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사실 물리학에 문외한인 내게 너무 무거운 용어다. 그래도 사방에서 이 용어가 회자될 때는 기본적인 것 정도는 알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 동안 몇 권의 관련 도서를 펼쳤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양자역학에 대한 처음의 내 무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이클 워커의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마치 양자역학을 콕 집어 명쾌하게 설명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 같은 물리학 문외한들을 위해 쓴 것이라 여겼다. 쾌재를 부르며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책의 전반부는 양자역학을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론을 통한 그 간의 과정으로 소개하고 있다. 막스 플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루이 드 브로이, 에르빈 슈뢰딩거, 막스 보른, 폴 A. M. 디랙 등이 그들이다.
1900년부터 원소의 화학적 성질, 주기율표, 원자의 크기, 우리의 크기가 현재와 같은 이유, 그리고 당시까지 존재한 인습적이고 고전적인 시각(예를 들면, 사과의 낙하와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 뉴턴의 운동 법칙)에 위배되는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급진적이고도 새로운 이론이 전개되었다.
새로운 견해를 대개 ‘양자론’이라고 하며, 이러한 견해를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계산법으로 통합한 수학적 접근을 ‘양자역학’이라고 한다. 양자는 보통 에너지의 덩어리를 뜻한다. 양자론이란 에너지가 덩어리 또는 알갱이로 존재한다는 개념을 기본으로 하는 이론이다.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물체의 상태를 위치, 질량, 속력, 방향의 조합으로 정의한다. 물체가 어디에 있는가, 얼마나 무거운가, 얼마나 빨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따라 특정한 에너지를 가진다고 말한다.
물체의 속력을 약간씩 또는 많이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한 장소에서 근처의 모든 위치를 거쳐 멀리 떨어진 위치 또는 그 사이의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물체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속력을 약간씩 또는 빠르게 증가시켜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양자세계에서의 물체의 상태도 거의 같은 방법으로 정의된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를 구성하는 입자(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다른 원자구성 입자의 운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입자와 파동의 구분이 모호하다. 물론 이는 물리학자들의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접근하면 알기로는 입자는 알갱이고, 파동은 이른바 물결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은 그 둘을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런 모호성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든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내 지적 수준이 모호성을 받아들일 만큼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양자역학이 도입된 이래 원자, 핵, 분자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책은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볼프강 파울리는 “양자역학은 화학의 모든 것과 물리학의 대부분을 설명해 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독후감이나 서평이라기보다는 양자역학에 대한 나름의 독서를 간략히 요약해 두고자 한다. 내일이면 또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원자는 원자핵을 전자가 솜사탕처럼 둘러싸고 있다. 전자는 음전하(-),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는데,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정확히 일치해 전체적으로 중성의 상태를 형성한다. 원자의 무게는 원자핵이 대부분 차지한다.
그런데 원자핵은 크기가 원자 반지름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이 전자가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양자역학이다. 여기서 생각이 엉키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배운 분자구조 때문이리라.
전자는 작은 알갱이로 질량을 가지고 있다. 원자를 솜사탕으로 비유한 것은 전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핵심이자, 내가 헷갈리는 이유다.
우리의 사고구조는 고정적인 것에 익숙하다. 만약 물체가 움직인다면 포물선처럼 일정한 궤적을 그리는 정도가 우리의 사고 영역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날파리 떼처럼 불특정한 궤적으로 움직인다면 그야말로 나의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다.
전자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실행한 실험은 간단하다. 벽에 두 개의 구멍을 뚫고 벽을 향해 전자를 쏜다. 전자가 알갱이라면 두 개의 구멍을 지난 전자는 구멍 뒤 벽에 붙어 두 개의 구멍과 같은 형태의 무늬로 찍힐 것이다.
아인슈타인
그런데 실험 결과 구멍 뒤쪽 벽에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여러 개의 구멍 자국이 나타났다. 이는 마치 실험 장치를 물에 담그고 물결파를 보냈을 때 나타나는 간섭현상과 흡사한 모양이다. 이로써 전자는 파동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사고구조로는 입자와 파동은 전혀 별개다. 아마도 처음에 이런 현상을 목격한 물리학자들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입자라면 당연히 하나의 구멍으로만 통과해야지 두 구멍을 동시에 통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동은 물결에서 보듯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다. 소리도 파동의 한 예이다. 내가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듣는다. 말하자면 파동은 여기저기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드 브로이
그렇다면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날까? 아니면 하나의 전자가 둘로 쪼개어 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자가 지나갈 때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는 전자 사진은 없었다고 한다.
사진은 분명 전자가 둘 중 하나의 구멍을 지났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측을 하면서 이중슬릿 실험을 하면 스크린에는 두 개의 줄무늬가 생긴다고 한다. 입자이기 때문에 하나의 구멍만 지나고, 따라서 입자의 성질인 두 개의 줄무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여러 개의 줄무늬가 생길까? 여러 개의 줄무늬를 얻으려면 사진 찍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영 아리송하다. 사진을 찍으면 또는 그냥 쳐다보면 하나의 구멍만 통과하고, 안 보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전자가 의식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우리를 혼동에 빠뜨리는 것일까? 실험 결과를 보면 전자가 마치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자신을 관측하면 입자와 같이 행동하고,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과 같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전자를 하나씩 천천히 쏘아도 횟수가 거듭되면 갈은 결과를 얻는다고 한다. 즉, 파동의 패턴은 여러 개의 전자가 만드는 결과를 종합하여 얻어지는데, 개개의 전자는 특별히 그런 결과를 의식하거나, 다른 전자와 정보를 교환하지는 않는다.
전자 알갱이들의 움직임은 서로 독립적이나 여러 개의 줄무늬를 만들어냈다면 이는 확률적 파동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은 1/2이다. 동전을 한번 던졌을 때는 그냥 앞 아니면 뒤로 아무런 패턴이 없다.
자료 : 천재교육
그러나 무수히 동전을 던졌을 때 대략 반반씩 앞뒷면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자도 마찬가지로 무수히 반복되면 어떤 패턴을 그린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그것도 많이 아프다. 읽을수록 점점 더 아프다. 이번에도 이쯤에서 손을 들어야 하는 모양이다.
어떻든 양자역학의 주장은 분명하다. 우선 우주를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둘로 나눈다. 거시세계는 뉴턴이 만든 고적역학이 지배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입자의 세계다.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 아니 수십 개의 구멍을 지나기도 하는 것처럼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중첩상태라고 한다. 관측을 하면 미시세계의 중첩상태는 깨어지고 거시세계의 한 상태로 귀결된다고 한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핵심이라고 하는 바로 이 부분에 이르러 나는 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아직도 내게는 카오스 그 자체다. 어떻든 양자역학 덕분에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레이저로 화려한 쇼를 하고 심지어 형광등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그래도 흥미를 끄는 것은 양자 컴퓨터에 관한 이야기다. 양자 컴퓨터는 정보를 비밀리에 전송해야 하는 상업적, 국가적, 군사적 필요성과 이에 따른 미국무부의 필요성, 그리고 코드화된 정보를 해독해야 할 군대의 필요성에 의해 개발이 추진되었다.
양자 컴퓨터는 단순히 기존 컴퓨터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회로소자를 사용해 여러 가지 경로를 동시에 계산함으로써 문제를 동시에 바로 처리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양자컴퓨터는 고전적 암호를 깨는 반면 양자적 특성은 새로운 암호화 기법을 제공할 수 있는데 그 경우 절대로 풀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상용화된다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듯싶다.
특히 양자적인 방법으로 코드화된 메시지는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약속이 없이는 절대로 조작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순간 포렌식이니 뭐니 하는 말은 사라질 것도 뻔하다. 온갖 비리가 그 속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로 인해 온갖 협잡이 사회에 일반화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과학은 인간에게 온갖 유익함을 제공하지만 그 틈새에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해악도 함께 제공되었다. 머리가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