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선배인 은황기 선생님(전 호남고등학교 교사)으로부터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의 의부였던 이호준(李鎬俊: 1821-1901 향년 80세)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정읍향교 앞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퇴근길에 시간을 내어 정읍향교를 찾아갔다. 정읍향교 입구에 있는 비석군 중에 가장 안쪽 첫 번째 비석이 바로 그 비석이었다. 당시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있었던 어떤 일(?)과 관련하여 지역민들이 이호준의 이름을 새겨준 것이다. 비석을 살펴보니 세월에 글씨가 많이 마모되어서 글씨를 읽기가 쉽지 않다. ‘관찰사 이공호준 영세불망비’ 왼편으로 비석 조성 일자가 새겨져 있다. 동치제 11년 7월까지 읽을 수 있었다. 동치제는 청나라 말기의 황제로 이때는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동치제 11년을 서기로 환산하면 1872년이다. 전라 관찰사 이호준은 1870년부터 1872년까지 약 3년간 전라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외침에 대비해 성의 보수와 군사훈련에 주력하였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이른바 통상수교거부정책(쇄국정책)을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바로 신미양요(1871년) 이다. 당시 이호준은 흥선대원군과 친구 사이라고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대원군 이하응도 부인이 민씨였고 그의 아들 고종도 민씨였다. 문신 이호준도 민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했는지 부인이 민씨였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부터 이호준은 정략적으로 민비세력과 연결이 되었다고 한다. 의리나 명분보다는 시류를 따르고 실리를 추구한 인간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처세술은 양아들이었던 이완용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완용(1858-1926: 향년 68세)은 지금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의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만 9세에 우봉 이씨 집안의 32촌 관계였던 이호준의 양아들로 입적이 되었다. 이완용으로서는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었던 사건이다. 양부 이호준이 늘 권력을 추구하며 살았듯이 그 양아들 이완용도 그런 아버지를 인생의 멘토로 삼아 늘 권력과 부를 놓지 않으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 아버지와 아들 모두 전라 관찰사도 역임하였다. 이완용은 1898년 전라 관찰사를 역임하였는데, 직무태만과 민재(民財) 착복의 혐의로 파면의 위기까지 있었다. 현재 부안군 줄포면사무소 창고에는 이완용과 관련된 선정비가 보관되어 있다. 당시 부안 줄포면 지역에 발생한 해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구휼(救恤)한 공로를 인정하여 지역민들이 세워준 이른바 ‘휼민 선정비’라고 한다. 당시 민폐를 끼쳤던 이완용의 행실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을 순시한 관찰사에게 관행상 선정비를 세워주던 병폐라 여겨진다. 이완용은 양부 이호준의 영향이었던지 철저히 시류를 추구하던 인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권력의 맛을 알고 권력의 양지를 찾아다녔던 어쩌면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한때는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미국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친미파가 되었고 독립협회 2대 회장까지 하였다. 을미사변(1895년) 이후에는 친러파가 되어 아관파천(1896년)을 주도하였다. 이후 러일전쟁(1904-1905)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이때부터 적극적인 친일파가 되어, 을사늑약(1905년), 정미7조약(1907년), 한일병합조약(1910년)까지 모두 참여하며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정책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보상으로 이완용은 일제로부터 백작과 이어진 후작 칭호까지 받았고 은사금 300만 원(현재 시세 약 600억)을 받아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다하였다.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변명은 이러하다.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는 것만이 우리 조선이 발전하고 조선 민중이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이를 굳게 믿고 실행하였다고 한다. 잘못된 신념이 잘못된 역사를 만들었는데, 오늘날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호준과 이완용, 이 두 인물에 대해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고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읍향교 앞 비석군 중에 첫번째가 관찰사 이호준 불망비이다.
관찰사 이호준 불망비
첫댓글 얼마 전에 이 비를 봤는데 비의 주인공이 이완용의 의부라는 생각은 못했네요.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