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네이버 포토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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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골목을 건너갔다 / 마경덕
움푹 파인 발자국이 골목을 걸어간다. 막 포장을 끝낸 질척한 골목을 지나간, 발을 잃어버린 오래된 발자국, 딱딱한 콘크리트 발자국이 쉬지 않고 골목을 걸어간다. 구두가 운동화를 껴안고 큰 발이 작은 발을 업고 박성희 미용실, 월풀 빨래방 현대슈퍼를 돌아 나간다. 사라진 발을 기억하는 발자국들. 빈 발자국을 따라가는 내가 아프다. 어느 날 찾아 온 사랑은 나를 딛고 가버렸다. 버거운 영혼이 가벼운 영혼을 밟고 저벅저벅 앞만 보고 가버렸다.
누군가 길에 마음을 빠뜨리고 한참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 골목은 발자국 흉터를 가지고 있다.
다층 (2005년 여름호)
시집 - 신발論 (2005년 문학의전당)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로 등단
2005년11월 시집<신발론> |
골목 포장공사 때 찍힌 발자국, 누가 남기고 지나간, 발을 잃어버린 발자국을 보며 마경덕 시인은 누군가 길에 마음을 빠뜨리고 찾으러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발자국 흉터를 가지고 있는 골목을 바라보며 그녀는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게 남겼을 아픈 흉터와 골목의 발자국처럼 찍혀서 지워지지 않는 가슴 속의 발자국을 굳이 들춰내서 한 번 더 바라보게 한다. 어딘가에 빠뜨려 버린 현대인의 자아, 그 속에 자리잡은 흉터로부터 진정한 자아를 보는 성숙한 마음의 눈을 만들어가게 한다. 구두가 운동화를 껴안고 큰 발이 작은 발을 업고 미용실과 빨래방과 슈퍼를 돌아나가는 발자국. 아픔을 가지고도 일상에서 떠나지 못하고 삶의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는, 빈 발자국을 따라가며 어느 날 찾아왔다가 가버린 사랑을 생각하며 아파한다. 딱딱한 발자국 속에서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한다. 구두가 운동화를 껴안듯 큰 발이 작은 발을 업고 가듯, 현재의 모든 일도 과거의 지나온 발자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선명하게 남은 저마다의 발자국을, 누구나 갖고 사는 자기만의 발자국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나간 발자국은 그저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꾸밈없고 그저 덤덤해 보이는 마경덕 시인은 그 깊은 영혼 속에서 시어들을 강한 터치로 반죽하여 마경덕 시인만의 색깔로 빚어낸다. 골목의 공사 현장에 찍힌, 무심히 지켜보던, 딱딱한 그 발자국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기억이 되어 골목을 돌아나가게 한다. 인생의 발자국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과 흉터가 승화되어 한 편의 시로 빚어졌다. 거울을 보듯 다시 보고 흉터를 순하게 만들라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골목의 그 흉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