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
에 가셔서 2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
지 않아서 사십 일이 지났을 때에는 몹시 허기지셨다. 3그 때에 악마가 예수
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하고 꾀
었다. 4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5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6다시 말하였다.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저것은 내가 받은 것이니 누구에게나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
게 줄 수 있소. 7만일 당신이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하면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것이오."8예수께서는 악마에게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
겨라.`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9다시 악마는 예수를 예루
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
에서 뛰어내려 보시오. 10성서에 `하느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지켜 주
시리라.` 하였고 11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너를 받들게 하시
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2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
희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 하는 말씀이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악마
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 묵 상 -
우리 교회 안에 빠스카 축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은 없다. 빠스카 축일
이야말로 다른 모든 축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승리
와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빠스카 축일의 신비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하여 40
일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의 충만성에
참여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간으로 사순절을 살고 있다. 오늘의 성서 대목들은
이 빠스카라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피곤하지만 기쁨에 차 있는 우리 여정
의 의미와 방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제1독서: 신명 26,4-10: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고백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8-9절)에서 수확
한 첫 결실을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감격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첫 결실
을 바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고백하고 있다. "저의 조상은 떠돌아다니
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
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
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
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 큰 두려움과 징표와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
다. 그리고 저희를 이 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
는 땅을 주셨습니다"(5-9절).
이 대목을 사순절과 연결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은 12부족
의 시조인 이스라엘이고, `떠돌아다니는것`이란 말은 `유목민`만을 의미하는 것
이 아니라, 광야에서 `길을 잃은 양`처럼(예레 50,6; 에제 34,4.16; 시편
118,176; 루가 14,4-6) 구원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즉 고통의 시기가 끝난 다음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둘째로는 억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
께 아우성을 치자 주님께서는 징표와 기적(8절)으로 그들을 해방시키셨다는 것이
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
가기 위해 오랫동안 시험과 단련을 받았듯이 우리도 약속의 땅인 빠스카의 영광
에 참여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래서 이 사순절을 지내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빠스카의 신비는
약속의 땅보다 더 의미가 깊다.
복음: 루가 4,1-13: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유혹의 내용이 아니라 이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이 단련되고 또 여
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
음을 체험 중심으로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유혹은 예수님의 수난까지 계속된다. 즉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유혹이다. 즉 예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
서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1-2절)고 하고 있고,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13절). 그 다
음 기회란 수난의 때이다. 그 악마는 유다의 배반과(루가 22,3) 예수를 죽음으
로 몰아넣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너희의 때가 되었고 암흑이 판을 치는
때가 왔구나(루가 22,53)라고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
가?
둘째, 이 유혹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한(루가
3,22) 세례 후에 나타난다. 사탄은 아주 고도의 수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
수님의 사명을 세속적 권세와 명예와 영광에 결부시켜 세속주의적인 메시아로 만
들려고 한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유혹을 한
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시오..."(3.9절). 이러한 유혹은 계
속 예수님께 그분의 공생활 중에도 나타났던 것이었다. 군중들(14,15; 19,11)과
고향 사람들(4,23) 그리고 사도들(10,20)로부터도 나타났다. 십자가 밑에서도 마
찬가지이다.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23,35). 사탄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유혹은 바로 예수께 하느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로서보다도 인간들이 바라고
원하는 그런 메시아가 되라는 무서운 유혹이다. 즉 현세적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
이다. 이것이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동요시키는 유혹이다. 우리 신앙인들
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보여주신 것을 통해 원하시는 것과는 달리, 즉 하
느님의 뜻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눈치에 자신을 맞추라는 유혹이다. 이것
이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에게는 성공하는 영원한 유혹이다. 예수님
은 아버지의 뜻의 표현인 말씀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성서에 기록되
어 있다...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이 성서에 있다"(4.8.12절). 즉 예수님은 말씀의 식
별력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하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하느님만이 우
리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2독서: 로마 10,8-13: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고백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이란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어 구원해주실
수 있는 그분께 도움을 청하며 의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주님께
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것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를 말하고 있다.
그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 자신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음의
멍에까지도 없애셨다. 이제는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 그 구원을 갈망하며 하느님
께 호소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 때에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
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로마 10,13).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향
해 나아가고 있는 이 여정도 그리고 그 도착지도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이
다.
그렇게 볼 때, 이 사순절은 빠스카와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은
총이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감으로써 말씀을 실현시켜 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써만이 예수님께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라
고 더 애쓰는(갈라 1,10)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체를 통해 받으셨던 유혹을 우리
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리하고 인
간적인 원의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유혹은 어떤 것인가? 그
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좀 더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사순 제1주일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