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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학사상의 개관
1. 序論
2. 上古의 원초적 天과 易思想
3. 桓易과 윷
4. 韓國에서의 易思想의 展開
5. 19세기 韓國의 易學思想
6. 20세기 韓國의 易學思想
7. 結論
1. 서론
한국의 역학사상에 대한 논의는 어느 주제보다도 관심있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역이란 본래 호기심을 유발하는 학문중의 하나인데다가 이 시대의 어떤 흐름이 역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한국역학의 문제에 대해 이정호, 류승국은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연구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호는 복희역, 문왕역, 일부역에 대해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하고, 류승국은 고대 한국인의 骨卜占으로부터 김일부의 정역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역사상이 전개되어 온 전과정을 개괄해주고 있다. 또 류남상, 신동호는 한국의 역학을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중국역학과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앞선 논의를 참고하고자 하며, 다만 환역이나 천부경, 수운의 영부사상, 백포의 후천지수, 증산의 역사상, 야산의 洪易 등 좀 낯선 사상도 기존논의에 결합시켜보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의 역학사상중에서 19세기 한국의 역사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관념적 역사상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현실에 구현된 역학사상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산, 수운, 일부의 3인이 현실 세계속에서 고뇌하며 이룩한 19세기 한국역학의 의의와 함께 20세기를 연 증산, 백포, 야산의 역학사상도 살핌으로써 한국역학의 나아갈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고자 한다.
2. 上古의 원초적 天과 易思想
먼저 상고의 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천을 먼저 말하는 것은 역사상이 천에 관한 의식이나 사상에 직결돼 있다는 뜻을 함의한 것이다. 사람은 시공을 초월하여 생각하며 산다. 옛날부터 전해온 어린이 한문교습서 동몽선습의 첫 구절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문제”(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원초적 의식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현재의 의식은 인류가 의식의 눈을 뜬 이후부터의 의식들이 축적되고 전수되어온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문제는 시공을 초월한다. 태초에 사람으로서 의식한 모든 사람들의 첫 의문은 바로 사람 자신의 문제와 함께 천지지간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몽선습의 天地之間이라는 말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품어온 의문을 그대로 간직한 것, 즉 원초적 의식의 잔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上古의 天(또는 천사상)을 말하기는 어렵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다만, 여기서는 동양권에서 문자라는 형태를 갖고 문자를 기록했던 최초의 사람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易傳에 “上古 結繩而治 後世聖人 易之以書契”(계하2)라 하였다. 여기서 말한 결승뿐만 아니라, 8괘를 문자로 볼 것인가에 異論이 있지만, 이 역전은 역의 8괘가 결승을 계승 내지는 그것과 有關함을 은연중에 나타내주고 있다. 만약 괘를 또 하나의 문자로 본다면, 최초의 문자는 문자 이전의 오랜 원초의식들을 문자화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 원초적 의식중에 역에 관한 의식을 천지자연의 “劃前易”이라 불러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상은 복희씨의 始劃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괘의 획을 처음 그렸다는 것은 인류정신사에 있어서 일대사건이다. 어느 누구인들 땅위에 그림이나 문양을 그려보지 않았으리오마는, 복희가 시획했다는 것은 그 시획에 일정한 원리가 부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고회민은 주역철학의 원류를 기원전 4700여년, 복희씨만이 높은 지혜를 가지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8괘를 그려 역학적 체계를 생각한 것으로 보았다. 이어 그는 당시는 자연사상이 인간을 지배하던 시대이고, 문자가 발명되지 않은 시대에 자연계의 보편적인 현상들을 표상하고, 특히 8괘의 철학적 부호로 현상세계의 사물이 발생하는 형이상학적 근원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고회민이 말한 ‘형이상학적 근원’이란 말은, 상고인들이 자연현상의 근원자를 天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오늘날 전하는 주역의 계사전에는 고대인들이 가졌던 천사상의 단초들로 여겨지는 구절을 볼 수 있다. 다만 원초적 천사상(획전역)이 역에 편입되면서 易속의 천사상으로 변모된 점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피할 수 없다.
㉠ [天下之動 貞夫一者也](계하1)
㉡ [爻也者 效天下之動也](계하3)
㉢ [一陰一陽之謂道](계상5)
이상에서 주목되는 말은 <動과 一>이다. 상고인들의 하늘에 대한 최대 관심사는 하늘의 움직임이었다. 고정된 하늘이 아니라, 변화하는 하늘에 주목했던 것이다. 복희씨의 시획은 바로 하늘의 움직임을 一로 본 것이다. 이것을 괘의 부호로 표현하면, −인 것이다. 복희씨는 이를 일회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연속적인 관찰을 통해 이 움직임에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찾아내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 ,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오늘날의 8괘명(乾,坤...)이 붙은 것은 후대의 일이겠지만, 하늘 땅, 우뢰 바람, 물 불, 산 못의 8가지 사물로 만물을 대표케 하고, 온갖 유사한 사물들을 8가지 사물에 각기 배속시켰다.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 규칙적으로 또는 유사하게 전개되는 所以가 형이상학적 근원자인 天의 動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획전역이나 복희역이나 일관된 천사상은 動이다. 動靜사상은 후대의 이론일뿐, 원초적 역의식의 발단은 분명히 動인 것이다.
그런데 天에 대한 관심과 물음은 易뿐만 아니라, 시경이나 서경에도 이러한 천사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략 3천년전 작품으로 보이는 시경에는 天生蒸民, 維天之命이나, 悠悠蒼天 등의 말이 보이는데, 悠悠蒼天은 하늘을 부르며 호소하는 장면으로 “절대적 능력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의 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약 4천년전으로 보이는 서경의 堯典에는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虞書 堯典)이라 하여 하늘 뒤에 있는 우주만상을 지배하는 天帝를 믿었으며, 舜典에는 “肆類于上帝”라 하여 동정성쇠의 변화 등에 대한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상제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서경의 천은 천지창조나 만물생성 등의 내용보다는 “주재적 천”의 성격을 갖는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상고인들에게 같은 天을 놓고 두 갈래 사상으로 흘러 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수한 주재적 의미의 天사상과 이를 始劃으로써 역의 理法的 원리로 바꾼 易사상이 그것이다. 따라서 역의 天은 인격적 天도 아니요, 숭배의 대상인 종교적 天도 아닌 쪽으로 진행되어 가면서 순수 천사상과 역사상은 구별되어 간다. 이로써 인간의 의식발달과정에서 주재적 의미의 천이 역의 천보다 앞선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두 사상이 인간이 인간의 존재를 자각함으로써 가능했겠지만, 역의 천을 생각한 사람들이 인격적 천을 믿어온 사람들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연법칙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자각을 먼저 한 것이 아닐까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 천하지동과 함께 생각할 것은 ㉢이다. 음양을 표현 할 때에 일음일양이라 하지 않고, 一陰之 一陽之를 道라 한 것에서 어떤 일정한 법칙성이 부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통해 우주를 관찰한 것이거나, 우주를 보고 사람을 관찰한 것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즉 일출과 남자의 생식기를 −, 상대적으로 달의 삭망현상과 여자의 생식기를 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천하의 움직임속에서 일어나는 만물화생과 계절의 변화, 풍우상설을 바라보며, 상고인들은 남녀의 생식원리가 일월의 운행원리와 비슷하거나 같다는 과학적인 어떤 법칙(永續性과 週期性)을 발견함으로써 다른 법칙성도 발견하게 되고, 여기서 원초적인 음양관이 싹트기 시작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체계적인 음양, 도, 태극 등의 정립은 후대의 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桓易과 윷
역에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易簡(이간), 變易, 不易이 그것이다. 역에 세 종류가 있으니 복희역, 문왕역, 공자역이 그것이다. 또 괘의 배열에 따라 연산역, 귀장역, 주역을 말한다. 程子는 말한다. 易은 變易也니 隨時變易하야 以從道也라(易傳序). 역은 道를 따르는 것이다. 그것도 때를 따라 변하여 바뀌는 것이다. 고정된 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역도 도를 초월할 수 없고, 다만 도를 따를 뿐이다. 그리하여 역을 지음(作易)에 하늘과 땅의 어둡고 밝음으로부터 곤충과 초목의 미세한 것까지 합치되지 않음이 없다는 정자의 賣兎說(매토설)은 유명하다.
토끼를 파는 사람을 보고 말씀하기를“성인이 하도와 낙서를 보고 팔괘를 그으셨으나, 어찌 반드시 하도와 낙서라야 하리오? 이 토끼만을 보더라도 또한 팔괘를 만들 수 있 고, 숫자도 이 토끼 가운데서 일으킬 수 있으나, 옛날 성인이 다만 신령스러운 물건의 잘 나타나는 것을 취했을 뿐이니, 비록 수목같은 것에서도 또한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들어 龍馬(하도), 神龜(낙서)가 아니더라도 저자거리의 하찮은 토끼의 형상에서도 괘를 만들 수 있고, 나무가지에서도 數를 발견할 수 있지만, 성인은 神物의 나타남을 잘 취해서 作易을 하였다는 말이다. 정자는 하나의 역이 절대가 되는 역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한편으로 역이 가지고 있는 신령스런 면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제부터 桓易을 말하고자 한다. 이 환역은 주역에서 말하는 3역에 들지 않는 역이다. 중국의 역서류에는 발견되지 않고, 다만 우리측 사료중에서도 私家에 전해온 桓檀古記(계연수 편)속에 이 말이 전해오고 있다.
① [於是作柶戱以演桓易 蓋神誌赫德 所記天符之遺意也](태백일사/마한세가 상)
② [桓易出於雨師之官也 時伏羲爲雨師...桓易體圓而用方](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이상의 것이 환역을 설명하는 주된 내용들이다. 이것만 가지고는 환역의 성격과 본질을 규명하기 어려운 한계에 빠지지만, 우선 윷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윷은 삼국이전부터 사용된 민속놀이라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에 단절된 고유한 역을 환역이라 보고 그 맥을 윷으로써 짚어보는 것이다.
윷은 둥근 나무토막(박달나무) 하나를 꺾어 태극이 생기고, 이를 반으로 쪼개니 음양이며, 다시 이를 나누어 네 토막을 만드니 사상이다. 잦혀지고 엎어지는 것으로, 도개걸윷모의 오행이 나온다.(李也山의 설) 여기까지는 태극-음양-오행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윷의 성격을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윷은 占의 기능을 가진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환단고기에는 윷점(柶占)을 말하지 않았으나, 오늘날 세시풍속에 전해오는 윷점은 마을의 운수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 것이 목적이다. 개인의 윷점은 윷을 세 번 던져 괘를 얻는다. 다시 말해, 윷은 네 가락이므로 도개걸모(윷)로 사상을 상징[최동환,뒤 그림1참조]하고, 사상은 2효이기 때문에 3회 던져 6효의 괘[최동환,그림2] 를 얻는 것이다. 이상에서 윷점에서 역의 본래적 기능이 占이였음을 확인 할 수 있고, 세 번 던진 것에서 3효의 8괘가 형성되기 이전의 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윷으로 본 환역은 2효4괘((노양)(소양)(소음)(노음)) 단계임을 유추할 수 있다. 잠시 주역의 태극관을 알아보고자 한다.
③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계상11)
이 역전의 글은 너무나도 솔직한 표현이다. 글 그대로 보면, 태극에서 양의가 나오고, 양의에서 사상이 나오고, 사상에서 팔괘가 나온 것을 토막토막 정리하였는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팔괘가 나타난 것이 아니고 장구한 세월속에서 양의의 단계를 거치고 이어 사상의 단계를 거쳐, 오랜 세월이 흘러 비로소 8괘가 나왔고, 태극이라는 것도 거창한 우주본체가 아니라,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사상이 나온 후에 8괘가 나오기까지의 단계적 시간차를 고려하고 역을 봐야 함을 환역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다른 측면에서 다음에 유의하여 검토하려 한다. 앞에서 말한 복희씨의 시획사건에 대한 다음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서술을 분석함으로써 어떤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觀鳥獸之文 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 始作八卦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주역 계하2)
㉯ 曰太皥復號伏羲 日夢三神降靈于身 萬理洞徹 仍往三神山祭天 得卦圖於天河 其劃 三絶三連 換位推理 玅含三極 變化無窮(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와 ㉯는 서로 다른 역사상에 기초하여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곳에서 서술되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둘은 서로 모방한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이 독특한 역사상의 소유자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서술되어 전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는 복희씨가 천지와 조수를 관찰하고 몸과 사물에서 취하여 8괘를 그리고 나서 신명의 덕에 통했다는 내용이다. 반면에 ㉯는 먼저 삼신의 강령을 받아 이치를 통하고 제천의례를 올린 후에 천하에서 괘도를 얻고 보니 그 이치가 무궁하더라는 내용이다. ㉮는 귀납적이라면 ㉯는 연역적이고, ㉮는 사람이 관찰해서 시획하고, ㉯는 강령에 의한 신인합일로 득괘하였다는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구별해 분석해 보면,
첫째, 우선 ㉯를 주목해 보면, 환역이 진전된 후에 나타났겠지만, 주역의 체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三神사상이 흠뻑배어 있다. 윤성범은 한국의 삼신사상은 중국이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이라고 극찬했다.
둘째, ㉯에는 三을 비롯한 수리사상이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절삼련도 三사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이는 주역의 설괘전에 나오는 8괘의 배열법을 언급한 말로써, 정작 주역의 본문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후에 소강절이 이를 부정하고 자기식으로 배열법을 만들어 복희팔괘차서도를 만들었고, 또 이 삼절삼련법을 변용하여 문왕팔괘차서도에 넣었는데, 그것이 주자에 계승되어 주역의 정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고회민도 이 삼절삼련법에 의한 팔괘배열법을 복희씨가 말한 당초의 배열법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를 잘 보존하고 있는 삼절삼련법의 역은 역의 원형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다는 ㉯의 서술자가 환역의 사상을 더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를 환역이 계승된 사상적 표현이라고 볼 때, 환역은 어떤 神物에 기초하여 작역되었을까? 앞에서 정자의 주장처럼 역이 神物을 기다려 성인이 작역되는 것이라면, 상고에 한국인이 작역할 수 있는 유일한 신물은 天符三印이라 할 수 있다. 주역에 전해오는 龍馬나 神龜의 신물은 인정하면서, 또 저자거리의 토끼를 보고도 괘를 그리는데,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천부의 신물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그것도 언어도단이다. 고조선조에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로 하여금 인간사를 다스렸다고 했다. 우사라는 직책에는 여러 사람이 내려가며 일을 했을 것이고,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우사가 ②의 복희씨였을 것이다. 따라서 환역이란 이름은 환웅의 천부인에 근원하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天符라는 말을 경전이름으로 한 天符經(환단고기에 수록됨)이 전해오고 있다. 그 전수과정에 이견이 많지만, 1920년에 북경에서 발간한 전병훈의 천부경주해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본다. 먼저 ①에서 환역은 천부의 전해온 뜻과 같다고 했다. 이 천부란 말은 고조선조의 천부와 일치한다고 본다. 오늘날 전하는 천부경 81자의 원형을 알 수 없고, 또 신지의 篆字를 漢譯한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곧바로 환역에 연결시키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81자 천부경이 수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運三四 成環五七, 一玅(妙)衍 萬往萬來가 ①의 윷판의 말판을 설명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환역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數는 시기상으로 卦보다 늦게 나왔기 때문에 천부경81자는 환역에 대해, 주역의 계사전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편 봉우 권태훈은 천부경의 ‘大三合六’의 六에서 역의 괘가 나온다고 보고, 천부경을 푸는 비밀은 手印心法에 있으며, 64괘의 원형을 천부64原象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부경81자에는 천지인 삼극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고, 그것이 ‘人中天地一’에 기초한 인간중심이라는데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또 이을호는 천부경은 81자중에 31자가 數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소위 복희역이 천부경의 이치와 부합하는 것은 천부경의 象數論에 있다고 해명하였다.
따라서 환역은 민속고유의 윷점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도개걸윷(모)은 사상을 상징하고 천부경의 ‘大三合六’의 六에서 세 번 던져 합한 6수에서 2효×3회= 6효의 괘가 나왔다고 본다. 즉 2효는 사상을 상징하고, 세 번 던지는 것에서 ‘삼세판’이라는 놀이용어가 유구한 역사성을 가지고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삼세판의 의식이 결국 천-지-인 사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닌가 한다. 윷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고대 한국인의 우주관을 시사해 준다. 중앙1점과 말판28자리는 북극성과 사대칠성인 28수와 일치하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동양의 천문관에서 天이란 바로 28宿를 의미해 왔다. 이 때 天은 日月과 구별된다. 日月星辰에서 星이 곧 28수의 天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환역은 28星宿에 근원한 우주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윷으로 본 환역은 일찍부터 한국인의 의식에 투영된 한국적 易과 天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桓에는 한국인의 천사상과 역사상이 하나로 아우른 의미가 들어있다. 고어에 天曰桓이라 하고, 환역의 桓을 ‘한’으로 읽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으며, 또 주역의 건곤 다음괘인 屯괘 初九에 磐桓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환역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4. 韓國에서의 易思想의 展開
(1) 上古의 易사상
복희역이후 역은 중국에서 많은 발달을 가져왔다. 먼저 선진역학시대의 周易의 발달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고회민은 복희8괘로부터 문왕이전까지를 符號易, 문왕으로부터 공자이전까지를 筮術易, 공자의 贊易이후를 儒門易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역의 발달은 은, 주시대의 占法에 기반을 둔 미래의 예측 및 이에 합당한 규범의 제시라는 측면과, 자연계의 존재양상에 대한 구조적 설명체계라는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는데, 주역이 성립되면서 이 두 가지 기능이 결합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역에는 자연계의 순환적 변화원리와 이에 근거한 당위의 규범이 중심과제로 다루어진다. 중국의 경우 春秋시대 유가가 주역을 흡수하여 보다 세련화시켰고, 戰國중기 이후 음양론과 도가사상을 받아들여 철학적 이론을 갖추게 되며, 後漢때 정현에 의해 훈고학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魏의 왕필에 의해 종전의 象數易이 비판받고 義理易이 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宋代에 이르러 소강절 정이천 주자로 이어지면서 圖書易學의 정착과 理氣性情論에 의한 形而上學의 발달을 보았다.
고대 한국에서의 역사상의 전개를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자료의 빈곤이나 연구의 부족 등의 이유도 있지만, 작은 것은 큰 것에 흡수되는 사상의 발달논리에 따라 한국의 역사상은 주역에 흡수되거나 외래사상의 빈번한 수입으로 자연소멸의 경로를 밟아 왔는지 모른다. 물론 역학사상과 주역의 사상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전해오는 周易이 역학사상을 가장 잘 보존한 자료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류승국은 한국역학사상의 본질을 인간중심의 人極論으로 집약하였다. 주역이 한국에 전래되기 이전에도 음양사상과 人道정신은 한국사상의 원류를 이루어 왔다고 본 것이다. 한편 박종홍은 天神 地祗(지지)에 대한 신앙이나 음양사상은 샤머니즘보다도 훨씬 고차적이요, 폭이 넓고 깊으며 보다 세계성을 띨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한국정신문화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단군신화에 대한 역학적 검토를 통해 신화속에 구현된 원초적 역사상을 요약해 추출해보고자 한다. 이에 관해서는 류남상, 남명진 등의 선구적 연구가 있었다.
*天授사상 : 환인상제가 아들 환웅에게 하늘의 징표인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 보냈다. 역에 天生神物이라 했다.
*在世사상 : 하늘에 있던 천부인이 땅으로 내려 왔으며, 환웅 스스로 인간세상을 간절히 찾아 내려왔고, 인간세상에 살면서 이롭게 다스리며, 이 인간세상을 환웅에서 단군으로 천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역에 繼之者善이라 했다.
*妙一사상 : 천상세계와 지상을 하나로 포괄하고, 천상의 영역이 지상으로 확대되고, 지상의 영역이 또한 천상으로 확대되어 하나되며, 상제와 인간이 함께 妙合的으로 하나의 어우른 세계를 건설해 간다. 천부경에 一玅衍이라 했고, 역에 天地合德, 神妙라 했으며, 이남영은 全一的 세계(totalistic world)라 했다.
*人間化사상 :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했다는 것은 人이 되고자 한 것이요, 熊虎가 또한 사람이 되고자 금기의 고통을 감내했다. 인간은 造化性을 내재한 존재이며, 완성을 향해 되어가는 존재이다. 역에 神而明之 存乎其人이라 했다.
*曆數사상 : 凡主人間 360餘事란 1년 사시 천지일월의 時間政事를 주관한다는 뜻이며, 百日도 하도와 낙서의 총합수이며, 三七日도 또한 三은 三才,成(생-장-성)의 수이며, 七은 음양과 오행의 합수이며 七日來復의 순환수이다. 이 역수사상은 시간적 역사속에서 만물생성의 時位的 율동을 수리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 七은 북두칠성의 천체운행과도 관계된다.
*새밝사상 : 동굴에서 신단수로 새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새 차원의 인간세계를 개벽해가는 것이다. 또 한민족 古神道的 본질은 밝사상으로, 새밝의 원리는 인간자각의 원리이다. 역에 利涉大川이라 했다.
이상의 6가지 사상을 단군신화에 표명된 기본 사상으로 이해하며, 이를 원초적인 역사상의 집합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占에 관한 일이다. 위지 동이전 夫餘條에 “소로써 제천을 올리고 그 굽으로 점을 치는데, 합하면 길하고 풀어지면 흉한 것”이라 했다. 이처럼 편벽된 것과 극단을 피하고, 양극을 화합하는 中사상은 고대로부터 존중돼 왔다. 占에 있어서도 한국은 骨卜을 사용하고, 龜卜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골복이 殷代의 龜卜으로 계승되고, 구복이 주역의 占卜으로 계승된 것이다.
(2) 삼국, 고려시대에 역사상이 끼친 문화
한국의 역사상은 고대의 신비적 신앙에서 발원하여 후기에 전래하여온 주역의 인문주의 사상과 융합하며 한국역학의 특질을 산출해 나간다. 한국고대문화의 흔적에는 음양사상이 내포되어 있음을 무수히 볼 수 있다.
백제에는 五經박사와 醫․易박사가 있어 유학을 가르쳤다고 했으며, 일본에까지 왕인, 아직기 등을 보내 유학을 전수해 줄 정도로 한학수준이 높았다. 최근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구리거울과 달을 상징하는 구리거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일월음양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일찍 유학이 수입된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태학과 경당을 세워 유학교육이 이루어졌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음을 상징하는 거북과 양을 상징하는 용이 짝을 이루며, 天象과 음양오행설을 도안적으로 표현한 四神圖 고분벽화는 음양화합의 상을 표현한 것이고, 국내성 고분벽화에서는 선녀가 두꺼비가 들어있는 달을 이고 있는 月神圖와 남신이 삼족오가 들어있는 해를 이고 있는 日神圖가 나란히 발견되어 역시 음양화합사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을지문덕의 與隨將于仲文시에는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라 하여 천문 지리에 대한 어떤 형태의 음양관이 발달돼온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사회는 전반적으로 화랑정신이 강했다. 한자와 함께 이두가 발전하여 향가25수가 전한다. 천문대인 첨성대가 상징하는 것처럼 자연과학과 함께 음양오행설이 발달하였으며, 삼국사기에는 자연재해나 일식, 월식 등에 대해 자세한 기록들이 전해온다. 당나라 유학생이었던 최치원은 玄妙之道와 風流道를 말해 그 시대의 정신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신라 태종무열왕비의 형태가 거북과 용, 또 6룡의 조각에서 음양 및 주역사상을 읽을 수 있으며, 삼국유사(31대 신문왕)에 기록된 萬波息笛은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되는 대나무”로 합하여야 소리나는이치에서 음양의 화합을 볼 수 있다. 感恩寺 지석의 태극도형은 한국에서의 태극사상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태극은 人心中의 태극을, 즉 人極을 근본으로 하여 만유의 태극을 알게 한다. 또 이 감은사 부근에 利見臺가 있다. 利見은 건괘 “비룡재천 이견대인”에서 따 온 말일 것이다.
고려시대는 불교의 영향권내에 있었지만, 삼국이래의 문화전승을 외면하지는 않은 것 같다. 銅鏡, 石燈에도 각종 태극문양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태극, 음양사상은 한민족의 신앙과 민속예술, 윤리관의 형성발전에 있어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관제, 군제에까지 태극음양, 오행사상은 사고유형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특히 가야의 6대 좌지왕 김질은 즉위(서기407년)후 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여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박원도라는 신하가 그 부당함을 말하여 “卜士筮가 易으로 占을 쳐 괘사를 얻었으니 왕께선 역괘를 살피시옵소서”하는 말을 듣고 용녀를 내쳐 백성을 편안히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을 생활에 많이 이용했던 것 같다. 또 김수로왕이 말한 “自一成三 自三成七 七聖住地”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1-3-7로 이어지는 수리철학의 단면은 단군신화의 삼-칠을 방불케 한다. 김해 대성동에서 출토된 파형동기는 회전하는 태극문양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김수로왕의 왕녀인 비미호가 일본 구주에 건너가 야마대국이라는 가야의 分國을 건설하였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문화적 고증가운데 하나가 靈符사당(묘견신궁)에 8태극이 있다는 것이다.
(3) 조선시대의 역학연구
태극과 음양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송대의 성리학이다. 주자가 태극을 理로, 음양을 氣로 규정함으로써 이 양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상 내지는 역학사상에 차이가 생긴다.
서화담은 세계를 음기와 양기의 생성변화로 보아 앞에서 말한 易三義 가운데서 變易을 강조했다면, 이퇴계는 人極을 강조하여 不易의 입장에 선다. 반면에 이율곡은 화담과 퇴계의 입장을 理氣之妙로 지양하고 ‘변역하는 가운데 불역하는 이치가 있다’고 하여 변역과 불역을 不可分的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선시대 역학사상의 문화적 영향은 역리적 구조원리에 의한 훈민정음창제에서 뚜렷이 나타나며, 이제마의 四象醫學도 실학파의 역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체질의학을 성립시켰다. 이병헌은 觀卦의 단전에 보이는 “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에서 성인을 救世의 교주로 보아 역리를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5. 19세기 韓國의 易學思想
조선시대의 역학사상중에서 19세기 한국의 역사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아 별항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정다산의 古易사상
주자학의 체계를 발전적으로 지양하여 이용후생의 문제를 주제로 삼아 전개되는 실학사상에 있어서의 역학사상은 정다산에서 절정을 이룬다.
茶山 丁若鏞은 성리학의 왜곡됨을 비판하고 경전자체의 진실성을 회복하려는 입장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그의 학문적 입장을 洙泗學이라 일컫기도 한다.
먼저 다산의 天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천을 蒼蒼有形의 天과 靈明主宰의 천으로 나누었다. 영명성과 주재성은 천, 상제의 대표적인 본질적 속성으로 파악된다. 물론 程朱도 상제를 주재자로 보았으나, 이는 理에 의한 주재의 의미로, 다산이 말한 영명한 인격신의 주재와는 다를 수 밖에 없고, 이런 주재자의 의미는 造化者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결국 주역을 바라보는 다산의 핵심적 정신은 천(상제)의 주재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명하고, 역의 역할이 인간이 천명을 받는 방법을 밝히는 것으로 본다. 그는 세속화된 점술을 비판하고, 복서를 하늘의 뜻이 통하는 신앙적 성격으로 본 것으로써, 잡다한 복서법을 간명하게 설명하여 順天之學으로서의 古易의 면모를 재정립하였다.
역학의 기본을 이루는 태극에 대해서도 다산은 성리학적 궁극론을 배제하고 “천지가 분리되기에 앞서 혼돈된 형체의 시작이요, 음양의 싹이며, 만물의 태초”라고 정의하여 생성론적 시초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식의 기초위에는 태극이나 음양이 조화의 근본이 아니라 그 위에 조화자, 주재자로서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64괘에 대한 인식도 일반적 형태를 취하지 않고 음양의 증감에 따라 12개월에 해당하는 12벽괘와再閏괘 2괘를 합해 14괘를 괘의 기본으로 인식함으로써, 주역을 日月이 바뀌어 이루어지는 歷法의 자연질서로 파악하였다.
또 다산은 종래의 易삼의와는 달리 一曰交易, 二曰變易, 三曰反易의 새 삼역론을 제시하고, 상하의 괘를 서로 바꾸어 이루는 교역은 복희의 획괘법이라 하여, 그 원초성을 강조하였다. 또 우주안에서 독자적 형질을 갖는 건곤감리를 역의 4正卦로 보았다.
다산에게는 역학연구의 독특한 易理四法(괄례표)이 있다. <推移, 物象, 互體, 爻變>이 그것이다. 그리고 讀易要旨에서는 앞의 역리사법이 曆數學的 본질을 헤아리는 방법이라면, 彖象詞를 중심으로 한 64괘의 계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抽象, 該事, 存質, 顧名>등 모두 18항이다. 이는 漢宋이래의 편견된 역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古聖의 古易에 돌아가 역을 연구하자는 방법론들이다. 이와같이 19세기 초 한국역학사상은 다산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 최수운의 靈符사상
水雲 崔濟愚는 1860년 4월 득도로써 무극대도를 창건한다. 무극대도는 "내 마음이 네 마음”(논학문)이라는 吾心卽 汝心의 심법에 의해 전수받은 영부와 주문에 의해 본질이 규정된다. 주문은 3․7자로 님을 모시는 시천주의 원리를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至氣 造化 사람의 세 가지 문제에 우주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우주가 처음 열리는 難狀難見의 渾元一氣를 지기로 보고, 陰陽相均 化出萬物을 조화로, 萬物之中 最靈者를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수운은 우주를 一氣論으로 이해하여 성리학적 본체론을 배제하고 대립된 두세계를 현상계로 수렴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형이상과 형이하가 본래 하나라는 大全的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영부를 알아보고자 한다. 영부는 “그 이름이 僊藥이요, 그 형상은 太極이요, 또 弓弓이라”(포덕문)고 했을 뿐, 구체적인 모양을 지금으로써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수운은 득도 이후에 이 영부(즉 物形符)를 스스로 그려서 수백장을 탄복했으며, 그 결과 선풍도골이 되었다고 했다.(안심가) 이 영부는 동학혁명 전후에 동학인들 사이에 여러 모형으로 유포되었으나, 어느 것이 그 원형인지 알 수 없다. 현재 동학교단에서는 서로 다른 것을 내세우며 영부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영부는 1차적으로 그 기능면에서 볼 때, 不死의 선약으로 불린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또 영부는 최해월이 “躍動不息의 마음”(해월법설37)이라고 해석한 이후 영부는 곧 님 마음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렇다고 해서 영부의 궁금증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태극이니 궁궁이니 하는 말이 가지고 있는 신비적 요소도 있겠지만, 영부는 다의적으로 해석돼 왔다. 그 중에 주목할 일은 “영부는 거북꼬리(龜尾)의 龍潭에서 얻은 괘도이다. 이것의 符는 天符와 동일한 일종의 神物”이라는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영부는 易數로서 1,6을 중궁에 입궁시킨 것이 특징으로 보고, 하도 낙서에 이은 제3의 도서역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배태되어 있었다.
시천교 초기자료에는 수운의 을묘천서란 “복희씨 때에 용마가 나오고, 홍범이 나올 때에 洛龜가 나온 것 같이 무극대도의 靈文靈書”일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 상주의 동학교에서도 亞자를 넣은 8괘도로써 弓乙영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慶州龍潭靈符(그림3, 이하 영부도)라는 이름으로 두 종의 영부가 발표되었는데, 앞에서 장병길이 말한 그 영부도인 것이다. 김홍철은 이 영부도를 원용문의 弓乙經圖式에서 인용하였는데, 세 本 모두 일치한다. 하지만 이 영부도 역시 수운의 작역이라거나, 영부의 원형이라는 단서를 찾기에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다만 이 용담영부도가 수운의 동학사상을 얼마나 표현해주고 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 나름대로 의미부여하여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 영부도는 中宮에 하도가 5,10토를, 낙서가 5虛中을 넣었는데, 1,6수가 입궁하여 홍범에서 말한 一曰水가 중심이 되어 수운의 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龍潭水流四海源(절구 시)의 경전 뜻과 상통한다. 그밖에 2,7화를 북방에, 3,8목을 서방에, 4,9금을 동방에, 5,10토를 남방에 배열하였다.
* 영부도는 하도에서와 같이 10수를 다 사용하였으며, 낙서에 加一하여 새로운 오행의 수를 정하였다. 이도 역시 龜岳春回一世花(절구 시), 三百六十開(탄도유심급)의 경전 뜻과 같다.
* 영부도는 중궁 1,6水를 1은 體이므로 不用數로 ( )에 넣고, 6은 用이므로 실수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주자가 말한 天以一生水而地以六成之(역본의도)에 따라 후천에 6수를 用한 것으로 보인다. 1를 體로 하여 井田圖에 10수를 배열하여 가로세로 대각선으로 합하면 13수가 나온다. 이는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교훈가)의 뜻. 1를 제외한 음양대대의 수는 12이다.
* 영부 중궁을 육면체로 그리고 그 안에 점선의 원을 그림으로써 무극과 일원심을 상징한다. 이는 “心兮本虛 應物無迹”(탄도유심급)의 뜻과 같으며, 이 중심안에 있는 점선 원은 영부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몇가지 예로써 영부도를 제3의 圖書로서의 符로 자리매김을 시도해 보았다. 三易大經에도 “圖書符 各定其天”이라 하였다. 영부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주용담영부는 수운사상을 전해주는데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3) 김일부의 正易사상
一夫 金恒의 정역[그림4]에 대하여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이제는 복희역-문왕역에 이은 제3의 일부역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는 폭이 상당히 넓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는 大易序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聖哉 易之爲易, 易者 曆也, 無曆 無聖, 無聖 無易.
(거룩하도다. 역의 역됨이여, 역은 책력이니 책력이 없으면 성인이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도 없다)
일부는 易은 곧 冊曆 또는 曆數라고 새롭고 구체적인 정의를 내렸다. 이는 天之曆數在汝躬(서전, 논어)에 이미 나타난 바와 같이 역수를 天道의 실체로 파악한 것이다. 즉 정역이 서는 이른바 우주시간의 변화원리를 生(366)-長(365¼)-成(360)으로 진행되는 필연성에서 천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360이란 수는 주역에서 말한 공자의 360과 같으나, 그 근원은 다르다고도 본다.
또 정역시에, 天地之數는 數日月이니 不正이면 易匪易이라 易爲正易이라사 易爲易이니 原易이 何常用閏易가(하늘과 땅의 수는 해와 달이 수놓으니 해와 달이 바르지 않으면, 역이 역이 아닐세. 역이 바른 역이 되어야 역이 역 노릇을 할지니, 원역이 어찌 항상 윤역을 쓰리요;이정호 역)라고 하였다. 김주성은 마지막 구절을 360의 無閏曆을 쓴다는 뜻이 아니라, 윤역을 현행 음력으로 보았다.
따라서 역학에서의 천도론은 일월변화가 중심이 되어 만물이 부단히 생성변화하며, 동시에 자연만물의 생명유행으로서 천도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정역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설괘전 3,4-5,6장에 나타난 삼재적 生-長-成원리에 따라 복희팔괘-문왕팔괘-정역팔괘의 순서로 발달해 왔다. 인격성의 발달도 이와 함께 한다.
2) 천도로서의 자연의 변화와 인사로서의 인간의 변화를 예견하고 인류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놓았다. 천지도수의 변화로 천도를 파악하고, 인간을 황극으로 이해하며, 억음존양이 아니라 調陽律陰으로써 만민평등과 남녀평등을 명시하였다.
3) 선천의 역을 교역, 후천의 역을 변역의 역이라 하여 근원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차원의 역질서를 보여주며, 동시에 후천으로 가는 金-火사이의 변화는 바뀌지 않는(不易) 완전한 正易이 되는 것이며, 역법과 자연변화와 음율과 조화의 모든 질서가 정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금화정역이 정역의 원 이름이다.
4) 戊(5황극이며 10무극)와 己(10무극이며 1태극)자리는 선후천 변화에 있어서 5土와 10土를 이루는데, 이 때 5황극은 10무극과 1태극을 우주창조의 본체로 하여 만물의 성장과 분열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우주운동의 본체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음양변화의 조화정신이다.
5) 정역사상이 한국역학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때 한국유학의 고질적 폐단이었던 중국유학에 대한 事大意識은 曆數聖統원리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였다.
6) 복희역이 무위자연의 소박한 역이라면, 문왕역은 인위조작의 文巧한 역이요, 일부역은 자연과 인간이 극도로 조화된 우주의 이상과 인간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超脫의 易이다.
5. 20세기 韓國의 易學思想
19세기에 이은 한국의 역학사상은 20세기에 와서도 나름의 독특성을 지니며 변화를 보여준다. 시대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강증산의 易사상
증산 강일순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의 문을 열며 이른바 天地公事를 말하였다. “이제 혼란복멸에 임한 천지를 개조하여 새 세상을 열고 대비겁에 싸인 사람과 신명을 널리 건져...”(대순전경8:4). 증산의 천지공사는 말 그대로 천지개조, 새세상열기, 신인구제로 요약할 수 있다. 장병길은 증산의 무극대도는 정역과 용담영부가 아닌 인간이 갖고 나온 冠旺法이라 했다. 이 관왕법이란 화생-성장이라는 변역의 섭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收藏의 이치를 의미한다.
또 다른 시각에서 홍우는 증산은 하도에 바탕을 둔 용담도를 그렸으며, 용담도는 정역팔괘의 다른 이름이고, 人出其瑞한 1.6水法이라고 했다.
그러면 증산 자신의 말은 어떠한가.
“주역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증산도 도전5:178)고 하였다. 이는 복희, 문왕의 주역을 인정한 말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제3역이 출현해야 할 당위성을 찾을 수가 없다. 반면에 “선천의 상극이치를 뜯어고쳐 상생의 도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운다”(대순전경 5:4)고 하여 낙서의 상극이치를 부정하고, 이를 뜯어고친다고 함으로써 제3역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지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水火金木이 待時而成하나니 水生於火 故로 天下에 無相克之理니라...내가 이제 천지를 개벽하여 물샐틈없이 度數를 정하였다”(도전4:98)고 했다. 상극은 무상극화하고 있는데, 이는 정역의 水極生火와 같은 뜻이다.
현재로서는 증산의 천지공사관을 집약하여 표현할 수 있는 팔괘도나 도서가 이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설법에 의지하여 자세히 관찰하면, 역사상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士農工商 陰陽 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
음과 양을 말할 때에 음자를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니라(도전 6:30)
2) 상제께서 등불을 끄게 하고 한 사람을 택하여 중앙에 세우고 나머지 여덟사람을 팔방으로 세운 후에 건감간진 손리곤태를 외우게하다(대순진리회 전경 1:52)
3) 龜馬一圖今山河 幾千年間幾萬里
하도 낙서의 판인 오늘의 산하, 몇 천년 동안 몇 만리를 지내왔는가(도전 3:199)
이상에서 1)은 정역의 금화교역과 지천태를 말한 점에서 정역을 쉽게 알아낼 수 있고, 2)는 불을 끄고 낙서와 문왕팔괘도 공사를 본 점에 보아 낙서와 문왕팔괘가 그 사명을 마쳤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3)은 하도 낙서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새 일월의 도를 두를 것(帶道日月)을 예시하고 있다. 제3역에 대한 어떤 암시를 느낄 수 있다.
그 다음은 증산 이후 출현한 증산계교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팔괘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홍범초의 『범증산교사』에는 몇 가지 괘상이 보인다. 미륵불교(정수산)의 미륵세존괘(p.604), 삼덕교의 모화정8괘형(p.324), 보화교의 金龜海圖(p.572)가 있고, 특히 역과 현무경에 활발한 연구를 벌이고 있는 순천교파에는 12인이 12괘의 후천역(pp.261-263)을 발표하였다. 이 12괘를 분석해 보면, 낙서에 정역팔괘를 결합한 형태도 있고, 영부도에 정역팔괘를 결합한 팔괘가 고루 보인다. 지금으로써는 증산의 팔괘사상은 더 많은 연구를 요한다고 볼 수 있다.
(2) 서백포의 後天數理사상
白圃 徐一은 36세 대종교의 특선사교가 되어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을 집필하였고, 39세에 북로군정서의 총재로 청산리 싸움을 격려하였고, 41세에 절명한 항일무장투사였다. 그에 관한 글이 敎書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상인지, 교단의 교리인지(혹은 전래된 秘書인지) 구별이 모호할 수도 있으나, 그의 회삼경은 삼일신고를 강해한 창작적인 주해이므로, 일단 전자에 비중을 두어 논의하기로 한다. 그 서문에 의하면 “회삼경은 불교의 妙法과 유교의 易學과 도교의 玄理의 뜻을 갖추었다”고 했다.
서백포는 先後天數圖에서 낙서를 先天之數로 보고, 이 낙서의 구궁에 加一한 後天之數[그림5]를 제시하여 주역과 차별화 하였다. 이는 경주용담영부의 수배열과 일치한다. 다만, 영부도는 一를 (一)로 표시했으나, 서백포는 一를 표시하지 않고, 2에서 10까지 9수만을 用하였다. 가로 세로 대각선의 세 수를 합하면 합이 18이다. 그의 회삼경에 “○□△ 三者는 万象之源이오 數之所由起也라...先天之數는 始一中五하야 而終於九하고 後天之數는 始二中六하야 而終於十하나니...”라 하였다. 후천의 새 수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始二,中六,終十인데, 이 중 中六은 바로 천부경 81자를 9×9로 배열할 때 그 中에 六이 오는 오묘한 이치와 일치한다. 그동안 서백포의 선후천수도는 학계의 시야에서 가려 있었고,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없는 상태이다. 다만 그의 후천의 수리는 삼일신고와 같은 민족 고유사상의 영향이 컸다는 점만은 분명할 것이며, 그의 수리론과 관련하여 宋나라 유염의 「陰無一圖」(2를 남방에, 10을 북방에 놓았다)와 비교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3) 이야산의 洪易學
也山 李達은 해방전후의 공간에서 한국역학의 수호자임을 자임한 듯하다. 해방이 되자 나라의 혼란을 걱정하며, 곧바로 군자의 經綸을 중요시한 주역의 屯괘명을 따라 대둔산 석천암에 들어가 주역강의로 전국의 학역자들을 운집시켰다. 정해년(1947)말에는 부여로 이거하였고, 계룡산을 오가며 李周易으로 유명하였다. 학역자들을 매료시킨 그의 주역학의 핵심은 건괘 九五卦變說이다. 건괘 문언전 九五에서 복희팔괘가 문왕팔괘로 변해간 이치를 명쾌히 규명해낸 것이다.
1947년 야산은 洪易學 창립을 발표하였고, 따르는 제자가 모두108군자였다. 홍역학은 河洛總百圖[그림6]의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홍역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經傳의 합일이다. 홍역학 창립선언문에 “陰陽五行之機”라 했다. 이는 음양학으로 주역을, 오행학으로 서전 洪範의 합일을 추구한다. 또 홍범이 數를 강조한 수리라면, 주역은 象으로 천지이치를 밝힌 象理이며, 홍범은 정치학이고, 주역은 철학이며, 이 두 경전을 같이 공부해야 우주의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자세히 언급하면 건괘 九五란 수리는 서전 홍범구주의 九와 五皇極의 합일로서의 九五황극론이다.
둘째는 圖書의 합일이다. 즉 하락총백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하도수 55와 낙서수 45의 합수를 말하는 것이다. 하락의 100수가 태극지하에서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를 음양으로 나눈 수가 50으로 대연수가 된다. 하도는 복희역-주역-음양으로 발전하고, 낙서는 홍범-정전제-오행으로 발전하여 결국 음양오행의 합일을 뜻한다. 또 100수는 己獨百之數之終이라는 말과 같은데, 己는 陰土로서 10土이므로 10×10=100(十十之百)이 된다. 이러한 야산의 합일사상은 한사상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야산의 합일이 의미하는 것은 독창적 뜻을 갖고 있다. 야산은 선천과 후천사이에 中天이라는 새 하늘을 설정한 것이다. 이 중천의 하늘로서 中正사상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선후천을 잇는 중천에 처하여(中於先后) 선천종과 후천시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正其終始) 지금까지 갈라져 왔던 하도와 낙서를 합하는 그 속에 易道를 이룰 수 있고, 홍범의 도를 세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홍역학은 중천의 역학이라 할 수 있다. 야산은 선후천 사이에서 중천을 바로 지키는데 한국역학의 시대적 사명을 자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은 중천이 바로 서지 않으면 후천도 없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그리고 홍역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면에서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먼저, 실천역학을 강조하였다. 太極之下 종교연합회(수운교와 함께), 正義軍, 집단농장 등의 운동을 전개하여 생활속에서 실천하였다. 그 다음은 후천 달력으로 庚元歷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경원력은 앞에서 말한 중천의 역학을 역수로써 구체화한 것이다. 단기4277년(1944,갑신)7월6일 申時를 기점으로 삼았다. 庚은 陽金으로 후천에 남는 열매를 상징하며, 특히 蠱괘와 巽괘에서 새 역의 원리를 규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1944년 갑신년을 경신년(1980)으로 바꾸는 36虛度數論을 내놓았고, 그 이치대로 보면,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가 나온다. 이는 소강절의 황극경세론에서 선천 大過도수를 考定하였다는 면에서 독창적이다.
1947년 丁亥년(단기4280)이 허도수에 따라 癸亥년이 되어 선천의 終을 이룬다. 이 先天終과 함께 곧바로 후천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中天의 시대로 돌입한다. 이것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三伏庚金에 비유할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것과는 달리,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데 三伏이 있다. 야산의 중천시대란 결국 가을의 문턱으로 가는 伏金을 말한다. 이 복금시대에 올바로 살아 精金美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후천(金)으로 가는 바른 삶이라는 것이다.
7. 結論
이상과 같이 상고로부터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학사상을 개관하였다. 한국역학사상을 일관하는 기본 사상을 다시 정리해 보고자한다.
첫째, 天授사상이다. 환웅이 천부를 받고, 복희가 천하에서 괘도를 얻으며, 수운이 영부와 주문을 받으며, 일부가 팔괘도를 하늘의 심법으로 전수받는다. 다산과 백포도 하늘을 신앙하였다.
둘째, 在世와 인간화사상이다. 다산, 수운, 일부, 백포는 인간세상속에서 역사적 현실에 처하여 유배, 감금, 투쟁 등 처절한 수난의 삶을 살았다. 또 환웅의 재세이화, 천부경의 人中天地一, 다산은 자율적 靈明의 마음을 강조했고, 수운은 사람을 獨惟人最靈者로, 일부는 日月匪至人虛影이라 하였다.
셋째, 妙一사상이다. 복희의 묘함삼극, 천부경의 一玅衍, 영부도의 1.6수의 1, 일부의 삼극합일, 백포의 회삼귀일, 야산의 하락총백도 등이 모두 하나를 이루는 묘합사상이다. 이 묘합사상은 1과2, 1과3사이에서 벌어지는데, 특히 천부경에서는 1과 3사이의 관계가 묘하게 전개된다. 1은 3의 체가 되고, 3은 1의 용이 되는 것이다.
넷째, 曆數사상이다. 환웅의 360일 주관, 수운은 360日,360開와 3.7자 주문을 말하였고, 일부는 360正曆을 말하여 건책(216)곤책(144)의 합수를 이뤘다. 100수는 온(全)과도 같은데, 낙서의 45수와 영부도의 55수의 합수이며, 洪易學을 표명한 이야산의 河洛總百圖도 이와 같다. 다산은 12벽괘로 사시의 운행을 말했다. 백포는 회삼경에서 366은 天數의 大衍이라 했다. 환역의 근거가 되고 있는 윷을 28수의 별자리로 볼 때, 日月星의 역수의 합은 388(360+28)인데, 환웅이 360을 말한 것은 28宿를 無爲數로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섯째, 새밝사상이다. 환웅의 신단수, 수운은 후천의 다시개벽을 말하였고, 일부는 2800년동안 기울어온 문왕역을 乾坤 正位의 地天泰로 바로 세우며, 영부도와 함께 백포의 후천지수는 낙서의 상극에 종지부를 찍고, 사라졌던 10수를 회복하였다. 다산은 脫성리학적 입장에서 영명주재의 天을 설명했고, 증산은 새로운 상생의 道로써 조화정부를 세운다고 했다.
이제 몇 가지로 마무리하려 한다.
하나, 환역은 二爻 四象 체계를 갖추었다면, 복희역은 환역을 발달시켜 3효8괘를 정립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주역 8괘속의 사상론보다는 환역의 사상론에 근원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전자는 A,T,C,G라는 네 개의 기본구조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게놈이론을 환역의 사상론, 윷점64괘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환역에서 괘상을 위에서 아래로 그리는 괘도법은 정역에서 밖에서 안으로 “구심적 방향”을 향해 그리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또 김창부는 윷판으로 정역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또한 환역과 일치한다.
둘, 이을호는 한국 역학이 다산의 古易論과 正易의 양자가 이루는 묘합의 역사는 우리민족에게 부여된 사명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인류사적 문제라고 본다. 필자는 여기에 수운의 영부도(백포 후천수를 포함하여)가 일부의 정역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정역8괘도는 괘의 수리와 오행의 수리는 있어도 그것의 상생상극 차서도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도 중심의 金火論을 말하고 있고, 이정호 역시 정역은 아예 하도의 구체적 실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상극을 상생의 도로 복귀하는 의미로 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새 도서는 아닌 것이다. 새로운 오행 수리는 영부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삼역대경에 “河圖之中有洛書, 洛書之中有靈符, 靈符之中有万像物形神符”라 하였다. 낙서와 문왕팔괘가 만나듯 영부도와 정역팔괘가 만나야 성숙한 제3역이 완성될 것으로 본다. 하도 낙서가 시간적 구조이고, 팔괘가 공간적 구조라는 시각에서만 보더라도 시공의 완전한 만남은 필연으로 생각된다. 제3역의 완성은 한국역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모름지기 宇宙易이 될 것이다. 한가지 첨언할 것은 증산과 증산계 교단의 팔괘도에 관한 것이다. 증산의 천지개조의 공사를 괘도로 보면 지천태괘의 형상일 것이다. 또 1종파에 1괘가 있을 정도로 유사한 팔괘도가 종파의 상징물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정대오의 팔괘도와 송월학의 경주용담도와 황극역8괘도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
셋, 태극기에 관한 문제이다. 고종이 1883년에 최초의 태극기장을 반포하고, 1949년에 현행 태극기가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극기의 乾坤坎離는 다산이 주장한 4정괘 그대로이다. 易의 시종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 태극기가 웅변하고 있다. 고정된 태극기가 아닌 살아있는 태극기로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넷, 책력에 관한 문제이다. 책력이란 일상적인 캘린더로 인식하기 쉬운데, 오히려 캘린더 성립의 근거로써의 역수원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현행 캘린더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력은 360일에서 5일이 남고, 음력은 360일에서 약 5일이 부족한데, 이는 대연수 50에서 하락이 ±5가 되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지금은 閏法에 시달리고 있는 음력과 양력이 통일된 새 책력을 만들 역수의 공통원리를 찾을 때라고 본다. 그런데, 정역에 대한 오해중의 하나가 공전주기(365.2422)와 공전朞數(360)가 후천이 도래하면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度數와 달력과는 일단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360도수와 365일과의 間隙(틈)에서 우주의 묘합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역학은 곧 역수라 할 수 있는데, 그 역수원리에 의하여 그 역학의 독창성과 주체성이 나타난다고 본다.
끝으로 정역의 종교사적 의의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정역은 동학, 남학의 후천개벽사상이 추구하던 개혁사상과 공통적 시대의식을 지니면서 새로운 역학의 논리를 계발함으로써 치밀하고 조직적인 후천개벽 사상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이 점이 한국사상사 내지 한국종교사에 중대한 의미와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현재 동학계 교단과는 달리 대부분의 증산계 교단에서는 정역을 교리로까지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동학, 증산, 대종교에 흐르고 있는 사상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정역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수원리와 신인합덕의 신명원리를 한국사상의 본질로 본 류남상은 “동학과 정역은 한국고유의 神道와 天道의 표방이며, 한국유학사상기의 총결산”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수운의 말과 같이 후천개벽의 시대에 更定胞胎之運에 살고 있다. 천지운도가 새 질서를 찾고 있고, 우주가 새 생명을 포태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영적 엘리트’들에 의해 이룩된 한국의 제3의 역학은 바로 이를 위해 이 민족에게 포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의 順産여부는 오늘의 신종교를 포함한 역학인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본다.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 후일을 기약하며,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