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도요새
내 책상 한구석에 등잔이 하나 있다
10여 년 전쯤 형님 宅 헛간에서
버림받고 울고 있는 걸 데려온 거다
화류계 退妓는 쌈짓돈이라도 있으련만
舊 시대의 유물가치도 없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저 작은 몸
쌍식이 아버지 밤마다 술에 취해
도깨비 씨름하고
머슴 만득이는 양조장 집 아씨를
맘먹었다 호되게 경을 치던
저 작은 몸이 세상의 빛이었던 시절
유난히 빛나는 개밥바라기도
내별이라고 우기면 내별이요
얼음 속 동치미와 밤하늘의 별
뉘 집 개 짖던 소리가 물고 물리던
저 작은 몸이 세상에 빛이었던 시절
어제 읽으신 심청전
오늘 또 읽으시던 아버지와
동네를 열두 바퀴나 돌고 들어 와
새우 잠든 누이
몽당연필에 침 바르던 나
아버지도 누이도 잠든 지 오래인 이 밤
새삼 그립다
저 작은 몸이 세상의 빛이었던 그 시절이,
**지금은 쓰지도 않고 주변에서 잘 볼 수도 없지만, 지난 날 우리와 삶을 함께 했던 물건들이 참 많다. 50대 이하는 민속박물관이나 골동품 상회에 가봐도 그 물건들의 이름이나 용도를 잘 알지 못하겠지만, 60대 이상은 어릴 때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 사용했거나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등잔’ 외에도 많은 옛 물건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 갓, 남바위, 맷돌, 가마솥, 베틀, 물레, 메투리, 나막신, 길마, 써레 등 의식주나 생산도구에서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 물건들이 지금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희귀성 때문에 높은 값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떠나 주변에서 잘 볼 수 없게 된 지금, 어쩌다 이런 공동품 같은 물건을 만나게 되면 문득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아련한 그리움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60대 이상 연령 층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시인은 ‘10여 년 전쯤 형님 댁 헛간에서/ 버림받고 울고 있는 걸 데려’왔다고 하였다. 등잔을 의인화하여 ‘데려왔다’고 말할 만큼 정이 들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책상 한구석에 두고 보면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둡고 가난했던 시절, 밤을 밝혀 주던 유일한 빛, 작지만 희망의 상징처럼 마음까지 밝혀주었던 등잔이기에 더욱 애착과 정이 담기는지도 모르겠다, 술취한 아버지도 이 등잔불을 길잡이 삼아 캄캄한 골목길을 찾아들었고, 머슴 만득이도 등잔불 비친 양조장 집 아씨의 창밑에서 가슴조렸을 것이다.
늦은 귀갓길에 밤이 밀려드는 마을을 동구밖에서 바라보면 등잔불들이 개밥바라기 별처럼 반뜩이고
개짖는 소리조차 정겹게 들려왔으리라.
다 읽은 심청전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 읽으시던 아버지도, 몽당연필에 침 묻혀가며 내가 숙제를 하던 것도 다 이 등잔불 밑이었다.
등잔불은 작지만 큰 희망의 빛이었다.
아버지도 누이도 잠든 지 오래인데, 나 혼자 등잔불 밑에서 깊어가던 밤이 오늘따라 다시금 그 밤인 듯 떠오른다.
시행을 등잔 모양으로 배열한 것도 눈에 띈다.
Free as the Wind*
김석윤(토르소)
눈이 퍼붓던 밤
나는 이감 되었다
고드름 둘러친
처마 밑 감옥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없이
2013호실에 수감 되었다
탈옥을 시도할 때마다
벽은 두꺼워지고 높아 간다
나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으나
인생을 허비한 죄로 이미 유죄다
악마의 섬에 안주하려는
친구, 드가(Dega)여!
오늘밤도 나는
나비를 가슴에 품고 잠이 든다
여기저기 도사린 암초들 너머
일곱 번째 파도를 기다려
거친 시간 속에
바람처럼 가볍게 몸을 던질 것이다
*. Free as the Wind: 영화 빠삐용(Papillon)의 주제곡
**지은이가 주(註)에서 밝혔듯이 이 시의 제목 'Free as the Wind'(바람처럼 자유로이)는 영화 빠삐용의 주제곡 이름이
다. 영화의 주인공 빠삐용은 죄가 없는데도 살인죄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는 칠전팔기 끝없이 탈출을 시도한
다.
여기서 시인은 이 세상을 커다란 감옥으로 보고, 죄인 아니면서도 죄인처럼 갇힌, 세상의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우리 인
간은 한 평생을 끊임없이 발버둥친다는 것을 상징적, 은유적으로 이미지화하기 위해서 그 처절한 탈출극인 영화제목을 차
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금년 겨울은 기록적으로 폭설이 내려 우리는 눈 속에 갇히고 연속되는 혹한으로 세상은 얼어붙었다. 시인은 처마의 고
드름이 창살처럼 드리운 감옥에 갇힌 느낌을 어쩌지 못한다. 눈은 때마침 저무는 해와 새해 2013년 사이에 내려서, 그 동
안 많은 해가 바뀌었지만 올해는 2013호실로 이감한 셈이다. 이 세상 수인(囚人)들은 한평생 수없이 탈옥을 시도하지만
세상이란 감옥의 벽은 두꺼워지고 높아만 간다.
우리는 법적으로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 죄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태생적으로 원죄라는 걸 갖고 있지
않은가.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고 허비한 것도 죄라면 죄인 것이다.
그간 감옥생활에서 친해진 위조지폐범 드가는 어쩔 수 없이 상어떼가 득실거리는 악마의 섬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만,
나비처럼 자유로이 날고 싶은 빠삐용처럼 화자는 늘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의 뱃길을 막는 암초가 여기저기 도사려 있었듯
이 세상의 감옥 탈출에도 높은 장벽과 거친 파도가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나 칠전팔기 악마의 섬 절벽에서 바람처럼
몸을 날려 바다로 뛰어든 빠삐용처럼 용감하고 처절하게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대체로 이 시는 이렇게 읽혀졌다. 그러나 읽어나가는 동안, 자꾸 영화 ‘빠삐온’의 영상 이 부각되고, 세상이란 감옥을 탈
출해야겠다는 수인(囚人)으로서의 의지는 그 영상에 가려져서인지 감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수인의식과 세상 감옥의 탈출이란 명제(命題)는 원래 우리 삶을 철학적으로 깊이 성찰하는 영역으로서, 현실적
으로 ‘빠삐온’과 같은 처절한 탈출로 다가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빠삐
용’ 탈출은 최적의 비유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아버님 전상서
류 경 화 (파란하늘)
신작로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처럼
지천에 핀 분홍참꽃 하얀싸리꽃처럼
마실 내려 온 고향집 뒷산 그림자처럼
그렇게 당신께 젖어듭니다
아버지!
폭설이 길을 막아 고립무원이 된 고향집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서 산새들 울고
또 다시 봄꽃의 향연이 시작될 때에
당신의 향기는 변함없는 아지랑이로 피어나겠지요
큰 산이 그렇게 변함이 없듯이
**아버지의 모습은 늘 시골 풍경과 함께 떠오른다. 마을 앞 신장로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처럼 아물거리고, 봄 산에 피어나는 분홍 참꽃럼 떠오르고, 여름 산의 하얀 싸리꽃처럼 피어난다. 그렇게 아련하게 아버지는 다가오시고, 마을로 내려오는 뒷산 그림자처럼 어쩌면 어둑하게 어쩌면 포근하게 나는 아버지께로 젖어든다.
폭설이 내린 오늘, 길은 두절되고 아버지는 고향집에 고립무원으로 갇히셨으리. 그러나 머지않아 ‘또다시 봄꽃의 찬란한 향연은 시작되고,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서 산새들 곱게 우지질 때, 큰 산처럼 변합없이 우뚝 서신 당신, 향기처럼 오래오래 피어날 것이다.
눈 내리던 날
김숙경(예은)
3면이 하얀 벽으로 둘리고
빌딩과 빌딩 사이로 눈이 펄펄 흩날리는데
갇힌 새 한 마리 날지 못하고 날개만 퍼덕인다
어디서 왔을까?
따뜻한 남쪽인 줄 알고 왔다가
폭설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박제되어 가는 모습
미시령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자동차에 반나절이나 갇혔던
젊은 날의 그 대설이 각인된다
적송에 하얀 꽃이 터져 환상적인 마임 극을 펼치고
외다리로 하얀 날개 접은 고고한 학춤
동공 사이로 번쩍인다
양재천 공원 숫눈길을 걷는다
뽀드득뽀드득 소리에 청춘이 깨어나고
바닥무늬에 인증샷을 누른다
반세기 전이나 똑같은 흔적
눈 밑 모래 무늬가 점점 늘어나도
아직 청춘이라고 우기고 싶은 간절
세월 밖으로 자신을 밀어낸다
거대한 설산 미시령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헛바퀴만 도는 한파에도 걱정은커녕
더 갇히길 소원했던 그날
시퍼렇게 굳은 가냘픈 손과 두터운 붉은 손의 유희
내 젊음이 박제되어가던 긴 시간
아직도 호주머니 속에 뜨거웠던 그의 체온이
남아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눈이 많이 내렸다. 온 세상이 눈 속에 갇혔다. 어디서 왔는지 철새 한 마리, 따뜻한 남쪽나라인 줄 알고 잘못 찾아온 것일까? 날개를 접고 눈 속에 갇혀 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미시령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자동차에 반나절이나 갇혔던 젊은 날의 대설(大雪)을 떠올린다. 눈꽃을 뒤집어쓴 적송이, 하얀 날개를 접고 외다리로 선 학처럼 고고한 춤을 추는 것 같던 모습이 다시금 동공에 아른거린다.
양재천 공원 숫눈길을 걸으면 ‘뽀드득뽀드득’ 신선한 소리에 젊은 날이 깨어나는 듯해서 발자국으로 인증샷을 누른다. 그것은 수십년 전과 똑같은 흔적인데, 내 눈 밑의 주름살은 모래무늬처럼 늘어났다. 그러나 ‘내겐 아직 청춘은 남아있다’ 우기면서 나를 세월 밖으로 밀어내고 싶다.
꼼짝달싹도 하지 않던 거대한 미시령 설산이 다시금 떠오른다. 자동차가 헛바퀴만 돌리는
눈 속에서도 더 갇히고 싶었던 젊은 날의 야릇한 심정, 오늘도 눈 속에 더욱 갇혀서 아직은 청춘을 더 보류하고 싶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눈길을 걸으면서 아직도 내 손에 남아있는 젊음의 뜨거웠던 체온을 가늠해 본다.
눈 속에 갇힌 미시령과 양재천 눈길이 무난하게 잘 연결되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