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격월간 《장백산》 2005년 제1기를 받았다. 《시와 시평》과 《시문학》코너에서 일곱 시인의 시작품과 시평 한편을 읽었다. 신년벽두, 넘치는 정열로 이글거리는 첫 일출을 맞이한 가슴에 새해의 눈부신 아침해살처럼 배달된 새해 첫 기《장백산》문학지의 시작품들은 희망하였던 바와 같이 충실하였다. 본 기에 실린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각기 자기적인 개성적 특색을 갖추고 있었으며 골고루 시적 완성도를 이루고 있어 기뻤다. 특히 무한한 감동을 주며 가슴 설레게 한 것은 《장백산》문학지가 새해 첫 기에 편집된 시작품들로 우리들에게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소중하고 독특한 우리글시문학의 향연을 베풀어주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장백산》 2005년 제1기에서 국내 각지 조선족시인들의 작품과 함께 한국 강원도의 정태모시인의 작품《법화경읽기(외2수)》와 조선 평양의 심삼룡시인의 작품《고궁에서(외6수)》를 같이 읽을 수 있게된 것이다. 우리국내에서 한국시인들의 작품 혹은 조선시인들의 작품을 따로 따로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으나 본 기에서와 같이 국내 조선족시인들의 작품과 함께 한국, 조선 시인들의 작품을 그것도 신작발표작을 한눈으로 같이 읽게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 알고 있는 원인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사정은 국외에서는 더욱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것을 이루어 내었기에 그만큼 소중하고 더욱 값진 것이다.
지난 세기의 40년대 말, 50년대 초 한반도의 분렬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등 제반 력사적, 정치적 원인으로 하여 우리 조선어문학은 두 갈래, 세 갈래 이상의 각기 부동한 발전경로를 걸어오게 되었으며 반세기가 넘는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50여년간의 이데올로기 및 정치, 사회 각 부문의 영향을 받아 우리 각자의 문학 속에는 여러 가지 부동한 요소들이 첨가되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밑그림으로 되는 민족의 원형상징체계와 조선어(한글)로 표현되는 언어특징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본 기 시작품코너에 이것을 한 권의 문학지에 담아 한눈에 보여준 것은 문학지를 읽는 시인과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의 차원을 넘어 문학의 연구사적으로도 매우 소중하고 값진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된다.
본 기에서는 한국 정태모시인의 시를 실으면서 그의 략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정태모: 1929년 강원도 평창 출생. 아호 백운. 법호 무염거사. 1964년 대한매일(구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 당선…시집류 12권, 수필집 1권 외 평론.》(196페지) 그리고 조선의 심상룡시인에 대해서는 《심상룡씨는 저명한 민족저항시인 심련수의 유복자로서 1946년 생이며 현재 평양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300여수의 시를 창작하였》고 중국을 방문하고 《평양으로 떠나기 전에 그의 친구들을 통해 시 10수를》 넘겨주었다면서 《일찍 197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맑은 심성, 맑은 목소리》 김몽, 189-190페지)
이와 같이 한 권의 문학지에서 깊은 문학적 소양과 시작품창작경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 조선의 두 시인과 중국조선족시인들의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는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각 측 시문학현황을 제한된 일부분만이라도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글로벌화란 타이틀로 한데 묶이고 인터넷으로 하나로 련결되여 《지구촌》이란 이름으로 좁아지고 있지만 유독 우리의 민족문학만은 제반 원인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두터운 력사적 장벽에 막혀있고 지금까지 소통의 창을 활짝 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새해벽두에 국내와 한국, 조선 시인들의 작품을 한눈에 읽게 된 것은 그만큼 의미 깊고 가치 있는 것으로서 한결 가슴이 뜨거워 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문학사적연구에 귀중한 텍스트로 남아있게 되어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시는 현재를 위하여 씌여지면서 또한 미래에 읽혀진다. 그것은 우리 현재의 삶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이하여 이어져 오고 우리 아이들에 의하여 이어져가듯이 오늘의 우리문학이 멀고 먼 세월의 고개너머에서부터 흘러오고 다시 아득한 래일에로 이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의 시창작작업은 모든 예술작품의 창작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창조한 작품이 장구한 예술적 생명력을 지녀야만 의미가 있다. 두보, 리백과 같이, 송강이나 황진이처럼 그리고 소월, 지용, 동주와 리욱, 김성휘… 우리는 수많은 시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그들의 작품에 새겨져서야 비로소 세월속에 남겨지는 것이다. 이것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텍스트이다.
텍스트(Text: 原文, 本文)의 존재는 문학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정확하고 진실한 텍스트를 남기고 전달하는 것은 현재를 올바로 기록하는 것과 함께 미래에 책임지는 것이다. 랑송(Lanson)은 그의 《문학방법론》에서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하여 텍스트가 진본인가를 가리는 일 , 텍스트의 자의(字意)를 해석하는 일, 작가의 전기와 출처를 밝히고 고증하는 일 등 무려 아홉 가지 방면에 걸쳐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텍스트가 애매하거나 진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에 기초되는 문학연구는 진행되기 어렵다. 일례로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를 진행하던 한 연구가는 텍스트의 감정(鑑定)이 불충분한 김창걸의 해방전소설을 론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고 있다. 《여기서 다룰 「무빈골전설」, 「수난의 한토막」과 「두번째 고향」은 김창걸이 1980년대에 지난 기억을 더듬어 재창작한 작품들이다…본고에서는 일단 해방전과 후라는 제작환경, 중국이라는 사회체제 등으로 고려하여 반일적 혹은 계급적인 요소들이 특별히 강조된 것은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온 것으로 보고 연구에서 제외시키거나 론의를 피하고…》(《해방전조선족이민소설연구》, 장춘식, 민족출판사, 2004년, 76페지.)
문학지《장백산》이 2005년 제1기에 국내와 한국, 조선 시인들의 근작시작품들을 함께 발표함으로써 세 곳에 각기 나뉘어 형성되었던 우리글시문학의 향기를 한자리에서 같이 느끼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오늘, 천변만화하는 세계정세와 움직이는 동북아 대환경속의 2005년 현재라는 시점에서 그 의미가 한결 두드러진다. 우리글시문학의 값진 텍스트의 확보, 이것은 우선 본 기에 실린 시인들 매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분석하는 것 등을 떠나서 몇 배나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본 기는 시인과 독자들의 책장에 오래 꽂혀있을 것이고 연구자들에게 매우 보귀한 자료로 소중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좋은 시작이고 시작이 좋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5년에는 더욱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구정 잘 보내시였지요. 저희는 아직까지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16일 출근하게 됩니다. 참, 설인사가 늦었네요. 새해 건강하시고 댁내 만사형통하기 바랍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