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추선생 한시이야기
셋 : 이색의 <부벽루에서>
♠♠李穡(이색 : 1328~1396, 충숙왕15~태조5) 고려말의 문신․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본관은 한산(韓山)임. 정당문학(政堂文學)․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등 역임.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짐. 문하에 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고 도학파(道學派) 문학을 형성함. 저서에 『목은문고(牧隱文藁)』와 『목은시고(牧隱詩稿)』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임.
부벽루에서(浮碧樓)
昨過永明寺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 잠시 부벽루에 올랐다네.
城空一片月 텅빈 성에 한 조각 달 떠있고,
石老雲千秋 오래된 돌에 천년의 구름 흐르네.
麟馬去不返 인마는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天孫何處遊 천손은 어느 곳에서 노니는가?
長嘯倚風磴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길게 휘파람부니,
山靑江自流 산은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주】○浮碧樓(부벽루) : 평양 금수산(錦繡山)의 모란봉(牧丹峯) 기슭 청류벽(淸流壁) 위에 있는 누각으로 원래는 영명사의 다락건물로서 세운 영명루였으나, 대동강에 면하여 있어 마치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양 팔경중의 하나로 6․25 때 소실된 것을 1959년 복원했다고 함. ○永明寺(영명사) : 부벽루 아래에 있는 절. 고구려 광개토왕이 지은 아홉 개의 절중의 하나란 설이 있다. ○石老(석로) : 돌이 늙음. ‘石’이란 ‘朝天石’으로 동명왕이 구제궁(九梯宮)의 기린굴 안에서 기린을 길러 타고 돌 위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함. ○千秋(천추) : 천 년. 영원한 세월. ○麟馬(인마) : 몸은 사슴이고 꼬리는 소이며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고 빛깔은 오색으로 상상 속의 영수(靈獸). 봉황(鳳凰)과 함께 성군(聖君)이 나올 길조로 여김. ○天孫(천손) : 여기서는 동명성왕. ○長嘯(장소) : 길게 부는 휘파람. 또는 길게 시가를 읊조림. ○倚風磴(의풍등) : ‘磴’은 돌계단으로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섬.
≪감상≫부벽루에 올라 천년 고도를 바라보는 감회를 읊은 것이다.
수련에서는 누각에 오르게된 동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수련인 ‘옛날 동정호를 들었더니, 오늘 악양루에 올랐구나.(昔聞洞庭湖, 今上岳陽樓)’를 연상시킨다.
함련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대우(對偶)이다. 고구려 시대의 남은 자취란 다만 빈 성곽뿐인 저 역사의 잔해가 ‘月一片’에 조명되고있는 처연한 분위기는 회고의 감개와 인생의 무상을 절감하게 한다. 또 오랜 세월의 이끼에 찌들어 희뿌옇게 늙은 조천석은 언제나 먼 산머리에 한 조각 흰구름인양 낡은 전설을 일깨어주고 있다.
경련은 동명성왕에 대한 추모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의 성세(盛世)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옛이야기로 멀어져가듯 파망(破亡)한 고려의 자취 또한 무엇이 온전하겠는가? 이는 성주(聖主)도 성세(盛世)도 나타날 조짐이 없는 당시의 암담한 세태를 먼 역사적 회고에 부쳐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련에서는 당시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감회를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서서 내는 긴 탄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대기(大氣)중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한 오라기의 반응도 없다. 그런 구구한 인간사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다는 듯 자연은 자연대로 유유하여 산은 그저 푸르고 물은 예대로 흐르고있을 뿐이다. 자연의 유구에 대조된 인생의 무상은 오직 푸르기만 한 산의 침묵과 길이 흐르는 무심한 물소리의 끝없는 여운 속에 허허로운 바람처럼 우리네 가슴의 공동(空洞)을 울리는 듯하다.
여기서 ‘山靑’의 ‘靑’의 공효(功效)는 중요하다. 그것은 이 시를 감상(感傷)과 허탈(虛脫)에서 구출햇으니, 이는 흑백의 시계(視界)를 천연색으로 착색하여 산만이 아니라 물빛에도 푸름이 살아나고 물소리에도 푸름이 반향되어 시 전편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니, 말하자면 아직은 간대로 포기할 것이 아닌 소망의 여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는 이백이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에서 ‘鳳去臺空江自流’라고 한 공허감과는 다른 맛이 있는 것이다.
홍만종의 『소화시평(小華詩評)』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하고 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가정 이곡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한림지제고(翰林知制誥)의 벼슬을 받았다. 원나라 유양(瀏陽)사람 구양현(歐陽玄 : 자는 原功, 호는 圭齋)이 목은을 얕잡아보고 조롱하였다.
獸蹄鳥跡之 道交於中國 짐승이 밟고 새가 밟으니 도가 중국에서 섞이는구나.
목은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대구하엿다.
鷄鳴狗吠之 聲達于四境 닭 울고 개 짖으니 소리가 사방에 도달하는구나.
구양현은 응답하는 것을 듣고 목은이 매우 기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구양현이 또 시 한 구절을 지었다.
盃入海知持多海 술잔을 가지고 바다로 들어가니 바닷물이 많음을 알겠네.
목은이 즉시 그 대구를 지었다.
井坐觀天曰小天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작다고 말을 하네.
이 대구 놓는 것을 보고 구양현은 깜짝 놀라서 “자네는 천하의 뛰어난 재능이로다.”라고 하였다.
이 목은의 응수에 대해서 홍만종은 “아! 목은이 세 항목으로 응수하여 답한 것은 다만 대우가 기묘할 뿐만이 아니라 문장의 이치 또한 갖추어 도달하였으니, 하늘이 만들고 땅이 없앰과 같음이 있어서 모두 동파 제공보다 떨어지지 아니한다.”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첫댓글 한시이야기는 여러번 들어도 보아도 또 새롭습니다. 되돌아보는 기회도 되고 곱씹어 보는 맛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더욱 자세히 보아주시고, 고견을 올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