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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성은 표고 480m의 산 정상에 구축된 산정식(山頂式)의 산성으로 '위례산성(違禮山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은 둘레가 약 800m 정도인데 토석 혼축의 형태로서 부분적으로는 마치 석축의 성과 토축의 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형에 따른 것으로 지세가 급한 지역은 성의 내부를 삭토하여 축석한 성의 외벽을 보호하는 방법을 따랐고 지세가 완만한 지역은 석축으로 하여 형태상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구축하였고 비교적 잘 남아있는 성벽에서 높이 약 4m까지 계측된다. 성곽의 동쪽과 서쪽에 문지의 형태가 남아있는데 파괴가 심하여 확실한 형적을 알기 어렵다. 성 안에 우물이 남아있으며 기와 조각이 수습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안 위례산성 [天安 慰禮山城]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백제금동대향로),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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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안은 잡풀들이 가득하여 형태를 알아 볼 수 없고 성 안에 우물과 기와 조각도 흔적을 찾아 보려 했으나 캄캄한 밤중은 나를 위
례산으로 다시 돌아 올 그때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철쭉꽃이 피면 장관이라고 말하던 고향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가 위례산의 철쭉꽃 자랑을 했었다. 친구와 걸어 볼 날
있으려나.
위례산에서 천안의 야경 불빛의 그 정취가 아름답다.
산속은 가끔씩 천안의 불빛으로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산릉을 계속 걸었다. 오래된 세월속에 묻혀진 이정목을 애써 확인하려
했고 일상에 찌든 삭막한 도심를 벗어나 산속에 담그니 부러울 것 없는 세상같았다.
위례산성을 걸은 지 1,355m의 이정목에 [우물목고개]을 얼마나 가야 하는지?
철탑을 지나고
성거산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빛이 유난히 밝은 빛을 내고 있는 듯 했다. 깊은 밤 별들과 마추지는 것 같았다.
위례산 정상 2,135km와 성거산 정상 2,975km의 이정목은 입장 호당리의 갈림 길을 알려 주었다.
가로등 불빛이 환이 빛났다.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며 이 밤을 지키며 서 있는 가로등 옆 거울앞에서 내 모습을 바라다 보았다.
[행여 가거들랑, 이 나그네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가로등 불빛 같은 거 보면은 흔들거리는 나 같은 것으로 보이는지..] 혼
자 주절주절..
임도를 따라 걷는다. 성거산까지 약 2.6km의 길을 혼자 천주교대전교구 성거산 성지로 가는 길따라 진행한다. 저속 3단과
4단의 속력으로 가라는 팻말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얼마의 속력을 내고 있는 걸까.
아마 아주 적은 발자욱은 살금살금 정처없이 걷는 사람처럼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도 불빛이 주황색으로 이 캄캄한 세상을 밝힌다.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의 기념물 제175로 지정되 있는 곳이었다.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산에 있는 교우촌터와
신유박해 (1801년) 부터 병인박해(1866년) 끝날 때까지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비밀리 모여 살던 교우촌이 형성 되었던 곳이며, 특히 프랑스 선교사 신부들이 은신처로 사용하며 사목활동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성거산 교우촌 출신 순교자 23명 중 병인 박해 때에 순교한 소학골 출신 5분의 순교자들과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천주교 성지(聖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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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표지석과 성지순례 안내도와 제1줄무덤의 표지석 등이 사리묵고개에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거산 성지로 가는 길
을 설명해 놓아 찾아 가는 길은 쉬울 것 같았다.
우물목고개의 2,315m의 차도를 걷고 성거산 정상 660m의 이정목을 지난다. 차도를 걸으며 혹시나 하는 우려로 랜턴불빛을 끄
고 스틱을 접어 걸었다. 신분이야 별스럽지 않지만 괜한 시간에 헛지꺼리 부담스러워
선답자의 기록이라도 보고 올껄 하는 후회를 차도를 걸으며 성거산을 통과해야 하는 걱정을 하며 걸었다. 성거산 부대 아래 차도
왼쪽으로 성거산 우회로가 있는 안내가 있기에 다행이었다.
부대불빛이 있어 랜턴을 끄고 조심조심하며 걸었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곳을 몇 군데 통과하여 편히 걸어 성거산 시설물을 사면으로 우회해야 했다.
이름모를 짐승들이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다 깨는 것 같다. 괜한 무서움이 들고 불빛이 비치는 오른쪽 하늘을 보니 시설물의
크기가 큰가 보다.
성거산의 정상 510m의 이정목을 지난다.
천안시장의 소각금지 프랑카드가 있는 옆으로 [금북중구단맥]은 이곳에서 삼뱅이고개- 목천읍 상리골고개 - 호덕고개 - 비룡
고개를 지나 천안시 북면 연춘리 역촌마을 산방천이 병천천을 만나는 곳에서 끝이나는 약 12.6키로의 산줄기를 말한다. 성거
산 부대시설물을 사면으로 돌아 나왔다.
만일사 0.3km, 각원사 3.4km, 천흥리 임도 1.0km의 이정목을 지난다.
[성거산 정상석]이 있는 곳이었다.
03시 57분, 4시가 가까워 온다. 쉬어 갈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아직도 어두운 밤이다. 사과와 물로 간식을 먹고 누워 하늘
을 본다. 별도 달도 없는 세상에 부대 불빛이 빛난다.
일어나 몇 발자욱 걸으니 천안의 불빛이 그대로 있다.
[성거산 삼각점]이 숨어 있는 듯 풀섶에 가려 있다. 삼각점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가면 잘못 가는 길이 된다. 삼각점에
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뒤돌아와 우회하듯 성거산을 내려 가야 한다. 성거산 정상에서 남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성거산을 내려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해진다.
[태조산]의 현위치번호가 처음으로 세워져 있다. 주등산로 제30지점으로 긴급구조 119로 신고하면 위치파악이 쉽게 된다.
[만일고개]로 내려 올때까지 미끄러지듯 내려 섰다. 돌탑이 있고 송전리 1.3km와 만일사 1.0km의 이정목이 있고 현위치 표시가
가 되어 있는 안내도도 있었다.
안내도에 보면 성거산 정상방면은 돌계단으로 올라간다고 표기해 놓았다.
태조산 3.4km와 취암산 9.2km의 이정표가 나무에 걸쳐있는 만일고개를 올라 태조산으로 가게된다.
가끔씩 현위치표지석이 있다. 몇미터씩 간격을 두는지 모르겠다.
계성군의 묘와 숙의 하씨 묘가 이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는 갈뫼고개을 지나고 소나무숲을 지나는 작은 봉우리를 사면으로
돌아 진행하게 된다.
[금북영인지맥]의 분기점에 도착한다. 반가운 마음에 이리저리 뒤돌아 보고 영인지맥길로 더 가본다. 지난 겨울 걸었던 흔적
을 찾아 본다. 산줄기가 천안으로 가는 그 길을 따라 추억의 사진을 되새겨 본다.
좌불암 내려가는 갈림 길의 이정목을 지난다.
[유왕골로 내려가는 갈림 길에 오니 정자만 보인다. 누워 자고 싶은 생각뿐이 없다. 졸음이 앞을 가려 발만 걸은 것 같은
생각으로 뒤를 돌아 본다.
유왕골의 유래가 적혀 있는 고개를 넘어 가면 유왕골은 어릴적 삼뱅이로 불리던 산골 시골마을이었다.
그 시골마을 산에서 해가 떠 오른다.
[각원사]의 내용이 담겨 있는 안내판과 좌불상으로 내려가는 갈림 610m의 길이 있는 이정목도 세워져 있는 곳이다.
안서e편한세상 아파트로의 갈림 길도 지나고 정자와 운동기구 시설도 지나게 된다.
[제2솔바람길]이 적혀 있는 산릉에 오니 지압길이 돌로 만들어져 있다.
천안의 역사가 서려있는 성불사를 지나 각원사로 향하는 태조산 제2솔바람길 입니다. 길을 걷다가 힘들 때 만나면 반가운 쉼터 이곳에서 신을 벗고 지압길을 걸으면 쌓인 피로는 솔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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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야. 솔바람길,
청소년수련원 갈림 길을 지나고 도라지고개를 지나면서 태조산으로 가는 길은 천안의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는 산릉이었다.
'하늘아래 편한 곳' 天安이란 현위치 번호는 계속 따라 와 태조산 정상 길 제6지점에 지난다.
나무로 만든 가로막을 설치하여 들어 가는 문처럼 태조산으로 가고 있었다.
근사한 팔각정은 있고 팔각정은 교보생명보험(주)에서 시민들을 위해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조성된 쾌적한 환경을 위해
다음 사항을 준수하자고 적혀 있다.
[태조산 정상]에는 태조산의 유래가 적혀 있는 안내문이 잘 설명하고 있었다.
이 안내문에 적혀있는 내용과 또 다른 이야기가 태조산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높이는 421m이다. 태조봉이라고도 한다. 천안의 진산(鎭山)으로, 산이름은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병했다는 설에서 유래하였다. 미호천(美湖川)의 원류인 유량천, 산방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완만한 산세로 천안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산행 코스는 3∼4개가 있는데, 대체로 2시간 이내의 짧은 산행이어서 산책이나 가족산행으로 알맞다. 천안 시민은 주로 원성동 체육공원에서 구름다리를 거쳐 유량동을 지나 성불사 뒤 능선을 따라 태조산을 오르는 5.3㎞ 길이의 코스를 이용한다.
산자락에 경주 불국사(佛國寺) 이래 대사찰이라는 각원사(覺願寺)가 있는데, 1977년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재일교포 각열거사(覺列居士)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성금으로 세웠다. 각원사 일대는 관광단지로 조성되어 천안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그밖에 가족단위 국민관광휴양지인 태조산수련장이 있고 서북쪽 산중턱에 고려시대의 사찰인 성불사(충남문화재자료 10)가 있다. 인근에 독립기념관, 유관순유적지, 현충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조산 [太祖山]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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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백세로 가는 지도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웰빙 스트레칭을 하는 방법도 그림으로 설명해 놓은 안내도가 있다.
말대로라면 태조산의 그림으로 이행한다면 아무탈 없이 백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천안 12경을 보면
1경 천안삼거리. 2경 독립기념관. 3경 유관순열사 사적지. 4경 아라리오 광장. 5경 병천순대 거리.
6경 태조산 각원사. 7경 광덕산 설경. 8경 천안종합 휴양관광지. 9경 왕지봉 배꽃. 10경 입장거봉
포도마을. 11경 흥타령 축제. 12경 천호지 야경
을 사진과 함께 그려 놓은 태조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안시를 볼 수 있는 정상이었다. 천안시내가 조망되는 태조산!
내 태조산을 몇 번 왔음에 새로움은 덜하고 팔각정에서 안성에서 오셨다는 분이 커피 한 잔과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니
이 보다 고마울 수가 없었다.
천안 주위의 산을 자주 찾는 분을 만나 이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길 없어 천안의 조망이 제일 좋은 만뢰산을 추천해 주었다.
취암산 가는 길의 이정목은 철조망 뒤로 가리우져 있는 길을 지나 교보생명 계성원(연수원)이 있는 철조망은 cctv가 설
치되어 있는 안내문도 있고 교육원 삼거리로 가는 이정목 옆에는 산불조심이란 프랭카드도 길가에 걸려 있다.
알 수 없는 삼각점을 만나고
이정목에 '전망 좋은곳'에 올라 보니 천안시가 조망되는 곳이기도 했다.
[천안 동남구 쪽으로 조망되는 산이었다.]
등산로 2post, 3post, 경계로 #62의 이정목은 알 수 없는 표기로 처음보는 이정목이었다.
[흑성산 가는 길목인 이정목이 있는 고개는 아홉싸리고개였다]
이곳에서 흑성산까지는 약 2키로가 넘는 길로 금북정맥은 서진하고 남쪽으로 조그마한 산줄기 하나를 분기하여 목천면내를 동서로
나누며 흑성산과 세성산을 지나게 되는 산줄기가 이곳에서 분기된다.
[흑성산으로 가는 길]을 지나
교육원으로 내려 가는 이정목도 지난다.
철탑 뒤로 흑성산이 조망되는 산릉을 걷는다. 또 하나의 철탑도 흑성산이 뒤에 있다. 수없이 놀던 어릴적 뒷동산 나의 놀이터였
고 내 고향친구들과 놀던 산자락에 눈을 돌려 놓을 수가 없는 산릉은 숲이 가득한 길로 이어졌다.
[유랑리고개]는 지산리와 유랑리를 잇는 차도위가 이동통로로 되어 있는 곳이다.
현위치표지석은 태조산 동우아파트길 제10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소리가 요란하듯 들려오는 남양유업 천안신공장과 지산리와 충남교육청 평생교육원까지 볼 수 있는 신계리 조망까지
취암산이 곡선을 그리 듯 동우아파트와 산릉에 우뚝 서 있었다. 앞으로 갈 산줄기는 남쪽으로 반원을 그리는 것 같았다.
철탑 두 개를 지난다.
동우아파트에서 태조산까지 편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는 이름모를 새가 먹이감을 쪼아대며 갈길을 막고 있었다.
가스안전교육원과 취암산으로 가는 이정철주도 있었다.
[장고개]는 지산리와 구성동을 오가는 고개였고 지산리 산에는 봄에는 벚꽃이 만발할 때면 장관인 산을 몇 번 올라 본 적이
있는 산이기도 했다.
지금 그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선머슴마냥 돌아 다니는 소녀였고 지금도 말할 것도 없는 아줌씨로 변했을 뿐~~ 어릴적 추
석 어느 해엔 친구와 사과밭에 얽힌 이야기를 지금도 만나면 이야기가 오간다.
취암산은 저 산에서 뾰족히 내밀고 가도 가도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산길로 이어졌다. 힘껏 올랐는데
317봉은 천안시의 조망을 시원히 펼쳐 보였다.
녹음이 짙은 산길은 나무와 숲이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막아 주는 산책로를 편히 걸어 갈 수 있었다. 취암산으로
취암터널이 지나는 곳을 지나
동우아파트로 내려 가는 이정목을 지난다. 시원한 솔향기에 코가 진동한다. 이뿐이랴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햇빛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 해를 가리운 나무는 그늘로 나를 맞는다.
삼각점이 있는 취암산이었다. 넓은 평지의 산 정상은 멀리서 보는 것 만큼 경치가 못하다. 고려산으로 가는 9,920m의 이
정목이 있고 몇 번 와 본 산이었다.
취암산은 지도에는 경암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산이다. 나는 어릴 적 '이빨빠진 산'으로 많이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취암산
이라고, 경암산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이빨이 빠진 것처럼 보여 '이빨빠진 산'이라 불렀다. 이곳 안부가 이빨빠진 것처럼 보여 그렇게 부르고 있는 산이
다.
[시내가 조망되는 곳]을 지나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란하다.
바위가 절벽을 이루는 산을 사면으로 돌게 된다.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걷는다.
의자와 작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는 길따라 취암산을 내려 온다.
고려산과 동우아파트로 가는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동우아파트로 가는 길로 진행하면 된다.
길가에 으아리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취암산을 배웅한다. 동우아파트 뒤를 돌아 간다. 철조망과 함께 길이 가시나무와
잡풀이 가득하여 진행하기에 고약하다.
주로 동우아파트앞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어 이곳은 정맥하는 산님들만 걷는 길이니라.
경부고속도로와 21번국도가 나란히 보이는 철계단을 터벅터벅 조심하여 걸어 내려간다. 선답자님들의 표지기가 인사를 하듯
하고 햇빛이 벌써 저 위에 있었다. 어릴 적 3년 동안이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오가던 21번 국도의 추억어린 길은
반듯한 포장도로로 나 있었다. 그 때는 경부고속도로도 없었고 추암터널을 지나는 신21번 국도도 없었다.
덥다. 많이도 걸었다. 걸은 반은 밤이었고 걸은 반은 해가 떠 있었다.
동우아파트쪽으로 걸어 오니 버스가 내 앞에 있었다. 10시간의 산길에 스며든 땀 냄새가 걱정되기에 뒷칸에 독차지하고 천안으로
와서 급하게 기차를 타고 귀가했다. 문앞에 마주친 우리애가 베낭을 받는다.
밥도 먹지 않고 걸었더니 베낭만 무겁고 배는 허기져 있는 줄도 모르고 사과와 참외로 우선 ..
첫댓글 더운데 고생길에 들어선 금북정맥~~
난 이길이 정말 좋더라 푹신한 육산에 그늘진 나무 터널 고속도로처럼 펑뚤린 길
길을 따라 나의 생각도 따라서 깊어지는 산과 나의 한 맥락
때는 거르지 말고 다녀요. 오래 걸을수 있어 산하를 웃음으로 맞이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