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발전
중세의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중세인들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모두 신이 자신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데 필요한 두 개의 도구로 인식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중세 사회의 생활에서 중심적 역학을 수행하였다. 교회는 봉건 제후의 일부를 차지하여 교회령으로서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정치적으로 거대한 세력을 갖고 있었는데, 때로는 세속적인 권력을 능가하는 강력한 교권을 발휘하였다.
봉건 제도가 중세 초기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자라났듯이 가톨릭 교회도 같은 무렵의 혼돈과 불안 상태 속에서 성장하였다. 즉 프랑크왕국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봉건 제도가 자리를 굳혀 가고 있을 무렵에 프랑크 왕국과 제휴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서유럽을 크리스트교화하여 갔다.
이렇게 가톨릭 교회가 급속하게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로마 제국의 통치 조직을 모방한 훌륭한 교회 조직과 유능한 교회 지도자들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였다. 후에 교회의 세력이 확대되고 그 세속 권력이 증대되어 감에 따라 교황과 세속 군주 사이에 정치적 우월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져 11세기 이후 약 2세기 간에 걸쳐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교회와 세속 군주간의 싸움은 주로 누가 성직자를 임명할 것인가 하는 서임권에 관한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참고
* 13세기 교회법 해석가 이노센트 4세의 견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현세에 있었으나 영겁으로부터 오신 만물의 주군이셨고, 또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황제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들을 폐지하거나 또는 파멸을 선고할 수 있었으니, 이는 그들을 그리스도가 창조했고, 선천적이며 개방적인 재능을 부여했고, 천성을 간직케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리인도 그리스도와 같이 행할 수 있으니, 만일 이러한 모든 일을 해낼 만한 힘을 가진 특출한 대리인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현명한 주군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인은 베드로였거니와 ...... 이와 동일한 것이 베드로의 후계자들에게도 호칭되어져야 하겠으니, 그 까닭은 만일 베드로의 사후에 한 사람에 의한 통치권을 박탈한 채 자신이 창조한 인류를 버려두었다면 동일한 모순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 속권을 옹호한 11세기의 저술
진실로 왕은 모든 것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국왕의 모든 것을 널리 보살필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그가 바라는 법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또한 그가 명한 것은 무엇이든 복종해야 한다. 그리하여 법의 불이행이나 그릇된 판단 및 국왕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어떤 문제 때문에 왕이 궁정으로 환영을 받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사람은 왕 수하에 아무도 없다. ...... 왕이 공동의 아익을 위해 좋다고 생각하였을 때 그렇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경우에 국왕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나 왕 이외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