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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승지를 가다-지리산 운봉
약 40키로
덕두산-지리산- 고남산-황산
2008년 11월 8,18,19일 (3일간)
혼자서
맑음
산행지도
88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리산IC를 빠져 나와면 바로 뾰족한 덕두봉 산 아래로 달오름마을 인
월이다, 인월에서 서쪽 운봉쪽으로 광천을 따라 4키로쯤 가다보면 대덕리조트가 홀로 자
리잡고 있고 있다, 덕두봉에서 발원한 옥계저수지를 끼고 임도따라 올라 가자 바로 덕
두봉 오르는 안내판이 서 있다, 1,149의 높이까지 계속 오르막을 2시간쯤 올라야 덕두봉정
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굵직한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 아침 햇살에 빛을 발하고 살가운 바람엔 끄덕도 않는
믿음직한 크고 넓은 솔밭이다, 산속에 들어서면 싱그럽고 죽은 듯 눈을 감았다가도 푸른
하늘이 손짓하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어느새 물들어 높은 산이 부르는 장단에 날개를 달게
되는지 모르겠다,
오르는 언덕길은 푸름의 산허리를 번져놓고 한기슭은 노랑의 물감으로 물들여 놓은 또렷한
색의 구분이 된다. 등허리 축축하리 만큼 걸어 올라 뒤를 돌아보니 황산이 눈 앞에 보인
다, 내가 산오르기를 좋아하고 산에 서면 땀흘려 오른만큼 보이고 산기슭 어드메쯤에 앉
아 마시는 물맛이 온몸에 환희의 전율로 번진다,
-덕두봉 삼각점-
지리산은 드 넓고 드 높다, 두류산이라 했고 방장산이라 했으니 이름만 해도 지리산은 3
개를 달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오르막길에 힘의 무게가 더 한지 모르겠다. 천왕봉에서
수많은 연봉을 따라 내려온 끝 봉우리 덕두봉, 지리산을 오르는 첫 봉우리이기도 하다,
태극종주를 하면서 두 번이나 덕두봉에 올랐건만 밤중에 지났으니 내 눈속에 가늠이 되지
않았던 산이다,
-바래봉 정상-
3년의 세월이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때 바래봉으로 가는 이 길은 잡목으로 길조차
겨우겨우 찾아 덕두봉에 올랐었는데 우리가 걸어온 발길을 더듬어 보게 되고 새삼 너무나
크게 변해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유유히 흘러가는 세월의 깊이와 상념에 나
도 묻히며 살아가는 거겠지,
고요가 깃들인 쓸쓸한 가을의 바래봉, 발아래 펼쳐져 있는 잡힐 듯 가까운 고원지대 운봉
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촛대봉, 덕평봉, 영신봉, 토끼봉, 반야봉과 고리봉까지 가까이는 팔
랑치의 철쭉까지 탁 트인 하늘과 먼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팔랑치에서 본 바래봉-
지리산 주변으로 구례와 남원, 경남의 함양과 하동 등 크고 작은 도시와 촌락을 아우른다,
모두가 한폭의 그림마을이고 인심이 후덕하여 살기좋은 터라 정감록은 지리산을 오르는 운
봉을 십승지로 꼽은 이유라 했다.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나오며 가히 오랫동
안 몸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란 소문이 나면서 여러지방의 민초들이 난세를 피하여 저 아래
정착하였다 했다.
위성본에 넣어본 명당자리-
세걸산과 고리봉, 가장 유력한 명당길지 능선-
팔랑치와 부운치 사이 1,122.8봉에서 운봉으로 내린 500미터 정도의 평평한 산줄기 하나가
산덕리 마을로 떨어진다. 이중환의 택리지을 빌리면 살기 좋은 곳이란 첫째 지리(地理)를
꼽았고 다음은생리(生理)를 조건으로 들었고 셋째로 인심을 들었다,
끝으로 산수(山水)를 조건으로 하여 집 근처에 유람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함양할
수 없다 하였다,
세걸산에서 본 명당길지아래 산덕리 마을-
지리는 첫째 물 빠져나가는 수구를 보고 다음에 들의 형세와 산 토색 수리 조산 조수를 보
고 산속에서는 물이 거슬러 된 사격이라야 한다 했다, 높은 산이나 그늘진 언덕을 가릴
것도 없이 물이 힘있게 거슬러 흘러 판국을 가로 막으면 좋다, 한 겹이라도 좋지만 세겹,
다섯 겹으로 감싸면 더욱 좋다 했다, 이런 곳이라야 꿋꿋하게 오래오래 세대를 이어 갈
수 있는 터가 된다 했는데 아마 저 아래 산덕리 마을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달궁계곡
산릉에서부터 내려간 단풍색깔이 달궁계곡에 곱게 떨어졌다, 벌써 가을은 이렇게 지나가
나 보다. 산릉은 빈 나뭇가지를 흔들며 일으키는 바람이 색다른 향기를 전하고 세걸산에서
바라보는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의 연봉들이 아까보다 더 가까이 검은 산줄기가 높
은 산의 진가를 새롭게 인식하듯 바라보기만 해도 숨은 턱밑을 찬다,
고리봉 정상-
고리봉으로 내려서는 길 깎아지른 벼랑으로 하염없이 쓸리면서 나를 비켜세우며 걷는다,
이맘때쯤이면 앞마당 멍석 위에 수북이 따 놓은 감들이 깊어가는 가을이라 할 때면 벌써 서
리가 내렸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연기, 장작불에 군고구마, 김장독 무덤, 내
가 제일 좋아하던 가래떡에 수수조청 발라먹던 그리운 시골 내음을 이면서 가파른 내리막을
어느새 내려왔는지 운봉가는 차도였다,
운봉은 해발 450미터나 되는 고원지대인데다 백두대간이 섬진강과 경호강을 가르고 북으로
는 고남산과 황산이 남으로는 지리산으로 둘레만도 백리가 된다, 난리가 났을 때 자급자
족이 될 수 있는 넓은 기름진 땅과 유일한 광천 수로가 있다, 남원과 함양에서 운봉을 들
어가려면 각각 여원치와 팔랑치가 통로였으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을 이 두 재에서 방어한
다면 십승지의 별세계로 요원할 수 있다 했다.
주촌리 뒷산에서 바라본 운봉-
얼마 후 거창에서 주촌리로 왔다, 백두대간중 제일 큰 샘을 지나게 되는 노치샘이 돌담옆
에 정겨웁게 차지하고 있다, 빈병에 물 한 병을 채워 올라보니 동네 뒷동산 수백 년쯤
되보이는 소나무 다섯그루와 묘가 언덕을 지키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숲속이 아마 내가 산길을 걸어본 가장 긴 산소창고가
아닌가 싶다, 해발고도가 높게는 수정봉이 800고지이고 보면 높은 산이라 할 수 있는데
운봉을 바라 보노라면 야트막한 산속을 걷는 편안한 길 찌들렸던 도회의 먹물을 씻어 버린
청량제 같은 길이다
행정리와 춘향리, 오리정이도 운봉의 십승지로 알려져 있다하여 산릉를 걸으면서 눈 길은
계속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동네의 모습은 또렷이 보이지 않아 내심 궁금했다, 여원재로
내려놓기전 바로 막걸리쉼터가 있어 쉬어가려 들어가니 중년부부 내외가 무청을 엮고 있다,
"춘향리가 어데예요, 아저씨?" 했더니 "여기가 춘향리라요" 하신다,
큰 마을은 저 밑에 있다고, "여기가 명당자리 맞나요?" 했더니 "명당자리요, ㅎㅎㅎ"
고남산 정상에서 본 운봉-
하나 둘 셋,,,마흔다섯을 큰 소리로 세어 계단을 오르고 밧줄 당겨 굽어진 허리를 펴 내려다
보니 남원시가지와 산군들이 시원스레 펼쳐보인다, 고남산 정상이다, 바둑판처럼 새겨져
있는 들판위에 그림처럼 올망졸망 그려놓은 듯한 정겨운 경치에 몰려드는 먹구름은 춤을 추
고 있었다, 그래서 雲峰이라 했는지,
겨울이 왔다, 밤은 길고 깊게 이어지리라, 통안재부터 어둠이 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
하여 진행하여야 하는데 올 때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 왔건만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간신간신 더듬덕 거리며 매요마을 까지 올 수 있었다, 음력 스무하루 달빛도 별빛도 없는
깜깜한 길을 겨우 암흑속에서 엉덩방아 찌어가며 임도로 내려서니 고요한 불빛이 집집이
켜진 초저녁이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매요마을 휴게실 할머니집을 찾아 보았으나 불빛이 비쳐지지 않아
혹시 안계신가 하는 의구심에 문을 두두려 "할머니 계세요," 몇 번을 부르니 창문을 열고
할머니는 "누구시오"하신다, "산을 가다가 늦어져 하루밤 자고 가려하는데요, 좀 재워주
세요" 했더니 안된다 하신다, 한참을 마당에서 서 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는데 "젊은이,
왜 혼자 다녀 친구도 없어 돌아가는 등을 보니 내 맘이 짠해서 그럼 자고 가" 산꾼들을 재
워주지는 않으신다고,
베낭을 내려놓자 할머니는 김치찌개에 밥을 한그릇 수북히 해서 내 오신다, "팔팔 끓인 김
치국에 말아먹으면 추위가 풀린다고, 집에서 어머니가 밥 두덩이를 깨소금 넣어 싸 주셨는
데 산에서 먹으려 보니 밥알이 얼어 먹지를 못해 몹시 배고팠었다. 얼마나 고마운 따끈한
찬인가 싶었다, 찬밥도 냄비에 한모금 물을 휘하니 두르고 토닥토닥 소리날때까지 불을
지피면 뜨끈한 밥에 누룽지가 되어 참 맛나다고 찬밥의 애찬도 겹들이신다,
매요마을 휴게실-
"때르릉" 전화벨소리다, 날씨가 추워져 뜨끈하게 보일러 불켜 주무시라고 신신당부하시는
아드님의 성화에도 아랑곳 전기장판에 밤을 보내고 계시면서 "오냐 따끈하게 때고 있어 걱
정하지 말고, 저녁은 먹었니" 하시며 오히려 오십이 넘은 아들을 걱정하신다, 할머니는 3
남 4녀를 두시고 이십여년 전 할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아들 3형제 대학공부 가르킨
다고 남겨놓으신 빚을 할머니가 갚아가며 살으신 얘기를 한 밤 중 토해 내시며 담배 한가피
를 입에 무신다,
백두대간을 오가며 쉬어가는 이곳 휴게실은 산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 한평생을 줄줄이
보따리 풀어 내 놓으시다 "젊은이 기자아녀" 하신다, " 저 기자 아녀요, 황산가려고 왔어
요" 했더니 얼마 전 기자가 와서 젊은이 마냥 재워 달라면서 꼬치꼬치 물어가면서 이야기하
다 하룻밤을 자고 갔는데 어느 날 할머니 얘기도 담긴 책자를 보내왔다고 책자를 보여주신
다,
산꾼들의 여정을 들으며 같이 호흡하며 한 이불속에서 나눈 할머니의 또박또박 토해내신 삶
의 세월이 묻어난 가냘픈 할머니의 손과 발에 주름은 굵게 파여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
문으로 화사하게 아침을 열고 휘뿌린 올 겨울의 눈이 마당에 깔린 첫 눈이 왔다, 어제
고남산에서 잠시 휘날리는 첫 눈을 봤는데 밤 새 나그네을 맞아준 매요마을 선물이었다,
덕유산이 희미하게
덕두봉이 보이는 방현마을-
임도를 한참 올랐는데도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손짓을 하시며 계셨으니 쉽게 황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북으로 덕유산이, 동으로 지리산의 서북능에 밤새 하얀
병풍을 쳤다, 가산을 거쳐 백두대간은 88고속도로 내려서는 사치재를 못 가 황산가는 길은
방현마을 뒷 산을 올라 가야 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길이 있다 없다하기도 하고 벌
목을 해 놓아 길의 구분이 되지 않는 길을 검은 봉우리 황산을 눈에 두고 방향을 맞추어 진
행해야 했다,
옥계저수지-
인월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 닿으니 황산의 정상이다,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저 아래 넓
게 자지한 운봉벌의 왜구를 물리치지 못했다면 조선건국의 꿈은 무위로 끝났을 것이라 생각
하니 황산의 무게가 더 소중한 듯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어쩜 백리길을 걸으면서 함
께한 운봉땅에 눈길을 주고 했던 공부가 십승지중 한 곳인 이곳에 더 많이 묻어두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운봉읍
지리산은 계곡이 깊고 크며 땅이 기름진 데다 골짜기의 바깥은 좁으나 일단 그 안에 들어가
면 들판이 넓어지기 때문에 백성들이 숨어살면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하였으며 산 속
깊은 데서도 농사가 잘 돼 승속이 섞여 사는데 별로 애쓰지 않아도 먹고살기에 문제가 없다
고 한 이중환은 지리산 사람들은 흉년을 모르고 산다고 富山이라 택리지는 쓰고 있었다,
늘빈자리님, 늘바다님, 허비님, Mt주왕님 산행에 도움주셔 고마웠습니다,
첫댓글 매요리에서 황산으로 태극종주 능선과 이어지는군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주제가 참 좋네요
끊임없이 탐구산행을 하시는 요물님의 열정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한겨울 산길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