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모텔에서 지은 날개 옷 한 벌
──강영은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주경림
지난 가을의 초입, 강영은 시인의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가 녹색의 껍질을 입고 내게 배달되었다. 비단옷은 아닌 녹색 종이봉투였지만 눈부셨다. 그 봉투 속에서 『녹색비단구렁이』가 꿈틀 기어나왔을 때 우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야했다. 그 펄펄한 생명성이 쏟아내고 터뜨리는 언어의 축포가 황홀했기에. “시퍼렇게 독 오른 나를 네게 받친다”는 시인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치명적인 독을 뿜는 뱀일수록 겉모습은 화려하고 매혹적이지 않던가. 더욱이 시퍼런 독에는 시인이 온몸을 받쳐 쓴 시향이 짙게 묻어나기에 순간 숙연해지기도 했다. “피었다 지고, 세웠다 무너지는 동안”(「시인의 말」) 어떻게 한 송이 꽃을 피워올려 독창적인 시공간을 연출했는지 숨죽이고 살펴보기로 했다. 강영은 시인은 제주에서 출생했으며 2000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했다. 현재는 한국시인협회 총무간사를 맡고있으며 <진단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 벌레시인의 궤적을 쫓아
“밤새도록 밤을 파먹은 벌레시인”임을 자처하는 그는 허공에까지 자신의 길을 내고 있어 묘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시거미 한 마리가 된 시인이 짓는 대표시, 「허공 모텔」을 소개해본다.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실비단 그물침대 걸어놓은 저, 모텔에/ 세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지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을 수 있다면
──「허공 모텔」 전문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인다는 시의 전개는 모텔이 주는 세속적인 의미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독자 나름의 상상력으로 접근했을 때 시의 끝부분에 이르러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는 뜻밖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죽음’은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을 짓기 위한 양식이 된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쯤에서 독자는 시인이 ‘모텔’보다는 ‘허공’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즉, 강영은 시인은 ‘어여쁜 죽음’을 징검다리 삼아 허공인,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변신, 우화羽化를 꿈꾸고 있다.
뱃속 깊이 고인 투명한 슬픔을 뽑아내
아침저녁 식탁보 짜는 그녀
햇살 무늬 구름무늬 반짝반짝 비치는 식탁보에
목숨줄을 매단 그녀
우주거미처럼 수억만 개의 별빛으로 채워진
제 안의 블랙홀을 뒤집어
천망天網이란 이름의 수의 한 벌
펼치려는 건 아닐까
──「아라크네의 식탁」 후반부
「아라크네의 식탁」은 베짜는 솜씨가 뛰어났던 아라크네가 직물의 여신, 아테나에게 대적한 결과 신의 노여움으로 거미가 되었다는 신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아라크네의 식탁」에 이르면 ‘날개 옷 한 벌’은 ‘천망天網이란 이름의 수의 한 벌’로 좀더 비극적이면서도 화려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허공 모텔」과 「아라크네의 식탁」에서는 거미줄이 생명줄이며 절정에 이르면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죽음의 집인 거미집이 식탁보, 날개 옷 한 벌, 수의 한 벌이 되는 과정이 비장하다.
「제논의 화살」에서도 시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다. 그리스 소피스트(괴변론자), 제논의 학설─매순간마다 공중을 나르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하고 있다.─을 시의 제목으로 빌어왔다. 나무가 녹슨 자전거를 받아들여 한몸이 된 자전거 나무에서 그 신비한 광경을 “한 영혼이 또 다른 혼에 머문 것처럼 서로의 허공을 쓰다듬고 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디오게네스의 낮잠」에서는 “이봐 거기, 그늘 좀 치워 줘!”라는 한 줄의 문장으로 시드니 야생파크 동물원의 코알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시적 화자인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 된다. 꿈과 현실, 사람과 동물의 경계와 시공을 훌쩍 넘어 역사를 현재로 불러온다. 이처럼 시가 신화나 역사적인 내용을 배경화면으로 갖게 될 때 독자에게 주는 감동과 여운은 크게 증폭된다. 허공을 응시하던 시인의 눈은 까치밥을 지나칠 리가 없다. “까치가 날아와 숟가락을 얹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 온 밥그릇”인 까치밥은 그 기다림 만으로 「한 알의 사원」의 자리가 된다.
2. 한 줄의 문장으로 세상 읽기
강영은 시인에게 이 세상은 문장 아닌 것이 없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면/ 가스똥 비슐라르의 춧불, 조금씩 녹아내리는 문장”(「비누論」)이 된다. “어둠이긴문장을지니자기차가속도를높이기시작했다”(「거꾸로 가는 문장」)를 비롯해서 산낙지의 꿈틀거림에서조차 “느리게 흘러가는 문장”, “접시 넘어 테이블 위로 떨어진 토막난 문장”(「접시 위의 한 문장」)을 읽어내기도 한다.
“나는 노을을 들춘 마른번개, 단 한줄의 문장으로 당신을 지나가지”로 시작하는 「감자의 9가지 변주」를 읽다 보면 시인이 얼마나 즐겁게 언어의 세상에서 혼자 잘 뛰놀고 있는지를 동료 시인으로서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공깃돌 굴리듯 그녀의 손등, 손바닥 안에서 언어의 세상이 변화무쌍하게 출렁인다. 끝없이 펼쳐지던 상상력의 범주가 “놀란 흙 밖에 서 있는,”으로 시작해서 “치명적인 꽃이지,”로 그 다양함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시인의 맵짠 솜씨 또한 일품이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시집 해설에서 “……언어의 도구적 기능을 넘어 언어 자체에 대한 메타적 탐색에 공을 들이는 이가 곧 시인”이라고 했듯이, 「담쟁이」를 통해 시인 역시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거듭나고 싶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바위나 벽壁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몸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寄生하는 모으든 슬픔이여!
벼랑 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담쟁이」 전문
3. 사이버 공간에서 우주로의 시적 행보
강영은 시인은 “아침마다 변기에 앉아 우주를 왕복하”는 몸이 「우주선」이라고 쓰고있다. 자신의 귓바퀴에 들려오는 이명耳鳴에서 “시공의 벌레구멍에서 입 없는 벌레들이/ 지구의 중심축을 갉아먹는”소리를 듣기도 한다.(「벌레들의 지구」) ‘시공의 벌레구멍’이란 존재가 밝혀진 바는 없지만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해주는 구멍의 통로를 말한다.
시제는 신화에서 따오고 사이버 공간의 특수언어를 소재로 삼은 시, 「피그말리온의 이모티콘」은 가볍게 읽혀질 수 있어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액정 화면 속으로 날아든 이모티콘 “@ # $ % &** \ !”을 우주 밖에서 날아온 난파당한 별빛으로 해독하려 하는 시인의 발상 또한 우주적이다. 「발칙한 속도」, 「문자의 세상」에서는 스팸 메일과 휴대폰 액정화면 속의 선정적인 이미지들을 쭉 나열한다. 걸러내기의 설정과 호기심의 발동 사이에 놓여있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심리를 실감나게 풍자하고 있다.
거실 구석에 놓인 돌 하나에서도 “제 빛을 삼켜버린 별똥별 하나”(「별의 속도」)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야말로 별빛을 닮지 않았을까. 수세미 덩굴손이 그려내는 「수세미 천궁도」를 읽다보면 필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될 것이다.
담장 모퉁이에 심어놓은 모종에서/ 연필촉 하나 솟아나더니/ 밤마다 별자리를 향해 뻗어나간다/ 제 안 어딘가 꺼지지 않은 고생대의 탄소가/ 불줄기로 남아있는 것일까/ 연필도, 별자리도 덩굴손 안에 어느 산맥의/ 능선을 그리는 밤/ 아프지 않은 상처에도 무너지는 경계가 있다고,/ 덩굴손이 장독대의 허를 콕콕 찌른다/ 불멸의 제국인 우주를 향해/ 해와 달과 별을 거느리고 팽창하던 그때/ 몸을 뚫고 피어난 크고 노란 꽃/ 튜바 같은 커다란 입이 삼킨 것은 / 무엇이었을까?/ 벌 나비 웅웅대는 별자리를 지나면/ 누구에게나 시간이 지나간/ 통로 하나쯤 있다는 건지/ 무덤처럼 제 일생을 매달고 있는/ 씨앗// 까맣게 여문 밤하늘에 박혀들고,
──「수세미 천궁도」 전문
4. 자서전적인 시편들
제주에서 출생한 시인에게 바다는 살아가기 위해 “헤엄치는 법”과 독오른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옷 입는 법”을 가르쳐 준 선생이었다.(「물로 지은 옷」) 자서전적인 시에서 어머니가 청聽자로 자주 등장함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표제시인 「녹색비단구렁이」에서는 격렬한 몸놀림과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다이내믹한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연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 새끼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녹색비단구렁이」 후반부
시적 화자는 녹색비단구렁이의 원시적이고 매혹적인 몸을 벗는 또 한 번의 변신으로 자연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 새로운 삶은 희망이라는 초록의 음모를 벗은 태생적인 자연의 모습이다. “깊이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로 새로운 삶의 물꼬를 트고 싶은 것이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오래 남는 눈」에서는 삶의 뒤꼍과 그늘이 현재의 자신의 모습으로 성장시켜주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늘은 판소리에서 나온 말로 “소리에 그늘이 졌다” 하면 소리꾼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하지않던가. 강영은에게도 사춘기, 청년기의 그 서늘한 그늘이 현재의 시인의 모습을 만들었으며 “매미 시편의 완결편”을 위해 더욱 매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녹색비단구렁이』에 실린 65편의 시들은 한결같이 독버섯처럼 화려하게 매력을 발산했다. 필자는 그 맹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음미했고 섬광처럼 번뜩이는 언어의 빛부심과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아릿한 통증에 마침내는 마취되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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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림 /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