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최초의 달력을 만든 이유는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이 넘쳐흐르는 시기를 계산하기 위해서 기원전 4500년경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처음으로 만들고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오차를 수정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달의 움직임에 따라 날짜를 정한 음력을 사용하였는데 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농사짓는 때를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1년을 약 15일씩 나누어 24절기를 만들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날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는 농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였지만 먹거리 생산의 해결열쇠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충렬왕 때부터 24절기를 농사에 활용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수입품이었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화북지역으로 북경, 하북성, 천진, 내몽고자치구 등 온대 준 건조기후 강우량 500mm내외)에서 만든 것을 도입해서 활용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와는 차이가 있어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세종대왕은 ‘규포’라는 태양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오차를 줄이려 노력하였으나 이 또한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제주도와 같은 남쪽지역이나 함경북도와 같은 북쪽지역에서 적용하기에는 애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4절기 중 공휴일이 없지만 일본은 춘분과 추분, 중국과 대만은 청명을 공휴일로 하고 있다. 이란은 춘분을 공휴일로 하는데 이는 ‘노루즈’라고 하여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이기 때문이다.
봄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가 배치되어 있고 여름이 시작되면서 입하를 시작으로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가 있다. 가을의 시기에는 입추를 시작으로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이 있으며 겨울에 접어들면서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이 있다.
1년의 세월흐름을 춘하추동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24절기 중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절기별로 해야 할 농사일이 있었고 절식이라 하여 제철농산물로 만든 음식과 액땜(벽사)이나 보신 또는 종교문화와 연관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봄이 되면 신선한 채소가 먹고 싶고 가을이 되면 새콤달콤한 과일이 생각나는 욕구는 조상 대대로 오랜 세월동안 다져진 습관을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봄의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매화꽃과 산수유가 만발하고 논밭을 갈고 종자와 퇴비를 준비한다. 민들레와 씀바귀 같은 쓴 맛이 나는 채소를 먹는다. 또한 콩을 볶아 먹기도 하였는데 곡식을 축내는 새와 쥐를 사라지게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에는 밭작물을 수확하고 늦은 모내기도 한다. 또한 장마와 가뭄도 대비해야 하고 메밀도 심고 누에도 돌보아야 한다. 감자를 수확하여 먹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는 보리가 철이 지나고 감자가 잘 익어서 ‘하지는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는 환갑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추분은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추분이 지나면 벌레가 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본격적인 가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때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토란탕을 즐기는 시기이다.
질병과 귀신을 쫒기 위해 팥죽을 쑤어먹고 시원한 동치미를 먹는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가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는 기준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농사일 뿐 만 아니라 힘든 노동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제철에 생산된 농산물을 통하여 건강을 지키기도 한 것이 절기이다.
과거의 절기는 해야 할 농작업을 미리 알려주는 농사예보였다면 오늘날의 절기는 미리 앞날을 예상하고 준비하게 하는 자명종이 아닐까 ?
요즘의 시간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절기 안에는 변함없는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달 착륙은 물론 화성탐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농업기술은 스마트농업, 바이오기술, 배양육 생산, 로봇이용 등 인위적인 조절에 의한 농산물 생산이 가능한 단계에 와 있어서 절기를 이용한 농업의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명제는 ‘사람은 농산물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 배달음식과 같은 가공식품에 길들여져 가는 후세들에게 절기와 함께 어우러진 절기음식은 제철에 생산된 농산물의 이용측면 뿐만 아니라 고유문화로서 유지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