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신부에게"
요즘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자면 루르 한인 성당 주임 신부님이 너무 날로 미사를 먹으려고 그런다, 오시는 손님 신부님들과 ‘자칭’ 착하고 선량한 유학 신부님들을 살살 꼬득여서 미사와 강론 다 시키고 자기는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앉아 있다는 등, 그 덕분에 루르에 독일어 공부하러 오신 이정석 라파엘 신부님은 독일어 때문에 피골이 상접된 것이 아니라, 포악한 주임 신부가 하도 본당 일을 시켜서 몰라보게 얼굴이 수척해졌다! 이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유포되는 이 마당에, 신자 여러분! 억울합니다. 이정석 신부님, 살 빠진 것이 아니라 우리 성당 와서 5Kg 찌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루르 신자들이 해 주는 반찬과 만두 무지하게 많이 잡수신 것 말고는 뭐 짜달시리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송별 미사‘ 씩이나’ 열어드리는 김형수 신부님, 마지막 떠나가시는 길 우리 본당 신자분들에게 그간 갈고 닦은 철학적인 강론 한 번 들려 달라 수 차례 꼬시고, 어젯밤 시계가 고장 났다길래 손목시계 하나 사준다며 마지막까지 협상을 벌여보았지만, 예 맞습니다. 신부들 무지하게 말 안 듣습니다.
아, 신자 여러분! 루머에 속지 마십시오. 7년 반 독일에서 공부하고 이제는 Dr. 소리 듣는 철학 박사 신부님 내일 떠나면, 제가 저 양반 뒤에 앉혀놓고 또 강론할 일이 뭐 별로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징한 송별 강론 한 번 펼쳐볼까 합니다.
김형수 신부님과 저는 20년 지기입니다. 갓 열아홉 혹은 스물, 세상 모를 철부지 나이에, 이미 작고하신 김형수 신부의 부친께서 신부되겠다는 아들을 무지하게 뜯어 말리시면서 하셨다는 말씀, 신부 수녀 같이 비생산적인 직업, 뭐 그런 것을 하겠다고 나서냐는 타박을 뒤로 한채, 정확히 20년 전에 이정석 신부, 김형수 신부와 저는 신학교에 함께 입학을 했습니다.
물론 그 때는 김형수 신부도 머리카락 풍성했구요, 이정석 신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착했습니다. 20년 전만 하여도 구 교우 집안이라면 큰 자랑꺼리가 집안에 신부 수녀 몇 명이나 있는가, 따질 정도로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된다는 것은 의사나 판검사가 되는 것보다 더 ‘영웅적’인 일로 저에게는 비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신부되기 전에 순명 서약을 해야 하고, 독신 서약을 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뭐시라고! 본시 나쁜 놈이 신부되지는 않으니 위에서 시키는 것 따박따박 잘 하면 될 것이고,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무슨 여자를 알았겠습니까? 모르는 것 끝까지 모르고 살면, 얼기설기 엮긴 만수산 드렁칡이 술술 풀려 나가듯 내 인생길도 보란 듯이 풀릴 줄만 알았던, 그래서 제 자신이 마치 신부만 되면 구원의 좁은 문을 활짝 열어젖힐 줄만 알았던 그 세월의 중간쯤 이르러서 비로소 아차 싶은 순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제직은 좁은 문입니다. 많이 가지도 않을 뿐더러 또 들어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문을 들어서는 일이 아니라, 그 문 앞까지 당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좁은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좁은 문은 좁은 길의 끝에 있습니다.
좁은 길을 가야만 좁은 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넓은 길이 아니라 굽고 좁은 길을 먼저 걸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넓은 길로만 다니면 아예 만날 수조차 없어집니다.
본시 넓은 길은 쉽습니다. 보무도 당당하고 내 하고 싶은대로, 내 성질과 내 욕심대로 다하며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로 다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가려면 헤아릴 것이 많고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은 법이지요. 발 밑 살펴야 하고 한 발만 내디디면 천리 낭떨어지가 코앞임을, 정신차려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는 좁은 길 가기가 어렵습니다. 기꺼이 숙일 줄 알아야 하고, 기어서라도 갈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결코 당도할 수 없는 좁은 문입니다.
스무살 적엔 그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알아도 그 의미는 몰랐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알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고, 하느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동의를 했건만 말씀을 전하기 앞서 말씀을 받아 살기에 합당한 자로 살아야 함은 몰랐고,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서약은 알았지만 그 서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요. 심하게 표현하자면 멋도 모르고 신부가 된 것 같습니다. 신부만 되면 되는 줄 알고, 넓은 길이 탄탄대로처럼 펼쳐져 있을 것으로 착각한 것이지요. 신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정작 사제로 사는 것이 좁은 길임을, 천주교 신자가 되는 것이 구원의 좁은 문이 아니라, 천주교 신자로서 스스로를 깎으며 살아가야 하는 이 세월이야말로 참으로 좁디 좁은 길이요 구원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우리가 이 좁은 문에 당도하기까지의 어려움들을 다 알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이 길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신자들 때문에 웃고 우는 신부입니다. 변화될 줄 알았던, 조그만 것 하나라도 변화되기를 소원했던 신자가 어느 날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되려 당당해할 때, 사제는 절망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사제의 입술이 틀면 나오는 수도꼭지가 아닐진데, 끊임없이 어디가도 좋은 말씀 한 말씀하는 것이 당연한 듯 바라보는 신자들의 눈망울이 어떨 때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신자들에 치이고 교회에 실망하며 그저 인간적인 위로라도 구하려 눈을 돌릴라치면, 꼴에 무슨 서약 무슨 서약한 신부가 이래도 되나, 양심 법정에 홀로 서서 또 괴롭습니다.
신자들도 그렇겠지요. 고집 없이 살아온 인생이 어디 있고 성질 안 부리고 자랐던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내 성질 다 부리고 싶고 내 고집 다 피우고 싶어도 하느님 때문에 참아야 한답니다. 내가 나를 낮추고 죽이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며 본당 신부가 맨날 회개하고 변화하랍니다. 편히 TV 보다가도 기도 생각하면 맘 불편해지고, 막상 미사 빼먹고 다른 곳에 앉아 있으면 편칠 않습니다. 나도 남처럼 욕 좀 먹더라도 큰 소리치며 미워하는 놈 미워도 하고 복수하고 싶은 놈 복수도 하며 그렇게 살아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가도 이 놈의 신앙은 명색이 내가 천주교 신자인데 이래서 되겠는가? 홀로 통증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좁은 문은 우리 인생의 어느 시점에 놓여진 어떤 사건이나 공간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우리의 일상 속에 늘 놓여진 작디 작은 선택의 길입니다. 우리들이 매 순간 살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선택하는 길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걷고 있는 쉬운 길을 우리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다시 한 번 우리를 좁은 길을 가라합니다. 좁은 길은 무엇입니까?
게으름은 쉽습니다. 하지만 성실함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편한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일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즐거움을 구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미움은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분노는 쉽습니다. 하지만 인내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판단과 단죄는 쉽습니다. 하지만 관용과 배려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절망하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이 말들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우리가 매순간 좁은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우리가 죽는 날 들어가는 대문, 천주교 신자로 살았기 때문에, 혹은 천주교 신부로 살았기 때문에 응당 주어지는 보상이나 상급이 결코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살아 끊임없는 좁은 길을 걸어갔던 이들,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낮추고 꺾어낸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문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좁은 문입니다.
쉬운 것 보다는 어려운 것을 선택하십시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기 싫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구원이 매일의 일상에 있음을 절감하며 삽니다. 제 아무리 장대한 이상을 가지고 신부 생활을 시작했다 한들, 제가 저의 구원을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매일의 일상 안에서 서성이고 있는 좁은 문들 뿐입니다. 이것을 떠난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매순간,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어떤 것이 더 좁은 문인가? 를 정직하게 묻고, 그 답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일입니다. 신부 생활 10년에 저는 애시당초 가졌던 거창한 계획과 구호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떻게 사는 신부인가?만 중요해졌습니다. 그날 하루가 실패하면 내 인생에 실패한 나날들이 더 많을 것이고, 그날 하루가 성공하면 내 인생에 성공이 나날들이 더 많겠지요. 그런 눈으로 저의 동료요, 형제인 사제들을 봅니다.
사제 생활 10년 만에 김형수 신부님은 박사도 되고 교수도 되었습니다.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송별 미사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새삼스러운 삶의 기준을 김 신부님께 내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김형수 신부님! 저와 루르 한인 성당 신자들은 신부님이 구원받는 하느님의 사제이길 희망합니다. 그 구원은 당신이 사제이기 때문도 아니요, 당신이 박사나 교수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로지 스스로를 낮추어 매일 그대 일상 앞에 놓여진 좁은 길을 선선히 걸어갈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임을, 그대가 꼴찌 되는 첫째가 아니라, 첫째 되는 꼴찌의 길, 두려워하지 말고 선선히 걸어가시기를 이 송별미사의 선물로 담아드립니다.
부디 기도 앞에 성실하고 제대 앞에 눈물지으며 책상 앞에 헌신하여 드디어 그대가 훌륭하고도 묵묵히 교회의 일꾼들을 다 길러내고 난 후, 그렇게 그대의 마지막 책장이 덮혀지는 그날,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던 또 한 명의 사제이시기를, 저와 루르 한인 성당 모든 신자들은 기도할 것입니다.
사제는 사제를 보며 클 수 있는 것이 복이요, 신자를 보며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 은총입니다. 2002년 김형수 베드로 신부가 부산 김해 공항에서 독일발 비행기에 오를 때 함께 동행했던 동료 사제로서, 이제는 7년 반의 지난한 세월 잘 마무리하고 다시금 한국행 비행기에 비록 탈모로 머리칼 빠진 것 말고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넉넉해진 사제로 다시금 실어 보낼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그간 김형수 신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보살펴주셨던 루르 한인 성당 모든 신자분들께 드리는 감사의 인사도 함께 포함하여, 송별미사 강론을 갈음할까 합니다.
김형수 베드로 신부님. 한국 교회에 가시어 좁은 길, 구원의 문을 향해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