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이 두 문장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격하게 동의한다. 실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상당히 엄격한 우리나라의 인식을 고려하면 비록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로 교육과정과 적성이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나오는 말은 “그래도 일단 해보자” 이다. 그러나 두 문장의 차이점은 사회 불평등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과 합리적 능력의 부재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그러나, 실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했을 뿐이지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여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님을 숙지해야 한다. 나는 이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교육에 한계는 분명 있다. 그러나 그 한계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기 위하여 학교라는 공동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 학생들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교육이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추게는 해줄지 몰라도 우리는 학교의 교육과정보다 학교에서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것들을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한국같
은 교육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대학같이 본인이 실제로 원하는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체 정작 정규 교과에서 본인의 적성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을 진학한 친구들의 말은 하나같이 고등학교 때는 이게 강점이었는데 대학에서는 너무 방대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표출한다. 또, 사회 불평등, 그 중에서도 교육의 불평등의 문제를 보자. 기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가? 절대 아니다. 분명 교육은 어느 정도 다듬는다면 현재 있는 정규교육과정에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하나의 큰 틀에서 단원을 넣었다 뺐다 하는 수준이다.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없다는 모순 때문에 이러한 비판이 종종 나오는 것 같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학자와 학생들의 집단이다. 어느 것에 이루어 졌든지 상관 없이, 스스로의 업무를 집행해 나가는 단체다. 대학은 초자연적이고 전 세계적인 성격을 지닌 불멸의 이념으로부터 그 자율성을 부여받는다. 그 자율성은 국가도 존중해야 하는 당연한 대학의 권리이다. 학원의 자유란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를 수반하는 특권이며 그 특권을 박탈하려는 자를 도외시한다. 대학은 매우 특수한 종류의 학교이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들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들은 배울 자유를 갖고 있다. 대학평가는 교육 및 연구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을 확보하는데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학 평가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고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대학 간의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교육력을 낭비하게 만들며 그 결과 광고 효과를 올린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0년 하계대학총장세미나는 대학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을 확보하고 개별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서 평가하고 서열화 하지 않아야한다 이야기 한다. 교육차별과 학력 차별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학력 위주의 사람들을 채용하게 된다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제 능력만큼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경제 손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학력에 따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교육과 학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면 계층 간의 단절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육, 학력 차별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 발전을 방해합니다. 지금의 대학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평가 지표과 획일화되어 있고 과도하게 서열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의 본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학 평가는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질적 평과와 맞춤 평가을 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의 자질이나 능력이 유전적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수준이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능력 향상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초월할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계층이나 경제적 불평등은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가른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우리의 자율성을 해칠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이상적인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맞다고 강요한다면, 개인의 창의적 사고나 비판적 사고를 통제시킬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이 인간의 개인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게 조심하고 특정 사상을 강제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가) 글에서는 학문들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대학은 획일화되지 않고 변화로 가득하다 하면서 많은 학과의 협동인 동시에 독립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융합과 네트워크 기반의 개방성, 집합성, 협동성을 길러야한다고 생각한다. (가) 글의 내용을 읽고 대학에서는 학부에서 배우는 지식과 더불어 여러 타 전공 학생들과 교류하고 협동하는 학습방법이 필요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할 사회에서 맞춰 본인의 전공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글에서 학문들은 캐비닛의 서랍처럼 분리되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치고 또 반드시 뒤섞이지 않은 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저는 이 문장을 통해 학문이라는 것은 물과 기름 즉 서로 붙어있는 가까운 사이지만 반드시 차별화되는 부분이 한가지는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또한 학문은 변화로 가득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변화할 준비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부분에서 기계의 발달은 시대 개인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을 불어일으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즉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길까봐 두려운것이다. (가)와(나)의 글을 통해 나는 현대사회의 대학교에서 한 가지의 학문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여러 학문을 접해 나의 학문과 연결성이 높은 학문을 찾는 방법과 기계발달의 속도와 가속도를 알아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싶다.
교육 만능주의란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여 사회적 발전까지 이루게 한다고 주장하며 교육이 모든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 발전의 해결책이 된다고 믿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교육이 이러한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이 이러한 모든 문제를 무조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교육 자원의 접근성이 불균형적이어서 특정 집단 또는 지역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성공과 행복은 교육 이외의 여러 요인에도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개인의 정신적, 정서적 요인은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이다. 이처럼 교육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교육의 본래 목적을 잃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교육은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며 개인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교육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인간의 발전 과정에서 교육 이외의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와(나)의 공통점으로는 두 글 모두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본성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도 결정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차이점으로는 (가)는 교육이나 복지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나)는 지성만으로 완전한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에 한계가 있다를 강조한다.이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살펴보면 교육 만능주의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앞서 말했듯 인간의 지적 능력은 일정 부분 선척적으로 주어지고,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대 있어 교육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다만 교육 만능주의가 주장하는 것들 모두가 거짓인 것은 아닌데 교육이 인간 본성의 긍정적 측면을 강화해주는 면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교육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 및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유효하다.즉 교육 만능주의는 타당할 수 없다.추가적으로 어떤 의견이든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타당한 의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양쪽을 잘 섞어도 단점이 나오는데 한쪽에만 치우친 의견이면 더더욱 단점이 많을 수 밖에 없고 타당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에 의하면, 대학 평가는 교육의 질 보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나, 현재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평가 내용과 방법의 문제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는 교육 및 학력 차별을 심화시키고,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의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지는 현실을 초래한다. 저자는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내재된 네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학평가는 암묵적으로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평가가 계속될수록 소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선호가 강화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더욱 주변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는 교육 양극화, 학벌주의를 심화시키며, 대학교육의 본질을 왜곡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다양한 특성을 개발할 기회를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평가가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질을 높이며, 대학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평가가 대학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대학별 특성을 고려한 다각적인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단순히 서열을 매기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각 대학이 가진 고유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학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 대학평가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대학별 특성을 존중한 다차원적 평가와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반영한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가 다양한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서열화된 방식이 아닌 균형 잡힌 정보 제공 방식으로 평가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결국,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을 막고, 대학교육의 질 보증을 위한 대학평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학평가 체계를 논의해야 한다.
교육은 우리 인생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그도 당연할 것이 세상은 제로섬 게임의 하나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속담 중 하나인 '개천에서 용난다'역시 이미 옛말로만 들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교육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강남8학군,대치동 등 교육열이 가장 강력한 지역이 존재하는 것도 초등학생 의대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결국 교육을 통한 성공만이 성공의 지표가 된 것이다.그 결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월 200,300만원을 번다는 200충,300충, 여행을 갈 여력이 없어 개근을 한다는 개근거지,월세를 산다는 월거지 등 차별이 없어야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부르짖던 어린이들마저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결국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이 개천을 짓밝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입장에 찬성한다. (나)는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양적 평가와 총점평정방식으로 타당성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특성화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 지표로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하며 광고 효과를 도출하는 대학 간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대학 평가가 학력 차별과 교육 차별이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사의 타당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대학 평가는 해당 대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쉬운 대학의 표지를 제공한다. ‘순위’라는 직관적인 평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을 판단하기에 대중들에게는 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각 대학의 강점과 약점, 특성화를 고려하지 않은 선입견이 형성되고 이러한 선입견이 학력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학의 재정 상태는 질 좋은 교육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한편, 대학의 좋은 재정 상태에 대학의 이미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은 등록금 및 수강료 수입, 전입 및 기부 수입, 교육부 부대 수입, 교육 외 수입으로 재정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은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지 않아 운영 수익
상당 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대학 재정 자립 능력을 의미하는 등록금 의존도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여 운영 수익을 올린 대학의 예시는 어디일까? 의료 사업, 유가 공업, 부동산 임대 등의 다양한 사업을 벌인 연세대이다. 사업 성공에 연세대의 이미지가 비중 있는 한몫을 해주었다고 본다. 들어보지 못한 대학교의 이름으로 똑같은 사업을 벌인다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위 글에서 나타난 언론사의 대학평가의 부정적 요인은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의 부족,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 순위 발표를 통해 대학 간 과도한 경쟁 유발과 교육력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점들이 대학 교육의 질 개선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2010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회에서 이러한 점들의 개선을 촉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개선된 부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평가에서 상위권 60프로의 대학은 3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 40프로의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는 등 제한을 받게되는데, 이렇게 되면 2010년 교육협회에서 개선을 촉구한 점인 질적 평가기준에 포함된 논문개수, 교환학생 수, 외국인학생의 다양성 과 같은 것들도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평가의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평가는 대학에서의 교육/연구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재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반대로 저하시키고 있다. 대학 평가의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각 대학의 장단점을 그저 수치화시켜 점수를 매기고 이를 통해 대학간의 과도한 경쟁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을 일괄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각 대학의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생각한다. 각 대학에는 각자 특화 부분이 있을 텐데, 이는 그 부분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각 대학을 구별할 지언정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무작정 좋다고 평가되는 대학에 가면 자신의 관심 분야에 잘 몰두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 평가는 대학의 특화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각자가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각한다.
이 글에 의하면 학문은 각각 분리되어 일어나 전체의 지식을 향하여 개별적으로 나아갔고, 또한 구체화 되었으나 획일화되진 않았으며, 변화로 가득한 협동인 동시에 독립이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학문은 대개 인문학,자연과학,사회과학,공학,예술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각각의 목적과 탐구방법 도 다르며, 이를 바탕으로 진출하는 분야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공익에 기여함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복합형 인재와 다학제적 접근의 중요해졌듯이 우리는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정보의 융햡과 다방면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학습해야 할 것이다.
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는 지식 융합과 인공지능, 기계의 발달이 더욱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만 해도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챗 gpt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고 실제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ai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공지능과 기계들을 더웃 발전시켜야하지만 현재 이러한 ai들의 문제는 저작권이다. 챗 gpt와 같은 ai는 인터넷 상에 있는 정보들을 통해서 응답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저작권에 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4차 산업 혁명이 좋은 점도 많지만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비판적 사고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습해야한다.
환경과 지식의 변화, 연구의 급진적 변화 속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학부가 현대에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초 학문, 과거의 지식 체계가 현대와 완벽히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는 과거의 기초 학문과 학습 방식을 무조건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기초 학문은 언제나 지식의 토대가 되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에 맞게 그 자체가 재해석되고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융합적 사고와 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더욱 빠르게 변화할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자신도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있다. 수학과 철학이 논리, 진리 탐구를 공유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모든 학문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얽혀있다. 하지만 섞여있는 게 아닌 얽혀있는 것으로 독립적이다. 우리는 각각의 독립적인 학문을 통하여 지식과 소통한다. 급진적인 변화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융합형인재가 되어야 하며 고립된 지식이 아닌 다양한 학문을 연결하는 능력을 배워야한다. 이 4차 산업혁명에서 학부의 타당성이 입증됨과 같이 우리는 융합형 인재가 되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야한다.
(가)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된 대학의 학문 분류가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의 진리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각 학문은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 학문은 지식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독자적으로 나아가지만 서로 소통하며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현대의 학습자들이 다양한 학문 간의 연계성을 이해하고, 특정 학문에만 몰두하지 않아야 함을 시사한다. (나)에서는 인공지능과 기계의 발전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외적 요소에 대해, 인간과 새로운 '타자'로서의 기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응도 필요성을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개인은 주체적이고 지속적인 학습과 성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자세라 할 수 있다.
(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지되었던 신분제처럼 대학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신분 차이만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평생의 신분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생활, 취업, 심지어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인 인간의 지적, 정의적, 도덕적, 신체적인 능력을 변화시켜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에서는 현재 대학평가는 교육 및 연구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을 확보하는 목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그 평가 내용, 방법과 절차, 결과 활용 등의 측면에서 대학교육의 질 보증이나 향상에 기여하기 보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것은 (가) 글의 신분제 같은 학벌과 맞물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바꿀 수 없는 신분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이것들이 야기할 학력 차별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교육 만능주의는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의미한다. 나는 교육이 사회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학습하는 지식 전달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성을 기르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함양하는 것 또한 교육의 요소로,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얻어진 사회적인 능력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육을 받은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넘어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교육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윤리적이고 공정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며,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대학은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학문을 추구하는데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는 interrupt가 여러번 발생할 수록 연구하는 이들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몰입이며 외부의 일이 interrupt를 발생시키면 몰입이 발생하기 힘든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필요하지 않는 interrupt 집단에 포함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데에 잘못된 대학 평가가 기여하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대학 평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각 대학의 정보를 얻는데에 있어서 대학 평가는 가장 뛰어난 접근성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 평가는 대학이라는 집단이 연구에 집중하는 가를 감사하는 역할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입장에 찬성한다 일단 이 글에서 찬성하지 않는 부분을 먼저 말하자면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순위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가 이루어 져야한다고 했는데 질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순위 평가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언론의 평가방식이 바뀌면 서열화가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한 대학 평가는 우리나라 내에서 생성된 완고한 틀 안에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언론은 양적 평가에 치중하여 총점평점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대학 평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QS 세계 대학 랭킹의 평가 방식과 상이하다.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평가 지표마다 가중치를 다르게 두어 평가한다. 이도 역시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대체로 평가 지표의 가중치 등이 총점평점방식을 사용하여 대학 평가를 하는 언론사 보다 좀 더 공평하고 타당하게 평가한다. 이렇게 언론사들이 우리나라 틀 안에서만 대학을 평가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 대학들의 글로벌한 성과들이 평가 절하 된다고 생각된다. 결국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적으로 성과를 내도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평가 기준을 사용하여 평가하면 실제
첫댓글 이 두 문장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격하게 동의한다. 실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상당히 엄격한 우리나라의 인식을 고려하면 비록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로 교육과정과 적성이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나오는 말은 “그래도 일단 해보자” 이다. 그러나 두 문장의 차이점은 사회 불평등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과 합리적 능력의 부재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그러나, 실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했을 뿐이지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여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님을 숙지해야 한다. 나는 이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교육에 한계는 분명 있다. 그러나 그 한계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기 위하여 학교라는 공동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 학생들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교육이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추게는 해줄지 몰라도 우리는 학교의 교육과정보다 학교에서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것들을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한국같
은 교육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대학같이 본인이 실제로 원하는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체 정작 정규 교과에서 본인의 적성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을 진학한 친구들의 말은 하나같이 고등학교 때는 이게 강점이었는데 대학에서는 너무 방대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표출한다. 또, 사회 불평등, 그 중에서도 교육의 불평등의 문제를 보자. 기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가? 절대 아니다. 분명 교육은 어느 정도 다듬는다면 현재 있는 정규교육과정에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하나의 큰 틀에서 단원을 넣었다 뺐다 하는 수준이다.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없다는 모순 때문에 이러한 비판이 종종 나오는 것 같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학자와 학생들의 집단이다. 어느 것에 이루어 졌든지 상관 없이, 스스로의 업무를 집행해 나가는 단체다. 대학은 초자연적이고 전 세계적인 성격을 지닌 불멸의 이념으로부터 그 자율성을 부여받는다. 그 자율성은 국가도 존중해야 하는 당연한 대학의 권리이다. 학원의 자유란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를 수반하는 특권이며 그 특권을 박탈하려는 자를 도외시한다. 대학은 매우 특수한 종류의 학교이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들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들은 배울 자유를 갖고 있다. 대학평가는 교육 및 연구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을 확보하는데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학 평가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고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대학 간의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교육력을 낭비하게 만들며 그 결과 광고 효과를 올린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0년 하계대학총장세미나는 대학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을 확보하고 개별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서 평가하고 서열화 하지 않아야한다 이야기 한다.
교육차별과 학력 차별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학력 위주의 사람들을 채용하게 된다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제 능력만큼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경제 손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학력에 따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교육과 학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면 계층 간의 단절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육, 학력 차별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 발전을 방해합니다. 지금의 대학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평가 지표과 획일화되어 있고 과도하게 서열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의 본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학 평가는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질적 평과와 맞춤 평가을 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의 자질이나 능력이 유전적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수준이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능력 향상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초월할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계층이나 경제적 불평등은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가른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우리의 자율성을 해칠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이상적인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맞다고 강요한다면, 개인의 창의적 사고나 비판적 사고를 통제시킬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이 인간의 개인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게 조심하고 특정 사상을 강제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연습문제 3번
(가) 글에서는 학문들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대학은 획일화되지 않고 변화로 가득하다 하면서 많은 학과의 협동인 동시에 독립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융합과 네트워크 기반의 개방성, 집합성, 협동성을 길러야한다고 생각한다. (가) 글의 내용을 읽고 대학에서는 학부에서 배우는 지식과 더불어 여러 타 전공 학생들과 교류하고 협동하는 학습방법이 필요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할 사회에서 맞춰 본인의 전공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글에서 학문들은 캐비닛의 서랍처럼 분리되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치고 또 반드시 뒤섞이지 않은 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저는 이 문장을 통해 학문이라는 것은 물과 기름 즉 서로 붙어있는 가까운 사이지만 반드시 차별화되는 부분이 한가지는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또한 학문은 변화로 가득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변화할 준비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부분에서 기계의 발달은 시대 개인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을 불어일으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즉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길까봐 두려운것이다. (가)와(나)의 글을 통해 나는 현대사회의 대학교에서 한 가지의 학문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여러 학문을 접해 나의 학문과 연결성이 높은 학문을 찾는 방법과 기계발달의 속도와 가속도를 알아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싶다.
교육 만능주의란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여 사회적 발전까지 이루게 한다고 주장하며 교육이 모든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 발전의 해결책이 된다고 믿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교육이 이러한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이 이러한 모든 문제를 무조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교육 자원의 접근성이 불균형적이어서 특정 집단 또는 지역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성공과 행복은 교육 이외의 여러 요인에도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개인의 정신적, 정서적 요인은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이다. 이처럼 교육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교육의 본래 목적을 잃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교육은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며 개인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교육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인간의 발전 과정에서 교육 이외의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와(나)의 공통점으로는 두 글 모두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본성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도 결정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차이점으로는 (가)는 교육이나 복지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나)는 지성만으로 완전한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에 한계가 있다를 강조한다.이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살펴보면 교육 만능주의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앞서 말했듯 인간의 지적 능력은 일정 부분 선척적으로 주어지고,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대 있어 교육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다만 교육 만능주의가 주장하는 것들 모두가 거짓인 것은 아닌데 교육이 인간 본성의 긍정적 측면을 강화해주는 면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교육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 및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유효하다.즉 교육 만능주의는 타당할 수 없다.추가적으로 어떤 의견이든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타당한 의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양쪽을 잘 섞어도 단점이 나오는데 한쪽에만 치우친 의견이면 더더욱 단점이 많을 수 밖에 없고 타당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에 의하면, 대학 평가는 교육의 질 보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나, 현재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평가 내용과 방법의 문제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는 교육 및 학력 차별을 심화시키고,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의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지는 현실을 초래한다.
저자는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내재된 네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학평가는 암묵적으로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평가가 계속될수록 소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선호가 강화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더욱 주변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는 교육 양극화, 학벌주의를 심화시키며, 대학교육의 본질을 왜곡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다양한 특성을 개발할 기회를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평가가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질을 높이며, 대학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평가가 대학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대학별 특성을 고려한 다각적인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단순히 서열을 매기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각 대학이 가진 고유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학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 대학평가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대학별 특성을 존중한 다차원적 평가와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반영한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가 다양한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서열화된 방식이 아닌 균형 잡힌 정보 제공 방식으로 평가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결국,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을 막고, 대학교육의 질 보증을 위한 대학평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학평가 체계를 논의해야 한다.
교육은 우리 인생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그도 당연할 것이 세상은 제로섬 게임의 하나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속담 중 하나인 '개천에서 용난다'역시 이미 옛말로만 들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교육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강남8학군,대치동 등 교육열이 가장 강력한 지역이 존재하는 것도 초등학생 의대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결국 교육을 통한 성공만이 성공의 지표가 된 것이다.그 결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월 200,300만원을 번다는 200충,300충, 여행을 갈 여력이 없어 개근을 한다는 개근거지,월세를 산다는 월거지 등 차별이 없어야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부르짖던 어린이들마저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결국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이 개천을 짓밝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입장에 찬성한다. (나)는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양적 평가와 총점평정방식으로 타당성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특성화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 지표로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하며 광고 효과를 도출하는 대학 간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대학 평가가 학력 차별과 교육 차별이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사의 타당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대학 평가는 해당 대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쉬운 대학의 표지를 제공한다. ‘순위’라는 직관적인 평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을 판단하기에 대중들에게는 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각 대학의 강점과 약점, 특성화를 고려하지 않은 선입견이 형성되고 이러한 선입견이 학력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학의 재정 상태는 질 좋은 교육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한편, 대학의 좋은 재정 상태에 대학의 이미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은 등록금 및 수강료 수입, 전입 및 기부 수입, 교육부 부대 수입, 교육 외 수입으로 재정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은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지 않아 운영 수익
상당 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대학 재정 자립 능력을 의미하는 등록금 의존도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여 운영 수익을 올린 대학의 예시는 어디일까? 의료 사업, 유가 공업, 부동산 임대 등의 다양한 사업을 벌인 연세대이다. 사업 성공에 연세대의 이미지가 비중 있는 한몫을 해주었다고 본다. 들어보지 못한 대학교의 이름으로 똑같은 사업을 벌인다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위 글에서 나타난 언론사의 대학평가의 부정적 요인은평가의 전문성 및 타당성의 부족,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 대학의 서열화에 치중, 순위 발표를 통해 대학 간 과도한 경쟁 유발과 교육력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점들이 대학 교육의 질 개선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2010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회에서 이러한 점들의 개선을 촉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개선된 부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학평가에서 상위권 60프로의 대학은 3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 40프로의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는 등 제한을 받게되는데, 이렇게 되면 2010년 교육협회에서 개선을 촉구한 점인 질적 평가기준에 포함된 논문개수, 교환학생 수, 외국인학생의 다양성 과 같은 것들도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단일한 학문이 아닌 융합적 사고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 분야의 지식을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필수적입니다.
또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고 윤리적 가치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되,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현대사회의 중요한 학습 과제가 될 것입니다.
대학 평가의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평가는 대학에서의 교육/연구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재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반대로 저하시키고 있다. 대학 평가의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각 대학의 장단점을 그저 수치화시켜 점수를 매기고 이를 통해 대학간의 과도한 경쟁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을 일괄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각 대학의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생각한다. 각 대학에는 각자 특화 부분이 있을 텐데, 이는 그 부분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각 대학을 구별할 지언정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무작정 좋다고 평가되는 대학에 가면 자신의 관심 분야에 잘 몰두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 평가는 대학의 특화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각자가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각한다.
이 글에 의하면 학문은 각각 분리되어 일어나 전체의 지식을 향하여 개별적으로 나아갔고, 또한 구체화 되었으나 획일화되진 않았으며, 변화로 가득한 협동인 동시에 독립이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학문은 대개 인문학,자연과학,사회과학,공학,예술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각각의 목적과 탐구방법 도 다르며, 이를 바탕으로 진출하는 분야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공익에 기여함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복합형 인재와 다학제적 접근의 중요해졌듯이 우리는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정보의 융햡과 다방면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학습해야 할 것이다.
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는 지식 융합과 인공지능, 기계의 발달이 더욱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만 해도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챗 gpt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고 실제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ai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공지능과 기계들을 더웃 발전시켜야하지만 현재 이러한 ai들의 문제는 저작권이다. 챗 gpt와 같은 ai는 인터넷 상에 있는 정보들을 통해서 응답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저작권에 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4차 산업 혁명이 좋은 점도 많지만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비판적 사고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습해야한다.
환경과 지식의 변화, 연구의 급진적 변화 속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학부가 현대에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초 학문, 과거의 지식 체계가 현대와 완벽히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는 과거의 기초 학문과 학습 방식을 무조건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기초 학문은 언제나 지식의 토대가 되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에 맞게 그 자체가 재해석되고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융합적 사고와 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더욱 빠르게 변화할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자신도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있다. 수학과 철학이 논리, 진리 탐구를 공유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모든 학문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얽혀있다. 하지만 섞여있는 게 아닌 얽혀있는 것으로 독립적이다. 우리는 각각의 독립적인 학문을 통하여 지식과 소통한다. 급진적인 변화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융합형인재가 되어야 하며 고립된 지식이 아닌 다양한 학문을 연결하는 능력을 배워야한다. 이 4차 산업혁명에서 학부의 타당성이 입증됨과 같이 우리는 융합형 인재가 되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야한다.
(가)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된 대학의 학문 분류가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의 진리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각 학문은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 학문은 지식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독자적으로 나아가지만 서로 소통하며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현대의 학습자들이 다양한 학문 간의 연계성을 이해하고, 특정 학문에만 몰두하지 않아야 함을 시사한다.
(나)에서는 인공지능과 기계의 발전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외적 요소에 대해, 인간과 새로운 '타자'로서의 기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응도 필요성을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개인은 주체적이고 지속적인 학습과 성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자세라 할 수 있다.
(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지되었던 신분제처럼 대학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신분 차이만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평생의 신분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생활, 취업, 심지어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인 인간의 지적, 정의적, 도덕적, 신체적인 능력을 변화시켜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에서는 현재 대학평가는 교육 및 연구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을 확보하는 목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그 평가 내용, 방법과 절차, 결과 활용 등의 측면에서 대학교육의 질 보증이나 향상에 기여하기 보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것은 (가) 글의 신분제 같은 학벌과 맞물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바꿀 수 없는 신분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이것들이 야기할 학력 차별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교육 만능주의는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의미한다. 나는 교육이 사회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학습하는 지식 전달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성을 기르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함양하는 것 또한 교육의 요소로,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얻어진 사회적인 능력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육을 받은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넘어선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교육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윤리적이고 공정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며,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대학은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학문을 추구하는데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는 interrupt가 여러번 발생할 수록 연구하는 이들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몰입이며 외부의 일이 interrupt를 발생시키면 몰입이 발생하기 힘든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 차별과 학력 차별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필요하지 않는 interrupt 집단에 포함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데에 잘못된 대학 평가가 기여하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대학 평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각 대학의 정보를 얻는데에 있어서 대학 평가는 가장 뛰어난 접근성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 평가는 대학이라는 집단이 연구에 집중하는 가를 감사하는 역할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입장에 찬성한다
일단 이 글에서 찬성하지 않는 부분을 먼저 말하자면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순위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가 이루어 져야한다고 했는데 질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순위 평가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언론의 평가방식이 바뀌면 서열화가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한 대학 평가는 우리나라 내에서 생성된 완고한 틀 안에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언론은 양적 평가에 치중하여 총점평점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대학 평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QS 세계 대학 랭킹의 평가 방식과 상이하다.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평가 지표마다 가중치를 다르게 두어 평가한다. 이도 역시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대체로 평가 지표의 가중치 등이 총점평점방식을 사용하여 대학 평가를 하는 언론사 보다 좀 더 공평하고 타당하게 평가한다. 이렇게 언론사들이 우리나라 틀 안에서만 대학을 평가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 대학들의 글로벌한 성과들이 평가 절하 된다고 생각된다. 결국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적으로 성과를 내도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평가 기준을 사용하여 평가하면 실제
성과보다 아래에 평가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성과가 미약한 대학들이 계속 높게 평가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발전에 정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게 결국 넓은 범위(세계적) 에서의 학력 차별과 교육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