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니까야 비교(수정 보완 중)
금강경과 니까야의 공통점
1.청법대중으로 보살들이 등장하지 않고 비구 비구니 천인 아수라들이 등장한다.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諸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 一切世間 天人 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2.네가지 종류의 중생이 등장한다.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갈래 태어남이 있다. 네 갈래란 어떠한 것인가?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다.
사리뿟따여, 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태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태의 막을 까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태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습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썩은 물고기, 부패한 시체, 부패한 굳은 우유에서나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을 습생이라고 한다. 사리뿟따여, 화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사리뿟따여, 신들이나 지옥의 뭇 삶들이나 특수한 인간이나 특수한 타락한 영혼들이 생겨나는데, 사리뿟따여, 이것을 마음에서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이라고 한다."(M12)
3.뗏목의 비유가 등장한다.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相應捨 何況泌法
"비구들이여, 소유하여 가질 목적이 아닌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인 뗏목에 비유한 가르침을 그대들에게 설하겠다.(M22)
4. 사구게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於此經中受持 乃至 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勝彼
5.성인 4과가 설명된다.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 不. 斯陀含.阿那含.阿羅漢.
6.수보리가 다툼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 第一 是 第一離欲阿羅漢. 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수부띠(수보리)가 으뜸이다.”(A1:14)
7. 삼천대천세계가 등장한다.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 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에 여래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나니(A3:80)
8.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의 게송이 비슷하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수포와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S21.2)
9. 금강경은 연등불 이야기와 인욕선인 이야기가 나온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 所有法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不.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須菩提 又念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금강경과 니까야의 차이점
1.대승,최상승,소법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 若樂小法者 着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2.금강경은 보살들과 보살마하살을 위한 설법이다.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3.금강경은 四相이 나타난다.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4.니까야는 32상을 긍정하는데 금강경은 32상을 부정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見如來 不.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5. 여래멸후 500년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如來 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卽爲第一希有
6.니까야는 성인 4과가 족쇄의 유무에 의해서 설명되는데
금강경은 과에 대한 집착의 유무로 설명된다.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 不
7.금강경이 있는 곳 이란 표현이 나온다.
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8. 금강경은 여래가 법을 설한바가 없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9. 금강경은 이 경을 읽고 수지독송하면 천대받을 것이라고 한다.
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10.금강경은 말세에 이경을 수지독송하면 공덕이 말할 수 없이 수승하다.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 不及一 千萬億分乃
至算數譬喩 所不能及.
11. 금강경은 五眼이 등장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 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
12.금강경은 보시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이 등장한다.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 算數譬喩 所不能及.
13.금강경은 이경을 베껴 쓰고 외우라고 한다.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결론
금강경과 니까야의 공통점을 보면 금강경은 니까야에 나타나는 교리와 비유를 인용하고 있다. 금강경에는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보살마하살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금강경이 대승경전중에서도 니까야와 가장 가까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과 니까야의 차이점을 보면 금강경은 불멸후 500년경에 산스끄리뜨로 편집된 경이라는 것을 드러난다. 베껴쓰라는 표현, 금강경을 독송하면 천대를 받는다는 표현, 대승과 소승법이라는 표현등이 그것이다. 불멸후 500년경에 부처님의 법과 자신이 증득한 경지에 집착하는 병에 걸린 대중들에게 그 법에 대한 집착을 씻어내기 위하여 금강경은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등의 반복 부정의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 금강경은 이러한 표현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그 시대의 소명을 다했다. 2013년 지금, 불교를 배우려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표현법으로 불교를 배우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불멸후 500년경에 나타난 병(법집)을 타파하기 위하여 등장했던 금강경과 반야심경의 표현법은 이제 놓아버리자.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불교역사를 배우는데 참고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족하다. 대신에 부처님 당시의 소박한 언어로 돌아가서 불교를 배우자. 현대인들은 그럴 권리가 있고 그럴 만한 이해가 있다.
......"말룽끼야뿟따여,
여기 그대가 사물을 보고 듣고 감각하고 인식한다면,
볼 때는 보여질 뿐이며 들을 때는 들려질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될 뿐이다.
말룽끼야뿟따여, 볼 때는 보여질 뿐이며 들을 때는 들려질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될 뿐이므로
말룽끼야뿟따여, 그대는 그것과 함께 있지 않다.
말룽끼야뿟따여, 그대가 그것과 함께 있지 않으므로
말룽끼야뿟따여, 그대는 그 속에 없다.
말룽끼야뿟따여, 그대가 그 속에 없으므로
그대는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그 양자의 중간세계에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끝이다." (S3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