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2017. 12. 9)

[느리게]

자연성릉에서 바라 본 계룡은 회색 톤 수묵화였다.

1. 일자: 2017. 12. 9 (토)

2. 장소: 계룡산(845m)

3. 행로와 시간

[동학사 주차장(09:35, 190m) -> 천장탐방센터(09:44) -> (천장골) -> 문골삼거리(10:12, 남매탑 1.3km) -> 큰배재(10:34~44) -> 남매탑(10:57~11:03) -> 삼불봉(11:22, 775m) -> 소나무 전망대(11:34~47) -> (자연성릉) -> 관음봉(12:42~47, 765m) -> (문필봉) -> 연천봉(13:20, 739m) -> 갑사/신원사 갈림(13:27, 신원사 2.7km/갑사 2km) -> 고왕암(14:04) -> 금룡암(14:18) -> 신원사/중악단(14:30) -> 주차장(14:40)]

< 계룡산 산행을 준비하며 >

산행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장호 선생의 한국백명산기를 꺼내 계룡산 편을 펼친다.‘명산을 명산이게 하는 첫째 요인은 그 놓임새에 있다. 천을 훨씬 넘는 고산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강원도의 어느 큰 산 덩어리 속에 묻혀 있으면 드러나 보이지 않을뿐더러 세상에 널리 알려질 리도 없다. 반대로 사방이 트인 평야 한가운데 솟은 산은 실제 높이야 대단치 않아도 수십 리 밖에서도 조석으로 우러르게 되는 것이니, 신화가 깃들고 전설이 감싸이게 되면서 그 이름이 널리 퍼져 나간다. 한반도의 동쪽보다는 서쪽에 유독 그런 산이 산재하는 가운데, 계룡산은 특히 유별나게 이름을 떨친다. (중략) 높이는 800미터급에 지나지 않지만, 이 산을 동서남북으로 감싸는 대전, 부여, 논산, 공주, 연기군 어디에서도 한눈에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놓임새가 명산을 탄생시켰다는 말이다. 신라 오악의 하나로 일찌감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도 그 놓임새 덕이다.

계룡산은 늘 마음에 두고 있지만 인연이 쉽지 닿지 않는 산이었다. 거리로나 접근성으로나 명성으로나 멀리할 이유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먼 그대였다. 친구들과 8년 전 겨울 찾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두 산악회에 공지가 뜬다. 진행 코스는 다르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취소 확률도 낮아진다. 예전 288 동기들이 계룡산 종주산행을 다녀온 후‘종주’에 대한 부러움이 마음 한구석 들어섰다. 지도를 살핀다. 병사골~자연성릉~관음봉~갑사 길이 가장 길다. 일명 계룡 종주코스다. 천장골~자연성릉~관음봉~신원사 코스도 명품이다. 한편은 갑사 오리숲길이 다른 한편은 신원사 중악단이 유혹한다. 선택은 성사 여부에 맡긴다. (결국은 신원사 코스를 선택했다.)

  가야 할 길을 살핀다. 동학사 입구~큰배재 약 3km 80분, 큰배재~삼불봉~관음봉 약 3km 100분, 관음봉~연천봉~신원사 4km 100분. 10km 5시간 30분의 산행을 예상한다.

계룡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지정된 이유는‘예로부터 신라 5악 중 하나인 서악으로 지칭되었고, 조선시대에는 3악 중 중악으로 불리던 산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점을 고려했다. 산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감록에 언급된 십승지지 중 하나다. 724년 신라인이 창건한 동학사와 420년 고구려인이 창건한 갑사가 있다.’닭의 벼슬과 용의 모습이란 말에서 일전에 경험한 눈 덮인 자연성릉이 그려진다.

< 희망사항 >

눈 내린 다음날, 늦은 오후 양재 사무실 북쪽 창을 바라본다. 우면산이 정면으로 다가오고 멀리로 북한산 주 능선이 유유히 흐르고 인수봉이 우뚝하다. 좌측으로 몸을 틀면 관악의 정수리가 선명하다. 복 받은 자리다. 마음은 산으로 달려 간다. 생각을 굳히고 오래 전 예약해 둔 계룡산행 버스에 입금한다. 마음이 동하면 행동해야 후회가 없다. 8년 만에야 다시 인연을 만드는 마음이 부끄럽다. 코스의 절반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 중심에는 신원사가 있다. 동학사와 갑사의 명성에 가려 있지만 불교 의식의 민속화를 상징하는 산신각 중 최고인 중악단을 품은 명찰과의 인연이 기대된다. 중악단 앞 마당에 서서 그 고즈넉하고 옛스런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다.

  백명산기 계룡산 편 마지막 구절을 마음에 세기며 길을 나선다.‘오랜 그 이름 탓일까, 늘 붐비는 길을 피하여 사이사이 골짜기를 누비며 가파른 영마루 서리에서 뜻밖의 그 내력마저 알 수 없는, 놀라움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산 매력의 하나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 동학사 가는 길에 >

바쁜 한 주를 보낸 금요일 밤, 배낭을 꾸리며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좋아하는 걸 준비하는 과정은 언제나 설렌다.

눈을 걱정하며 집을 나서는데 다행이 도로를 살짝 덮는 정도다. 사당에서 버스에 오른다. 45인승인데도 그리 좁지 않다. 초장축인가 보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입김으로 버스 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차창은 비가 내리듯 온통 뿌옇다. 겨울 산행 가는 버스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도 동학사 주차장과 인근 상가는 인파로 북새통이다. B 브랜드가 주관하는 100대 명산의 이번 주 산이 계룡이라 그렇단다. 그 회사 강모 사장이 갑질하다 방송에서 크게 얻어 맞았는데, 상술은 보통이 아니다. 난 도덕성이 결여된 자의 상술에는 별 관심 없다.

< 천장탐방센터 ~ 삼불봉 >

시작 고도는 190m 정도다. 삼불봉이 770m 이니 600미터 가량 치고 올라야 한다.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 밑에 군부대 철탑에 둘러 쌓인 계룡의 정상이 우뚝하다. 마치 8년 전의 데자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산은 반쯤 눈에 덮여 있었다.

매표소 못 미쳐 길을 우측으로 튼다. 천장골로 향한다. 탐방센터를 지나서도 한참 동안 등로는 완만하다. 가뜩이나 널따란 길, 나무에 잎마저 떨어지고 나니 개방감이 배가된다. 길이 넓으니 등로의 체감 가파름이 덜한다. 조심씩 고도를 높여간다. 순식간에 문골삼거리에 도착했다. 채 40분이 안 되어 2km 정도를 와 버렸다. ’너무 쉬운 거 아냐?’하는 자만심이 들 무렵 된비알이 시작된다. 가뜩이나 꺼 입었는데 땀이 나니 몸이 꿉꿉하다. 잠시 쉬며 정비를 한다. 큰 배재가 0.6km라는 이정을 지난다. 특이하게도 이곳의 이정표는 200m 단위다. 과도한 상세함은 대개 끝이 흐지부지하게 마련이다. 역시나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이정표가 사라진다. 산행 안내판은 일관됨이 생명이리라.

고도가 500m를 넘어서자 눈이 잦아지더니 가파른 비탈이 길게 이어진다. 아이젠에 스틱에 장갑까지 한 몸에 부하가 걸린다. 이 역시 데자뷰다. 별거 아니라 여긴 남매탑까지의 길은 멀고 험했다. 큰배재에서 잠시 쉬어간다. 허기가 찾아온다. 비상식량을 다 먹어도 배가 고프다. 이래서 산에서는 미리 먹어 둬야 하나 보다.

이 추운 겨울, 뭐 이리 많은 이들이 산에 오르나? 점점 많아지는 인파에 떠밀려 남매탑으로 향한다. 응달에 들어서니 녹지 않은 눈이 켜켜이 쌓여 종아리에 부하를 더해준다. 남매탑 고개에서 동학사에서 올라오는 산꾼들과 만난다. 여기까지는 처음 경험한 길이었다. 앞으로 관음봉까지는 가본 등로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안고 남매탑으로 향한다.

< 큰배재 가는 길 / 남매탑에서 >

오층과 칠층 석탑이 마주하고 있다. 흐리던 날이 변해 햇살이 쏟아진다. 예전 공사 중이던 절은 어느덧 지붕을 얹었다. 사진 욕심에 탑 주변을 서성거린다. 역광에 그림이 그저 그렇다. 11시가 지난다. 삼불봉으로 향하는 긴 계단 오르막과 마주한다. 힘에 겹다. 계룡산은 역시 만만한 산이 아니다. 그 높이로 얕잡아 보다간 큰 코 다친다. ㅋㅋ

삼불봉고개에서 길은 갑사와 관음봉으로 나뉜다. 31년 전 입대를 앞두고 무모하게 나선 산행의 하길로가 바로 갑사 길이었다. 감회가 새롭다. 그때 동학사 민박집에서 하룻밤 인연을 맺은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내 젊은 날의 번뇌와 치기가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젊다는 건 지나고 보면 특권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늘 쫓기던 시기이기도 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삼불봉 바위 전망대 위에 올라선다. 정상석은 그 놈의 B야크들이 점령 중이다. 인증샷이 무예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실소(失笑)한다. 삼불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계룡산의 으뜸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험난한 산성 같은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닭의 벼슬을 닮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그 모습은 국내 어느 고봉에 견주어도 주눅들지 않는다. 온통 회색 빛 하늘 아래 눈을 뒤집어 쓴 모습이 무척 험상궂다. 겨울 산의 골격미를 제대로 감상한다. 멀리 공주 시가지가도 아스라하다.

자연성릉으로 향하는 오르막 계단이 선명하다. 발길이 어서 그리로 가자고 한다. 언제든 맞아야 할 매라면 어서 맞고 쉬자는 맘으로 눈이 얼어 붙은 긴 철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 삼불봉에서 >

< 자연성릉 길 >

계룡을 명산에 반열에 올려 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아마도 자연성릉과 산기슭에 산재해 있는 사찰 때문이리라. 난 지금 계룡 최고 길, 자연성릉을 걷고 있다. 초입부터 다이나믹 그 자체다. 암릉 사이로 쇠 계단과 돌 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올려보는 눈에는 어디서든 암봉과 흰 눈이 조망된다. 정상 천왕봉은 도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저 멀리 평온한 마을의 저수지도 눈에 들어온다. 연무가 조금만 걷혀도 최고의 전망일 텐데 아쉽다.

커다란 무덤 앞을 지난다. 지나온 삼불봉이 우람하다. 그냥 지나치려다 무언가에 이끌려 소나무로 발길을 돌린다. 맞다. 일명 소나무 전망대. 잘 생긴 소나무 뒤로 천길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절벽이 주는 시원한 눈 맛의 끝에는 천왕봉과 주변 풍겨이 아무 방해 없이 내 눈에 들어온다. 비경을 품은 은둔의 명소다. 배낭을 내려놓는다. 의자를 꺼내 앉는다. 이보다 더 멋진 식당자리는 인근에 없다. 허겁지겁 귤 하나를 꺼내어 입에 넣는다. 새콤달콤한 과즙의 맛이 느껴진다. 천국이 따로 없다. 풍경에 감동한다.

꿈 같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뒤에 오는 이들에게 내 자리를 내어준다. 본격적으로 자연성릉에 들어선다.

< 삼불봉을 돌아보며 >

자연성릉, 화강암의 차별침식이 만든, 계룡산 남북방향으로 대규모의 능선이 발달하였고, 능선의 정상에는 급경사면이 나타나고 커가란 암석들이 노출되어 마치 성곽을 이루는 것처럼 절경을 이룬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2.1㎞ 구간이다. 오기 전 갈무리 해둔 자연성릉의 개요다.  자연, 성, 릉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글자가 모여 생성된 말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 현장에 오니 그 뜻을 자연스레 알겠다.

멀리서 보면 저길 어찌 가나 걱정이 들지만, 막상 성릉 안에 들어와 걷다 보면 그리 험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곳곳에 안전시설이 잘 되어서다. 예전 기억으론 관음봉 밑 암릉 길은 무척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곳에 긴 철 계단이 놓여 있었다. 오래 산을 다니다 보면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예전에 비해 등로에 안전시설이 늘어 거리와 시간이 단축된다는 사실인데, 그걸 본인의 산행 실력이 향상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산이 점점 길들여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리라.

암릉을 걸으며 바라보는 관음봉과 천왕봉 능선은 아아(峨峨)했고, 돌아보는 삼불봉은 햇살을 안고 평온해 보인다. 자연성릉은 길 자체도 멋지지만 능선을 따라 걷는 이들의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인상적이다. 가야 할 길을 먼저 간 이들의 모습은 바라보며 그 속에 나를 투영해 보는 행위는 꽤 멋지다. 삼불봉과 관음봉이 똑같이 0.8km 남았다는 이정을 지난다. 고도는 715m로 표지판에 자연성릉이라 써 있다. 이곳이 성릉의 상징적 장소인가 보다. 작은 봉우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관음봉으로 향하는 긴 계단이 내려다 보인다. 계단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 가야 할 관음봉 길과 / 돌아 본 삼불봉 >

군부대의 통신탑이 우람하다. 주변은 온통 잿빛이고 능선은 눈에 덮여 있다.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계단을 올라서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두고 두고 생각날 절경이 등 뒤에 있으니 발 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흐른 날의 수묵화, 굵은 붓으로 산의 맥을 끗고 지나간 자리에 섬세히 터치가 느껴진다. 세상은 온통 회색 빛 일색이다. 검고 흰 두 가지 색 만으로도 세상을 이리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 긴 계단을 올라선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정자가 보인다. 선계(仙界)에서 노닐다가 속세로 돌아온 느낌이다. 관음봉에 올라선다.

< 자연성릉 길에서 본 풍경 >

< 관음봉에서 신원사 >

그 놈의 B야크 인증샷은 온 산을 시장통으로 만든다. 별 것 아닌 관음봉 표지석 앞에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조바심에 고성이 오고 간다. 난간에 만든 전망대에서 먼 풍경을 마음에 담고는 번잡함이 싫어 이내 관음봉을 뜬다.

  계룡의 실질적인 정상에서 굽어보는 겨울 산하는 늠름하기 그지없다. 사진이 훗날을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

< 관음봉 전망대에서 본 풍경 >

연천봉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긴 계단을 내려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사 갈림이 나타난다. 연천봉으로 방향을 튼다. 거리는 1km다. 방향이 바뀐 것 만으로도 풍경이 영 다르다. 눈은 잦아지고 갈색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다. 계절이 겨울에서 가을로 변한다. 낙엽은 낭만을 불러온다. 반대편에서 오는 이들의 발에는 아이젠이 없다. 길 사정을 미루어 짐작한다.

  트랭글이 부저를 울린다. 문필봉 밑을 지난다. 봉우리를 우회한다. 무리 없는 힐링의 오솔길을 거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연천봉 갈림에 선다. 갑사와 신원사가 여기서 갈린다. 일단 연천봉으로 향한다. 0.2km가 생각보다 길다. 가파르진 않지만 진득한 오르막이다. 헬기장을 지나서도 한참을 올라선다.‘천봉 낙조’를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정상석 역할을 한다. 오르지 못한 문필봉이 지척이고 지나온 관음봉과 자연성릉은 아득하다.

< 연천봉에서 / 신원사 가는 길 >

왔던 길을 도로 내려온다. 갈림에 선다. 신원사 길이 갑사보다 더 길다. 미지의 등로로 발을 내려 놓는다. 짙은 낙엽이 깔린 비탈에 나무와 고무로 만든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눈을 살포시 줄기에 인 나목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비탈에 서 있다. 참 멋지고 여유로움을 불러오는 풍경이다. 신원사로 향하는 첫 발걸음은 가볍다.‘붐비는 길을 피하여 사이사이 골짜기를 누비며 가파른 영마루 서리에서 뜻밖의 그 내력마저 알 수 없는, 놀라움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산 매력의 하나라 할 것이다.’는 장호 선생의 글귀가 어울리는 호젓한 길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고도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거친 돌길이 이어진다. 마음을 비운다. 신원사가 1.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작은 다리를 지난다. 길이 조금은 순해진다. 작은 뒷문을 통해 고왕암 경내로 들어선다. 작지만 운치 있는 암자다. 바위에 부처님을 모셔 놓은 석불 모습이 인상적이다. 잠시 머무르며 행장을 정비한다.

< 고왕암과 금룡암 >

보광암 안내판이 보이고 길은 포장도로로 바뀐다.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터벅 터벅 내려선다. 다시 작은 암자, 금룡암 대웅전 처마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 특이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신원사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암자들이 산재해 있었다.

< 모과와 노각나무의 인연 / 중악단 >

사찰 뒤편으로 들어 중악단과 마주한다. 예상보다 규모가 크고 단아하다. 팔작지붕이 위엄 있고 빛 바랜 단청이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흥분된 마음으로 정문을 통해 다시 중악단 앞에 선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품격이 느껴진다. 주변을 앞도 하는 고요함이 좋다. 빈 공간이 만들어 내는 여유다. 조심스레 다가가 소리 없이 사진 한 장만을 찍고는 돌아 나온다. 국보의 품격을 느꼈다. 대웅전 주변도 널찍하고 고요하다. 신원사는 좋은 터에 앉은 명찰이었다.

날이 흐려 그런지 도로 주변 모든 것들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다. 산행을 마무리 한다. 5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좋았다 그리고 계룡은 만만치 않았다.

< 에필로그 >

버스는 약속된 3시 정각에 신원사 주차장을 떠난다. 길이 험해 늦는 이들이 있을 수 알았는데 의외다. 버스 안은 다시 표현하기 힘든 번잡함이 감돈다. 고된 하루 일을 끝낸 이들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피곤함이 공존한다. 나도 이내 잠의 나락을 빠진다.

한 시간여 곤하게 잤다. 차는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다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는다. 자연성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잿빛 암괴가 어른거린다. 겨울 계룡산의 산행 난이도는 중상급 이상이다. 대전 외곽 700미터급 만만한 산이라 여기는 이들은 제대로 산행을 하지 않았거나, 다른 계절 기준으로 말하는 자들일 게다. 산행 내내 깎아지는 절벽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아찔하면서도 그윽했다.

카메라를 들여다 본다. 산에서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울로 들어선 계룡은 온통 회색톤 암릉으로 기억된다. 오래 세월 공들여 깊은 생각을 화폭에 그려낸 화공의 마음으로 작품에 몰입한다. 초겨울 계룡산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으면 그때는 다른 계절일 게고 코스는 무조건 병사골~장군봉~자연성릉~갑사의 종주다. 그날을 꿈꾼다.

< 계룡산 산행 궤적 >

[아메리카노0804]

거친겨울산 즐기시고 오셨군요.
다음산 동행의 영광을 감히 청하고 싶습니다.

[느리게]

영광은 무슨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