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자 몸이 녹초가 되었다. 세상 모르고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엉금엉금 기어가 목욕탕 물을 틀었다. 혹시 뜨거운 물에 몸이라도 담그면 나을까 싶어서....
옛날의 어려운 시절을 떠올려 나는 목욕탕물을 버리지 않는다. 빨래도 하고, 걸래도 빨고, 허드레물로도 쓰고. 그렇게 해도 관리비는 여전히 오르기만 하니 이상한 일이지만 산사에 비하면 내집은 극락이다.
억지로 일을 끝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는 나의 일상이므로.
쪽지가 하나 와 있다. 야생화카페의 들풍님이 "갈수록 내 글에 쓸쓸함이 묻어난다"고 하면서 건강 잘 챙기라는 격려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 내 글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걸까?
나는 본시 쓸쓸하게 태아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남 앞에서는 껄껄 웃다가도 혼자 있으면 우울하게 있으니까.
그래도 말년엔 사랑의 불씨 하나 보듬고 살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전화가 왔다. 동창 영순이는 나와 통화가 되지 않자 아예 내 집으로 오겠단다. 그도 컴퓨터에 관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온다고 하랴?
바깥엔 눈발이 섞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오면 매화꽃이 다 지고 말텐데 어쩌나... 광양의 장 시인이 매화꽃 보러 오지 않겠느냐고 전화해서 그러지 않아도 들떠있는 판인데, 어쩌나...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사들고 왔다. 감격이다. 나를 위해 이렇게 마음써줌이 고맙고 미안해서 부리낳게 캔을 땄다. 시원한 한모금은 사랑의 짜릿함 그 자체
그뿐이 아니다. 음식배달을 안해보았던 나를 대신해서 전화를 찾고 걸어서 원할머니보쌈을 주문했다.
빈 상에 가득해진 밥상이 근사해졌다.
생각도 않던 진수성찬이 연출되었다. 집에 앉아서 이렇게 호강함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의가 소롯이 솟는다.
친구는 관세음보살,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니 놀랍고 고마워 내 사랑을 만두로 표현했던 만두라도 주려고 말을 꺼냈는데
어쩌랴? 잠들 무렵에야 전하지 않은 만두 생각이 나서 후회했지만, 변명의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어쩌지? 영순아! 미안해 너는 남을 기쁘게 하는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많은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걸 봐서는 천사인가봐.
나의 인색함을 뉘우치고 앞으로 남에게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할 생각을 했어.
날씨는 흐렸지만 우리 영혼의 세계는 활짝 갠 푸른 하늘이었어. 고마워! 사랑하는 친구, 영순이. |
출처: 그대 그리고 나 원문보기 글쓴이: 보견심
첫댓글 우정이 부러워요...
어라? 재주 부렸네... 이제 선수이시구먼!!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아픈 몸으로도 꼬박꼬박 일기를 쓰는 대단함을 배워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