 음식이 깔린 상 위에서 두부찌개가 끓기 시작하였다. 오후 손님이 빠져나간 자리에 그들만이 차지했다. 남자 주인이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오래된 벽에는 낙서들이 덧칠해져 있었다. 그중에 한 문장을 기영이가 읽었다.
“우리도 십 년 후에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뭔 소리여. 산이나 자주 타라.”
문호는 굳어진 준의 얼굴을 살피며 젓가락을 옮겼다.
“앞으로 어쩔 거냐?”
“모르겠어. 그냥 다 놓고 싶다.”
준은 막걸리 흘림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문호에게 잔을 내밀었다. 주인은 파전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시키지 않았는데요.”
“아닙니다. 그냥 드세요.”
나가는 남자와 준의 눈이 마주쳤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문호가 다시 꾸부정해 앉았다. 검은 산이 내려오는 것같이 그림자는 길었다. 그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계속된 세 남자의 이야기는 자식들로부터 자신들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문호가 대화를 끊었다.
“야. 우리 노래방 가자.”
“무슨 소리. 한 잔 더 해야지.”
흔들거리며 일어나는 준은 문호의 말을 막았다.
“이거 너무 많은데요.”
“다 받으세요.”
손을 저으며 문호는 주인에게 돈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머리 숙여 문지방을 넘으며 깊은숨을 뱉어냈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땅거미가 길가에 차분히 내려앉고 있었다. 예전의 버섯집에서 지금은 선술집으로 변해 30여 년을 지탱해온 이 음식점이 곧 문을 닫는다고 주인은 말했다. 단골인 문호는 없어지기 전에 이곳으로 친구들을 끌어온 것이었다. 여름날이면 반딧불과 모기가 극성으로 모이던 곳이었다. 문호는 그곳을 지나고 과수원 자리를 넘어 소나무가 우거진 길로 앞장을 섰다. 더운 날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늘 밑에서 바둑을 둔 기억을 떠올렸다. 해먹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두 친구가 다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들은 반집 싸움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하얀 나비가 지나간 다음에 바람이 불어왔다. 지저귀는 새들도 그들의 소란스러움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박새 한 마리가 먹다 남은 오징어 파전에 접근하려다가 문호가 해먹에서 내려오자 금방 날아갔다. 이곳은 산 하나를 두고 도시와 딴 세상이었다. 문호는 어두운 밤길에 랜턴을 켜며 작은 개울을 넘었다.
‘아빠가 더 나이 드시면.’
‘그러면?’
‘저는 같이 살 수 없어요.’
문호는 굳어진 표정으로 화색이 오른 첫째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순간 그는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문호는 밖으로 나왔으나 앞길이 막막했다. 내일이면 광천으로 내려가야 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백화점 손님들에게 그는 정성을 다했다. 문호는 하루가 멀다 않고 신선하고 질 좋은 젓갈을 찾으러 전국을 돌았으며 행사가 있는 바자나 규모 있는 마트에 기간을 정한 입점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의 작은 트럭의 계기판 주행거리는 20만 킬로미터가 훌쩍 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의 잦은 펑크로 인해 이번에도 재생 타이어로 교체했다.
“은정이가 그랬단 말이야?”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진 기영이 개울을 건너며 뒤에서 말했다. 차가운 밤기운으로 그의 눈가에 물기가 만져질 정도로 적셔있었다.
“그래서. 술 펐냐?”
준은 자신 아들을 떠올리며 진행을 막는 어두운 가지를 손으로 밀쳤다. 달이 소나무 사이로 들어왔다.
“새벽까지 걸었다 싶은데 한강이더군.”
문호는 각자의 생을 살자는 딸의 말을 곱씹으며 묵묵히 산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불빛을 뒤로 비추어 멀리 떨어진 기영을 조준했다. 잠시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문호는 말을 이어갔다. 문호는 안산에 있는 한 수출 회사 비정규직 10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작년부터 젓갈 판매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월요일에는 소래 포구에 가야 해. 사장과 약속을 했는데 이 위탁 매매업도 경쟁이 심해.”
문호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땀으로 반짝이는 그의 훤한 얼굴을 준은 불빛으로 확인하였다. 길은 가파른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기영은 소나무 뒤에서 소피를 보고 바지를 추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산비둘기 울음이 골짜기를 울렸다. 좁은 산길을 올라오자 임도가 달빛에 하얗게 빛났다. 준과 문호는 흙길에 앉아 기영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문호는 익숙한 임도를 둘러봤다. 작년 비 피해로 임도가 유실되기는 하였으나 가끔 달려본 어두운 밤에도 가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숨이 턱 밑까지 쳐 올라와도 무슨 오기인지 쉬지 않고 뛴 길이었다. 숲길은 절을 지나 기도원을 넘어 작은 호수까지 이어져 있었다. 얼마 전에는 그 호수 위로 노인 시신 한 구가 떠오른 적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았다. 바람이 솔가지를 흔들며 지나가자 기영이 헉헉대며 산비탈을 올라왔다. 잘 정돈된 임도는 그 뒤부터 버스 정거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위를 보고 살아야지. 어찌 아래를 본단 말입니까?’
‘너희들, 아버지가 명퇴를 한 걸 모르냐?’
기영은 흐릿한 조명 구석에서 숨을 몰아쉬며 지난 일을 말했다. 그의 얼굴은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검었다. 작년과 올해 기영의 딸과 아들이 미국에서 연이어 돌아왔다. 딸은 LA에서 취직했는데 적응을 못 하였고 아들은 그곳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자리를 못 찾아 올해 돌아왔다. 10년 동안 그들 부부의 소득은 고스란히 외국으로 보내졌다. 송파구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부부는 자식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였다.
“강남 아이들 친구들이 하루 저녁에 수백만 원을 쓴다는군.”
기영이 맥주잔을 넘기자 그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의 검은 얼굴에 차츰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외제 차를 산 거야? 퇴직금으로?”
준은 기영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녀석 취업 기념도 해서.”
기영은 얼버무리듯이 재빨리 대답하였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
“너 뭐 먹고 살래?”
“다시 일자리 구해봐야지.”
기영은 문호의 물음에 답하였다.
기영이 몇 년 전 술자리에서 문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어디든 취업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고향으로 내려가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살겠다고 했다. 그날 기영의 얼굴에서는 번뜩이는 계획과 희망이 솟아 보였다. 기영은 산과 들에 피어난 꽃과 식물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뒷동산으로 소를 몰았고 돼지에게 줄 음식 찌꺼기를 이집 저집에서 모으기도 하였다. 기영은 산과 들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친 온갖 산나물에 대하여 그것들이 계절별로 언제 어느 곳에서 피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도시로 나와 성인이 되고 수도권에서 조금 떨어진 대학을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문호와 준 이었다. 그때 갑자기 준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나간 날에 있었던 아들과의 불화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다시 맥주잔에 소주 한 잔을 부었다. 세 명 모두에서 알코올 순도가 계속 올라갈수록 목소리는 커졌다.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저녁나절에 준은 문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밖에는 비가 아파트 앞으로 작은 내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준은 수원에서 문호를 만나 그곳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기영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의 왼손등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고 머리맡에는 약병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주치의가 뭐라고 하던?”
문호는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훔치는 기영에게 물었다.
“3년 이상은 문제없다네.”
기영은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웃었다. 그의 하얀 이가 꺼칠한 얼굴에서 반짝거렸다.
“다행이다. 3년 동안이면 전국 100대 산을 충분히 섭렵하겠어.”
준은 기영과 악수를 하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야. 살살 봐줘. 이제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야. 바람 앞에 등불이라고.”
“뭔 소리여? 너의 배낭 속에 나도 들어갈 정도로 충분하던데. 무릎 약한 나 좀 봐.”
기영의 대답에 재빨리 준은 대들었다.
“우리 바로 약속을 잡자. 퇴원이 언제냐? 지리산 종주 어때? 산장 예약은 내가 하지.”
준은 혈압을 재고 방을 나가는 하얀 가운이 착 달라붙은 간호사와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때 문호도 재빨리 침대 통로를 비켜주었다. 커튼으로 칸막을 친 옆에서 한 노인의 기침 가래 소리가 들려왔다. 문호는 얼른 집게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곳에서 빨리 나와라. 안 나오면 계속 찾아온다.”
문호는 기영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순간 그의 어깨가 갑자기 폭삭 말랐다는 것을 느끼며 문호는 움칠했다. 준은 천천히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떡였다. 기영은 병실을 나가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준과 문호는 병원 앞 도로를 건너 학생들이 몰려 있는 소줏집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들은 웃고 떠들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듯이 열심히 자신들의 주장을 펴고 있었다. 오직 이곳에는 싱싱한 삶만 있었다. 문호와 준은 아무 말 않은 채 각자의 잔을 비웠다. 머릿속에 박힌 소독약 냄새를 지우려고 빈 소주잔을 계속 채웠다. 문호는 문득 ‘암은 앎’이다 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5년 생존율이 보통이라는데.”
준은 문호의 차분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문호는 잠자코 머리를 끄떡거렸다.
“녀석은 버틸 거야. 독한 녀석이야.”
문호는 찬찬히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너희 아이들은 잘 갔다 왔고?”
“그렇지. 이제 하나는 해방됐어.”
준은 머리를 끄떡이며 문호에게 답했다. 스스로 대출하여 전셋집을 구한 아들에게 집사람 몰래 생활비를 보냈다는 사실과 퇴직금이 훨씬 줄어들고 있다는 것까지 친구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너, 지난번에 백화점 입점은 어떻고?”
준은 화살을 문호에게 재빨리 돌렸다.
“일주일 만에 접었다. 백화점 김 부장이라는 녀석에게 밀렸어. 그놈 먼 친척이라는데.”
문호의 눈에 잠깐 힘이 들어섰다가 사라졌다. 문호는 부장의 다정함을 가장한 얼굴이 생각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 부장이 뒷돈을 요구한 것이었다. 친절한 앞모습 뒤에 계산기를 튕기는 전형적인 선수였다. 문호는 입점을 접고 나오는 날 한 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좁은 그 세계에서 버티려면 참아야 했다. 부장은 위에는 아부하며 아래로는 이득을 챙기는 야비한 인간이었다. 문호는 아내에게 더 좋은 곳이 있어서 나왔다고 했지만 바로 젓갈의 판로가 막히자 암담하였다.
“이번 주말에는 대학병원 바자에 나가려고 해.”
문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의 딸 결혼 준비는 잘 되고?”
“응.”
“집을 구해 줬다고?”
“작은 평수야.”
“은정이 뭐라고 하든?”
“그냥, 울더군. 자 그만하고 들어라.”
문호는 잔을 거푸 비웠다. 그는 비정규직을 나온 뒤부터 일용직을 전전하였으며 몇 년 전부터 젓갈 장사로 본업을 바꾸고 있었다. 한강으로 나갔던 다음 날 저녁에 그동안 모아 두었던 통장 하나를 딸에게 내밀었다고 했다. 문호의 집사람과 딸은 그 통장을 보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했다. 문호는 십수 년 동안 친구는 거의 만나지 않았고 가능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주위 사람들의 애경사에도 빈손으로 갔다. 집에서는 허투루 전기와 물을 쓰는 것을 막았다. 또한, 사타구니 아래로 헤진 자신의 속옷도 기워 입었다. 문호의 하루는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었다. 휴일은 물론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배달과 대리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사회생활에서 오직 살아남는 것이었다. 자신은 무너져도 가족은 살아남도록 자신을 혹사하였다. 얼마 전에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일용직 모집에도 응시하였다.
그날 준과 문호는 기영의 이야기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앞다투어 말했다. 안주는 하나인데 소주병은 여럿이 비워졌다.
야간열차는 새벽 3시에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개찰구를 나오는 사람들은 등산객들과 몇 사람의 현지인이 전부였다. 그들은 기다리던 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택시 1대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손님을 태우고 어두운 도로를 빠져나갔다. 역은 갑자기 적막으로 휩쓸리고 역전 현판 위로 훤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까지 문호는 준과 기영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천 방향으로 가는 도로를 잠시 바라보던 문호가 길 건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얘들아. 저기 버스를 타자.”
백 미터 전망에서 버스 한 대가 반짝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이 버스에 오르자 바로 차는 출발하였다. 전방에는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불빛이 앞을 열었으며 길가에 숨을 죽이고 있던 작은 집들은 뒤편으로 빠르게 물러갔다. 버스는 구례구역 버스 터미널에서 각자 승차권을 구매하고 화엄사 입구를 잠시 들린 뒤에 바로 급경사를 올라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하였다. 기영도 묵묵히 등산화 끈을 조였다. 새벽 4시를 지나 성삼재에는 차들이 섰다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천천히 가자. 오늘 날씨가 좋아 즐거운 산행이 될 거야. 기영, 괜찮지?”
문호는 머리에 랜턴을 조절하며 물었다.
“너희들 꽁무니만 따라갈게.”
기영은 배낭을 메며 말했다. 등산객들이 점점이 산길로 멀어지고 있었다. 입구는 불빛이 환하게 한 사람씩 전자 인식을 하고 있었다. 준은 화장실에서 봤던 작은 거미가 지금쯤 창틀을 넘어갔을 거로 생각했다.
다져진 길은 굽어지기를 반복하며 이어졌다. 코재로 오르는 나무 계단에 걸터앉으며 기영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문호와 준은 잠자코 그의 옆에서 물을 마셨다. 보름 달빛이 구름 사이로 파랗게 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산장이야. 기영이 앞장 해라.”
문호는 어느샌가 기영의 작은 배낭을 앞가슴에 둘러매고 있었다. 돌계단을 지나 길은 산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그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에 다다랐다. 새벽바람이 그들의 땀을 식혀주었다.
“저 별 무리를 좀 봐라. 와!”
기영은 탄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랜턴 불빛을 끄자 온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 것은 빠르고 어느 것은 느리게 연한 구름 위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 셋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입을 닫았다. 어린 시절 그들은 저 하늘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초가집 담장 위나 감나무 아래에서 혹은 논길 따라 길게 늘어진 수로 위로 떨어지는 흔한 불빛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기억해 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어두운 땅은 밝은 하늘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식혀진 등허리에 서늘함이 느껴질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였다.
“이만 가자. 저 앞이 반야봉이다.”
문호는 침묵을 깨고 랜턴을 켰다. 그는 앞장을 서서 노고단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길은 다시 돌계단으로 시작되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깊게 이어졌다.
기영은 조금씩 친구들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긴 내리막을 지날 때는 몰랐는데 어느 샘에서 물을 보충하고 올라가는 길부터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산행을 출발하기 전에 먹은 약의 기운 탓인지 몇 시간 째 속이 거북하였다. 앞서가는 준과 문호에게는 말하지 않고 묵묵히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가 지고 있는 배낭에는 물과 약만 들어있었다. 어느 무덤을 지나고 작은 언덕을 힘들여 올라가자 넓은 바위가 나타났다. 새벽 구름이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침을 깨우는 전령처럼 물기를 흠뻑 품고 있었다.
“이곳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이야. 저 아래는 피아골이며 저 옆 능선은 불무장릉이라고 해.”
“피아골?”
“응. 이 일대에 피 밭이 많아서 ‘피 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그래. 하지만 여순사건과 빨치산 들이 이곳에서 많은 목숨을 잃어서 피를 의미하기도 해. 내 생각에는 단풍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만.”
기영은 헉헉거리며 문호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그는 위에서 올라오는 울컥하는 비릿함을 억지로 참았다. 끈적한 침이 넘어가자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사위는 온통 산이고 이슬을 먹은 찬 공기가 그들을 에워쌌다. 뒤로는 얼마 전에 지나온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들었다.
“나는 텐트를 지고 올랐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길도 없었어. 한 30년이 지났을까.”
준이 기영에게 초콜릿을 내밀며 말하였다. 준도 많이 지쳐 보인다고 기영은 생각하였다. 기영은 달콤한 밤색 조각을 질경이며 씹었다. 한결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기영은 의식적으로 친구들의 눈을 피하며 땀을 닦았다.
“맞아. 주말이면 이곳은 수백 명이 지나고 있데.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반듯한 길이 되고 말았어. 옛날에는 짐승들만이 지나던 길이었겠지만.”
문호는 웃으며 배낭을 둘러맸다. 길은 돌길을 지나 경사를 만들며 나무 계단으로 이어졌다. 기영은 가능한 신음을 삼키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지난 항암 주사와 방사선 치료 생각이 나자 위아래 치아를 굳게 물었다. 그의 비명이 이빨 사이로 흘러나왔으나 다행히 앞서가는 사람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거의 모든 잎이 갈색으로 퇴색되어 가고 있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스치듯이 눈에 들어왔다. 기영은 이 고개를 넘어가면 편안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에 위안이 들었다. 겁 없이 다가오다가 지나가는 다람쥐를 보면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쓰러지는 풀과 떨어지는 작은 열매들을 지나치며 그는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어쩌면 앞뒤로 나서는 두 친구가 얄밉기도 하였다. 한순간 가슴속에서 이렇게 아우성치는 고통의 폭풍을 과연 그들은 알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멈춰 설 때마다 다가오는 저들의 도움이 싫어서 기영은 무표정하게 내색을 숨겼다.
해가 반쯤 넘어갈 즈음 그들은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는 가을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고 삼각 지붕은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취사장에서 준은 급식 당번의 기술을 발휘하여 금방 밥과 국을 만들어냈다. 붉은 고추장 국물은 보글거리며 코펠 가장자리를 타고 넘쳤다. 사방에서 각종 음식 냄새가 조리장에 퍼졌다. 산객들의 떠드는 소리와 열기는 하얀 수증기와 혼재되어 그들의 땀 냄새와 함께 취사장을 맴돌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경쾌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기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저들은 살아있어. 확실히 즐기고 있는 거야. 화장기 하나 없는 저 여성은 더욱 건강하게 보여. 저 윤기 나고 붉은 혈색이 탐나는군. 그는 밥에 국이 부어진 그릇을 받아 한 수저 넘겼다. 뜨거운 온기가 마른 입술을 적시고 좁아진 식도를 넓히며 천천히 내려갔다. 이때 스테인리스 컵에 문호는 무언가를 담았다. 기영은 주위를 다시 돌아보며 잔을 조금 마셨다. 차가우면서 쓰고 한편으로 진한 한약 냄새가 입안 가득히 풍겨왔다. 집사람이 지난달 새벽에 달인 삼 향기와 비슷했다.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짠했다. 그리고 아무 먹거리나 스스럼없이 어울릴 것 같은 이 산장에서 기영은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저 달 좀 봐라. 방금 멱 감고 나온 여인의 자태 같지 않냐?”
기영은 문호와 준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반점을 가진 약간 누런 덩어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온기가 없는 쌀쌀한 얼굴인데.”
“음, 그러나 편안한 모습이다.”
문호는 연이어 말했다.
“나는 저렇게 밝은 달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마당 침상에 누워 올려다본 저 달 말이다. 외할머니가 부채질하고 옆에서는 모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때와 똑같군.”
기영은 목을 뒤로 젖히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때 코펠 뚜껑에 숭늉을 따르며 준이 말했다.
“난 군대에서 뺑이 친 날이 생각난다. 3년 사귄 그녀는 떠나가고 총 들고 불침번 서던 그 겨울밤 말이다. 이제는 아련히 그립기도 하다만”
“야들아, 초등학교도 군대고 뭔 소리냐. 내일 일정도 빡빡하니까 얼른 눈 붙이자.”
구름이 살짝 달을 가리는 순간 문호는 그릇을 담아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산이 점점 비워지고 있었다. 천연빛깔의 잎들이 점점 퇴색되어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에서 떨어져 온 산을 덮었다. 어느샌가 파란 산은 순식간에 붉어진 다음 하나같이 누런색으로 변했다. 그 떨어진 잎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고랑부터 채우고 숲길을 덮으며 결국 응달 아래 조용히 멈췄다. 그만큼 산은 훤해졌다. 시야는 듬성듬성한 가지 사이를 뚫고 산 능선을 지나 멀리 천왕봉으로 뻗어갔다. 구름 없는 하늘은 더불어 맑고 태양 반대편에서 달의 윤곽이 또렷했다. 노인의 성성한 머릿속을 보여주듯이 지리산 늦가을의 숲은 온통 옷을 벗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인생을 잘 살았을까.”
암벽이 있는 봉우리를 넘으며 기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딸, 아들 둘 다 유학시키고 취직했으면 잘한 거지.”
문호는 돌아보며 기영에게 말했다.
“아니야. 집사람과 아이들이 말렸어. 명퇴하고 나서 시골로 가서 조용히 살자고 했더니 식구들이 한순간에 들고 일어나더군. 좋은 차를 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자고 아들 녀석이 그랬고. 그리고 얼마 전에 들어간 회사 팀원들을 집으로 초대한다고 하며 위만 보며 살자고 하는 거야.”
기영은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내 인생이 없어진 것 같아. 이 철계단은 왜 이리 힘이 드냐.”
자신에게 화를 내듯 기영은 앞서가는 준의 커다란 배낭을 노려봤다. 문호는 어깨 한 번 으쓱하며 스틱을 옮겼다. 그도 다음 주에 거래처를 뚫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김장철이 다가와서 젓갈을 전 년에 비해 배로 늘렸다. 김 부장을 찾아가서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 능선길이 계속 이어져서 다음 주가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때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돌아왔는지 준이 비옷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촛대봉을 넘어가자 장터목으로 가는 능선길이 기다란 실개천처럼 펼쳐졌다. 각자 등짐을 지고 넘어가는 모습이 하나같이 힘들어 보였다. 그들이 가야 할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점점이 돌계단 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흔들거렸다.
“나도 편하지 않아. 더 주지 못한 아들 결혼에.”
준은 문호와 기영의 말을 앞서가며 다 듣고 있었다. 준은 되도록 산행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자꾸 떠오르는 아들 녀석의 화장실 사건은 호된 걸음을 이용하여 지우려고 애를 썼다. 준은 돌아오는 1월부터 택배 배송기사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아직 취직 못 한 딸이 있었다. 통장 잔액은 어느샌가 아들 결혼과 부채를 정리한 뒤에 바닥을 보였다. 저 돌계단 능선을 넘어가는 사람의 배낭의 무게 만큼 마음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정 사장님께만 특별히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위에 적당히 보고하였으니 걱정을 마세요. 잘 될 겁니다.”
“그럼, 부장님만 믿고 갑니다. 바로 연락을 주세요.”
문호는 백화점 김 부장에게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서구적 모습의 김 부장은 문호로부터 슬쩍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 즉시, 그것은 그의 양복 속주머니로 빠르게 사라졌다. 김 부장의 희멀건 얼굴에 순간 이채가 번뜩였다. 문호보다 먼저 돌아선 김 부장은 웃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묘하게 카페 여주인의 가슴을 훑고 있었다. 김 부장이 나가는 모습을 본 문호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나쁜 새끼. 커피값이라도 내면 안 되나?”
계산하고 나오는 문호는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김 부장의 면상을 갈겨주고 싶었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사례비가 나간 것이다. 김 부장의 말솜씨에 그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보름 행사 기간에 적자만 아니길 바라지만 이미 지출은 생기고 있었다. 그는 어금니를 잔뜩 힘주어 물고 길거리에 세워둔 1.5t 화물차로 다가갔다. 그때 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시간 없어. 젓갈 보러 가야 해.”
“뭐라고? 응, 알았어.”
문호는 핸드폰을 끄고 때가 낀 운전대를 가만히 잡았다. 시동을 켜지 않은 채 그는 앞으로 걸어가는 모자의 서로 잡은 손을 쳐다봤다. 꼬마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자꾸 뿌리치려 애쓰고 있었다.
그날 그들은 지리산을 무사히 내려왔다. 산장에서 하루를 더 쉬고 이른 아침에 제석봉으로 올라섰다. 초반부터 돌계단의 간격이 넓었지만 세 사내는 한 시간 만에 능선에 설 수 있었다. 능선 데크에서 보는 산의 굴곡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아련하게 보이는 노고단이 더욱 멀어져 있었다. 어제 비로 한결 맑게 갠 준령들이 발아래로 군림하고 있었고 구름은 온 사위를 덮고 있었다. 한동안 셋은 달뜨기 능선 너머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붉은 기운은 하얀 구름 위에 물감을 뿌리듯이 퍼져나갔다. “야호. 우리는 삼대가 덕을 쌓은 거야.” 기영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준은 카메라를 눌렀고 문호는 핸드폰으로 파노라마 뷰를 찍었다. 파도치는 산군은 바라보기에 벅찼다. 하얀 구름에 누우면 바로 푹신한 침대로 보였다. 좀처럼 떠나기 싫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능선 하나를 더 넘고 정상으로 가는 길에 기영은 다시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밤에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그는 통천문을 올라가는 길목에서 병목 현상을 만들고 말았다. 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것이 내심 걸렸는지 기영은 옆으로 비켜서고 말았다. 준은 앞에서 문호는 뒤에서 기영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그날 저녁 늦게 중산리로 그들 셋은 절뚝거리며 내려왔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그 고사목을 다시 보러 갈 거야.” 그날, 기영은 남서울행 버스 속에서 말했다.
준과 문호는 약속한 시각에 종로 5가에서 만났다.
“우리 다시 지리산에 갈 수 있겠지?”
문호는 준의 상기된 얼굴을 내려봤다.
그때 라디오에서 성탄절 노래가 흘러나왔다. 택시는 혜화동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제 갑자기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겼다는군.”
준은 담담히 말했다. 그러자 기사는 슬며시 라디오를 껐다. 거리는 수많은 빛과 행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첫댓글 조작가의 꾸준한 작품 생산에 깊은 응원을 하네!!
네. 회장형님.
그러나 홈 밖에 있는 분들보다 내에 계신 님들의 관심이 없는듯 하여 걱정입니다. 어찌 하실런지요. 봄은 왔으나 예전의 봄은 어디가서 맞아야 하는지요.
우리나라 국민의 집단 지성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와 정반대이니,
도도한 역사를 후퇴시키는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그리고 후손들한테도 악영향을
미치니 한심한 노릇이죠! 그러기에 일찌기 함석헌 선생은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월이 약이겠죠!
네.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돌아보면 현대인들이 의식주에 너무 몰두하는 거 같습니다. 한발만 벗어나면 자신을 찾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요즈음 저는 남쪽의 산하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짙은 녹음에 절로 삶의 기쁨을 느끼고 있지요. 양평 밭일은 어떠하신지요. 건강에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형님!
미둔작가님의 글 감동적입니다.이시대의 세아버지는 우리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정진하소서 !!!
네. 베를린 큰형님!
이 시대 평범하고 앞만 보고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위와 친구들의 아픈 사연을 듣고 써 내려간 이야기지요.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했는데 아쉬움이 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먼 이국에서 옥체를 보존하시길 항상 빕니다. 큰형님!
부여 가림성 400년 느티나무 아래서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