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지은 국한문 혼용제문/혜완 장향규 소장본
'1988년 사제 여강 이봉권이 사형 풍산 광덕 류지영 공의 영전에 통곡하나이다.
오호라 인생은 무상이요 회자정리라고 하나 창황히 부음에 접하여 일조에 유명을 달리하니...'
이런 제문의 전통은 아직 경북의 전통반가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1988년 8월 21일에 작성된 *ㅡ제문(祭文)입니다. 고인의 사제(査弟) 여강 이봉권(驪江 李鳳權) 이 류지영(柳志英) 공의 영전에서 곡하며 슬픔을 고하는 내용이다.
전통적인 한문투와 한글이 혼용된 전형적인 선비 집안의 문체로, 고인과의 인연과 그의 삶,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비통함이 잘 나타나 있다.
1988년 8월 21일, 사형(査兄) 산유 풍산 류지영 공에게 사제(査弟) 여강 이봉권이 올리는 제문으로
고인의 류지영 공의 삶은 안동 농림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닦았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정진하며 '근검위실(勤儉爲實)'의 자세로 가정을 다스리고 자녀를 교육한 성실한 분으로 묘사된다.
두 집안은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으며, 특히 서애 선생의 본거지이자 고인의 증조모님 친정과의 혼사 등 깊은 뿌리를 가진 관계임이 언급된다.
또한 류지영공의 따님이 여강 이씨 댁으로 출가하여 두 사람은 곁사돈인 사형과 사제의 관계가 되어
류지영 공이 병마로 인해 고생하시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영면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구천 지하로 떠나면 길에서 먼저 만나게 될 것"이라며 사후의 만남을 기약하고 있다.
고인이 남긴 업적과 정신은 자손들에게 이어질 것이며, 남겨진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술 한 잔을 올리고 통곡하며 글을 맺는다.
<본문 주요 구절 (부분 판독)>
"1988년 8월 21일 사형 산유 유지영 공의 영전에 통곡하며 고하나이다."
"오호라, 인생은 무상이라... 공은 일찍이 뜻한 바 있어 안동농림학교에 입학하여 업으로 할 것을 결심하여 향리에 정착한 후 임업으로 대성하였도다..."
"공의 병세가 소강小康을 얻은 때도 있었으나 대세가 점차 기우러가고 있었으니... 오호라, 공은 이미 구천 지하로 떠나면 길에서 먼저 만나게 될 것이니... 공의 영혼이 평안하시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상 향(尙 饗) (제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문구)
이 제문은 단순한 조사를 넘어, 고인의 학식과 성품, 그리고 가문의 내력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느껴진다.
특히 '퇴계선생 학맥'이나 '서애 선생' 등에 대한 언급은 당시 영남 지역 선비 사회의 유대감을 잘 보여준다.
정갈하게 쓰인 붓글씨에서 고인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