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 양소은]
무슨 향수를 쓰니
4월
그림이나 음악, 소설에서 미니멀리즘이 한때 쓸고 지나간 적이 있다. 미니멀리즘은 과도한 주관적 상상이나 수식어, 문학적 장치를 최소화하자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자는 예술의 한 경향이다. 표현주의가 예술가 자신의 표현 욕구를 과잉으로 드러내려 하고, 아르누보가 화려한 장식적 표현을 즐긴다면, 미니멀리즘은 예술가 자신의 욕구를 최소화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최소한주의', 혹은 본질을 표현하자, 라는 목표로 1960년대 후반 미술계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작가의 의도나 장식을 최소화하여 사물 자체를 단순하게 표현하려 한다. 로버트 모리스의 그림 <L자형의 방> <무제> 시리즈 등은 관념적이라 할 만큼 단순 구조물을 관람자가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느끼도록 설치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작가보다는 독자나 현장의 시간과 공간의 실재를 중요시한다. 이후 음악이나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응용되었고, 실생활에도 영향을 입혀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자, 라는 목표로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즐기며 여행에 집중하려 한 2030 세대에게 각광을 받았다.
소설에서도 레이먼드 카버가 묘사보다는 사실적인 표현과 하드보일드 문체인 단문으로 표현하자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는 꾸밈이 많은 묘사보다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것도 단문으로 쉽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만큼 사건은 빠르게 전개되고, 사건과 사건 사이에 묘사는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소설은 극히 단순한 일상, 통속적이기도 한 일상을 특별할 것도 없는 플롯으로 전개 된다. 하지만 통속적 일상에서 앙금 하나의 여운을 남긴다. 이는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와 유사하여 헤밍웨이를 다시 읽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이미지즘, 몽롱파의 영향으로 시에서 과도한 장식, 혹은 몽롱한 언어들을 써왔는데, 그러한 시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알 수 없어요'다. 독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시들은 시인 자신이나 시단 내에서만 유통되는 자폐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이에 우리 시단 밖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욕구가 분출했다. 이제 시도 시적 장치나 시인의 내면을 너무 노출하기보다는 사실 자체를 단순한 문장으로 독자와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사물이나 대상 자체가 스스로 시로 나타나도록 시인은 하나의 세트를 옮겨오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시들은 겉으로는 현상을 단순하게 드러내는 것 같지만 다 읽고 나면 앙금이 남아 있는 느낌이 나타난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학적 장치나 의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만큼 시에서 단문을 많이 쓰고, 그리고 문장 밖의 의미를 최소화한다.
양소은의 짧은 시 「라일락」은 감각의 순간적 발견이 있다. 또한 읽고 나면 후유증처럼 오래 남고, 가슴으로 파고드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맛이 있다. 시에서 미니멀리즘이 있다면 이러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 전기철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