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월) 부산을 출발해 8/4(화) 후쿠오카에 도착해 쿠마모토, 키쿠치에 있는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이 계신 후쿠시마분코에 갔고, 8/8(토) 후쿠시마 분코를 출발해 후코오카에서 하루 지내고 8/9(일) 귀국하는 6박 7일의 일정로 '평화생태기행'을 떠났고, 마사키 선생님과 4박5일 지냈습니다.
8/ 7(금) 오전 9시~ 11시정도까지 이어진 모임에서 한 이야기를 옮깁니다.
정윤주 : 오늘은 며칠동안 후쿠시마분코에서 지낸 감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처음에는 잘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으니 손만 잡고 패스해도 됩니다. 몇 바퀴 돌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고싶은 이야기가 생길겁니다. 그러면 그 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몇 명이나 손만 잡고 말은 없이 혹은 패스라는 말만 하고 넘어갔다)
김분석 : 지금 울산이라는 도시에 살며 항상 권태감을 느끼는데 여기는 시골, 숲속이라서인지 여기와서는 권태감을 전혀느끼지 않고 자연 속에 있어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사키 : 한사람이 최소한 10분정도는 감상을 이야기하세요
이명화 : 마사키상한테 여러번, 그때그때 느낌을 말씀드렸는데 와서 사는 모습 그대로를 삶으로 실천해온 말씀을 듣고 그 분이 사는 곳에 와서 직접 말씀을 듣고 한국에서 강의로 들은 것하고는 굉장히 감동이 달랐습니다. 강의중에 비유들이 절묘하게 사람의 마음에 확 와닿게 해주신 부분, 예를 들면 두가지, 바다와 파도의 관계, 또 펜을 들고 있을 때 펜만 보고 손은 보지 않는데 그게 환경과 나와의 관계다. 우리는 모두 환경의 영향을 다 받고 있고 하나라는 비유의 표현이 설명해서 와닿기 힘든데 가슴에 와닿게 설명해줘서 좋았고, 사위와 따님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부인도 그렇고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철학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공간을 제공하고 식사대접도 하시고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인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감동적이고 많이 배우고, 삶 자체가 큰 가르침을 주시는 것 같아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늘 아침에 산 위에까지 산책을 했는데, 삼나무, 히노키나무 너무 너무아름답고 좋았어요. 산책코스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힐링프로그램으로. 감사합니다.
정윤주 : 어찌보면 마사키상은 선지자, 예수니 석가니하는 이 시대를 먼저 살아간 사람 같아요. 세상을 제대로 보시고 통찰력이 있어서 부처라든지 예수처럼 선지자같은통찰력을 가진 것같은데 그러기에는 계기가 있었을 것같아. 예를 들면 내가 부처를 만나서 내가 삶을 다르게, 내가 살았던 생활을 벗어났듯이 마사키상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
마사키 : 첫 번째로, 제가 1945년 12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70년전 전쟁이 끝나고 4달 지나고 태어났습니다. 돌이 될 때까지 엄마 젖을 한방울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 굶주려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아마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의 비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큰 계기- 전쟁은 정말 싫고 평화가 필요하다는 진짜 계기는 그것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큰 계기는 역시 인도와 만난 것입니다. 인도 가기 전의 이야기를 하나만 하겠습니다. 고등학생때까지, 18살까지 구마모토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도쿄대학으로 갔습니다. 18살 때입니다. 대학은 4월부터 시작하고, 대학들어가고나서는 계속 스포츠하고 등산하고 놀았습니다. 그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어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년만에 시험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교과서를 펴고 노트를 두고 막상 하려고 했을 때, 큰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꼬리뼈 밑에서 아주 심한 구토, 진짜 심한 구토가 척추를 지나 올라가 이런 일은 절대로 두 번다시 안 하겠다는 아주 강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정말 강해서 등뼈를 통과해서 위로 뚫고 용처럼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두번다시 이런 건 안 하겠다. 이런 것은 학교를 위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려해도 가고싶은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되지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고 안 것은, ‘나는 지금의 생활을 싫어하는구나, 그러니 여기서 나가보자’.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하니 그 때의 나는 일본말로 내 생각도 생활도 모든 것이 일본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싫고 일본어가 없는 곳으로 가자는게 내가 하고싶은 것이었습니다. 나의 사고도 배운 것도 모두 일본어였습니다. 그러니 일본어로 되어 있는 나라는 고치를 벗고 나가자는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맨 처음에는 유럽에서부터, 아프리카, 중동, 인도를 돌면서 1년간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만났습니다. 인도에 도착했을 때 여기는 좋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0년간 늘 인도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인도의 철학입니다. 어제 모든 것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게 인도 철학의 기반, 기본입니다.
지금 말씀드린대로 첫번째는 구토가 나서 일본어가 없는 곳으로 가려고 했고 그리고 인도를 만났습니다.
김진희 : 작년에 환경교육에 대해서 청소년들에게 잠깐 강의를 할 기회가 있어서 환경이 뭘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 때 저는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이라라고 생각하고잠을 자려다가 문득 지우한테 ‘지우야, 환경이 뭐야?’ 하고 물어봤더니, 지우가 ‘서지우입니다’이렇게 이야기를 한거예요. 그래서 ‘서지우는 아니지, 서지우 빼고지.’하니까 ‘싫어, 싫어’그러는 거예요. 그때 번쩍 생각이 든게 왜 얘를 빼야되지?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청소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니 다 똑같아요. 자기를 뺴고 자기를 둘러싼게 환경이라는 얘기를 해요. 우리집에 5살짜리 애가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하니 얘들도 어 맞네. 왜 나를 뺐지? 나를 포함해서 환경이고 내가 남한테는 환경이 될 수도 있고 나자체도 환경이 될 수 있네해서 다같이 공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어제 선생님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하신 얘기가 지우가 했는 말과 겹쳐지면서 어린이와 철학자는 통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선생님한테 궁금한 것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고 돌아보니 내가 이런 생각에서 살았구나하는게 있을텐데, 그 때는 잘 모르고 왠지 해야될 것같아서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래서 했구나하는게 있을텐데 일생을 관통한 생각이나 철학이 있다면 선생님한테는 뭐였을까 궁금합니다.
마사키 : 어릴 떄부터라면 좀 전에 말한 엄마 뱃속에서부터 전쟁은 싫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것을 위해 태어났을 것입니다. 이것은 잠재의식입니다. 의식의 세계에서 말하자면, 좀 전에 말한 18살 때의 구토의 경험입니다. 여행을 떠나기전 즉 20살에 여행을 떠나 인도를 만난 뒤와 그 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20살 때 일본이 싫다고 나간 것은 인도를 만나기 위해서였을겁니다. 인도에서 20대 동안 아주 여러 경험을 했습니다. (거지경험도 있고요) 맞아요. 그리고 맨처음 20살 때의 경험인데 현대 문명이 멸망하고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김진희 : 인도 문명은 오래된(낡은) 문명아닌가요?
마사키 : 그렇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인도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요.
만약 당신이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인도에는 안 가겠죠. 미국에 갈겁니다. 만약 당신이 영적인 신비, 정신적인 신비를 공부하고 싶으면 미국에 갑니까?
일동 : 안 가죠.
마사키 : 정신문명의 최첨단에 있는게 인도입니다. 물론 인도만은 아닙니다. 그건 과학문명도 미국만 있는게 아니고 다 있지만 그래도 미국이 제일 위입니다. 정신적인 탐구도 전세계에 다 있지만 과학의 미국처럼 인도가 제일 위입니다. 그건 지금도 살아있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화산처럼 계속 분화하고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김진희 : 인도에 가면 깨달을 수 있을까요?
마사키 : 가서 표면만 보면 모릅니다. 그래도 예를 들면 달라이 라마라는 존재는 인도의 문화권입니다. 마더 테레사도 인도 문화권입니다.
김연숙 : 선생님이 지금 정신문명의 제일 위에 인도가 있다고 하신 것과 관련해 한국도 90년대 이후에 인도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선생님처럼 깨닫고 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대부분 2가지 이미지인데 하나는 좋더라, 하나는 더럽더라는 인도 이미지 2개를 갖고 옵니다. 놀러간 사람들은 그렇다치고,정신문명을 알고 싶어서 간 사람들은 깨닫고 오는게 아니고 좋다는 느낌만 갖고 오는데 선생님같은 깨달음의 경지까지 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면 좋을까요?
(마사키 : 여기 앉으세요. 얼굴이 안 보여요.
내가 덩치가 커서 그렇나? 아니요. ㅁㅅ언니 뒤에 앉아서 )
마사키 : 내가 깨달았는지 어떤지 모르겠어서... 안 깨달은 부분이 많아요^^ 그건 딱 하나입니다. 진지하게 찾느냐 아니냐. 놀러가면 노는 세계만 봅니다. 그렇지만 신을 찾아서 여행하면 신을 만나게됩니다. 나는 18살 때 강한 구토가 있었다했죠? 그건 아주 강해서 해결이 안 되면 아마 자살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강렬하게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이고, 그 생각을 제치고 보면 인도가 나를 불렀지 않을까합니다. 인도의 어머니가 나에게 구토를 일으켜 일본을 나와서 인도에 오게 한거죠. 그걸 실감합니다.
김명숙 : 이 절은 선생님이 지으셨나요?
마사키 : 아니오. 여기는 40년쯤 전까지 마을에 사람들이 5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가고 캠프장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캠프장의 메인홀입니다. (여기와보세요. 현숙언니 이 쪽으로 오래. 얼굴보이는게 좋아요. 의자 좋네. 제일 먼저 찜했거든.)
정윤주 : 원래 절이 아니고, 템플이라고 써놓은 거구나.
마사키 : 여기는 굉장히 넓죠. 이 벽을 뜯어내면 100명 정도 들어올 수 있을거예요. 그 공사를 하려해요.
(100명 들어오네요. 우리 또 올게요)
김명숙 : 저는 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어서 상당히 분주하게 살고, 살면서 농사가 좋아서 농사를 짓는데 분주한 가운데 또 분주하게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생님 사는 모습보고 이 공간에 오니까 분주한 제 삶을 정리를... 사실 그 전부터 정리를 해야된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는데 아직 단체 발전에 대한 욕망때문에 정리를 못하고 있는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사키 : 확실히 NGO, NPO를 사회 속에서 활동을 하려는 것은 진짜 목적이 아닙니다.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키는 문화로써의 코드를 생각하면 규모는 클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문화의 바람직한 모습, 현대문명을 대신하는 새로운 문명의 바람직한 모습으로는 작고 느린 것이 중요(필요)합니다. 그러니 바쁘게 일해 규모를 키워서 뭔가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이미 새로운 것을 하려면 천천히 작게 해야됩니다.
김명숙 : 어제 차밭을 돌아보면서 제가 살고 있는, 우리 단체가 있는 곳이 다운동인데 차 다자에 구름 운자예요. 조선시대의 차재배지인 것은 알아도 차를 심을 생각은 못했어요. 어제 차밭을 보면서 아, 지금 우리 연숙씨하고 그 밭에 블루베리를 심을게 아니고 내년봄에 차나무를 좀 심자는 생각을 했고, 아주 오래된 꿈인데- 여기 오니까 너무 좋아요- 함께 나누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작게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그냥 꿈이었는데 나이도 좀 들고 해서 이래저래 힘을 모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2가지예요. 차를 심고, 우리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마련하자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연숙 : 그 밭에 차나무 심으면 될까요?
김명숙 : 우리 밭에는 되요. 그 근처가 옛날에 차재배지였어요.
마사키 : 차나무를 조금 심으면 따서 손으로 비벼하면 되니 괜찮아요. 진짜 맛있어요.
김연숙 : 그래도 우리밭에 나무는 심지말지...
마사키 : 지금 열심히 하고 나중에 천천히, 느긋하게 살아야지 하면 죽을때까지 느긋하게 못 살아요.
정윤주 : 지금 바로 살아야 된다?!
(손을 전달하세요. 20대는 질문?)
배미화 : 질문할 거는 없고 제가 바라던 생활이고 가족들이랑 다 같이 노래부르는게 너무 좋아요. 나중에 저도 결혼하면 이런 생활을 꿈꿨는데 그렇게 하고 계셔서 너무 좋았어요.
마사키 : 매일 베란다에서 차밭을 바라보며 노래부릅니다. 미화한테 한가지 사과할 일이 있습니다. 모기와 등에를 아직 확실하게 교육을 안 시켜서 폐를 끼쳤습니다. 다음에 올 때까지 확실하게 교육시킬게요.(일동 크게 웃음^^)
김분석 : 제 말이 두서가 없을 수도 있어요. 질문하는 중에 언뜻언뜻 기억이 떠올랐어요. 30대초에 노인들이 사는 곳에 자원봉사하러 갔어요. 그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냄새가 너무 났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가 지나가면 자꾸 만져요. 저는 그 사람들을 도와줘야된다는 마음은 있지만, 실제는 너무 싫은거예요. 그 이후에 노인들이 있는 곳에 자원봉사를 가자고 하면 간 적이 없었어요. 나이든 사람은 냄새난다는 게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남편과 행복하게 살다가 이혼하게 되면서 심적으로 굉장히 침체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이기려고 책을 계속 읽었어요. 온갖 책을 다 읽었어요. 철학책도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마인드가 바뀌게 되었어요. 나도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 나는 늘 바라보는 입장이었는데, 저 사람은 못 사는 사람, 저 사람은 병든 사람... 늘 이런 입장이었는데 나도 이혼한 여자야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있을 수 있겠구나는 걸 알게 되면서 그런게 조금씩 사라졌어요.(여기까지 해주세요. ^^. 알아서 끊어^^ -통역할게 너무 길까봐 알아서 부탁하신듯) 작년에 한달정도 네팔에 갔어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가 카트만두에서 일주일 좀 넘게 있었는데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병든 사람, 다친 사람들이 다 노출되어 있어요. 다쳐서 떨고 있거나 상처부위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고 붕대를 감고 있는데 고름이 나오고, 처음에 그걸 보는데 너무 더러워서 보질 못 하겠더라구요. 그런데 그 때 또 생각을 했어요. 내가 아직도 분별을 하고 있구나. 나는 무분별하고 산다면서도 아직도 아니구나. 내 몸이 지구라고 봤을 때 저 사람은 내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픈 것과 똑같구나. 내가 만약 손이 아프다면 저 사람은 내 손의 상처가 난 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어느순간 그게 봐지는 거예요. 안타깝구나.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동냥그릇이 있었는데 한번도 그 동냥그릇에 돈을 넣어줄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아, 저사람들 나와 같다. 내가 아픈 것과 같다는 생각만 하고 돌아온게 지금도 조금 후회스러워요. 그렇게 약간씩 후회를 하며 사는 것같아요. 늘 전원생활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또 분리되서 기억속에만 있고 실천은 되지 않을 듯한 느낌은 있지만, 지금 마음은 한국에 가서 작지만 뭔가를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명화 : 따님이 있으니까 교육문제를 묻고 싶어요. 워낙 철학이 확고한 상태에서 애를 키우셨으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제 같은 경우는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 그게 정말 아이가 가장 행복할 테니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슴깊이에서.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부모의 욕심이 가끔씩 생겨요. 정말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일단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 하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의사나 변호사나 고위 공무원이 되고 그러면 돈도 잘 벌고 잘 나가고 부유하게 잘 살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분명히 솔직하게 들어요. 이 조절을... 선생님은 따님에 대해 그런 생각들 때 없으셨는지? 정말 니 멋대로 살아라 그런 마음이 항상 유지됐었는지 굉장히 궁금해요. 따님은 스스로 사회적으로 그런 지위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크면서 없었는지? 어떻게해서 선생님하고 비슷하게 이렇게 농부잖아요. 차를 키우는 농부인데 농부의 삶을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건지 궁금해요.
마사키 : 사회적인 성공이란게 뭐죠?
(통역을 연숙샘이 하다가 여기서부터 제가 했는데 실수로 예를 든 부분을 빼고 통역을 해서 마사키 샘이 질문을 하셨어요)
김연숙 :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고위 공무원이 되고 이런 여러 예를 들었어요. 지위를 가지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대요.
마사키 : 내 경우는 처음에 말했듯이 이 세계, 사회에 대해서 강한 구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딸을 위해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자기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아이들은 학교에 따라 아이의 조건이 정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가진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니 애들은 정말로 자기가 하고싶은 걸 못하거나 하고싶은게 뭔지를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4학년 10살쯤 되었을 때 활기차던 모습이 점점 없어지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부모로서 교육책임을 다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안 가고 싶으면 가지말라고 했더니 딸은 그럼 안 갈게요. 하더군요. 좀 있으면 초등학교 졸업하니까 초등학교까지는 가고 그 다음은 안 갈게요 하더군요. 중학교부터는 하루도 학교에 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보셨던 제가 처음으로 지었던 집을 둘이서 지었어요. (샘~ 혼자 지으신게 아니네요. 어제는 혼자 지으셨다했는데 알고보니 둘이서 지었대요) 내 교육이 딸한테 좋았는지 나빴는지 나는 몰라요. 다만, 나는 애를 이대로 학교에 보내면 안 좋다고 판단해서 그 판단에 따라 아이를 교육했어요. 지금 그것이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는 딸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자기가 진짜로 하고싶은 대로 해가는게 중요해요.
김연숙 : ‘진짜’가 중요한건데 우리는 다 입으로는 ‘진짜’라고 말하는데 ... ‘진짜’ 원하는 것이면 여기서도 원하고 집에서도 원하고 후쿠오카에서도 원하고 울산에서도 원해야 되는데, 여기서 원하는거 다르고 쿠마모토에서 원하는 거 다르고 울산에서 원하는 거 다르면 진짜 원하는게 아닌거죠. 포인트가 내가 뭘 했다는게 아니고, ‘진짜’ 에 대해서 포인트를 맞춰야되는데 우리는 ‘진짜’에 포인트를 안 맞춰. 그러니까 ‘원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지 ‘진짜’에 포인트를 안 맞춰요. 제가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늘 느끼는게 선생님과 우리의 차이가 뭐냐하면 꿈꾸는 것은 같지만 선생님과 우리의 ‘진짜’는 차이가 있어요.‘진짜’라고 했을 때 그 ‘진짜’가 어디서나 똑같은 ‘진짜’여야하는데 선생님같은 경우는 그게 진짜 어디서나 똑같은 ‘진짜’이지만 우리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진짜’예요.
마사키 : 그게... ‘진짜’라고 말 할 때는 ‘진짜’가 아니에요. 영어로 말하면 ‘cool’ ‘cool’하게 보고 그렇게(cool하게) 보이면 그렇게(cool하게) 하라. 냉정히 차분하게 조용하게 마주보면 예를 들어 현대문명은 이대로는 안된다는게 냉정하게 보인다면 거기에서(현대문명) 나와요. 나오면 자급자족할 수 있어요. 학교가 안된다는게 진짜로 보이면 열심히 안해도(애쓰지 말고, 용쓰지 말고) 나오면 새로운걸 발견할 수 있어요.
이현숙 : 선생님께서 계속 ‘진짜’라고 말씀하시니까 ‘진짜’ 고민되는데, 우리는 도시 사람이니까 그리고 도시 속에서나마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도시속에 사는 공동체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내일이 더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안정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원하는 지향점을 가지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곳에 오면 저는 늘 좋지만 괴리감을 느끼는, 스승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어요.
김연숙 : 스승이라는 건 우리 시대의 동시대를 사는 같은 사람이 아니고 스승으로 우러러 봐야되는 그런 존재로, 좀 먼 거리의 느낌인가요?
정윤주;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느낌?
이현숙 : 저는 시골에서 어릴 때 힘들게 살았어요. 아까 딸 학교 안보내고 이랬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맏딸 콤플렉스 있고, 시골에서의 삶이 자기의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아직도 완벽하게... 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고싶다는 생각은 강렬하지 않고, 다른 사람 도시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들어서 전원생활한다고 땅도 사고 그러던데전혀 안 부럽고 그게 제대로된 삶이라는 생각도 안 들고 그러느니 차라리 도시에서 가난하지만 최소한의 삶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내가 잘못된 건지, 나이가 들어서 또는 내 공간을 위해서 또는 내 뭔가를 위해서 시골삶을 선택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시골사람이기 때문에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머니가 계시는데 일을 거들어 드릴 생각을 별로 안 해요. 그래서 나쁘다 이렇게 나스스로를 생각하는데 정말 내가 싫어하는구나, 힘들어하는구나는 걸 매번 느껴요.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못됐을까 생각해요.
마사키 : 진짜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나비를 보면 날개도 있고, 눈도 있고 몸도 있고 손발도 있어요. 나비가 모두 날개만 있으면 날 수 없어요, 물론 도시가 없어지는 일은 없죠. 다만 지금은 도시밖에 없어요. 도시만 발달했어요. 그게 너무 심해요. 시골만 있어야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 느낌에 제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서 살면 되요. 하트- 마음이 중요해요. 예를 들면자기가 생산을 안 해도 생산된 먹거리를 보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마음이 정말로 이어지면 멋진 일입니다. 우리집의 차를 사서 도시에 파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하는 거죠. 그 사람의 마음과 제 마음은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집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일본에서는 저를 아무도 선생님이라고 안 불러요. 젊은 사람들은 별명을 부르는데 ‘마이사’라고 불러요. ‘상’(한국말로는 ~님)도 안 붙이고 ‘마이사’라고 불러요.
나중에 들었는데 별명은 舞茶(마이사: 춤추는 차)입니다.
이현숙 : 한국에서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얘기한다고 얘기해줘요. 나는 뭘 가르친 일이 없는데 자꾸 나보고 선생님이래.
마사키 : 한국에서 생명평화결사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그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요.
이현숙 : 저는 도시에서 빈땅이나 나무심는거에 관심이 많고, 나무를 베는 일, 녹지가 없어지는 일, 우리 아파트에 벚나무를 잘라서 대판 싸웠어요. 사람들은 자기 재산가치에 나무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거에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나무가 있으면 재산가치가 올라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게 너무 다른걸 발견했어요. 예전에 학교에서도 그렇고 옥상에 농사짓는 것, 아무래도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 형성하니까 외곽이 더 예쁘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일본을 보면 자투리 공간에 꽃을 심어서 유명해진 곳이 많던데 그런 곳에 나무를 심는다거나 꽃을 심고싶어요.
오기 전에 서양철학 공부를 –우리 현실을 어떻게 볼 건가에 대한 철학 공부를 했어요. 그걸 끝내고 선생님 강의를 2번 들었잖아요. 그 철학을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 다 정리를 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충만합니다.
정윤주 : 두가지를 배우고 갑니다. 첫 번째는 마사키상이 숲 만들어놓은데서 생명들이 자라야되는데는 햇볕이 있어야된다고, 햇볕은 받아야된다고만 생각했는데 마사키상이 그늘로 인해서 생명이 자라난다고 해서 처음 생각한 거예요. 그것을 배웠고, 또 한가지는 교류의 중요성, 나라와 나라의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이것을 계기로 우리가 마사키상한테 온 것을 계기로 돌아가서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실천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구체적으로 고민을 한번 해봐야겠다, 두가지를 배우고 갑니다.
마사키 : 제가 묻고 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생명평화란 어떤 것입니까?
정윤주 : 저에게 생명평화는 제 삶을 온전히 보는 것, 내가 누구인가를 볼 수 있는 것, 그것을 봄으로써 모두가 다 내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마사키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김진희 : 우리는 선생님이 가족들과 같이 연주하고 노래하시는거 보고 우리도 돌아가서 모이면 노래하자고 했어요. 좋은거 배워갑니다.
김명숙 : 노래중에 ‘샨티’라는 노래 너무 감동적이었고 제가 들은 노래중에 가장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마사키 : 그건 부처님의 시예요.
김명숙 : 자주 듣겠습니다.
(cd안에 있나? 있었다.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 60되어서 가수, 노래를 하게되었다고 하셨는데 잘 부르겠다는 욕심버리고 나는 노래 못한다는 생각했는데 나도 그냥 노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단한 노래.
(일동 웃음^^) 잘 할 필요는 없구나.
마사키 : 나무를 심고 진짜로 제일 좋았던 것은 노래가 온 것입니다. 시와 노래가 같이 내려왔어요. 물의 신, 바람의 신은 음악의 신입니다. 그러니까 나무를 심었으니 사례로 노래를 준 것같아요. ‘옴 샨티’ 노래는 불경인데, 보통은 불경 싫어하잖아요. 그러니 너무 올곧고 솔직하니까 이런 노래는 아무도 안 듣겠네하고 처음에는 생각했어요. 만들고 얼마 안 되어 중학교에서 공연했을 때 200명 정도 학생들이 있고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거기서 갑자기 노래를 불러봤어요. 그랬더니 그 200명의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조용히하고 귀기울여 듣고 있었어요.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나도 진짜 놀랐어요.
배미화 : 갑자기 아까 ‘진짜’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고등학교 3학년 때 (ㅠㅜ) 아, 죄송해요.(아니야, 아름다운 모습이지) 그 때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학원을 다니는데 엄마가 진짜 반대를 많이 하셨거든요. 근데 엄마한테 힘들다고 말을 못하겠는거예요. 힘들다고 하면 학원 안 보내줄까봐. 시골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학원에 가려면 매일 2시간을 가고 왕복 4시간이 걸리는데 매일 왔다갔다해서 힘들어서 하루는 학원마치고 다시 기숙사로 오면서, 강이 있어요. 너무 힘들어서 거기 앉아서 엉엉 울었는데 그 때 이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갑자기 들었고(그런 때가 다 있어. 일찍 들은 거야. 이제 20살인데...) 아직도 엄마가 연기하는 걸 반대하고 있지만 이 ‘진짜’로 라는 말을 계속 생각하면서 하고싶은 것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동 힘차게 박수)
마사키 : 그런 때가 있어요.
(마사키샘도 좀 전에 아지매들하고 같은 말을 미화씨에게 해주었어요)
특히 말이죠. 지금 시대는 진짜로 힘든 시대예요. 모두가 진짜로 모르고 있는데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힘든 시대예요. 큰 전환의 시대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후쿠시마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진짜로’ 라는 말을 상당히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감추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진짜 삶을(제대로) 살아야됩니다. 전세계가 지금 이 큰 전환 속에 있습니다. 당신들 20대는 가장 힘든 시기를 극복해야됩니다. 진짜로 제대로 살게 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김분석 : 선생님 책을 보니까 하와이에 대해서 많이 나오던데 우리 애들도 여기 한번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 애가 3명 있어요. 10월에 애들하고 다 하와이에 가는데 혹시 하와이에도 이런 공간이- 방문할 수 있는 이런 곳이 있는지 궁금해요.
마사키 : 그건 우연입니다. 자기가 그런 곳에 갈지 어떨지... 물론 많이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에만 가면 없어요. 하와이라는 곳은 원주민의 하와이, 진짜 하와이의 세계와 헐리우드가 만든 하와이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옛날에 미국 히피들이 하와이 원주민한테 배워서 사는 커뮤니키가 있는데 아주 좋은 곳입니다. 멋진 히피가 있어요.
김분석 : 소개 좀...
마사키 : 소개는요... 가긴 갔는데 주소도 모르고...냄새로 찾아갔어요. 진짜 냄새.
(일동 웃음^^)
그러니까 나에게 좋은 곳과 당신에게 좋은 곳은 다를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냄새를 맡아서...
(very difficult for me. 인터넷에 검색하면 되)
김분석 :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우리 아이들한테 꼭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 애들은 온통 도시에 젖어서, 우리 아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들어가서 뭔가를 하고싶어하는 거예요. 공부도 열심히 할려고 하고, 그러니까 돈벌어서 많이 주겠다 하는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삶이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싶어요.
(내가 그래 살면 된텐데...)
그래 살고 있어요. 근데 엄마는 가라하거든요.
(이리로 데리고 와)
마사키 : 하와이 좋아요.
김분석 : 우리가 차를 빌려서 하와이를 다닐 건데, 관광지 말고 방문해볼게요.
마사키 : 내가 제일 처음 하와이 갔을 때 이야기를 할게요. 딸 라비가 처음으로 하와이를 갔어요. 돌아와서 ‘하와이가 아버지도 부르고 있으니까 꼭 빨리 가보세요’ 했어요. 그래도 나는 딸을 안 믿으니까(일동 웃음^^) 만약에 하느님(신)이 거기서 날 부르면 증거를 보여줘라고 했어요. 그날 밤 꿈을 꿨어요. 그 꿈은 섬의 해변에 둥근 바위가 많이 있고 그 위에 거북이가 가득히 있는 꿈이었어요. 그리고 꿈꾼 다음날 아침에 딸이 컴퓨터로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여준게 있는데 꿈꾼게 사진에 그대로 있었어요. 신기했어요. 그래서 ‘알았어 갈게’ 했어요. 하와이의 여신은 파워풀해요. 그러니 꼭 기도를 하세요. You can go.
(만나겠다. 반드시, 약빠리^^)
이명화 : 한가지 궁금한데 많은 농사 종목이 있는데 왜 차를 하셨어요?
마사키 : 원래 여기에 차재배하는 곳이었어요. 하던 사람이 마을을 떠났고 거기를 샀어요.
이명화 : 차농사가 많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어떠세요?
마사키 : 안 그래요. 야채농사짓는거 좋아해요. 차는 재미없었어요. 야채농사짓는 것보다는 재미없어요.
이명화 : 약차 덖고 해봤는데 중노동이던데, 정성도 많이 들고 허리도 아프던데 안 힘든지?
마사키 : 손으로 하면 힘들죠. 보통 일본에서는 차를 3번 수확합니다. 1번차, 2번차, 3번차. 그러면 힘들어요. 우리는 1번차만 수확해요. 비료는 안 줘요. 풀은 베요. 농약은 일체 안해요. 그러니까 수확은 보통 농가의 반정도예요. 1번차만 하니까 양은 더 적죠. 그래서 한가해요. 10월부터 4월까지 아무 할 일이 없어요. 5,6,7,8 네 달 일해요. 아주 편해요. 열심히 하면 힘들어요. 최소한으로 하죠.
이명화 : 차를 잘라서 차만드는 공장에 보내는 거예요? 그것까지만 하는거예요?
(어제 사진에 자르는거 있었잖아)
박영옥 :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명숙샘의 안내만 믿고 왔는데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일동 웃음^^ 명숙샘이 제일 크게 웃음^^), 또 이런 삶의 철학이나 이런 것을 배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이런 나눔에 대한 것들이 선생님이 저를 하나라고 생각을 하셔서 가능하다는게 느껴지니까 철학과 삶이 일체되는 것에 대해 감동이 무엇보다 깊고 나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머리나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발에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연숙 : 우리는 귀신입니다. 11:01분. 마칠 시간이네요. 저는 와서 좋았고 만족합니다.
마사키 : 통역 진짜 감사해요. 진짜로 여러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진짜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둑에 보면 작은 틈이 생겨서 물이 조금 졸졸 새는데 아직 작게 이어졌지만 이런 글로벌적인 흐름이 홍수같이 세계로 퍼져가서 일본과 한국 사이를 없애는 흐름을 보이는 맨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구멍을 좀더 넓혀가고싶습니다. 이번에 그쪽(한국)에서 오셨으니 다음엔 제가 울산에 가서 좀더 구멍을 넓힐테니 몇 번 하면 강물이 쏴 흐르겠죠. 가을이 되면 치코(사모님)와 같이 가려고 합니다.
첫댓글 2015.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