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은 그 옛날 신라 시대 때 지리산의 산신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어 제사를 모셔왔으며, 늙을 ‘노(老)’ 시어머니 ‘고(姑)’자를 쓰는 ‘노고단’이란 이름은 바로 선도성모를 마고할머니로 존칭하여 부르게 된 것에서 연유한다.
노고단의 대표적인 경관은 남해안 쪽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운해와 수많은 야생화들이다. 그런데 노고단 정상부근은 1991년부터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5월15일~10월 31일까지는 일반인에게 하루 4차례 회당 100명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가는범의꼬리’꽃이 쭉 피어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2006 서종규 |
♣ 임걸령(? m)
노고단~임걸령 코스는 장맛비가 그치면 너무 깨끗하고 맑다. 여름의 우거진 수풀들은 맑고 깨끗해서 들려오는 새 소리며 바람 소리까지, 온통 깨끗한 지리산의 정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가는범의 꼬리’꽃이 쭉 피어 우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임걸령에서 뒤돌아보면 저만큼 노고단이 멀리 있다. 맑고 푸른 지리산 능선이 멀리 펼쳐진다. 임걸령은 옛날 녹림호걸들의 은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의적 두목인 임걸령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걸령의 샘은 사계절 마르지 않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늘 시원한 샘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 삼도봉(三道峯, 1,550 m)
(삼도봉은 뾰쪽한 꼭대기가 아니고 그저 평탄하며 밋밋하다)
삼도봉은 우선 전라남도,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라는 삼도의 큰 경계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상남도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의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지리산은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그 광활한 지리산 자락은 또한 이들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단위에서 계곡과 산등성이를 기점으로 해 수많은 자연마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지리산의 역할은 경계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러한 지리산의 특성을 단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산 봉우리가 있다. 바로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삼도봉(三道峯)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삼도의 경계선은 대략 이러하다. 경남은 삼도봉-불무장대-통족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 능선을 경계로 해 전남과 구분되며, 전북과는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목대-다름재 구간으로 이 경우는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다 계곡을 건너 다시 능선이 경계선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 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삼도봉은 주릉의 서쪽면에 위치해 있으나 주릉을 조망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망루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반야봉을 지척에서 음미할 수 있으며 멀리 천왕봉의 선경과 천왕봉에서 연하봉, 촛대봉을 잇는 천하제일경의 파노라마가 눈 앞에 선하고 남부능선의 아기자기함이 아스라히 다가오는 장관이 있다. 그리고 임걸령과 노고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종주등반을 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봉우리이기도 하다. 삼도봉은 화개재에서 2km의 짧은 거리다. 또한 반야봉까지도 2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노고단까지는 8.5km 남짓한 거리로 삼도봉은 종주능선상의 요충지이다. 더욱이 반야봉 등반에 앞서 삼도봉과 반야봉, 그리고 삼도봉에서 노고단쪽으로 2km 남짓한 곳에 위치한 노루목등 세지점은 삼각형의 등산로를 연결하고 있다.
종주등반때 지리산 제2봉격인 반야봉을 '오르느냐' 마느냐'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대부분 장거리 산행에서의 산행 부담으로 반야봉을 생략하는 문제가 논쟁거리로 등장하기 일쑤다. 이는 반야봉을 오를 경우 4km의 산행을 추가해야 하는 반면 오르지 않고 삼도봉에서 노루목으로 곧장 향하면 그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르지 않으면 반야봉의 절경을 느낄 수 없다. 여기서 등장하는 "노루목"이란 지명의 유래도 흥미롭다. 노루목이란 독특한 이름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 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삼도봉은 주릉상의 요충지면서 그 산세는 섬진강으로 뻗어내리는 불무장등 능선의 시발점이다. 그 지명에 걸맞게 경남과 전남을 구분지으며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삼도봉과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해발 1,446m의 불무장대, 해발 942m의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에서 잠시 솟았다가 화개장터 부근의 산자락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잠긴다. 19번 국도를 가다보면 화개장터에서 피아골 입구 못미쳐 있는 검문소 부근이 바로 경남과 전남의 경계지점이다.
삼도봉에서 시작되는 불무장등 능선은 경남쪽으로는 연동골과 화개골을 빚어내고 있으며 전남쪽으로는 피아골을 만들어내 모두 섬진강에서 하나가 된다. 삼도봉 가는 길은 주릉을 따라 거치는 것외에 연동골이나 뱀사골을 거쳐 화개재에서 잠시 쉬고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반야봉을 오른 뒤 하산길에 들를 수 있다. 그러나 삼도봉을 목표로 하는 등산로는 연곡사에서 피아골을 따라 오른뒤 피아골 산장에서 용수바위를 거쳐 오르는 길과 불무장등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손꼽힌다.
피아골 산장을 거쳐 용수바위를 지나 오르는 등산로는 산장에서 7km 남짓하다. 근대에 알려진 등산로로 산장을 지나 불토교, 용수바위를 거쳐 삼도봉까지 비교적 길이 잘 열려있다. 용수바위를 지난다 해서 용수암코스로도 불린다. 또 삼도봉-불무장등능선의 등산로는 연동골 입구인 목릉마을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으며 능선 너머 직전마을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등산로는 용수암코스보다 희미해 경험자와 동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벽소령대피소( m)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km에 달하는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도가 가장 낮은 산령으로서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 을 연결하는 산령으로 유명하거니와 지금은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지리산 중앙부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횡단 도로다.
벽소령은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에 높고 푸른 산능들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벽소령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양 착각을 하게 한다.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 하늘의 달이 아닌가 쉽은 생각이 든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 세석대피소(1,560m)
<2006년 6월 천왕봉 산행 자료사진에서 가져옴>
장터목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1,560m)까지 간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가는 길엔 연하봉(1,667m), 삼신봉, 촛대봉(1,734m) 등을 지난다. 세석대피소 앞에는 세석평전(平田)이 있는데, 평전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넓은 평지에서 오랜 기간동안 산행객에게 야영지를 제공했던 곳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석평전에 가면 야영하는 맛이 났었다. 형형색색의 텐트가 수백동 쫙 깔렸으니까...... 산에서 야영하는 느낌도 나고, 지리산 정취는 그 때가 정말 좋았다. 물론 취사 야영인원을 조절할 수 없다보니 많이 환경을 훼손하기도 했지만.....
세석대피소는 백무동매표소에서 (한신계곡을 통해) 곧바로 가면 4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는데,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시간30분 정도 거리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대피소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운치도 뛰어나고 이용하기도 편하다.
세석대피소에는 1996년 1월 국립공원공단이 23억원을 투자해 개장한 통나무식 지리산의 대피소를 관장하는 분소가 설치되어 있다. 2층은 칸막이가 있는데 가족실로 5∼8인의 단체 가족일 경우 빌려준다. 또한 대피소 바로 아래에 식수가 있고, 자가발전으로 난방을 해주어 잠자리도 비교적 쾌적한 편이다. 무엇보다 수용인원이 220명에 이르다 보니, 다른 대피소보다 예약하기가 수월하다.
(전화 055-973-1600, 수용인원 220명, 이용료 7,000원 담요대여료 1,000원)
♣ 한신계곡
세석대피소에서 백무동매표소까지는 3시간여가 소요되는데, 첫 번째로 한신계곡이 나온다. 칠선계곡보다는 못하지만 백무동계곡보다는 더 가파르고 조금은 위험하기도 하다. 내리막길 내내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준다. 세석대피소에서부터 한신폭포,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첫나들이폭포를 만나게 된다. 하나씩 확인하면서 내려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B코스 산행 : 백무동∼장터목∼제석봉∼천왕봉∼제석봉~장터목~백무동(9시간 예상)
새내기들이 가장 손쉽게 오르는 코스는 백무동매표소∼장터목대피소(1,653m, 보통 '장터목산장'이라고 부른다) 코스이다. 천왕봉을 오르는 등산로 중 육산(肉山)의 질감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면서, 장터목이라는 오래된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다. 장터목은 그 옛날 전라도 사람들과 경상도 사람들이 물건을 늘어놓고 물물교환을 하는 장(場)이 섰던 곳에서 유래한다.
장터목대피소는 함양 백무동대피소에서 3시간 정도면 닿는다. 천왕봉까지는 1시간 거리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 머물기 편리하다. 1997년 11월에 준공된 신식 대피소이다. 침실과 취사장이 같은 건물 내에 위치한 것이 장점이다. 난방이 잘돼 얇은 침낭만으로 견딜 수 있다.
(전화 055-973-1750, 수용인원 150명, 이용료 7,000원, 담요대여료 1,000원)
장터목~천왕봉 3km 구간은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와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등의 경관이 특출하고 낭만적인 길이 이어져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 중봉 다음으로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연봉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한층 더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제단 주변은 평평한 빈터여서 현재는 등산객들의 휴식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 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 그 자체는 재난으로 생명을 중도에 마감한 나무들의 시체여서 살벌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고사목들이 한 두 그루도 아니요,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 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
한 자연경관이다. 고사목의 훼손금지는 물론 이 곳에서 야영과 취사행위를 금지한다.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한다.
그러나 이 곳의 고사목들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방화로 한번 죽었던 나무들이 또 다시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 이상의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40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고사목들도 '살아있는 자연경관' 으로 잘 보전이 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제석봉에서 고사목 사이로 서쪽을 바라보면 반야봉과 노고단이 선명히 떠올라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 천왕봉(1,915m)
智異山의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리의 주봉은 계절마다 준비해 둔 멋진 옷을 갈아입는 듯 풍광은 쪽빛 하늘에 수 놓은 듯 피어난 영화가 마치 산호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영국의 경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거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 암벽에 "천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 내며,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을 거쳐 남해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다. 운무에 휩싸인 채 말없이 억겁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천왕봉은 흐르는 물줄기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터전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천왕봉 정상에는 현재 1982년 여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란 글이 표기돼 있다. 그 전에는 진주 산악인들이 남명 선생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이란 글귀를 새겨 표지석 으로 세워 두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 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 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 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겨져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천왕봉의 성모사는 1489년 이 곳을 오른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의하면 성모사는 천왕봉 정상에 한 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당은 빨치산에 의해 허물어진 뒤 오늘날까지 노천암대만 남아 처량하게 수십여 성상을 보내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성스러운 모습을 하며 인간을 자연으로 부르는 천왕봉은 나무도 제대로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바위들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을 빚어내고 있으니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주고 있다.
*천왕샘 :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가다 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이 샘물은 천왕샘으로 불리고 있는데, 명산을 찾는 등 반객들의 갈증을 한꺼번에 해소해 주기에 충분하다. 대대적인 자연보전 활동에 힘입어 천왕봉 주변의 쓰레기가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천왕샘 주변엔 가끔씩 수북히 쌓인 쓰레기가 눈에 띄고 있는 데다 국립공원관리 공단이 세운 천왕샘 안내간판 뒷면에는 어지럽게 적힌 낙서들로 뒤덮여 있어 안타깝게 하고 있다. 5백년전 우리네 선인들이 대자연을 음미하여 풍류를 노래하고 호연지기를 키웠던 지리산 산행기를 한번 탐독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과 석양낙조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 개벽을 연상케하는 일출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더불어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깍아 지른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멀리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두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 하듯 해야만 주봉에 닿을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개천문은 법계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나타나는데 원래 좌우로 두 개의 바위기둥이 서 있어 위용을 자랑 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해서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늦은 가을이나 초겨울에 중산리∼법계사∼천왕봉 코스를 따라 오르다 보면 가끔씩 개천문을 기점으로 해 정상쪽에는 눈이 내리는데 비해 아래로는 비가 내리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으며, 간혹 설화가 이 문 을 경계로 해 활짝 핀 광경을 목격 할 수도 있어 천왕봉의 관문임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도 있다. 개천문은 그러나 통천문에 비해 위엄은 부족하다. 통천문은 노고단쪽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오르는 문" 다운 위엄을 갖고 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의 풍경화 같은 비경에 흠뻑 젖어 걷다 보면 눈앞을 가로막은 문이 바로 통천문이다.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이 처럼 두 관문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으나 이들 두 관문의 역할이 있기에 천왕봉은 더욱 신비함을 간직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천왕봉 주변에는 이들 관문과 더불어 성모사, 법계사, 향적사, 천불암 등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 이육은 "유 지리산록"에서 **
천
왕봉에서 동으로 내려가면 천불암, 법계사가 있다. 천불암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작은 굴이 있어 극히 맑은 운치를 지녔으며 이름은 암법주굴이라 한다. 또 두 물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향적사 앞에서 내려오고, 하나는 법계사 밑에서 내려와 살천에 이르러 합쳐서 하나가 되어......로 적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