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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典 4:16)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道典 5:1) 천지공사의 대의(大義)
증산 상제님께서 선천개벽 이래로 상극의 운에 갇혀 살아온 뭇 생명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주시고, 후천 오만년 지상 선경세계를 세워 온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니, 이것이 곧 인존상제님으로서 9년 동안 동방의 조선땅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라. 이로써 하늘 땅의 질서를 바로잡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신도(神道)와 인사(人事)를 조화(調和)시켜 원시반본(原始返本)과 보은(報恩)·해원(解寃)·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지나간 선천상극(先天相克)의 운(運)을 끝막고 후천 새 천지의 상생의 운수를 여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만고원신(萬古寃神)과 만고역신(萬古逆神), 세계문명신(世界文明神)과 세계지방신(世界地方神), 만성선령신(萬姓先靈神) 등을 불러모아 신명정부(神明政府)를 건설하시고 앞세상의 역사가 나아갈 이정표를 세우심으로써 상제님의 대이상이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우주촌의 선경낙원(仙境樂園)이 건설되도록 물샐틈없이 판을 짜 놓으시니라.
천지공사(天地公事):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조화옹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천지 이법과 천지기운을 바탕으로 병든 천지 질서를 바로잡아 심판해 놓으신 인류 역사의 설계도요 이정표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1901년, 신축년 이후의 인간 역사는 상제님께서 판 짜 놓으신 내용과 이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道典 4:32) 난법(亂法)을 지은 후에 진법(眞法)을 내는 통치 정신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亂法을 지은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난법亂法: 난법에는 크게 2가지 뜻이 있다. 첫째,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오도하고 왜곡시키는 그릇된 가르침과 구도 행위, 둘째, 상제님의 대도로 광구천하를 실현해 나가는 과도기 과정에서 진법眞法이 드러나기까지 나타나는 도법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말이다. 난법亂法은 진법이 나오기 위한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인 것이다.
진법眞法: 참법이며 정법이다. 곧 가을개벽의 문턱에서 일어나는 인류 문명개벽의 참된 도리를 말한다.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에 의해 도운도 3변이 되어야 난법이 종결되고, 일꾼들이 상제님과 태모님을 올바로 모시고 개벽을 참되게 인식하는 진법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진법문화를 통해 개벽상황을 극복하고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것이다.
道典 6:126)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 하시고,“이제 전 세계에 가(假)망량을 배치하였으나 일심자(一心者)에게는 진(眞)망량을 응케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6:133) 하루는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充者는 慾也라 以惡充者도 成功하고 以善充者도 成功하니라
충자 욕야 이악충자 성공 이선충자 성공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도운(道運)과 세운(世運): 도운道運은 상제님의 도가 인간 역사에 뿌리내려 제자리 잡는 과정이다. 상제님께서 일꾼을 내려보내시어 개벽기에 인류를 건지고 지구촌 문화를 통일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천지도수다. 또한 세운世運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여 지구촌 인류 역사의 운명을 도수로 짜 놓으신 것이다. 결국, 상제님 도법에 의해 지구촌 인류 역사가 둥글어 가기 때문에 도운道運을 중심으로 세운世運을 해석해야 한다.
道典 4:122) 자손 싸움이 선령신 싸움으로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道典 8:77) 마음에 응하는 신도(神道)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여 정리(正理)대로 행하여야 큰일을 이루나니, 만일 사곡(邪曲)한 마음을 가지면 사신(邪神)이 들어 일을 망치고, 믿음이 없이 일에 처하면 농신(弄神)이 들어 일을 번롱(飜弄)케 하며, 탐심을 두는 자는 적신(賊神)이 들어 일을 더럽히느니라.
道典 4:62) 우주의 실상을 보는 도통의 관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00) 도통문을 여는 심법 닦는 대도를 내려 주심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하고,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하고,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하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적게 내리면 반드시 만방에서 원망이 일고, 땅이 만물을 기르는데 물과 흙을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물이 원성을 발하며, 사람이 덕화(德化)가 부족하면, 반드시 만사에 원망이 붙느니라.
天用地用人用이 統在於心하니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요 門戶也요 道路也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물과 흙을 쓰고, 사람이 덕화에 힘씀은 모두 마음자리에 달려 있으니, 마음이란 귀신(鬼神)의 문지도리요, 드나드는 문호(門戶)요 오고가는 도로(道路)라.
開閉樞機하고 出入門戶하고 往來道路에 神이 或有善하고 或有惡하니 善者師之하고 惡者改之하면, 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大於天地니라
그 문지도리를 여닫고 문호門戶에 드나들고, 도로道路를 왕래하는 신神이 혹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니, 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잘 고치면 내 마음의 문지도리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니라.
마음이란?: 사람은 천지의 기(氣)를 얻어 육신을 삼고 천지의 리(理)를 얻어 본성을 삼는다. 이때 ‘기氣의 정상(精爽)’으로서 본성을 갖추고 일신(一身)을 주재하는 것이 마음(心)이다. 마음은 형체는 없으나 지극히 영명하여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고 이치를 깨닫을 수 있다(虛靈知覺). 그러나 기氣가 동動함에 따라 마음도 항상 동動하므로 마음을 바루려면 의지(意志)를 성실히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신이 내 마음에 감응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린 것이다.
道典 4:89) 공우가 여쭈기를 “신명이 응기(應氣)하면 사람이 신력(神力)을 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란 귀신이 왕래하는 길이니, 마음속에 성현을 생각하면 성현의 신이 와서 응하고“, 영웅의 신이 응기하면 패기(覇氣)가 일어나고, 장사(壯士)의 신이 응기하면 큰 힘이 생겨나고, 도적의 신이 응기하면 적심(賊心)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일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스스로의 정성과 구하는 바에 따라서 얻어지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세상의 모든 참사(慘事), 비참하고 끔찍한 일은 척신(隻神)이 행하는 것.
道典 3:188) 박공우가 체험한 척신(隻神)의 보복
상제님께서 6월부터 두어 달 동안 정읍 대흥리 경석의 집에 계시니라. 공우가 상제님을 종유(從遊)하기 달포 전에 천원장(川原場)에서 예수교인과 다투다가 가슴에 큰돌을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한참 기절하였다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이 때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고 간신히 다니기는 하나 아직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할 만큼 크게 고통스러우므로 이를 상제님께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잘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나은 뒤에는 가해자를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너 때문에 죽을 뻔하였던 자의 척(隻)이 그 예수교인에게 붙어서 갚은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가 다행이라. 네 마음을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낫게 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이 말씀에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훗날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하리라.’는 생각을 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모든 참사가 척신(隻神)이 행하는 바이니라. 삼가 척을 짓지 말라. 만일 척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낱낱이 풀고 화해를 구하라.” 하시니라.
세상의 모든 참사(慘事) : 참혹하고 끔찍한 사건
道典 3:238) 척신 붙은 김영학의 입문
6월에 백암리에 계실 때 박공우와 신원일이 모시는데, 24일에 김영학(金永學)이 경학의 인도로 와 뵙거늘 이레가 지나도록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 영학이 크게 분해하는지라, 이에 공우와 원일이 이르기를 “성의를 다해 사사(師事)하기를 청하면 밝게 가르치실 것이라.” 하거늘,
영학이 그 말을 좇아 상제님께 사사하기를 청하매 상제님께서 허락하시더니 갑자기 “이놈을 참수할복(斬首割腹)하리라.” 하시며 크게 꾸짖으시니라. 영학이 상제님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거늘,
상제님께서 영학을 불러 “나에게 사배를 하라.” 하시고 절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치려 한 것이니 너는 불평히 생각지 말라.” 하시니라. 이에 영학이 “무슨 척신인지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여덟에 사람을 죽이고 금년에도 사람을 죽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해 보니 18세에 남원에서 전주 아전 김 모와 대화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노하여 화로를 던져 머리를 다치게 하였더니 그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다음해 2월에 그가 죽었고, 금년 봄에는 장성 맥동(長城 麥洞)에 사는 외숙 김요선(金堯善)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한 고로 영학이 장성 백양사(白羊寺)에 있는 의병 대장 김영백(金永伯)을 찾아가 그 비행을 꾸짖었더니
영백이 사과하고 범인을 검거하여 포살한 일이 있는지라, 비로소 황연히 깨닫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그러하다.” 하시거늘, 영학이 마침내 전날의 과실을 뉘우치고 상제님의 크신 은혜에 감읍(感泣)하니라.
김영학(金永學, 1876~1945): 본관 광산(光山). 족보명 기선(箕善), 초명 영선(永善). 피노리의 아랫마을 먹살리에 살았다. 조선 독립을 위한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며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창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성 맥동(長城 麥洞):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맥호리(麥湖里) 맥동. 맥동은 울산 김씨 집성촌이다.
김영백(金永伯, 1880∼1910): 본관 안동(安東). 전남 장성군 북이면 달성리 출신의 농민. 군대 해산 후 의병 약 1천 명을 모집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정읍 등 전라 지역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道典 2:78) 믿음은 선령신의 음덕으로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隻神)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 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이르고,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을지라도 이마를 쳐 내치며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라.’ 이르느니라.
道典 2:119)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道典 9:213) 사람은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03)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寃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神明)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앞세상에는 서로의 마음속을 드나들어 그 속내를 알게 되나니, 남을 속이지 말고 척이 있으면 풀어 버리라.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라.
‘척(隻)’은 원래 조선 시대에 민사와 관련된 소송이 벌어질 때 피고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피고로 만드는 것을 ‘척지다.’라고 하는데, 소송을 걸어 싸우면 결국 서로 원망하는 사이가 되므로 ‘척지다.’라는 말이 ‘다른 사람과 원수지간이 되다.’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이다.
道典 8:117) 인류의 생사를 쥐고 다니는 너희 일꾼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천하사는 생사양도(生死兩道)에서 그치나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 하는 일이니라.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 사는 때에는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자는 일이로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증산 상제님의 천지대업은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로 크게 3회의 개척기(부흥기)를 거쳐 도성덕립 된다. 제1기는 고수부님께서 도통 후 교단을 여시고, 차경석이 이를 확산시 킨 도운의 파종(播種)과 이종(移種)의 시기이며, 제2·3기는 추수 사명을 맡은 대사부가 새롭게 판을 개척하여 매듭짓는 도운의 추수 시기다.
道典 8:117) 일꾼 된 자 씨름판을 본받을지니, 씨름판에 뜻하는 자는 판밖에서 보양물(補陽物)을 많이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꼬누고 있느니라. 시속에서 씨름판에 소를 상금으로 거나니 나를 잘 믿어 일을 잘하는 자에게 익산(益山) 삼기산(三箕山) 와우(臥牛)를 주리라.
道典 4:3) 삼계 우주 통일의 조화정부를 여심
내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여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과 민중을 건지려 하나니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수종하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천지공정(天地公庭): 세계의 새 질서를 심리하기 위해 천지신명과 인간이 함께 참여하여 개벽세계를 여는 새 역사 창조의 공판(公判) 무대, 곧 천지공사장을 말한다. 천지신문(天地神門), 대신문(大神門), 천지대신문이라고도 하셨다.
道典 4:126) 먹장난하다 한 맺고 죽은 신명을 위로하심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여 입으시고, 또 속옷을 벗으시고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신 뒤에
여러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같습니다.” 하니라. 이에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장난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병들어 죽었거늘, 그 신명이 그 일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와서 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8:32)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26)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1:407) “신명 대접을 잘 하라. 앞으로 신명을 박대하면 살아나기 어려우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선령을 박대하면 살 길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15)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쥔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道典 2:44) 상제님께서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신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의 세계요,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되느니라.” 하시니라.
천지공사를 신명과 더불어 판단하심
5월에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귀신(鬼神)은 천리(天理)의 지극함이니, 공사를 행할 때에는 반드시 귀신과 더불어 판단하노라.”
道典 4:67) 부(符)는 귀신의 길
상제님께서 밤에 혼자 계실 때도 자주 문명을 써서 불사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는데 아침이 되면 그 재를 형렬에게 치우도록 하시니라.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글이나 부적을 쓰시어 공사를 행하신 후에는 모두 불살라 버리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나타남(現)으로 알고 귀신은 불사름(燒)으로 아느니라. 부(符)는 귀신의 길이니라.” 하시니라.
대신명들이 들어설 때
상제님께서 부를 그리실 때 형렬이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신(天神)들이 정연하게 자리 잡고 봉명(奉命)을 준비하고 있더라.
상제님께서 대신명(大神明)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들어 머리 위로 올려 예(禮)를 표하시니라. 또 점을 찍으시며 칙령을 내리실 때는 “아무개 이 점 찍는 대로 살려 줘라.” 하시며 항상 ‘~해라’ 하고 명하시지 ‘~해 주시오’, ‘~허소’ 하시는 경우는 없으시니라.
호연이 보니 상제님께서 점을 찍으시는 것도 다 요령이 있어서 고축하시는 내용에 따라 점의 수(數)가 다 다르더라.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잡수시며, 때로는 식혜(食醯)를 만들어 성도들과 더불어 잡수시니라.
道典 4:48) 천지개벽도 신명이 들어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그때 그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 경위(經緯)는 천하가 같으니라.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
신명을 박대하는 서교의 운명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구천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선천은 우주법도가 삼양이음(三陽二陰)이므로 사람이 일의 주체가 되지만, 후천은 삼음이양(三陰二陽)인 음 세상이 되므로 신명이 주체가 된다.
서교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서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 교리의 핵심은 ‘유일신 신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 이외의 모든 신을 부정한다. 여기서 선천의 전쟁 역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 갈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 서양은 근대에 이르러 합리적 이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는 기계론적 유물론이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과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을 부정하여, 자연과 동양 문명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정복하게 되었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로 다스리심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모사는 재천이요 성사는 재인이니라.
무위이화(無爲以化): 애써 힘들이지 않은 듯하여도 조화가 작용하여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상제님께서 다스리시는 우주세계의 통치원리와 방법론에 대한 대국적인 근본 성격을 말씀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신도의 조화로 천지와 인간세계를 다스리시므로 인간의 이성과 세속적 지혜로는 그 변화세계의 실상을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다.
조화정부(造化政府): 천지의 변화정신과 무궁한 신도의 조화로 역사의 변화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천상 신명세계의 통일정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우주 문명개벽의 사령탑이다.
道典 4:7)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道典 4:8) 선천 종교의 종장을 교체하시고 종교문화를 통일하심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宗長)이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나의 도(道)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道典 6:126)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 하시고, “이제 전 세계에 가(假)망량을 배치하였으나 일심자(一心者)에게는 진(眞)망량을 응케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4:39) 천지신명들이 다 손을 잡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벽이 될 때에는 온 천지에 있는 신명들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나의 명을 따르게 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밀려오면 온 천하에서 너희들에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고, 송장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여 아무리 비위(脾胃)가 강한 사람이라도 밥 한 술 뜨기가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道典 5:414)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뒤에
布敎五十年工夫終筆
포교오십년공부종필
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 사람 거백옥(蘧伯玉)이 50세에 49년 동안의 그름을 깨달았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내가 천지운로(天地運路)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하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 일심이면 천하를 도모하느니라.
이제 9년 동안 보아 온 개벽 공사(開闢公事)의 확증을 천지에 질정(質定)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천지는 말이 없으되 오직 뇌성과 지진으로 표징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갑자기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하루는 수부(首婦)님께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에 있으면 삼계의 모든 일이 지연되리라. 이제 천상에 가서 공사를 펴내어 빨리 진행케 하고 오리니 기다리지 말라. 공사를 마치면 돌아오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 무신(戊申 : 道紀 38, 1908)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계룡산에 오르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는데
하늘에서 옥동자가 내려와 상제님께 엎드려 인사를 드리며 “언제 왕림하시려는지요?” 하고 여쭈거늘, 호연이 ‘왕림’을 먹는 것인 줄로 알고 “무얼 먹으라고 그런대요?” 하니, “너 못 볼 데로 간단다, 너 못 볼 데로.”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라.
호연이 대수롭지 않게 “어디로?”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저 천상으로 간다.” 하시는지라 호연이 “아이고, 그러면 나도 올라갈까?” 하니 “흥, 너는 올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너는 끝끝내 있어야 해. 이제 날 만난 것이 웬수를 만났다고 그럴 것이다.” 하시고 옥동자를 돌아보시며 “수수가 서숙이 되겠느냐?
내가 애초에 이 세상에 내려올 적에 ‘내가 천지 일을 마치고 어느 때 돌아오리라.’ 하고 내려와 한 치의 빈틈없이 공사를 행하고 있으나 천지에 나라가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몇천 나라인데 내가 손을 잡고 화목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서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겠으므로 이제 하나하나 살리기 위해 사방천지를 다니며 조화를 부리고 있거늘,
유독 너희들만이 천상에서 조급히 서두르며 딴 생각을 품느냐!” 하며 호되게 꾸짖으시고 다시 호령하시기를 “내가 천하에서 일을 마쳤으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오늘이라도 올라가느니라. 곧 너희들과 함께 천상에서 일을 행하리니 돌아가서 내 명을 기다리라. 날이 되어야 가지, 지금 내가 ‘아무 날 간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하시며 크게 호통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더라.
이별을 노래하심
겨울에 문공신(文公信)의 집에 가시어 쉬시다가 정읍(井邑)으로 출발하실 즈음에 공신에게 옛 시조 한 수를 읊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대천일해(大天一海)에 무근목(無根木)이 떠 있고, 가지는 열두 가지 잎은 삼백 예순 잎이 피었으니 뚜렷이 일월이 희도다.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바람 잡아 탄금(彈琴)하니, 슬프다! 저 새소리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를 일삼더라.
道典 10:4) 겨울에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이 뒤에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정읍 차경석(車京石)의 집으로 떠나시니라. 대흥리(大興里)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고수부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겠느냐, 아니 풀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어찌 머리를 풀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염려 마소서.” 하시거늘, 이 때 옆방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성도들이 서로 바라보며 웃더라.
또 수부님께 “영변(寧邊)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 하시고 음성을 가다듬어 선창하시기를 “소슬 동풍(東風)에 궂은 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 저 남산(南山) 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 모양 되리라.” 하시니 수부님도 따라 부르시니라.
道典 3:180) 차경석을 만나심
5월 17일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龍岩里) 물방앗간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車京石)을 만나시니 당년 28세로 구척장신에 용모가 준수한 젊은이라.
원래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일찍이 일진회 전북 총대(總代)를 지낸 일이 있더니, 이 날은 재산 문제로 송사하러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길이더라. 경석이 용암리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즈음 상제님께서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김자현 등 두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시거늘,
경석이 상제님을 뵈니 의표(儀表)는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띠시고, 언어동지(言語動止)는 순진하고 꾸밈이 없으시며 안광(眼光)이 사람을 쏘는 듯하여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더라. 사람을 대하여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면 마치 봄바람이 온 들에 가득 찬 듯하고, 일의 사리를 밝히심에는 대하(大河)가 물결치듯 풀어 놓으시고,
말씀의 운치는 너그럽고 크시어 천둥이 구르는 듯하며 모든 행동하심이 호호탕탕하여 폭 잡을 수가 없는지라 경석이 절로 마음이 끌리고 상제님의 기품에 취해 말씀을 청하니, 상제님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드시다가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라. 경석이 받으매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쭈기를 “무슨 업을 하십니까?” 하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의원 노릇을 하노라.” 하시고, 경석이 다시 “어느 곳에 머무르십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역객(東亦客) 서역객(西亦客) 천지무가객(天地無家客)이로다.” 하시니라.
대저 경석이 상제님의 거주지를 여쭌 것은 뒷날 찾아뵈려 한 것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찾기가 어렵겠으므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왕에 상제님의 지식을 시험하고자 하여 다시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아뢰기를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차경석(車京石, 1880∼1936): 본관 연안(延安). 자(字) 윤홍(輪洪), 호는 월곡(月谷). 동학 접주였던 차치구의 장남으로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고부 입석리에서 상제님을 처음 만났다
道典 3:181)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를 띨 것
경석의 이번 전주 길은 세무관과 송사할 일이 있어 서류를 가지고 가는 길이더니 경석이 서류를 내어 보이며 여쭈기를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오니 청컨대 이 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여 주십시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서류를 소리내어 읽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이 송사로 인하여 피고(被告)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게 되리니, 일의 곡직(曲直)을 불문하고 대인으로서는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活人之氣)를 띨 것이요, 살기(殺氣)를 띰은 옳지 못하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말하기를 “선생님의 말씀이 지당하오니 이 길을 작파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그 서류를 불사르니라. 이 때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손병희를 따르다가 그 처사에 불만을 품고 다시 길을 바꾸려던 참이라. 이 날 상제님을 뵙고 모든 거동이 범속과 다름을 이상히 여겨 떠나지 않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상제님의 뒤를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간이라. 경석이 상제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마음이 끌리어 그 자리에서 상제님을 모시겠다고 간청하되 상제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道典 3:182) 네가 나를 따르려면
상제님께서 숙소를 김치경(金致京)의 용암리 물방앗간에 정하시니 음식이며 잠자리며 모든 것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어 여느 사람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경석이 이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떠나지 아니하고 상제님을 ‘정읍의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진노하시어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나는 너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노라. 어서 내 앞에서 썩 물러가라, 이놈아!”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이 떠나지 않음을 괴로워하시며 수차 물러가기를 재촉하시되 경석이 듣지 않고 계속 자기 집으로 함께 가시기를 간청하니 그 때마다 혹 성을 내시고 욕을 하시며 쫓아내기도 하시는데,
경석이 보기에는 그러한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있는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뉘로 대해 그 말하며’ 하는 구절이 생각나매, 떠나지 않고 열흘 동안을 머물면서 제자가 되기를 굳이 청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직 내가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一心)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니라. 경석이 비로소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아우들을 모아 놓고 상제님을 만난 일과 전주 송사를 작파한 일을 말하며
“너희들, 사람 생명이 크냐, 돈이 크냐? 나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 그냥 돌아왔노라. 이제 나는 선생님을 따라 사람 살리는 공부를 하려 하노라.” 하고 아우들을 설득하더니 드디어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에 다시 용암리에 와서 상제님을 뵙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라.
네가 나를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이 날 밤에 상제님께서 풀밭에서 주무시다가 닭이 운 뒤에 일어나시어 말씀하시기를 “잘못 풀밭에 누웠구나. 왜 일찍 깨우지 않았느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돌 위에서 주무시기도 하고 들판의 농부들과 한가로이 말씀을 나누기도 하시니 경석이 뒤따르며 지성으로 모시니라.
상제님께서 계속 경석의 추종을 불허하시다가 사흘 동안을 지내신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목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생하다가 겨우 헤어나 발목물에 서 있는데, 네가 다시 나를 깊은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하시니라.
김치경(金致京, ?∼1921): 본관 경주.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사유(士有, 1895년생) 등 2남 2녀를 두었다.
道典 3:183)성인 다섯을 낳는 길
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 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간을 떠나 정읍으로 가시니라. 이 때 원평에 이르시어 군중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한 주점에 들어가시어 모든 행인을 불러 술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성인(聖人)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기도 중이던 박공우를 만나심
다시 길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대진(大陣)은 하루에 30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명을 받들고 일정을 헤아려 고부 솔안(松內) 최씨 재실에 사는 친구 박공우(朴公又)에게로 상제님을 모시거늘, 공우 또한 동학 신도로서 마침 49일 동안 기도하는 중이더라.
남조선 뱃길: 남조선 도수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은 지구촌 인류의 생사를 판단하고 새 우주문명을 건설하는 관건이다. 남조선배 도수는 동방 한민족사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적지, 역사의 최종 결론인 것이다.
짐을 채워야: 남조선 도덕선을 끌고 갈 주인, 일꾼을 실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대진(大陣): 상제님의 천하사는 인류사를 마무리짓는 대개벽 사업으로서 조직의 형태와 성격, 근본정신이 군대와 같다. ‘대진’은 천하사 군대가 행군해 나아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최씨 재실: 숙사재(肅事齋). 현재 정읍시 정우면 장순리 송내 마을 소나무밭 깊숙한 곳에 있다.
박공우(朴公又, 1876∼1940): 본관 밀양(密陽). 호 인암(仁庵). 세 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키가 180cm 가 넘었으며 풍채가 당당하였고, 음성은 사방에 울릴 정도로 웅장하였다. 배포가 크고 뚝심이 좋았으며, 상제님께서는 특히 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셨다. 원평에서 65세로 작고.
道典 3:184)인암(仁庵) 박공우의 입문
박공우는 기골이 장대하고 웬만한 나무도 뿌리째 뽑아버리는 장사로 의협심이 충만한 인물이라. 일찍이 정읍, 고창(高敞), 흥덕(興德) 등 다섯 고을의 장치기꾼을 하면서 한창 때는 당할 자가 없는 씨름장사로 이름을 날리니라.
이후 예수교의 전도사로 수십 명을 포교하기도 하고 다시 동학을 신봉하여 혼인도 하지 않고 열렬히 구도에 정진하다가
경석의 인도로 찾아오신 상제님을 뵈니 이 때 공우의 나이 32세더라.
인간으로 내려오신 천주님
이 날 밤 공우가 밤새 향을 피워 모기를 쫓다가 상제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49일 기도 중에 있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 기적이 아닌가 합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경석과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니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라. 동학 주문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孱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라.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그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도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오지는 못할 것이요, 이는 ‘대선생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이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 정씨(鄭氏) 왕국과 가야산(伽耶山)의 조씨(趙氏)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씨(范氏) 왕국을 일러 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그림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道典 3:185)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이튿날 상제님께서 솔안을 떠나 정읍 대흥리(大興里)로 가실 때 공우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있는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이 깨달아져 그 즉시 상제님을 따라나서니라.
이 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 벽에 붙이시니 갑자기 우레가 크게 일어나거늘 “빠르기도 하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우레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대낮에 난데없이 우렛소리가 크게 일어나므로 이상히 여기니라.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우레를 거두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지난 갑오년 겨울에 이 집에서 세 사람이 동맹한 일이 있었느냐?” 하시니 경석이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모해자의 밀고로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울먹이며 “그러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제들이 그 모해자에게 큰 원한을 품어 복수하기를 도모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아뢰기를 “자식의 도리로 어찌 복수할 마음을 갖지 아니하겠습니까?” 하거늘, 이에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복수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너의 부친이 크게 걱정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때니라. 만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되풀이 되풀이로 후천에 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 되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먼저 그 마음을 버려야 할지니 잘 생각하라.” 하시고, “너희들은 선을 행하고 공을 세우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세 아우를 데리고 별실에 들어가 서로 위로하며 그 원한을 풀기로 언약하고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모셔 놓고,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명하신 대로 행하니 사형제가 설움이 북받쳐서 청수동이 앞에서 크게 울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너의 부친이 너무 슬피 우는 것을 오히려 불쾌히 여기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이로부터 한동안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천지신명들이 알현할 때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시는 동안 경석과 공우가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지신명들이 상제님께 배알할 때는 반드시 반천무지(攀天撫地)식으로 사배(四拜)를 올리고 상제님께서는 읍(揖)으로 대하시니라.
대흥리. 현재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대흥 마을. ‘크게 흥한다.’는 지명의 뜻을 취해 상제님께서 도운의 시발처로 쓰셨다.
경석의 사형제. 윤홍, 윤경, 윤칠과 윤덕의 순이다.
윤경은 이복 동생이며, 윤홍 다음으로 막내 윤덕의 인물이 수려했다 한다.
반천무지(攀天撫地): 하늘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지는 자세를 취하는 절법으로, 하느님을 받드는 최상의 예법이다. 한민족이 천제를 올리기 시작한 상고시대부터 행해졌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덕하는 이치가 담겨 있다.
道典 3:186)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차치구(車致九)가 일찍이 동학을 믿어 갑오년에 동학군을 거느리고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불의에 패망하여 죽음을 당한 이후로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빈한하더니, 상제님을 모실 무렵에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경석의 제수가 한 동네에 잘사는 신(申)씨네에서 밥품을 파니라.
경석의 아우 윤칠(輪七)은 근동(近洞)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한데 어려운 형편에 상제님까지 모시게 됨을 싫어하여 “동학한다고 집안이 망했는데 또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여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하고 불평을 하며 돌아다니거늘, 경석이 생각하되 자기가 청하여 모신 마당에 공궤(供饋)가 조악함도 민망하거니와 아우의 무례로 인하여 상제님을 뵙기가 더욱 송구스럽더라.
차치구(車致九, 1851∼1894):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정읍에서 오천여 명을 거느리고 기포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인 전투를 끝으로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순창 피노리에 가서 몸을 숨길 때 동행하였다.
죽음을 당한 이후: 차치구는 피노리에서 정읍 입암면 국사봉으로 피신했으나 관군이 친구 부인을 통해 피신처를 알아내자 스스로 붙잡혀 당시 흥덕 군수 윤석진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차경석도 윤석진의 시기로 죽음에 직면했으나 어느 참의(參議)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차윤칠(車輪七, 1884∼1920): 족보명 병국(炳國).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 1남 용민(鏞民)을 두었다.
道典 3:187)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머무르실 때 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 비룡산(飛龍山)에 오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뒤에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이요 萬方日月銅雀臺라
천고춘추아방궁 만방일월동작대 라고 써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시고, 또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를 두고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께서 자신에게 종통을 전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상제님께서 차경석의 야심을 아시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그의 운명을 암시하신 것이다.
잠농지운(蠶農之運): 누에치기의 운. 누에의 한살이로 비유하신 이 말씀에 차경석 성도의 신앙의 전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道典 3:207) 경석에게 농바우 장군 도수를 붙이심
10월에 하루는 경석에게 돈 30냥을 마련케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이것은 너를 위한 일이니라.
내가 오늘은 너와 함께 순창에 가려 하노라.” 하시며 어떤 법을 베푸시고 溪分洙泗派하고 峯秀武夷山이라 活計經千卷이요 行藏屋數間이라. 이곳 시내는 수사(洙泗)의 흐름을 갈라 받았고, 봉우리는 무이산보다 빼어나구나. 살림이라곤 경서가 천 권이요, 몸 둘 집은 몇 칸 뿐이로다.
襟懷開霽月하고 談笑止狂瀾이라 小子求聞道하니 非偸半日閒이라
가슴에 품은 뜻은 환히 갠 달 같고, 담소는 미친 물결을 그치게 하네. 제가 찾아온 것은 도를 듣고자 함이요, 한나절의 한가로움을 뺏으려 함이 아니외다. 하고 고시를 외워 주신 후에 경석을 데리고 순창 농바우 박장근의 집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에 붙여 돌리나니 네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니라. 이어 장근에게 이르시기를 “너의 머슴을 불러 어젯밤 무엇을 본 일이 있는지 물어 보라.” 하시거늘, 장근이 머슴을 불러 물으니
머슴이 대답하기를 “어젯밤 꿈에 한 백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농바우를 열고 큰칼과 투구와 갑옷을 꺼내는데, 장검은 서릿발이 돋은 듯하고 갑옷과 투구는 빛이 나서 눈이 부셨습니다.
신선이 칼과 투구와 갑옷을 저에게 주면서 ‘한 장군이 명(命)을 받들고 여기에 올 것이니 이것을 그 장군에게 주라.’ 하므로 제가 그것을 받아서 두었사온데, 그 자리가 바로 저 자리입니다.” 하며 경석이 앉은 쪽을 가리키는지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네가 꿈을 옳게 꾸었도다. 농바우의 전설이 허망한 말이 아니로다.” 하시고, 다시 장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니라. 대저 그 지방에는 농바우 속에 갑옷과 투구와 긴 칼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가리라.’는 말이 전하여 오니라.
회문산: 전북 순창군 구림면과 임실군 덕치면에 걸친 산(830m). 다섯 선인이 바둑판을 에워싼 오선위기의 형국이며, 24혈(穴)이 있다.
道典 3:208) 경석의 운명을 예시하심
이 때 경석에게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經之營之不意衰하니 大斛事老結大病이라 天地眷佑境至死하니 漫使兒孫餘福葬이라
천하사를 평생 경영하다 뜻밖에 쇠패하니 배포가 아무리 커도 일이 쇠해져 큰 병을 얻으리라. 천지가 도와주어도 마침내 죽음에 이르니 헛되이 자손을 부려 남은 복마저 장사지내는구나.
道典 3:211) 경석의 출세글을 내려 주심 : 망건서와 망건시
이 때 지어 주신 망건서는 이러하니라.
網 巾 序
망 건 서
如無有一身現心이니, 無則事萬皇而必無一極하고 有則夢一皇而其極必達하리라
망건을 쓰고 안 씀은 내 몸에 마음을 드러냄과 같으니 안 쓰면 어떤 임금(萬皇)을 섬길지라도, 너의 그 지극한 한 가지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쓰면 천자를 꿈꾸어 온 너의 지극한 꿈이 꼭 이뤄질 것이니라.
無則順이요 有則逆이니, 先聖이 不同禽獸之道하여 定有一作이라 故로 予從逆하노라
망건을 안 쓰면 머리가 그대로 내려오니 순(順)이요, 망건을 쓰면 머리를 빗어 치켜올리니 역(逆)이라. 선성(先聖)이 금수의 도리와 같지 않게 법도를 정하였으므로 나도 머리 빗고 망건을 써서 인간의 길을 좇느니라.
또 이 때 지어 주신 시는 이러하니라.
網 巾 詩 河圖義氣馬人同하니 故拔一毛爲天下라 博覽博識誰伏羲오 天皇公庭表日暈이라
하도의 의기(義氣)는 말과 사람이 그 덕을 함께 하니 말총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였도다. 누가 박람박식(博覽博識)한 복희런가! 망건과 갓을 쓰니 이마에 햇무리를 두른 것 같구나.
차경석 성도에게 큰 사명을 내려 주시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단순히 ‘너희들은 상투 틀고 망건을 쓰라.’는 말씀이 아니다.
너의 지극한 한 가지 꿈: ‘파종-이종-추수’도수로 이어지는 도운의 종통맥에서 이종 도수를 전개시킨 공덕으로, 도성덕립된 후에 지도자 일꾼의 추존으로 그 꿈이 성사될 것을 공사 보신 것이다.
道典 3:260) 너는 대인 공부를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경석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장인이 그대가 ‘요술쟁이에게 요술을 배우려 한다.’ 하며 ‘바람맞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노라.” 하니, 경석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바람맞았으리오. 그러는 장인 양반이 오히려 바람맞은 사람이로다.” 하거늘,
그 사람이 나간 뒤에 상제님께서 경석을 불러 꾸짖으시며 “너는 대인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제 노릇 하려고 하는 말을 네가 탄하여 똑같이 하면 너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지니 무엇으로 대인을 이루겠느냐.” 하시니라.
하루는 논가를 지나시는데 경석이 큰 소리로 새떼를 쫓거늘,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네가 한 떼 새의 배 채움을 용납지 못하니 어찌 천하의 백성들을 기르겠느냐. 장차 백성들을 크게 상하게 하겠구나.” 하시니라.
道典 3:290) 각기 천지기운을 받느니라
하루는 글을 써서 경석에게 주시며 “이 뒤에 음양에 제한이 없게 하여 달라고 심고하라.” 하시고 불사르신 뒤에 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人生世間何滋味오 曰衣曰食이요 衣食然後에 曰色也라
사람이 세상사는 재미는 무엇인가. 입고 먹는 것이요 의식 연후에는 음양의 낙이니라.
故로 至於衣食色之道하여는 各受天地之氣也니
그러므로 의식색의 도에 이르러서는 각기 천지기운을 받나니
惑世誣民者와 欺人取物者도 亦受天地之氣也니라
혹세무민하는 자와 남을 속여 재물을 갈취하는 자도 역시 천지기운을 받느니라
道典 5:180) 초패왕 도수를 붙이심
하루는 형렬과 경석을 데리고 순창 장군암(將軍岩)에 가시어 공사를 행하실 때, 경석을 장군바위에 앉히시고 상제님께서는 형렬과 함께 바위 아래에 서시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에게 초패왕(楚覇王) 도수를 붙이노라. 모든 일에 선으로써 행사하라.” 하시고,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고 돌아오시니라.
이 공사로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 도운(道運)의 이종 역을 맡아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차경석 성도는 1921년에 경남 함양군에 있는 황석산에서 대규모 천제를 지내고, 국호를 시국(時國)이라 정하였으며 교명을 보화교(普化敎)로 선포하고 차천자라 불리었다.
道典 5:204) 후천 음양 도수
25일 새벽이 되매 성도들을 정좌케 하시고 각기 종이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니 각자 마음에 있는 대로 점 하나에 아내 하나씩 표하여 점쳐 들이라.” 하시고, 점 찍은 표를 함에 넣게 하시어 상제님께서 손으로 휘저어 한 장씩 뽑으시니 경석은 열두 점이요, 응종은 두 점이요, 경수는 석 점이요, 내성은 여덟 점이요, 공신은 한 점이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홉 점은 없으니 일남구녀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대답하기를 “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고 달마다 한 나라씩 순유하면 남아 행락(行樂)의 극치일까 하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 하시니라.
경수와 응종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이 한 사람도 어렵겠거늘 아내 둘, 셋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 하시니, 응종이 대답하기를 “후천에는 노인이 다시 젊어진다 하오며 자고로 좌처우첩(左妻右妾)이란 말이 있사오니 둘을 원합니다.” 하고, 경수가 아뢰기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셋을 원합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도 그럴 듯하도다.” 하시고,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팔선녀를 데리고 희롱한다 하였으니 네가 선관이 되려고 여덟 점을 쳤구나.” 하시니라.
이어 공신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도 둘, 셋을 원하거늘 너는 청년으로서 어찌 한 사람에 만족하느냐? 근력이 부족해서 하나밖에 못 하냐?” 하시거늘, 공신이 대답하기를 “하늘도 하나고 땅도 하나입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며 말씀하시기를 “그려, 그렇지! 네 말이 옳도다. 오직 건곤뿐이니 이로써 공사를 마치노라.” 하시고,
무를 잘라 무엇을 새기신 뒤에 먹물을 묻혀 모든 종이 조각에 도장찍듯이 찍으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공사를 잘 보았으니 점심과 술안주를 특별히 성대하게 준비하여 손님 대접을 잘하여 돌려보내라.” 하시니라. 이 때 광찬과 공우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원일은 태인 신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이는 공우가 여러 번 관재로 곤욕을 당했음을 아시고 곧 닥칠 화액을 면케 하려 하심이요, 광찬과 원일은 그 성품이 너무 과격하여 불참케 하심이더라.
道典 5:205) 동학 역신 해원 공사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삼태육경(三台六卿): 삼정승과 육조판서.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명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초기 증산도 도운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꿩이 제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제가 스스로 나서서 손해를 보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다.
道典 5:215) 너희가 혈심을 갖지 못해 장상신이 응하지 않노라
일전에 상제님께서 이번 화액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하신 뒤에 갑칠에게 명하시어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갑칠의 심부름 맡은 사람이 화란을 틈타 그 돈을 훔쳐 도망하는 것을 갑칠이 쫓아가서 되찾아 경석에게 전하매
경석이 그 돈으로 옷과 침구와 음식 등을 준비하여 옥중으로 들여보내니라.
그믐날 저녁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天子神)이 넘어옴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장상신(將相神)이 응하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223) 고부에서 사흘을 머무르신 뒤에 와룡리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경석이 따르거늘,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에서 죽으면 땅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후 경석을 데리고 손바래기 본댁으로 가셨다가 김성연의 주막에서 술을 잡수시고 대흥리로 가시니라.
道典 5:343) 십일전 상량 공사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하시고, 경석에게 백목(白木)을 가져오라 하시어 상량 공사(上樑公事)를 행하시다가 “백목이 부족하다.”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더 가져오게 하시어 공사를 마저 마치시니라. 이어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천자 소리를 듣기는 듣는다만 집을 지으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따금 경석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인’이라 부르시니라.
道典 6:31) 경석아, 너의 운수가 부족하니
하루는 대흥리에 계실 때에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경석아, 너의 평생 소망이 무엇이냐?” 하시니, 경석이 아뢰기를 “저의 평생 소원은 돈을 물 쓰듯이 써 보는 것입니다.” 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대들보에 긴 베를 걸게 하신 뒤에 공우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시고 경석에게 춤을 추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성(姓) 중에서 가장 좋은 성을 가지고 있구나.” 하시고
“경석아, 너의 운수가 부족하니 이제 네 선조의 묘가 있는 구월산(九月山) 금반사치혈(金盤死雉穴)의 기운을 옮겨 와야 하리라.” 하시니라. 잠시 후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 혈음은 반드시 장풍(長風)을 받아야 발(發)하리라.” 하시니, 이 때 마침 이도삼(李道三)의 아우 장풍(長豊)이 들어오거늘 공우가 북채를 잠깐 멈추고 “장풍이 오느냐.” 하고 인사하매, 상제님께서 그만 그치게 하시고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소원을 허락하여 장차 돈을 물 쓰듯 하게 해 주리니 덕(德)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末端)이니라.” 하시니라.
구월산: 황해도 은율군(殷栗郡)과 안악군(安岳郡)의 경계에 있는 산(954m). 북한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궁휼산’ 또는 ‘증산’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금반사치혈(金盤死雉穴: 금으로 만든 소반에 놓인 죽은 꿩의 형상)이 있다.
이장풍(李長豊, 1885~?): 본관 전주(全州). 본명 기조(基朝), 장풍은 다른 이름. 이 때 나이 23세로 태인 하증산리(下甑山里)에서 종형(4촌)인 이도삼과 함께 살았다.
道典 6:32) 강령을 받아야 하느니라
하루는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강령(降靈)을 받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元皇正氣 來合我身’을 읽히시며 방문을 여시니 경석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통곡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울음은 신명에게 벌 받는 소리니라.” 하시니라.
道典 6:53) 새벽에 한 시간씩 자고 공부하라
6월에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로 하여금 각처 성도들에게 “순회하여 전하라.” 하시며 명하시기를 “21일 동안 잠자지 말고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자고 공부하며 수마를 극복하라. 큰 힘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기한이 다 차매 모두 심히 피로해 하는데 경석이 가장 심하더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 앞 모시밭 가에 이르러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슨 천자냐!” 하시고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6:54) 큰 이무기를 잡았노라
대흥리에서 하루는 차경석, 안내성, 박공우를 데리고 앞내에 나가 목욕하실 때 경석에게 명하시어 소금 한 줌을 가져다 물 위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느닷없이 경석의 다리를 잡고 “큰 이무기를 잡았다.” 하시거늘,
경석이 아뢰기를 “제 다리입니다.” 하니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니라. 이후에 경석과 공우를 데리고 어디를 가실 때 경석을 돌아보며 말씀하시기를 “이무기가 용(龍)이 되려다가 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면 30리 안이 쏘가 되나니 이 말을 잘 기억하라.” 하시니라.
큰 이무기: 이는 월곡 차경석이 야심을 펴면서 상제님을 배반하여 성공하지 못할 것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道典 6:85) 도운 개척의 병권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황극수(皇極數)를 돌리시며 여러 성도들에게 각각 소원을 물으시고 다시 차경석에게 소원을 물으시니 경석이 열지(裂地)를 원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리라.” 하시니 경석이 불쾌히 여기는지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직신(直臣)이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특히 너에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열지(裂地)를 원하거늘: 차경석 성도는 천하를 쥐고 통솔할 만한 기국과 뱃심이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영웅적인 기질을 도운 개척의 역사에 쓰시어 난법 도수의 시간대에 인사 대권을 맡는 사역자로 내세우셨다.
道典 6:89) 수부님께 경석을 경계하게 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세숫물을 가져오라.” 명하시므로 경석이 세숫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가거늘, 상제님께서 손가락으로 경석을 가리키시며 수부님께 이르시기를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 되리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니라.
道典 6:90) 네가 나를 꼭 믿겠느냐
하루는 상제님께서 한참 바쁘게 공사를 보시다가 느닷없이 “경석아! 네가 나를 꼭 믿겠느냐?” 하시니 경석이 “예! 꼭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을 다짐받으신 후에 다시 물으시기를 “그렇다면 내가 두겁을 써도 믿겠느냐?” 하시니 “예! 그대로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집안은 전주 이씨(全州李氏) 때문에 망하게 되리라.”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내 일은 셋만 있어도 하고, 셋이 없으면 둘만 있어도 하고, 둘이 없으면 하나만 있어도 하느니라. 그 하나도 없으면, 말뚝에다 기운만 붙이면 천하사를 하느니라.” 하시고 붓대를 던지시니라.
전주 이씨 때문에: 차경석 성도는 18세 때 담양의 전주 이씨 가문에 장가들었다. 그의 장인은 동학혁명 때 황룡강 싸움에서 전사한 세칭 ‘이장태’로 알려진 이용길(李龍吉)이다. 차경석 성도가 道紀58년(戊辰, 1928)에 이르러 아내 이씨로부터, ‘영안을 통하여 보니 상제님의 자리에 삼황오제신이 들어서고 상제님께서 풀대님에 삿갓을 쓰고 보좌를 떠나시더라.’는 말과 ‘삼황오제신은 곧 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라는 말을 듣고 혹하여 차치구를 신앙 대상으로 받들고 교리도 유교식으로 바꾸었다.
道典 6:91) 대도의 험난함을 한탄하심
하루는 대흥리에 계실 때 경석이 뜰 앞을 지나가거늘 바라보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니 백성들이 많이 상하겠구나.” 하시고, “내 도(道)가 험난하겠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은 차정(車鄭)으로 망하느니라.” 하시고,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잠시 시운(時運)으로 경석을 쓰려 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6:92) 장군이 제지하라
12월 20일에 성도들에게 24절후를 읽히신 후 밤중에 경석의 집 앞 버드나무 밑에 벌여 세우시고, 북쪽을 향하여 휘파람을 부시니 난데없이 방장산(方丈山)으로부터 한 줄기 실구름이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 문턱 모양을 이루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곤이내(閫以內)는 짐(朕)이 제지(制之)하리니 곤이외(閫以外)는 장군이 제지하라!” 하시니라.
곤이외(閫以外)는 장군이 제지: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손권(孫權)이 백면서생 육손(陸遜)을 대장군으로 임명할 때 그의 손을 들고 외친 말. 이는 증산 상제님께서 영웅의 정신을 가진 차경석 성도를 내세워 난법도운의 개척 시대를 열도록 명하신 공사이다.
장군: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역사적인 창업 시조들의 천하사 군대정신을 그대로 공사에 이화하시어 제1변 도운 개척과 제3변 도운 마무리 실무책임자에게 각기 장군 도수를 붙이셨다.
道典 8:60) 주장(主將)의 일하는 법
10월에 순창 농바우 박장근(朴壯根)의 집에서 차경석에게 장군도수를 붙이시고 대흥리로 돌아오시는 길에 태인 고현내 행단(古縣內 杏壇)에 이르시어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도를 가르쳤다 하나니 여기서 네게 한 글을 전하리라.” 하시고 옛글 한 장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夫主將之法은 務攬英雄之心하고 賞祿有功하고 通志于衆이라 故로 與衆同好靡不成이요 與衆同惡靡不傾이니 治國安家는 得人也요 亡國破家는 失人也라 含氣之類는 咸願得其志니라
무릇 주장(主將)의 일하는 법은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힘쓰고, 공 있는 자는 상과 녹을 주고, 뭇 사람과 한마음으로 뜻을 통하는 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여러 사람과 미워하는 것을 함께 하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없나니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집안을 평안케 함은 사람을 얻는 데 달려 있고, 나라가 망하고 집안을 망침은 사람을 잃는 데 있느니라. 생명을 가진 만물은 모두 그 뜻을 이루기 원하느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장수(將帥)가 될 자의 대감(大鑑)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5) 경석에게 재삼 다짐을 받으심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머무르실 때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일이 뜻에 맞지 아니하니 내가 이 세상을 버릴 수밖에 없구나. 세상을 떠나기는 극히 쉬운 일이니라.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불티 사라지듯 하느니라.” 하시고 바로 베개를 베고 누우시니
경석이 놀라 여쭈기를 “어인 말씀이십니까? 제가 비록 불초하오나 모든 일에 명하심을 좇아 물불이라도 피하지 않겠나이다. 걱정을 거두소서.”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가 능히 내 명을 좇을 수 있겠느냐?” 하시고 재삼 다짐을 받으신 뒤에 일어나 공사를 행하시니라.
道典 10:26)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이 날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을 한 줄로 꿇어앉히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기 운수를 정하였나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만일 받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성심(誠心)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 모두 큰 소리로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죽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맹세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 다짐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 다만 성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더라. 또 잠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신명 공판에서 정읍 차경석을 잘 선정하여 실수가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알아서 썼다.” 하시니라.
道典 10:58) 형렬에게 기대어 태을주를 읽으심
이 때 호연이 신안으로 보니 장수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장들이 말을 타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채 문밖과 집 주위 를 에워싸고 있더라.신장들이 상제님께 각기 인사를 드리며 ‘저는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입니다.’ 하고 일일이 보고를 드린 다음 한 신장이 앞으로 나서서 “모시러 왔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호통 치시기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뭣 하러 그새 발동을 했느냐!
때가 되기도 전에 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 신장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서서 하명을 기다리더라. 형렬이 호연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니 호연이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나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하며 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안아다가 놓아 줘라.” 하고 명하시매 누가 뒤에서 덥석 보듬어다 찬문의 방에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가 버리는지라
호연이 홀로 방에 앉아서 보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신장들 가운데 한 신명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 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고 이르더라. 이에 줄의 맨 앞에 선 신장 하나가 줄의 가운데로 걸어나오니 양쪽 신장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르거늘, 그렇게 얼마를 걸어나와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서 되돌아가더니 이내 처음과 같이 정렬하니라. 신장들이 두 줄로 서서 명을 기다리는데 상제님께서 “나○○ 왔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그 신장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기로 다른 신장이 나서며 “오시(午時) 지났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놈아, 네가 시기를 아느냐?”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드시고 “날은 덥고 머나먼 길을 어찌 갈꺼나.” 하시며 형렬에게 몸을 기대신 채 작은 소리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니 방안에는 김형렬과 최상문, 그 외 두 명의 성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라.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
道典 10:5) 경석에게 재삼 다짐을 받으심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머무르실 때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일이 뜻에 맞지 아니하니 내가 이 세상을 버릴 수밖에 없구나.
세상을 떠나기는 극히 쉬운 일이니라.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불티 사라지듯 하느니라.” 하시고 바로 베개를 베고 누우시니,
경석이 놀라 여쭈기를 “어인 말씀이십니까? 제가 비록 불초하오나 모든 일에 명하심을 쫒아 물불이라도 피하지 않겠나이다. 걱정을 거두소서.”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가 능히 내 명을 쫒을 수 있겠느냐?” 하시고 재삼 다짐을 받으신 뒤에 일어나 공사를 행하시니라.
道典 10:6) 세 식구가 하나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상제님께서 하루는 경석과 내성을 불러 앉히시고 먼저 경석에게 “네 열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저는 열세 식구가 다 살아야겠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적놈이라.” 하시니라. 이어 내성에게 물으시기를 “내성이 너는 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하시니
내성이 “예, 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그래야지.” 하시며 크게 기뻐하시니라.
내성에게 붙이신 천지성경신 도수
일찍이 상제님께서 내성을 평하시기를 천지성경신 안내성(天地誠敬信 安乃成), 천지불변심 안내성(天地不變心 安乃成), 천지공경신 안내성(天地恭敬信 安乃成)이라 하시더니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에도 내성은 어디를 가든지 상제님께서 잠시 앉으셨던 곳이라도 보면 멈추어 인사를 올리고 어머니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고도 종신토록 마음을 변치 않고 상제님의 명을 일심으로 지키니라.
道典 10:7)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상제님께서 하루는 수부님께 물으시기를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시매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또 말씀하시기를 “네게 세 가지 큰 병이 있으니 그중 악한 병이 단독(丹毒)이라.” 하시고, 이어서 “내가 천상에서 신씨(申氏)보고 잘 맡아 보라 하였더니 병 두 가지를 붙여서 보냈구나.” 하시더니 “독기(毒氣)를 뺀다.” 하시며 수부님의 손등을 이빨로 한참 동안 물어 피멍이 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단독은 염려 없다.” 하시니라. 이에 수부님께서 “나머지 병도 없애 주소서.” 하시니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에 한도가 있고 책임이 있다.” 하시고, “나머지는 이후에 치유(治癒)할 사람이 있다.” 하시니라.
신씨(申氏): 신여옥(申汝玉, ?~1907).본관 평산(平山), 부 영오(永五)의 장남. 고수부님의 사별(死別)한 남편. 정미(道紀 37, 1907)년 6월 20일에 작고했다.
道典 10:8) 하루는 성도 수십 명을 불러 모으신 다음 대학(大學)과 여러 주문(呪文)과 부서(符書)를 수습하여 수부님 앞에 놓게 하시고, 수부님으로 하여금 동쪽을 향해 앉아서 시천주주(侍天主呪) 21독을 하게 하신 뒤에 두 분이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하시고 천지에 고축(告祝)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吾君誓約重十山하니 踏盡高高太乙壇이라
오군서약중십산 답진고고태을단
나와 그대가 맹세한 언약 온 세상 산보다 무겁고, 높고 높은 태을궁으로 인도하여 천하창생을 건지느니라.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물으시기를 “내가 수만 리 밖에 가 있으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어디든지 찾아가겠습니다.” 하시거늘, 상제님께서 “오지 못하리라.” 하시며 “내가 찾아오리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시니라.
道典 10:9) 하루는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간곡히 청하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시며 “너는 갈 곳이 못 되노라.”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그러면 언제 오시렵니까?” 하고 여쭈니 “곧 돌아오리라.” 하시고, “임옥(臨沃)에서 땅 빠진다.” 하시니라.
수부님께 다짐을 받으심
또 상제님께서 “네가 나를 꼭 믿느냐?” 하고 다짐을 받으시니 수부님께서 “꼭 믿습니다.” 하시며 굳게 맹세하시니라.
임옥(臨沃): 임피와 옥구를 함께 이른 말.
임옥(臨沃)에서 땅 빠진다: 태모님께서 오성산 도장에서 선화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
道典 10:10)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2월 9일에 김자현(金自賢)을 데리고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 정남기(鄭湳綺)의 집에 가시어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妻族)들을 일일이 찾으리라.” 하시며 등불을 들리시고 밤새도록 여러 집을 찾으시니라.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어 양지에 글을 쓰시고 그 종이를 잘게 잘라 서로 이은 다음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연결하시니 그 길이가 꼭 들어맞더라.
공사를 마치시고 그 동리에 사는 김문거(金文巨)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만경(萬頃) 삼거리에 이르시어 술을 드시며 쉬실 때, 마침 한 중이 지나가매 상제님께서 불러 돈 3전을 주시고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으리니 내가 잊어버리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거늘, 오후가 되어 자현이 보니 과연 흰 무지개(白虹)가 해를 꿰뚫으니라.
道典 10:11) 가족을 당부하심
고부(古阜) 본댁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내촌(內村)에 가셨다가 쌍정리(雙丁里)를 거쳐 손바래기로 돌아오시니라. 오시는 길에 나뭇가지로 회초리를 만들어서 좌우로 휘저으며 걸으시니 마치 무엇을 몰고 가시는 듯하더라. 이와 같이 회초리를 저으시며 강성회(姜聖會)의 집에 가시어 영탁(永鐸)에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네가 나를 대신하여 내 집안을 돌보자면 수고가 많으리라. 고목(枯木)에 장차 꽃이 피리라.” 하시니라. 그 길로 본댁에 돌아오시니 가족들이 모두 모이거늘 말씀하시기를 “每事不待自然來라.” 하시니라.
道典 10:12) 하루는 상제님께서 종이에 제비를 그리신 후에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매숭자를 써야 나갔던 제비가 다시 들어온다.” 하시고, 호연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낳기는 제 어미가 낳았어도 맥은 얘가 붙인다. 이 도수를 맞추려면 삼색(三色) 실과 제물이 있어야 하고, 첫 몸을 받아야 천지에 공을 드릴 수 있나니 이 애를 잘 돌봐서 선매숭자를 받아라. 선매숭자를 지녀야 표적이니라.” 하시고 호연의 첫 경도(經度)를 받아서 공사를 행하도록 그 방법을 세세히 일러 주시니라.
道典 10:13) 내가 죽더라도 이렇게 해라
이 해 봄에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내가 죽고 없더라도 이렇게 해라.” 하고 무엇을 가르쳐 주시니, 자현이 이를 보고 시새워서 “저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 “그럼 네 조상을 내게 다 주겠느냐?” 하고 물으시니라. 자현이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조상을 다 드리다니요….” 하며 대답을 얼버무리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느새 자현이 모악산 꼭대기의 바위 위에 앉아 있거늘, 아무리 내려오려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주위가 온통 강이 되어 도저히 나올 길이 없는지라 자현이 막막한 마음에 그저 빙빙 돌기만 하니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이를 보여 주시며 물으시기를 “어쩌냐, 너하고 형제간이라 마음이 안타까우냐, 서운하냐? 놓아주랴, 건네주랴?”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기를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건네주려면 주시고 마음대로 하시지 저는 이러시라 저러시라 못 하겠습니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어째서 그러냐?” 하고 다시 물으시니 형렬이 “저도 그놈 괘씸하니 살려 주시라 마시라 그런 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며 혼잣말로 “자식이 뭔 죄인고. 애비 죄를 자식이 대신할 게 아닌데….” 하거늘
상제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래도 깡다구는 있구나.” 하시니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어느 결에 자현이 돌아와 앉아 있더라. 상제님께서 어리둥절해하는 자현에게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뉘 덕으로 곁에 와 있는 줄 아느냐? 형렬이 ‘애비 죄로 자식이 뭔 고생이냐.’고 그러길래 내가 너를 건네주었느니라. 그렇지 않았으면 너는 강만 뱅뱅 돌다 말 참이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14) 내가 장차 죽으리라
3월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하루 밤낮으로 계속하여 코피를 흘리시거늘, 김갑칠(金甲七)에게 명하여 관을 짜게 하시고 감주 한 그릇을 드시니 코피가 그치고 원기가 곧 회복되시니라. 이 달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자현을 데리고 전주(全州)에 가시려고 청도원(淸道院) 뒷재를 넘어가실 때, 자현이 아뢰기를 “저의 조모가 오늘로 학질이 세 직이온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학질이 세 직이면 거적 갖고 달려든다는 것 아닌가!”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백남신(白南信)의 집에 이르시어 남신을 데리고 전주 남문 누각에 올라 북학주(北學主) 공사를 보시고 남신의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드시니라. 이때 한 사람이 급히 달려 들어오며 자현에게 ‘조모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하는지라 일행이 구릿골로 돌아오니 장례 준비가 한창이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학질로 상한다.’ 함이 옳도다.” 하시니라. 며칠 후 친히 잡아 주신 장지(葬地)에 이르러 의관을 벗으신 다음 칠성판을 등에 대시고 널 안에 누우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죽어서나 누울까 살아서는 못 눕겠다.” 하시고 다시 “내 몸에 맞기는 맞는다.” 하시니라. 그 뒤에 자현을 불러 이르시기를 “널 한 벌을 만들어야 하겠으니 박춘경(朴春京)의 집에서 파는 관재(棺材) 중 잘 맞는 것으로 가져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 하시고, 다시 혼잣말로 말씀하시기를 “이 살이 어서 썩어야 할 텐데….” 하시니
자현이 놀랍고도 민망하여 “선생님이시여, 어찌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여쭈거늘 “네가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박춘경(朴春京, 1857∼1924): 본관 밀양(密陽). 부 근성(根盛)과 모 황씨(黃氏)의 장남. 김제시 금산면 청도원에서 평생을 살았다.
道典 10:15) 하루는 상제님께서 연자봉(燕子峰)을 가리키시며 물으시기를 “저 봉우리를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느냐?” 하시니, “연자봉이라 합니다.” 하고 아뢰거늘 “연자봉이 아니라 제비봉(帝妃峰)이니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구릿골 앞 오리알터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곳을 세상 사람이 나의 묘지라고 하리라. 그러나 개뼈가 묻힌지 소뼈가 묻힌지 누가 알겠느냐?” 하시니라. 이 해 4월에 상제님께서 청도원 이극서의 집에 종종 찾아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두 달 뒤에 죽으리라.” 하시니, 극서는 ‘돈 사람이 미친 소리 한다.’고 생각하니라.
道典 10:16)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곳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사는 것을 뜻대로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손이 한 마디만 있어도 일어나고,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거기 붙어서 나오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장탯날 풀밭에 누워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나중에 내 몸을 위한 땅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후에 천개(天蓋)에다 못질을 하지 말라.” 하시고, “죽은 자의 시신을 묶는 것은 선천의 악법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17) 하루는 상제님께서 박공우(朴公又)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일찍 부모를 잃었느냐?” 하시니 공우가 “예, 그렇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이 뒤로는 나의 부모를 네 부모와 같이 섬기라.”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공우야, 내가 천하사를 하기 위해 떠나리니 내가 돌아오기까지 죽으로 연명하라. 너희들은 오직 식난(食難)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울타리 없는 집에서 살라. 찌그러진 오막살이에서 살아도 진심으로 나를 믿고 공부하라.” 하시니라.
道典 10:18) 형렬의 큰며느리인 이정숙(李貞淑)이 상제님을 정성스럽게 수발들며 시아버지처럼 잘 섬기거늘, 상제님께서 손수 은비녀도 사다 주시고 신발도 꽃신, 진신, 마른신을 다 사다 주시며, 또 “없는 데 시집와서 불쌍하다.” 하시며 돈을 주기도 하시니 정숙이 더욱더 지성으로 모시니라.
道典 10:19) 본댁을 찾으시고 성묘하심
5월에 상제님께서 객망리에 가시어 각 선령(先靈)의 묘소에 성묘하시고 시루산에 오르시어 조모님의 산소를 찾으시니라. 성묘하신 후에 서산리(書山里) 외가를 찾으시고 다시 객망리 수십 호 문중을 찾으시니 문중 노인들이 ‘집안을 망쳐 놓은 증산이라.’고 욕하며 반기지 않으니라.
며칠 후에 상제님께서 부모님께 이별의 예를 올리시면서 “지금 떠나면 언제 올지 모르오니 몸을 안보(安保)하십시오.” 하시고 밖으로 나오시니라.
道典 10:20) 이 달에 갑칠에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넘겨 오시니 류찬명(柳贊明)이 여쭈기를 “이러한 묘한 법을 세상 사람이 다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길게 살기를 바라는구나.” 하시고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稚兒哭問母何之하니 爲道靑山採菜遲라
치아곡문모하지 위도청산채채지
日落西山人不見한대 更將何說答啼兒오
일락서산인불견 갱장하설답제아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 간 곳을 물으니 저 청산에 약초 캐러 간 발걸음이 더디다고 이르더라.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데, 장차 무슨 말로 저 우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리오. 또 남원(南原) 양봉래(楊蓬萊)의 ‘자만시(自輓詩)’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인대 一去靑山盡寂寥라
시중이백주중령 일거청산진적요
又去江南楊進士하니 鷓鴣芳草雨蕭蕭라
우거강남양진사 자고방초우소소
시로 말하면 이태백이요 술 잘 마시기로는 유령이 뛰어난데, 한 번 죽어 청산에 들어가니 모두 소식이 없네. 이제 또 강남의 양 진사도 가 버리니 자고새는 방초 위에 슬피 울고 고적한 비바람만 뿌리는구나.
道典 10:24)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장차 천하사를 하러 떠나리니 돌아올 때에 48장(將) 늘여 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면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라.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상말에 ‘이제 보니 수원(水原)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 두라. 내가 장차 열석 자로 다시 오리라.” 하시고, “수운가사에 ‘발동(發動) 말고 수도(修道)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나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옛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乾坤不老月長在하고 寂寞江山今百年이라
건곤불노월장재 적막강산금백년
천지는 쇠하지 않아 달이 항상 떠 있고, 적막한 강산은 이제 백 년이로다.
道典 10:25) 내가 항상 너희들의 등 뒤에 있건마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약방으로 모이라는 통지를 띄우시고 형렬에게 “의복 한 벌을 새로 지으라.” 명하신 뒤에 이로부터 곡기를 끊으시고 소주만 잡수시니 이 때 형렬의 큰며느리가 수종 드니라. 20일에 각처 성도들이 구릿골에 모이니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덕찬, 문공신과 그의 큰아들 광옥, 박공우, 김경학, 신원일, 이치복, 이공삼, 최덕겸, 채사윤, 류찬명과 그의 큰아들 재옥 등이라.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몸을 피하려 하나니 너희들이 능히 나를 찾겠느냐?” 하시니, 모두 큰 소리로 “찾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때가 되면 다 한 마당에 들어선다.” 하시니라. 다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씀하시기를 “이후에 너희들이 나를 보지 못하여 애통해하며 이곳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내 눈에 삼삼하니라. 나는 항상 너희들의 등 뒤에 있건마는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요,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만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6)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이 날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을 한 줄로 꿇어앉히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기 운수를 정하였나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만일 받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성심(誠心)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 모두 큰 소리로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죽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맹세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 다짐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
다만 성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더라. 또 잠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신명 공판에서 정읍 차경석을 잘 선정하여 실수가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알아서 썼다.” 하시니라.
道典 10:27) 상제님께서 형렬이 새로 지어 올린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쳤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하시니, 김경학(金京學)이 여쭈기를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사람 둘이 없으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하시거늘,
경학이 재촉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록 무능하지만 몸이 닳도록 두 사람의 일을 대행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그렇게 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경학이 서운히 여겨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모두 쓸데없는 사람이니 선생님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다 복 없는 사람이니 함께 손잡고 물러감이 옳다.” 하며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가니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좀 기다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8) 모든 병을 대속하시고 영원한 강녕을 내려 주심
경학이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자리에 누우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하의 모든 병을 대속(代贖)하여 세계 창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강녕(康寧)을 얻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각종 병을 번갈아 앓으시되, 한두 시간씩 고통스러워하시며 병을 앓으신 뒤에는 갑자기 일어나 앉으시어 “약을 알았다.” 하시고,
거울을 들어 용안을 이윽히 보시면 그 수척하고 열기가 떠올랐던 기색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곧 원기를 회복하시니라. 앓으신 병은 대략 운기(運氣), 상한(傷寒), 황달(黃疸), 내종(內腫), 호열자(虎列刺) 등이더라. 병을 다 앓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있는 모든 병을 다 대속하였으나 오직 괴병은 그대로 남겨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전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9) 괴질을 대속하심
이 때 청주(淸州)에서 괴질이 창궐하고, 나주(羅州)에서도 크게 성하여 민심이 들끓는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에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이 죽으리라.” 하시고
勅令怪疾神將이라
칙령괴질신장
胡不犯帝王將相之家하고
호불범제왕장상지가
犯此無辜蒼生之家乎아
범차무고창생지가호
괴질신장에게 내리는 칙령이라. 어찌 제왕과 장상의 집은 범하지 않고, 이같이 무고한 창생들의 집을 범하느냐! 라 써서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대속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올리게 하신 다음 한 벌씩 갈아입으시고 설사하여 버리신 뒤에 다시 말씀하시기를 “병이 독하여 약한 자가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니 이 뒤로 괴질이 곧 그치니라.
道典 10:32) 치상비를 마련해 두심
이 날 신원일(辛元一), 이치복(李致福)이 채사윤(蔡士允)과 그의 처남으로부터 금전 약간을 받아 상제님께 올리니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그 돈을 궤에 넣게 하시고 원일에게 명하시어 금전을 낸 사람의 성명을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형렬에게 명하시어 궤 속에 보관한 돈 가운데 40원을 남겨 두고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시며, 나머지 돈은 여러 사람의 식비에 보태어 쓰게 하시니라.
8월 1일에 환궁하리라
이 날 저녁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에서 일을 꾸미기가 구차하여 이제 떠나려 하노라. 갔다 오는 사이에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일이 있으면 내가 하는 것으로 알아라.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 내가 짓는 일이 호호탕탕(浩浩蕩蕩)하리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팔월 초하루에 환궁(還宮)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33) 나를 보고 싶거든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니 어디가 좋겠느냐?” 하시니, 채사윤은 “내장사(內藏寺)로 가심이 좋겠습니다.” 하고, 신원일은 “부안 변산(扶安 邊山)의 내소사(來蘇寺)로 가심이 좋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더니 잠시 후에 “나는 금산사에 가서 불양답(佛糧畓)이나 차지하리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고,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六丈)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하시니라.
道典 10:34) 천하사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이 때 신원일이 여쭈기를 “천하는 어느 때 정하려 하시옵니까?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내 하고 난 것이 동학(東學)이라. 이제 천하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일을 다 본 뒤에 돌아오리라.” 하시고, 원일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손가락을 곱작거리며 아는 체하는 자와 그 뒤를 좇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후에 원일이 중국 천문학자들을 찾아 중국으로 가다가 압록강도 건너지 못하고 신의주에서 객사하니라.
道典 6:109) 도운道運의 시작과 종결, 분열과 대통일
하루는 세수를 하신 뒤에 “도운(道運)을 보리라.” 하시고 세숫물을 가리키시며 성도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 하시거늘
모두 명하신 대로 보니 문득 넓은 바다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가 굽이치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나의 형체가 사두용미(蛇頭龍尾)와 같으니라. 용은 한 잔의 물만 있어도 능히 천하의 비를 지어내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운수는 천지에 가득 찬 원원한 천지대운(天地大運)이므로 갑을(甲乙)로서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戊己)로서 굽이치리니 무기는 천지의 한문(閈門)인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36) 나는 올라가서도 난리 속에서 산다
상제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여 성도들이 여쭈기를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다니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진정 가시고 싶어 그러십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자리에 누우시며 “내가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안타까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여 “어찌하여 가려 하십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일 때문에 급히 가려 하니 간다고 서운하게 생각지 말라. 이 다음에 다 만나게 되느니라. 나는 이제 올라가도 아사리 난리 속에서 사느니라. 지금 전쟁을 하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편한 밥 먹는 줄 알아라. 이제 배고픈 꼴도 보고 기막힌 꼴도 보게 될 것이다.” 하시니라.
道典 10:37) 태운장이 네 연분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아, 호연아!” 하고 부르시매 호연이 곁으로 가니 느닷없이 “호연아, 인제 태운장이 네 연분이다.” 하시거늘 호연이 쑥스러워 “연분이 뭐여, 염불?”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아니, 네 배필.” 하고 대답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배필은 또 무엇이래?”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네가 철이 없어서 그렇지, 시집가면 남자보고 ‘새서방’이라고 안 하더냐? 인제 그렇게 돼.” 하시거늘 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렇게 늙었는데 새서방이라고 해요?” 하니 “인제 봐.” 하시며 웃음을 지으시니라.
道典 10:38) 내 녹줄이 떨어졌구나
상제님께서 이 달 10일부터 곡기를 끊고 소주만 드시더니 22일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보리밥을 지어 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곧 지어 올리매 상제님께서 보시고 “가져다 두라.” 하시므로 도로 내가니라. 이로부터 한나절을 지낸 뒤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다시 가져오라.” 하시니 밥이 쉬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녹줄이 떨어졌구나. 내가 이제 죽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10:40) 선천 성인 심판 공사
이 날 오후에 약방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제님께서 그 위에 반듯이 누우시어 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거늘
치복이 명하신 대로 멍석을 가져다 펴니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해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기(旗)를 가져다 불사르게 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공자(孔子) 부르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거늘, 다시 “어서 공자를 부르지 못할까!” 하고 호통치시매 성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공자 잡아 왔습니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불러 오라 하였지 잡아 오라 했느냐? 하시며, “너희들은 눈을 감고 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눈을 감고 보니 뜻밖에 펼쳐 놓은 자리에 공자가 무릎을 꿇고 “공자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더라.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공자야, 네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인(仁)을 행하였다 하며,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오. 또한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하시니라.
이어 “석가(釋迦)를 부르라.” 하고 명하시니 즉시 석가모니가 “대령했습니다.” 하고 꿇어앉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석가야, 너는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퍼진다면 사람의 종자나 남겠느냐. 종자 없애는 성인이냐? 네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중생을 아느냐. 이런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야소(耶蘇) 부르라.” 하시니 즉시 예수가 꿇어앉아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 선령을 박대하는 도를 폈으니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천륜을 아느냐 인륜을 아느냐.” 하시니라.
너희들 모두 나의 도덕 안에서 살라
이어서 “노자(老子)를 부르라.” 하시니 즉시 노자가 “대령했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노자야,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 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한 해를 어미 뱃속에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아 있었다.’ 하니 그 어미가 어찌 될 것이냐. 그런 불효가 없나니 너는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니라.또한 네가 ‘이단(異端)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서 본 자가 없고, 나 또한 못 보았노라.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이냐!” 하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또 명하시기를 “공자, 석가, 야소, 노자를 다시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모두 대령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는 상 대우를 받을 만하나 너희들의 도덕만 가지고는 천하사를 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의 도덕이 전혀 못쓴다는 말은 아니니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너희들 모두 그 안에서 잘 살도록 하라.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수천 년 밀려 오던 공사를 금일에야 판결하니 일체의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1) 오직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날 저녁에 상제님께서 형렬을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나를 믿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믿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적에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말하되 ‘약차불이(若此不已)면 국무유의(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위국(衛國)이 참혹히 망하였느니라.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너는 오직 나의 말을 믿으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니 너는 알아서 하라.” 하시니라.
道典 10:42) 당국하면 할 수 있느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형렬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내 일을 대신 보겠느냐?” 하시니 형렬이 “재질이 둔하고 배운 바 없으니 어찌 능히 감당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未有學養子而後에 嫁者也라
미유학양자이후 가자야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서 시집가는 여자는 없느니라. 순(虞舜)이 역산(歷山)에서 밭 갈고 뇌택(雷澤)에서 고기 잡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 빚을 때에는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알지 못하였나니 당국하면 아느니라.” 하시니라. 이 날 밤에 상제님께서 누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삼태성(三台星)에서 허정(虛精)의 ‘허’ 자 정기가 나온다.” 하시니라.
道典 10:44) 선천 상극천지의 원과 한을 대속하심
증산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종결하시고 보름 동안 곡기를 끊으시어 굶주림과 무더위 속에서 선천 상극천지의 모든 깊은 한과 원을 거두어 대속하시니, 이 때 소주를 동이째 가져다 놓으시고 큰 대접에 생청(生淸)을 타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잡수시어 사흘 만에 동이를 비우시니라. 이 때 피가 위아래로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고 쏟아지매 성도들이 닦아 드리려 하되 닦지 못하게 하시거늘 입으신 명주 항라가 온통 피로 젖으니라. 상제님께서 계속 선연한 피를 쏟으시어 옷을 버리시니 형렬의 큰며느리 정숙이 여러 번 옷을 빨아 입혀 드리니라.
道典 10:45) 어천하실 것을 천지신명에게 선언하심
이 날 오후에 상제님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시거늘 약방 마루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마당에 나가 뒹굴며 신음하시고 사립문 밖에까지 나가 누워 괴로워하시더니 한참 뒤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나를 떠메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시어 형렬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니라. 이렇게 네댓 번 왕복하시니 형렬이 심히 지치거늘
경석이 대신하여 두어 번을 더 왕복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일곱 사람에게 양쪽 팔다리와 허리와 머리를 떠받치게 하시고, “이리 가자.” 하시어 가리키신 곳으로 가면 잠시 뒤에 다시 “저리 가자.” 하시는데, 이러기를 여러 차례 하시더니 다시 약방으로 가 누우시니라. 이 때 갑자기 상제님께서 누우신 채 천장으로 일곱 번을 튀어 오르시니라.
생사의 도는 몸의 정기(精氣)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종통을 바로잡으라
또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맥 떨어지면 죽으리니 연원(淵源)을 바로잡으라.” 하시니라.
道典 10:46)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밤이 되어 상제님께서 송환으로 하여금 급히 자현을 불러오게 하시거늘 자현이 대령하니 방 가운데에 짚자리를 펴고 청수 한 동이를 올리게 하신 다음 “네가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라. 이에 자현이 대답하기를 “지성으로 믿나이다. 제가 만일 믿음이 부족하였다면 고부화란 끝에 배반하였을 것입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내일 어디로 떠나려 하니 돌아오도록 음(陰) 자라도 받들고 약방을 자주 다니며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자현이 간청하여 아뢰기를 “제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니, 말씀하시기를 “자현아, 네가 갈 곳이 못 되느니라. 나 혼자 갔다가 다시 오리니 안심하고 있으라.” 하시니라.
道典 10:48) 인류 구원의 의통을 전수하심
이 날 밤 성도들을 모두 물리시고 공우만 부르시어 같이 주무실 때, 밤이 깊기를 기다려 이르시기를 “이리 가까이 오라.” 하시거늘
경석이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비명(秘命)을 내리실 줄 알고 엿듣고자 마루 귀퉁이에 숨어 있었으나 공우는 이를 알지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공우야, 앞으로 병겁이 휩쓸게 될 터인데 그 때에 너는 어떻게 목숨을 보존하겠느냐?” 하시거늘, 공우가 아뢰기를 “가르침이 아니 계시면 제가 무슨 능력으로 목숨을 건지겠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의통(醫統)을 지니고 있으면 어떠한 병도 침범하지 못하리니 녹표(祿票)니라.” 하시니라. 이 때 경석이 더 오래 엿듣다가는 들킬까 두려워 여기까지 듣고 물러가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공우야, 네 입술에 곤륜산을 매어 달라. 내가 천하사를 하기 위하여 곧 떠나려 하노라.” 하시니,
공우가 간청하여 아뢰기를 “하루라도 선생님을 모시지 아니하면 하루의 사는 보람이 없으니 바라건대 저를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간곡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가 갈 곳이 아니니라. 여기에서 천하사를 하기에는 불편한 것이 많으므로 그곳에 가서 할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9) 천하가 모두 같으니라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장차 괴질이 대발(大發)하면 홍수가 넘쳐흐르듯이 인간 세상을 휩쓸 것이니 천하 만방의 억조창생 가운데 살아남을 자가 없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무진(戊辰)년 동짓날에 기두(起頭)하여 묻는 자가 있으리니 의통인패(醫統印牌) 한 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여쭈기를 “때가 되어 병겁이 몰려오면 서양 사람들도 역시 이것으로 건질 수 있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하가 모두 같으니라.” 하시니라.
道典 10:50) 아침에 호연을 부르시니
24일 아침 상제님께서 약방에 누워 계시니 형렬을 비롯한 성도 몇 사람은 상제님의 곁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성도들은 마루와 마당, 그리고 형렬의 집과 고샅에 흩어져 명을 기다리는데, 한참 후에 형렬이 “선생님 정녕 돌아가십니까?” 하고 염려하며 여쭈니 상제님께서 형렬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으시며 “호연이 좀 부르소.” 하고 이르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밥 먹으러 간 호연을 데리러 형렬의 집으로 가서 “호연 애기씨 찾아요.” 하고 부르니
호연이 “누가 오래요?” 하고 묻거늘 그가 벌써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아, 증산이 찾지 누가 찾어?” 하며 함부로 말하더라. 이 때 호연이 나오려고 신발을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형렬의 신을 질질 끌고 약방으로 들어서는데, 상제님께서 별안간 호연을 데려온 성도에게 “시러베아들놈! 내가 무슨 증산이냐, 이놈아!” 하고 호통치시거늘, 그 성도가 벌벌 떨며 상제님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니라. 상제님께서 그의 머리를 처박으시니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이마에 주먹만 한 혹이 생기거늘
그 성도가 호연이 일러바친 것으로 여겨 ‘또 그런 소리 했다.’며 눈치를 주더라.
道典 10:51) 네 버릇을 고치려 그런다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가까이 와 앉아라.” 하시니 호연이 다가와 앉거늘, 말씀하시기를 “넘어지는데 커다란 신을 신고, 그 의젓잖은 짓 좀 말아라.” 하시는지라 호연이 “내가 뭘?” 하고 말대꾸를 하니 상제님께서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어른의 신을 그렇게 신는 게 아니다.
이 다음에 시집을 가도 어른의 신을 신으면 ‘버릇없고 배운 것 없다.’고, 네가 욕먹는 게 아니라 네 엄마,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다고 욕먹어. 그러니 네 버릇을 고치려고 내 그런다. 알어?”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누가 봤다고 해요?” 하고 쏘아붙이듯 여쭈니 상제님께서 “너 또 맞아 볼래?” 하시거늘, 호연이 “또 맞을 줄 알고? 내가 도망가지.”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도망은 어디로 도망을 가? 네가 나 없는 데 몇천 리를 가 봐라, 내가 모르는가.” 하시니라.
道典 10:52) 내가 아무리 먼 데 가 있어도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너 나 없으면 찾을래, 어쩔래?” 하고 물으시니 호연이 “지금도 없으면 찾아지고 기다려지는데, 함께 안 가고 어디 갈라고 그래요?” 하니라. 상제님께서 눈을 지긋이 감으시며 “너하고 갈 데가 못 돼.” 하시니 호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럼 나 어쩌고?” 하고 여쭈거늘, 상제님께서 몸을 일으켜 호연을 덥석 안으시며 “아이고 세상에,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냐?” 하시니라.
호연이 다시 “나는 어쩌라고 혼자 어디 가? 함께 가야지. 나 혼자 이 집에 있는 거 싫어, 안 있을 거야.” 하고 떼를 쓰며 품안으로 파고들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을 어루만져 주시며 “그러면 네 집에 가 있어라.” 하시니, 호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없고, 싫어! 나보고 ‘또 거기 갈려냐.’고 때리기만 하고. 그러니 안 가.”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리 안 해. 그리 안 하게 내가 할게.” 하시니
호연이 뾰로통해져서 “멀리 가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안 하게 해?” 하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의 두 손을 꼭 잡으시며 “그리할 수가 있어. 내가 아무리 먼 데 가 있어도 지척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어.” 하시니라. 호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별일이네. 어디를 가면 나를 꼭 챙기더니 어째 또 떼어 놓고 가려고 그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수천 리 먼 데로 올라가.” 하시거늘 “그러면 나도 따라가야지.” 하며 달라붙는지라 상제님께서 다시 자리에 누우시며 “너는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그러나 저러나 형렬이 말 잘 듣고 있어. 그러면 내가 와서 인제 너 잡을게, 응?” 하며 달래 주시고, 호연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어린것에다 내가 죄를 많이 졌네.” 하고 힘없이 말씀하시니라. 호연이 의아해하며 “무슨 죄? 무엇을 혼자 먹었길래 죄졌어?” 하고 대꾸하니 상제님께서 웃으시거늘 곁에 있던 성도들도 따라서 웃으니라.
道典 10:53) 어디 손 좀 잡아 보자꾸나
상제님께서 다시 눈을 감고 아무 말씀 없이 누워 계시는데 누가 말씀을 여쭈면 눈을 조금 뜨고 보시다가 도로 감고 하시는지라
호연이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다가 “아, 나 부르더니 무엇 하려고 그래요?” 하고 보채거늘 상제님께서 숨을 길게 쉬시더니 “내가 가기는 가도 널 못 잊어서 불렀어.” 하시니라. 호연이 더욱 궁금하여 “대체 어디를 가려는데 나하고 함께 안 가?”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함께 못 가. 내가 지금은 여기 이러고 앉아 있지만 구름같이 천리 만리를 댕겨. 하늘을 여기서 보면 간짓대로 쑤시것지? 하지만 이게 몇천 리가 되는지 몰라야. 너를 데리고 저리 올라가면 못써서 너를 두고 가려 하니 내가 죄졌다 그 말이여. 잘 있어, 잉? 악수하자.” 하시며 호연의 손을 꼭 잡으시더니 손을 끌어다가 손등에 입을 맞추시니라.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
이어 큰 한숨을 쉬시더니 눈을 떠서 방을 한 번 둘러보시고 “호연이는 밖으로 나가거라.” 하시거늘, 호연이 “어디로 가는가 봐야지. 가는 것 봐야 안 오면 내가 쫓아가지.” 하니, 상제님께서 “그러는 거 아녀. 인제 모든 일을 형렬에게 물어. 그러면 내가 형렬에게서 다 들을게.” 하시고, 다시 “그쯤만 알고 함봉(緘封)을 혀. 봉사가 되어야 하고 벙어리가 되어야 하니 어쨌든지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 하고 당부하신 후에 호연을 내보내시니라.
道典 10:54) 다 나가거라
아침에 약방에 계시던 상제님께서 사시(巳時) 경에는 형렬의 사랑방에 누워 계시니 몇몇 성도들은 방안에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더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방안의 성도들에게 “다 나가거라.” 하고 이르시거늘, 방안에 있던 성도들이 모두 토방 아래로 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니라.
道典 10:55) 이것이 여의주다
이 때 호연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누군가 “들어가지 마라.” 하므로 머뭇거리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들어와, 들어오너라.” 하시매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니라. 호연이 상제님 곁에 앉으며 “저 사람이 못 들어오게 했어.” 하니, “그 사람들은 그래도 나 다시 봐. 이 다음에 나 찾으려거든 여기를 봐라, 잉? 이것이 여의주다. 내 얼굴을 잊으면 여의주를 생각해라.” 하시며 아랫입술 속의 붉은 점을 보여 주시니라.
송죽같이 마음을 굳게 먹어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이리 한 번 보고, 저리 한 번 보고 하시며 한숨만 지으시는데, 이 때 형렬이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잘못한다고 때리지 말고 일을 생각하라. 일을 생각해서라도 호연이 집을 잘 돌봐 주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흘리고 말지, 그걸 담지 말아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일을 하다가 그만둬 버리면 네 가족들이 욕을 하고 우리보고 야단을 할 때 형렬이 뭐라고 할까 봐서 하는 소리다. 그런 것은 그냥 귀먹은 듯이 흘려야지 잘난 체할 필요가 없다.”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어쩌든지 송죽같이 마음을 굳게 먹어라, 응.” 하시니라. 호연이 그 의중을 깨닫지 못해 “송죽 같은 것은 무엇이고, 굳은 마음은 뭐래요? 난 몰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돼? 내가 소나무가 돼요?”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는 인제 허신이라도 살아 있으면 공중에서 네 혼을 빼 가.” 하시거늘, 호연이 놀라서 “내 혼을 빼 가면 난 정신없으라고?” 하매 상제님께서 “내가 있으니 괜찮어.” 하시며 호연을 다독여 주시니라. 이에 호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죽는다면서 있으니 괜찮다고?” 하고 토라지거늘, 호연의 손을 꼭 잡아 주시며 “호연아, 내가 너에게 큰 죄졌다.” 하고 달래 주시니라.
호연이 시무룩한 얼굴로 “왜 자꾸 큰 죄를 졌다고 해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제를 지냈다마는 죄는 죄대로 짓고 간다.
아이구, 어디 보자! 손으로 찌른 눈 흉터를 보자. 눈 다쳤으면 어쩔 뻔했던고….”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거늘, 호연이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나는 선생님하고 떨어지면 누굴 믿고 댕길거나!” 하며 상제님을 부둥켜안으니라.
道典 10:56) 맥은 네가 붙인다
상제님께서 눈물로 얼룩진 호연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며 이르시기를 “호연아, 너는 천지에 제를 지내고 고축(告祝)을 해 놔서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이 여러 대를 물러나야 하는데, 움이 피면 거기서 싹이 올라오고 움이 피면 또 싹이 올라오고 그러듯이, 자연히 너 구완할 사람이 생겨.”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낳기는 제 부모가 낳았지만 맥은 네가 붙인다.
맥 모르는 놈은 죽는 것이니 난데없는 도인이 나선다. 천지에서 너를 돌아다보느니라. 네 목숨 살려낼 사람이 생겨. 아무튼 잘 있고 잘해라, 잉?” 하고 다정스레 말씀하시니라.
복남을 불러 호연을 당부하심
이어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느그 오빠 빨리 불러라.” 하시거늘, 잠시 후에 복남이 이르니 말씀하시기를 “네 동생 좀 잘 살펴 줘라.” 하시며 한동안 무슨 말씀을 내려 주시니라.
道典 10:57) 나 금방 올라간다
이 때 밖에는 통지를 받은 성도들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연이어 도착하거늘 서기가 사랑으로 안내를 하면 형렬이 상제님께 아뢰어 몇몇 사람만 들게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서기가 따로 받아서 일일이 거주성명을 물어 적으니라.
상제님 말씀 왜곡자들을 경계하심
상제님께서 문득 밖에 모인 여러 성도들에게 꾸짖듯이 말씀하시기를 “글 배우는 사람이 도둑놈이지 도둑놈이 따로 없나니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 잡부자작(雜敷自作)하지 말라. 나의 도가 씨가 되어 싹이 나고, 또 싹이 나서 연(連)하게 될 때 그놈들이 앉아서 요리조리 다 만드니 앞으로는 해를 돌아가면서 속고 사는 세상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나가자.’고 눈짓을 하니 호연이 밖으로 나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갑자기 앞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바람이 휘몰아 들어오고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며 시퍼런 번갯불이 천둥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오른손으로 번갯불을 탁 잡으시며 크게 호령하시기를 “어떤 놈이냐? 내가 시간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네가 잘난 체하여 마음대로 불칼을 내두르느냐! 나 금방 올라간다.” 하시니라.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 상제님의 도법과 행적이 왜곡되어 난법 시대가 열릴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상제님의 진실한 정체를 왜곡하고 수부님을 비롯한 종통전수 도수를 부정, 말살하는 패역자들이 속출하고, 선천 학문의 틀에 갇힌 학자들이 전공바보가 되어 문자놀음으로 상제님의 무극대도의 무궁한 조화세계를 왜곡시킬 것을 크게 경계하신 것이다.
道典 10:58) 형렬에게 기대어 태을주를 읽으심
이 때 호연이 신안으로 보니 장수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장들이 말을 타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채 문밖과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더라. 신장들이 상제님께 각기 인사를 드리며 ‘저는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입니다.’ 하고 일일이 보고를 드린 다음 한 신장이 앞으로 나서서 “모시러 왔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호통 치시기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뭣 하러 그새 발동을 했느냐! 때가 되기도 전에 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
신장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서서 하명을 기다리더라. 형렬이 호연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니 호연이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나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하며 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안아다가 놓아 줘라.” 하고 명하시매 누가 뒤에서 덥석 보듬어다 찬문의 방에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가 버리는지라 호연이 홀로 방에 앉아서 보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신장들 가운데 한 신명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 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고 이르더라.
이에 줄의 맨 앞에 선 신장 하나가 줄의 가운데로 걸어나오니 양쪽 신장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르거늘, 그렇게 얼마를 걸어나와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서 되돌아가더니 이내 처음과 같이 정렬하니라. 신장들이 두 줄로 서서 명을 기다리는데 상제님께서 “나○○ 왔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그 신장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기로 다른 신장이 나서며 “오시(午時) 지났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놈아, 네가 시기를 아느냐?”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드시고 “날은 덥고 머나먼 길을 어찌 갈꺼나.” 하시며 형렬에게 몸을 기대신 채 작은 소리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니 방안에는 김형렬과 최상문, 그 외 두 명의 성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라.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
道典 10:59) 하늘 보좌에 오르실 때
이 때 문득 하늘문이 열리며 선녀들이 황금빛 발판이 달린 빨간 줄을 좌우에서 내려 주고, 마당과 고샅을 가득 메운 신명들은 노래하듯 일제히 어떤 글을 읽는데 마치 벌들이 모여서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가 온 하늘에 울려퍼지니 그 광경이 아주 웅장하더라. 상제님께서 다급하게 “형렬아!” 하고 부르시며 “잘들 있거라. 잘 있거라, 간다.” 하시고 하늘로 오르시는데, 어느새 옥색 도포에 관을 쓰시고 붉은 띠를 두루마기 끝까지 길게 늘이시고
홍포선(紅布扇)으로 얼굴을 가리신 모습이 마치 장가드는 새신랑 같더라. 선녀들은 하늘에서 줄을 끌어올리고 말을 탄 신장들은 양옆에서 상제님을 호위하며 공중을 떠가거늘 그 광경이 참으로 위엄 있고 웅대하며 눈부신 대광명 속에 열려 있는 하늘길이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찬연하고 황홀하더라. 상제님께서 “나중에 또 이와 같이 내려오리라.” 하시고 하늘문에 드시니 순간 문이 닫히거늘 먹구름이 온 대지를 흑암으로 물들이는 가운데, 기세를 더하여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세차게 떨어지는 장대비와 번쩍번쩍 대지를 훤히 밝히는 번개와 방포성과도 같은 천둥소리에 온 천지가 소요하더라.
道典 10:60)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사방에 잠시 흑암이 깃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호연이 있는 방으로 번갯불이 쑥쑥 들어오며 문이 저절로 열리거늘 호연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올라가지 마요. 떨어지면 어째요? 나랑 가요!” 하고 동동거리며 울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애처로이 여기시어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나도 이제 몇 번을 둔갑할지 모르고, 나라고 안 늙고 이렇게 생겼간디?” 하시니, 호연이 천만 뜻밖에 상제님께서 대답해 주심에 반갑고 또 안심이 되어 “둔갑은? 또 호랑이 가죽 둘러써요?” 하고 대꾸하거늘, 상제님께서 “아니, 내가 천하를 갖고 내두르니 너 같은 녀석은 후우 불면 날아가.” 하시니라.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에 호연이 아직도 상제님께서 곁에 살아 계신 것처럼 느껴지므로 “어디 해 봐, 내가 날아가는가. 안 날아가네!” 하며 장난을 치는데, 상제님께서 “호연아, 잘 있거라. 이 다음에 또 만나자!” 하시며 마지막 인사말을 하시더니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시거늘, 마당과 고샅에서 엎드린 채 비를 맞으며 흐느끼던 성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오색 서기가 비치는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 날은 환기(桓紀) 9108년, 신시개천(神市開天) 5807년, 단군기원(檀君紀元) 4242년, 조선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6월 24일(양력 8월 9일)이요, 상제님의 성수(聖壽)는 39세이시더라.
道典 10:61) 영신이 뜨셨다
호연이 상제님을 뵈려고 바깥사랑으로 들어가니 형렬이 “벌써 떠나셨다.” 하고 이르거늘, 그래도 가까이 가서 주물러 보며 ‘여기 있는데, 참말일까?’ 하고 용안에 얼굴을 가져다 대니 찬바람만 훌훌 나오더라. 이를 지켜보던 형렬이 안쓰러워 “영신(靈身)이 뜨셨다.” 하고 재차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조화로 하늘에 오르시고 몸만 계시는 줄로 믿었던 호연이 그제야 상제님께서 어천하셨음을 실감하니라.
이 때 공우가 크게 울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고, 덕찬, 준찬 형제는 “허망하다, 허망하다.” 하며 슬피 울부짖으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자 잠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날이 청명하게 개며 오색 구름이 뜨더니 지붕으로부터 하늘까지 뻗친 영롱한 서기가 이레 동안 계속되니라.
道典 10:62) 흩어져 돌아간 성도들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즈음에 성도들에게 몇 차례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더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매 몇몇 성도들이 크게 낙심하여 흩어져 돌아가니라.
道典 10:63) 상제님의 성체를 모심
이 때 형렬이 새로 장만한 옷을 입혀 드리고 성체를 아랫목에 동쪽으로 향하도록 문과 나란히 모신 후에 앞뒷문을 열어 두고 주렴을 치니 모두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 함부로 떠들어 보지 못하거늘, 일부 성도들과 상제님께 평소 은혜를 받은 이들이 상제님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야단이더라.
통곡하시는 성부님
형렬이 손바래기 본댁에 부고하여 성부님을 모셔오니 성부께서 통곡하시며 슬픔으로 날을 보내시다가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지 사흘 만에 실성하신 듯 소란을 피우시므로 형렬이 아무데도 가시지 못하도록 붙들고 정신이 드실 때까지 지키게 하며 성부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니라.
道典 10:66) 어천하시던 날 심부름 간 안내성
한편 이 날 새벽에 상제님께서 안내성을 따로 불러 정읍으로 심부름을 보내시거늘 내성이 정읍에 가서 일을 보고 수일 후에 돌아오는데 상제님께서 주막에 앉아 술을 드시다가 내성을 부르시어 “이리 와서 내 술 한잔 먹고 가라.” 하시더니 목을 축이고 나매 “먼저 가 있으라.” 하시니라. 이에 내성이 홀로 구릿골에 들어서니 곡하는 소리가 진동하거늘 의아하여 연고를 물으니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는지라
내성이 황당하여 “방금 전에 선생님께 술을 받아 먹고 왔는데 그 무슨 소린가?” 하며, 사람들을 밀치고 급히 방으로 들어가 보니 상제님의 옥체에 흰 천이 덮여 있더라. 이에 내성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문득 “내성아! 너는 내 몸을 쳐다보지도 말고 손도 대지 말고 일절 관여도 하지 마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떠오르는지라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정신을 수습하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가니라.
道典 10:73) 대밭 끝에 초빈하니라
이튿날 형렬의 집 뒤 모시밭을 지나 대밭 끝에 상제님의 성체를 초빈(草殯)하니 성도들이 서글프고 허망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힘없이 돌아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방성대곡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되돌아가 보니 경석이 홀로 남아 초빈을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거늘, 몇몇 성도들이 가까스로 만류하여 경석과 함께 내려오니라.
이후 여러 날이 지나도록 성부님께서 구릿골을 떠나지 못하시니 경석이 그 마음을 위로하여 고부 본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크게 상심하신 성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니라. 장례 경비는 일전에 상제님께서 궤 속에 넣어 두라 하신 돈으로 하고 남은 돈은 본댁으로 보내니라.
道典 10:80) 형렬의 허탈한 심정과 호연의 그리움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시매 가장 허전하고 쓸쓸해하는 사람은 형렬과 호연이더라. 형렬이 도무지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땅만 쳐다보며 앉아 있는 때가 잦거늘 호연이 보다못해 하루는 “땅을 천 번 쳐다본들 어째요, 뚫어져요? 왜 그러고만 앉았어요?” 하니, 형렬이 “내 속의 돌을 보면 돌이 뵈느냐?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내게 별 인지(認知) 없이 가셨으니 그것을 알기 위해 골똘하느라고 그런다.” 하니라.
한편 호연 또한 상제님께서 살아 생전에 다니시던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사랑이 사람들로 수선스러우면 ‘행여 계실까.’ 하여 달려가기가 일쑤요, 약방에서 상제님을 그리워하며 ‘어디를 갔길래 나를 안 데리고 혼자 가서 안 오는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이제 나는 무엇이 될거나.’ 하며 울기도 수차례이거늘 그 때마다 방안에서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는 소리가 뱅뱅 울리더라.
하루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매 호연이 “언제 봐, 언제 봐? 언제 와서 나를 안고 갈라는데, 언제 안고 가?” 하며 애타게 부르니
말씀하시기를 “인제 태운장이 안아 준다. 날 찾지 말고 태운장하고 인연을 맺어라.” 하시니라. 이후 호연이 마음을 의지할 곳 없어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에 상제님을 원망하면서도 항상 다시 오시기만을 바라며 여러 해 동안 호주머니에 상제님의 머리카락을 넣고 다니고, 또 상제님께서 생전에 “흰구름이 뜨거든 나인 줄 알라.”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밤낮 하늘만 쳐다보며 지내니라.
道典 10:81) 너희들을 살리려고 갔는데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기침 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 일이냐.”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상제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희 선생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說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 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안 사람 판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판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 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하니 판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 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상제님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道典 10:84) 금산사로 찾아간 성도들
7월 그믐께 차경석, 김경학, 김광찬, 박공우가 김형렬을 방문하고 장래 일을 의논할 때 경석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이 곧 미륵불이라 말씀하셨고, 또 어천하실 때 ‘금산사로 들어가리라.’ 하셨으니 우리가 이제 미륵전(彌勒殿)에 참배하여 당신을 대한 듯이 정성을 들여 취할 길을 생각하면 반드시 선생님의 감화를 받아 깨달음이 있으리라.” 하며 미륵전 치성을 주창하거늘, 성도들이 모두 이를 옳게 여겨 치성을 모시기로 하니라.
경학이 소 한 마리를 준비하고 나머지 치성 제물은 다른 성도들이 준비하여 금산사에 들어가니 이 때 한 늙은 신중이 돌무지개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영하며 말하기를 “어젯밤에 금산사 여러 불타와 오백 나한과 호위신장들이 일제히 돌무지개문 밖에 나와서 거룩한 행차를 맞아들이는데, 그 행차 뒤에 그대들이 따라오는 꿈을 꾸었으므로 이제 나와서 기다리는데 그대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되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하더니
다시 경학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대들의 앞에 서서 수염이 복스럽게 난 도인이 걸어 왔는데 바로 이분이오.” 하니라. 일행이 미륵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종이에 ‘옥황상제지위(玉皇上帝之位)’라고 써서 미륵불상 몸에 붙이고 경학의 진행으로 치성을 올린 뒤에 그 종이 위패를 떼어 안고 금산사 경내의 사실(私室)에 들어가 벽에 모시고 각기 정심하여 상제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니라. 이 때 형렬이 문득 신안이 열리거늘 대장전(大藏殿)에 들어가 석가불에게 장래일을 물으니
석가불이 책을 들고 입을 열어 가르치려 할 즈음에 상제님께서 완연한 미륵불의 형상으로 들어오시어 책을 빼앗고 입을 막으시더라. 이에 형렬이 목이 메어 “스승과 제자된 사이에 알면서도 이렇게 무심할 수 있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시 한 수를 보여 주시고 홀연히 사라지시니 이러하니라.
魚糧水積三千界요 雁路雲開九萬天이라
어량수적삼천계 안로운개구만천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어량(魚糧)은 물 속 삼천 세계에 쌓여 있고, 기러기 길은 구름 개어 하늘 구만리로다.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형렬이 할 수 없이 물러나와 일행에게 사유를 말한 후에 공부를 파하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 날이 바로 상제님께서 ‘환궁하리라.’ 하신 8월 초하루이더라.
道典 10:86) 나도 공부를 해 보리라
경석은 금산사 치성을 모시기 전부터 ‘조용한 방이 있으면 공부를 해 보리라.’ 하고 작정하였더니 8월 1일 치성 후에 경비가 없어 집에 돌아가 한동안 먹을 끼닛거리를 변통하여 마련하고 구릿골에 가서 형렬을 설득하여 함께 금산사로 들어가니라. 이로부터 14일간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계실 것으로 알았던 상제님께서 떠나신 이치가 무엇인가.’ 하는 의혹을 풀고자 정진하고,
집에 돌아온 뒤로도 가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사색에 잠기니라. 밤이면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집 앞 버드나무 아래에서 날이 새도록 골몰하고 낮이면 일찍이 상제님과 함께 올랐던 대흥리 서쪽 비룡산 상봉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옥황상제님, 옥황상제님!” 하고 부르짖으며 대성통곡을 하더니
하루는 비룡산 상봉에 올랐을 때 뜻밖에 등 뒤에서 “경석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늘 급히 돌아보니 꿈에도 그리는 상제님이신지라 경석이 깜짝 놀라 엎드려 절을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지 아니하였노라.” 하시고, “내려가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하여라. 이후에 올 날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홀연히 보이지 않으시니라. 이로부터 경석이 상제님의 어천을 의심하지 않고 앞일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를 생각하니라.
道典 10:89) 다시 깨어진 김경학의 믿음
금산사 치성 후로도 성도들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상제님과 같은 다른 스승을 찾아보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니라. 경학 또한 스승을 찾아 방황하다가 경술(庚戌 : 道紀 40, 1910)년 2월에 집에 돌아오니 늙은 어머니가 급병으로 죽고 가족들은 초종(初終)에 쓸 제구 준비에 바쁘거늘 “내가 만고의 대신인(大神人)을 따르다가 늙으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며
대성통곡하다가 ‘태을주로 사람을 많이 살리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일시에 마음을 돌려 방에 들어가 가족을 물리친 다음 상제님께 기도를 올리고 지성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외우니 문득 노모가 살아나니라. 이로부터 병자가 생기면 자청하여 찾아가 태을주를 읽어 고쳐 주니 ‘경학이 신의(神醫)가 되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니라.
늙은 어머니: 광산(光山) 김씨(1824∼1915). 이 때 살아난 뒤로도 5년을 더 살았다.
道典 10:90) 후천 대학교 도수의 포교운 발동
그 즈음 인근 놋점리 류의경(柳義卿)이 장질부사로 사경에 이르매 그 집안사람이 경학을 찾아와 살려 주기를 간청하거늘
경학이 저녁에 찾아가 청수를 올린 뒤 상제님께 기도하고 태을주를 외우니 의경의 병세가 돌려져서 수일 만에 완쾌되더라.
이에 의경이 경학에게 주문을 읽어서 큰 병이 치료되는 이치를 물으니, 경학이 상제님의 신성하심과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시는 조화주이심을 설명하여 의경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니라.
그 길로 의경을 데리고 금산사 미륵전에 가서 치성을 드린 뒤에 구릿골 약방에 이르러 상제님의 유적을 참관하며 며칠 동안 머무를 때 하루는 문득 약방 아랫목 벽에 칼끝으로 그은 십자형(十字形) 자국이 눈에 뜨이므로 이상히 여겨 그 오려진 네 각(角)을 떼어 보니 한 자 길이나 되는 큰 날 일(日) 자가 씌어 있더라.
십봉명개훈
며칠 후 다시 약방을 방문하여 둘러보는데 약방 동편 문 상인방(上寅方) 위 벽지에도 십자형 칼끝 흔적이 나 있거늘, 또 떼어 보니 그 이면(裏面)에 ‘십봉명개훈(十奉命開訓)’ 다섯 자가 가로로 씌어 있더라. 의경이 집에 돌아와 저녁에 청수를 올리고 태을주를 외우니 문득 신안이 열리고 이어서 무수한 기적이 나타나거늘,
마침내 ‘태을주를 읽으면 신의 감화가 내린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므로 성도들도 이로부터 태을주를 읽는 것으로 수련을 행하기 시작하니라.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경학의 집에 대학교(大學校)를 설치한다.” 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류의경(柳義卿, 1878∼1961): 본관 진주(晉州). 부 명원(明源)과 모 청주 한씨(韓氏)의 1남 3녀 중 장남.
道典 10:94) 첫 어천절 치성에 나타나신 상제님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신 어천 1주기 치성절을 맞이하여 많은 종도들이 구릿골로 찾아오니라. 종도들이 모여 “아이고, 우리 제자들이 수십 날을 육로로 천 리, 물로 천 리 그렇게 왔는데 선생님은 가뭇없이 안 계시니….” 하며 탄식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저희들이 다 모였는데 어찌 모르십니까? 진정 모르십니까?” 하며 부르짖거늘, 갑자기 벼락이 치고 하늘이 우그르르 울리며 오색 찬란한 구름이 수를 놓더니
하늘로부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때 누워 계셨던 자리로 오색 서기가 박히더라. 그제야 종도들이 기뻐하며 탄성을 지르거늘 호연이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얘기 좀 하세요.” 하고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뭔 얘기를 하느냐? 시시하니 일부러는 얘기를 못 한다. 네가 하도 원을 하니까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라도 가다오다 해 주지, 내가 누구라고 나타나겠느냐.”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신명이 안 들고는 일을 못하는 것이니 너희들이 제를 지내면 천지신명들도 먹고 좋다마는 내가 천하일을 하러 다니는데 그것 먹으려고 내려오겠느냐?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진정으로 잘 먹어라.” 하시니라.
道典 10:107) 여자의 첫 월경 피로 쓴 가을의 인간 몸개벽 공사
이내 호연이 첫 월경(月經)을 시작하매 준비한 종이를 쌓고 그 위에 호연을 앉히거늘 첫날은 책 한 권 분량이 조금 못 되게 젖고 다음날은 책 두 권 분량이 흠뻑 젖으니 너무 흥건하게 젖은 것은 짜서 사용하는데, 짜고 모인 피만도 두어 사발이나 되는지라 그것으로 남은 종이에 제비를 그려 넣기도 하고, 점도 찍고, ‘감결(甘結)’이라 서(書)하여 완성하니라.
이 공사에 참여한 사람은 김형렬과 서중옥, 김기보, 장기동으로 공사를 마친 후에 종이째로 묻은 것을 조그맣게 잘라서 하나씩 가지고, 월경수(月經水)로 점을 찍고 글씨 쓴 종이도 각기 한 장씩 가져가니라. 이후 호연이 상제님의 성적(聖蹟)을 증거하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고의 나날을 보내며 깊은 회한과 원망으로 한탄을 하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시어 “네게서 나간 이슬을 모르냐? 네 육신에서 우러난 피를 내서 선매숭자를 써 준 맥이 있는데 어찌 몰라야. 너 그것 잊어버리지 마라. 증명 없이 사는 놈 없다. 죽어도 증명이 있어야 한다. 아는 놈은 너를 건질 테니 걱정 말아라.” 하고 위로해 주시니라.
道典 10:108) 부부의 연을 맺은 형렬과 호연
선매숭자 공사를 마친 후에 상제님께서 인연 맺어 주신 대로 형렬과 호연이 부부의 연을 맺으니 전주 인봉리(麟峰里)에 방 하나를 얻어 새살림을 마련하고 이 해 겨울에 첫아들을 낳으니라.
道典 10:109) 영안으로 아이를 찾아 준 호연
호연이 17세 되는 계축(癸丑 : 道紀 43, 1913)년에 전주 새청금머리에 새 집을 사서 이사하니 형렬이 흑석골 오두막집을 아주 송은주에게 주니라. 이른 봄에 하루는 호연의 앞집에 사는 여인이 찾아와 “언니집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우리 딸이 오늘 온다더니 아직 안 오네요.” 하며 걱정하거늘 호연이 영안(靈眼)으로 보니 문둥병자가 잡아간 것이더라.
이에 호연이 “문둥이가 아무 굴속에 데려다 놨으니 속히 인부를 데리고 쫓아가시오.” 하고 일러 주매 그 어머니가 서둘러 가서 딸아이를 찾아오니라. 또 한번은 이 동네의 젊은 새댁이 갓난아이를 시아버지에게 맡기고 들로 일을 나갔는데, 시아버지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에 아이가 없어진지라 호연을 찾아와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하거늘,
호연이 “지금 호랑이가 물어다 놨어도 죽지 않았으니 칼을 가지고 담박질해서 가시오. 호랑이가 바로 들어오지 않고 뒷걸음질로 들어올 테니, 굴속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칼로 찌르고 데려오면 그만 아니오?” 하고 일러 주매 아이를 무사히 찾아오니라.
道典 10:110) 호연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도록 엄히 경계하심
이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시어 문득 호연을 크게 꾸짖으시기를 “아는 체하면 네 신명이 없어진다고 했건만 그걸 못 참아서 나 하는 시늉을 해? 네가 그렇게 하면 살지도 못할 터인데 그것을 짐작 못 하느냐?” 하시고, 이어 형렬에게 “너는 그걸 못 하게 잡아야지 가만 두느냐? 그렇게 만들면 나중에 후끝이 좋겠느냐?” 하시고는
형렬의 얼굴과 코를 무엇으로 동여매신 뒤 우물에 처넣으시니라. 이에 호연이 놀라서 형렬을 구하려고 달려드니 상제님께서 엄지와 검지를 벌려 그 사이에 호연의 턱을 거시거늘, 호연이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지라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니라. 상제님께서 이튿날이 되어도 형렬을 우물에서 꺼내 주지 않으시매, 호연이 참다 못해 “밥 먹은 지가 며칠인데 그렇게 굶길 작정이에요? 사람을 죽일 적에도 먹여서 죽인다는구만.” 하니, 상제님께서 “건방지게 밥을 먹이려고 그러냐?”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아, 그렇지 않아요?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저이랑 나랑 부부를 정해 놓고서는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그래요?” 하고 따지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근본이 독한 사람으로, 우리 집안도 모르고, 동기간도 없다. 너 아는 체하고 쏙쏙 나서는 것을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그걸 못 참아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니, 내 말이 실언(失言)이 되니 그런다.” 하시거늘, 호연이 “그나저나 어서 밥이나 먹이게 꺼내 주세요. 대체 밥 먹은 지가 언제예요?” 하매, 상제님께서 “흥, 그래도 안타까워서 그러냐? 안 죽어, 안 죽어!”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니라.
문) “그 때가 몇 살 때였어요?” 답) “내가 시집 갔은게 17살 먹어서.”
문) “그 때 계절은요?” 답) “봄, 꽃들 아직 안 피었어.”
문) “그 때도 목덜미에 피멍이 있었어요?” 답) “응. 여기다 이렇게 걸어 숨을 못 쉬게 턱을 딱 걸어.”(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10:111) 호연의 기운을 거두심
형렬이 우물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상제님께서 호연의 앞에 무슨 글을 펴 보이시며 일러 말씀하시기를 “호연아, 생각을 해 봐라. 사람이란 크고 작고 간에 틀이 있는 것이니, 큰 틀이 되어야지 작으면 내두르기 쉽고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 큰 틀이 될 사람이 작은 사람처럼 자꾸 그러느냐!” 하시거늘, 한참 후에야 호연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잘못했어요.” 하고 뉘우치니
상제님께서 재차 확답을 받으신 뒤에 “아무개야, 어서 밥 차려라.” 하고 명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이제 다시는 안 해요.” 하고 다짐하니 상제님께서 “누가 하게 하간디?” 하고 홀연히 사라지시거늘, 호연의 목에 진 피멍이 한동안 지워지지 아니하더라. 이후로 호연의 신령한 지각문(知覺門)이 닫히어 전과 같이 만사(萬事)를 훤히 알지는 못하고 다만 신명이 오고가는 것만 보고 들을 정도가 되니라. 또 상제님의 말씀을 명간(銘肝)하여 누가 청탁을 해 와도 함부로 나서지 않으니라.
道典 10:117) 태운 김형렬의 죽음
임신(壬申 : 道紀 62, 1932)년 11월 중순에 형렬이 화병으로 몸져눕거늘, 이 때 호연은 넷째 딸 복임(福任)을 해산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형렬을 간호하니 가세가 기울어 미음조차 끓여 주지 못할 지경인지라 이를 보다 못한 형렬이 11월 25일에 셋째 아들인
천리마의 집으로 가니라. 이후 사흘 만에 형렬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거늘 호연과 다섯 자식들이 출상을 마치고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김씨 일가에서 밥해 먹을 솥 하나 남기지 않고 살림을 전부 가져가 버렸더라.
이에 호연이 어린 자식들을 언제까지나 굶길 수도 없는 터라 이날 저녁부터 치마 속에 그릇을 감춰서 밥을 얻어다가 먹이는데, 이 해 섣달에 큰아들이 치질을 잘못 치료하여 연이어 세상을 떠나거늘, 호연이 한량없는 괴로움과 허탈한 마음에 급기야 죽음을 결심하고 치마에 돌을 가득 끌어안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니 마치 뒤에서 무엇이 끌어당기는 듯하여 물속 깊이 빠져지지 않더라.
천리마의 집으로 가니라: 이 때 상황을 김호연 성도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어린애를 품고 내가 아랫목에 가 누워 있고, 즈(제) 아버지 데려가면서 인저 나에게 시켜. ‘아부지 이불 달라, 요 달라. 또 아부지가 먹던 꼬창(고추장) 가져오란다.’고. 돌아갈라고 하는 이가 꼬창 달라고 할 것이여? 핑계에 모두 달라고 해서 가져가려고 하지.”
김형렬 성도와 김호연 성도는 3남 4녀를 두었다. 그 때의 정황에 대해 김호연 성도는 “배고픈 세상…. 어린것들은 너이나 쭉 드러누웠고, 아이고, 조석 세 때에 땔 것이 있어, 먹을 것이 있어? 아이고, 내 고생 말도 마.” 하고 회고하였다.
무엇이 끌어당기는 듯하여: “죽을라고 씌어야지, 안 죽어져. 물로 들어가도 여기 차니까, 안 죽어질라고 도로 나와져. 어떻게 그 말을 다해.”, “요상햐. 무엇이 불러내는가. 요렇게 고상하고 살란게 안 죽어져.”(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10:118) 송광사에서 팔대장삼과 고깔을 구해옴
계유(癸酉 : 道紀 63, 1933)년에 호연이 궁핍한 생활을 이기지 못하여 아홉살 된 둘째 아들 복수를 전주 송광사(松廣寺)로 보내니
이로부터 복수가 송광사의 행자로 있다가 2년이 지난 을해(乙亥 : 道紀 65, 1935)년 삼월삼짇날에 비로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상좌가 되거늘, 호연이 기별을 받고 송광사에 가서 예식에 참관하니라. 모든 예식이 끝난 뒤에 호연이 팔대장삼과 고깔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니라.
道典 10:120) 상제님과 함께 선천 성자들의 고향을 순회함
안내성이 모악산 백운동(白雲洞)에 있을 때 하루는 새벽에 치성실에서 남방을 향해 정성껏 청수를 모시고 공부를 마친 뒤에
부엌으로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한 길 가량 되는 밑으로 떨어지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혼절하거늘, 가족들은 혹 생명이 위태로울까 걱정하여 내성을 방으로 옮기는 등 법석을 떠는데, 내성이 문득 “경만아! 이리 나오너라.” 하는 소리에 깨어나 마당에 나가 보니 환한 대낮에 상제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어 공중에 떠 계시더라.
내성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인사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내가 너 때문에 왔다. 나를 따라가자.” 하시고, 구름을 내성 가까이에 대시며 “여기에 타라.” 하시거늘, 내성이 구름을 타니 어디론가 날아가 순식간에 한 낯선 곳에 이르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유대의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하시고, “그 제자들이 선령을 심히 박대하니 무슨 복을 바랄 수 있으리오.” 하시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니라.
다시 구름을 타고 어떤 곳에 당도하매 “여기는 석가가 태어난 곳으로 본시 왕국이 있었나니 잘 보아 두어라.” 하시고, “석가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람들의 천륜을 끊게 하고 인종씨를 말려 모두 멸망당하게 하였을 것이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다시 어떤 곳에 도착하거늘 “여기가 바로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니라.” 하시고, “그 제자들이 도둑놈이 되었다.” 하시며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이제 그만 가자.” 하시고 내성의 집으로 돌아오시니 어느덧 수 시간이 흘러 해 넘어가는 저녁때가 되었더라. 상제님께서 떠나시며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깨어나거든 마초(馬草)를 달여 먹으라.” 하고 약을 가르쳐 주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니 몸이 차츰 회복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