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 목사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의 생애가 한 사회와 역사에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목사님께서 자기가 주도하지 않았는데 빈 자리를 채워야하는 상황을 맞을 때마다 나서게 된것 같다는 고백을 들으며, 뜻을 함께하는 관계의 필요를 채우는 삶을 살아오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공개특강을 준비하며 박종렬 목사님과 관련한 기사나 글을 찾았는데, 거의 없었다는 것도 놀랄 일이었다. 목사님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유명세를 가졌다. 하지만 목사님은 자신의 표현대로 필요를 채우며,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으로 살아오신 분이구나 고개를 숙이게 된다.
특강을 마치고 책을 선물해주셨다. 뭔가 소중한 책을 주신거다 싶었고, 못다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하시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정치와 영성의 해방]이라는 1990년에 직접 번역하신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었고, 집에 있는 책을 가져 오셨다. 목사님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후 뇌리에 맴도는 질문이 "자주민주통일을 향해 해방운동을 전개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과 참 영성은 과연 무엇일까?"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인의 해방의 실천과 현실 변혁의 과제가 우리 신앙 가운데 주어져 있다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음적인 오늘의 현실을 변혁시키는 헌신적 행동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신앙조차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 영성적 분별력은 뿌리깊은 관념론으로 포장된 지배 이데올로기에 헌신하는 사회적 입장을 포기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변화를 지향하는 변증법적 의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목사님은 인천지역의 노동자와 가난한 주민이 밀집되어 살아가는 산동네에 송림사랑방 교회를 세우며 이를 지침으로 삼고자 하셨다. 서로 상반된다 여기는 정치와 영성을 신앙하는 삶으로 통합하여 참 해방의 영성으로 살아가고자 하셨다.
목사님의 지나 온 삶이 그러하셨던 것 아닌가 싶었다. 역사현실의 사건 앞에 부름이 신앙적 추동과 맞물렸기에 그 생을 한결같이 살아오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혜로 수도자의 영성과 혁명가의 역사의식으로 오늘도 하나님나라를 일구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