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단위학교에서 워크숍이나 세미나와 같은 이름의 행사가 가끔 있다. 대학원이나 무슨 학회의 학술발표회 같은 이름이다. 예전의 수직문화에서 수평문화로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른 추세다. 부장모임이나 교무회의에서 일방적 지시나 전달이 아닌 아래층으로부터 의견 수렴을 하는 과정이다. 말이 그렇지 종전의 직원야유회를 조금 변형 시킨 것이라 보면 된다. 관련부서에서는 신학년도 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기본적인 내용은 출발 전 설문지로 받아두었다.
우리 학교에선 지난여름 방학식을 끝내고 지리산 계곡으로 래프팅을 가기로 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어느 대학에서 논술 강좌 연수중이었지만, 갑자기 중부지방에서 입은 수해로 한가로이 어디 다닐 형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그 행사가 친목회에서 겨울 방학식에 맞추어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당일 코스의 남해안 어디하고 1박 2일의 서해안 두 안에서 다수가 안면도행을 원했다. 나의 의사표시는 옆자리 친목회 총무한테 위임했다.
학년말의 사무정리와 송년 분위기가 완연한 12월 28일. 아침 교내 방송실에서 내보낸 화상으로 교실에서 방학식을 마치고 아이들은 일찍 집으로 갔다. 우리를 태워갈 전세버스는 이미 학교 울타리 뒤에 대기 중에 있었다. 행정실을 포함하면 교직원이 쉰 명이 넘은 데 연수나 집안 일로 몇 명이 빠졌지만 버스 한 대 좌석이 거의 다 찼다. 내 옆에는 본 교무실에 있는 평생교육부장인 영어과 김 선생이 탔다. 이틀간 짝지가 되어 다녔다.
나는 올해 이곳 학교로 부임해와 2학년 학년실에 있었기에 사적인 얘기는 전체 직원들과 자주 나누어보지 못했다. 본 교무실 외에 각 학년실이 있고 정보실과 행정실이 있으니 교직원들이 여러 곳에 분산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교무회의 때 짧게 얼굴을 보는 정도다. 그래도 나는 생활 속에서 적어가는 글 부스러기들을 교내 우편망인 쿨 메신저로 자주 날려 보내냈다. 그랬기에 많은 교직원들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는 헤아리지 싶다.
이번 여정은 내가 한 번도 다녀온 온 곳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겨울 풍경도 볼 수 없었다. 갑자기 꽁꽁 얼어버린 날씨에 차 안과의 바깥의 기온 차로 자꾸만 성에가 끼어 창문을 닦아도 별 수 없었다. 지리산 내륙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계룡산 갑사 앞에 도착했다. 계룡산을 동서로 두고 ‘춘 동학, 추 갑사’라는 이야기는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절 입구 나무와 주변 풍광이 가을에 운치 있는 곳인가 보다.
버섯전골과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고 우리 일행은 갑사 산책을 나섰다. 이틀 후면 내지도 않아도 될 국립공원입장료를 비싸게 물고 절 안으로 들어섰다. 일부는 겨울 잠바를 입지 않고 양복으로 나선 분도 있고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여름 모자를 쓴 분도 있었다. 다 같은 사찰이지만 갑사는 대웅전이 특이하게 맞배지붕 양식이더구나. 바쁘게 둘러 나오다 보니 조금 아쉬웠다. 높다란 감나무에 조랑조랑 떫은 감이 홍시에서 미라처럼 꼬들꼬들하게 말라가고 있던 것이 인상 적이었다.
서둘러 화장실에 들러 아까 마신 막걸리를 걸러내고 차에 올랐다. 간간이 날리는 눈발 사이로 계속 서진하여 닿은 곳이 어둠에 쌓인 조용한 방포 포구의 횟집이었다. 이곳 이웃에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꽃지해수욕장이 있었다. 어디 사진에서 본 할미 할배바위 사이 바다로 첨벙 빠지는 해넘이의 장관은 이미 두어 시간 전에 지났지 싶다. 미리 예약된 횟집에는 정갈한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학교나 가정의 잡다한 번뇌는 잊어도 좋았다. 관리자든 평교사든 아저씨든 아가씨든 마음 편하게 소주잔을 서로 나누었다.
이후 지하의 노래방에서 여흥의 자리가 있었다. 나는 얼마 어울리다 캔 맥주 한 모금에 정신이 흐려져 바깥으로 나왔다. 밤바다 공기가 꽤 차가웠다. 잠시 서성이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에 먼저 올라 집으로 전화를 넣어보았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일행들이 차에 올랐다. 밤이라 어딘지 모를 곳으로 십여 분 가서 호수 곁의 펜션에 닿았다. 여장을 풀고 보니 일부가 고스톱 치려는 방이라 다른 동으로 옮겨서 곯아떨어졌다. 씻지도 않고 옷은 입은 채로였다.
나는 제법 자고 갈증을 느껴 잠에서 깨었다. 바깥 거실에는 여선생들 소리도 왁자하게 들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휴대폰에 찍어본 시간이 한 시가 지나고 있었다. 목마름을 더 못 참아 잠바와 털모자를 쓰고 거실을 지나 바깥으로 나왔다. 낯선 곳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을 먹을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가로등도 없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었다. 삼십 분도 더 걸려 닿은 곳이 안면도읍이었다. 그곳 편의점에서 생수를 두 통이나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다시 차가운 밤공기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우리 일행이 잠든 숙소에 들리니 새벽 세 시가 지나고 있었다. 내가 자고나온 펜션은 불이 꺼졌고 문이 잠겼다. 할 수 없어 처음에 들린 고스톱 치는 동으로 갔다. 그때까지 몇 분들이 화투를 치고 있었고 일부는 이불도 펴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나도 그 사이 끼어 다시 잠시 눈을 붙였다. 나는 새벽에는 어김없이 일어나는지라 다섯 시 무렵 다시 일어나 숙소 아래 호수 주변을 서성이다 배낭을 두고 처음 잠든 펜션으로 갔다.
아직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이제는 할 수 없다 싶어 노크하여 문을 열게 하여 들어가 세면도 하고 여장을 꾸렸다. 알고 보니 간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나눈 거실 생수통엔 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시 간밤에 식사하고 여흥시간을 보낸 방포의 식당으로 갔다. 생선뼈를 우려낸 미역국으로 시원하게 속을 풀었다. 이어 이름이 예쁘게 ‘꽃지’라 불리는 겨울바다 백사장 앞에 섰다. 일출도 낙조도 아닌 시간대였지만 쉽게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마음은 오래 붙들어 두고 차에 올랐다.
이제는 버스가 계속 동진하여 갔다. 충남 논산과 금산을 등지고 있는 전북 진안 대둔산 아래였다.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로 구름다리 아래까지만 올랐다 내려왔다. 약간의 고소공포를 느끼는 나는 고작 전망대에서 기묘한 바위들로 산세 수려한 대둔산에 눈 덮인 경치를 상상해보다 되돌아왔다. 하산하여 전주식당에서 스무 가지가 넘게 나온 푸짐한 점심상을 받고 쭉 미끄러져 김해 장유에 닿으니 정한 시간 오후 여섯시에서 십분 전이었다. 여행은 설렘이었고 여운은 아쉬움이었다.
첫댓글 주 선생님! 올해도 왕성한 창작욕으로 우리 가락까페를 뜨겁게 데워 주십시오. 임의 대하 같은 생각의 흐름, 멈추어져선 안 되겠죠? 시로든, 시조로든, 수필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