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텐로드를 아시나요
글 편집 : 이 해 원
나는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문텐로드>를 아주 좋아 한다.
제주도 올레길을 비롯하여 부산 회동수원지의 둘레길, 성지곡 수원지의 일주길 등 전국의 이름난 산책길을 헤아리자면 수백곳이 되겠지만 <문텐로드>만큼 정감이 가는 길도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첫째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워서 좋다. 속된 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거리다.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산책 나갈수 있는 뒷동산 같다. 어떨때는 우리집 장원(莊園) 같은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굳이 등산을 간답시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몇날 몇시에 문텐로드를 걸어야겠다고 계획을 짤 필요는 더더구나 없다. 아무때고 맘만 내키면 집을 나사서 한 5분쯤 걸어 달맞이 언덕을 약간 올라가면 문텐로드 입구에 이를수 있다.
둘째 간편한 복장으로도 충분하다. 구태여 등산복 차림으로 갖추지 않고 운동화 정도면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슬립형 구두를 신어도 괜찮다. 사실 나는 그때 그때 아무렇게나 차림새를 하고 아주 가볍게 집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무엇보다 70고개를 한참 넘어온 내 나이에 그 길은 힘에 부치지 않고 걸을수 있어서 무척 마음에 든다. 명색이 산길인데도 up-down이 아주 절묘(?)하다. 오르막길이라 해도 힘겨울 정도로 가파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얕잡아볼 정도로 평평 하지도 않아서 적당히 긴장감을 가져다 주어서 좋다는 뜻이다. 산길은 거의가 마사흙 이어서 비가 내린 후에도 질척 거리지 않아서 정말 좋다.
넷째 출입구가 하나 뿐인듯 하지만 알고 보면 대여섯 갈래도 넘게 뚫려 있어서 아무데서나 들어 갔다가 나오고 싶은 곳으로 올라오면 된다. 말하자면 길의 선택이 자유롭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높낮이의 걷는 코스를 자유자재로 선택 할수 있다. 그날 몸이 날듯이 가볍다면 숨차고 가파른 해마루 언덕길을 택해 15굽이길을 깊숙이 들어 갔다가 송정 바닷가 구덕포까지 다녀 올수도 있다. 30분 ~2시간~ 3시간 등산 코스를 마음대로 조정할수 있다.
다섯째 문텐로드는 거의 숲속을 걷는 코스로 이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길 바로 아래 동해남부선 철길이 달리고 또 그 아래로 푸른 동해 바다가 철석 거리면서 흰포말을 만들고 있어 정서적으로 엔돌핀을 계속 솟아나게 하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여섯째 다 아는 얘기지만 <문텐로드>라는게 한국적 영어 조어라고나 할까 ? 여름철 해수욕장의 선텐 (sunㅡtan) ㅡ햇볕에 피부를 태우는 건강 요법을 원용하여 <달빛 쐬기>라는 뜻의 문텐(moonㅡtan)의 길(road)로 명명 된 것이다. 따라서 달뜨는 시간에 이길을 걸으면 숲과 바다와 쏟아지는 별빛과 달빛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몰 시간에는 10 m 간격으로 발길을 비추는 전등이 자동으로 켜저서 그 또한 멋지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 하다.
일곱째 문텐로드는 친구나 정인(情人)과 걸을 때가 분명 좋을 테지만 혼자 걸을 때가 더 좋을성 싶기도
하다. 나는 거의가 혼자 걷는다. 호젓이 산길을 걸으면 어느덧 사색하는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된다. 나 혼자만이 알아 들을수 있는 흥얼거림의 노래요 박자가 맞을리 없지만 그저 흥에 겹고 즐겁다. 노래 가사가 생각 나지 않아도 적당히 얼버무리는데 기분은 가수가 된 것 보다 더 가슴이 벅차 오른다. 옛날에 외웠던 시 귀절이 띄엄띄엄 생각 나는 것 만으로도 젊음으로 되돌아 간 듯 희열이 휩싸인다.
여덟째 이 길은 거의 숲속을 걷도록 되어 있다. 몇십년 된 소나무가 하늘높이 뻗어 있고 그 사이로 잡목이 우거져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니 여기만큼 좋은 산책길이 드물 것 같다. 비가 와도 옷이 별로 젖지 않을 뿐더러 바닥에 마사흙이 깔려 있어서 질퍽거리거나 미끄럽지가 않다. 비오는 날은 해무가 자욱하게 깔려 촉촉한 정취가 그저 그만이다. 다른 올레길을 더러 걸어 보았지만 비견 될수 없을 정도로 삼빡하다.
군데 군데 별자리 이름을 적은 간판을 세워 둬 밤길에는 별을 바라보며 이름을 알아내는 재미도 제법 쏠쏠 하다
얼마전에는 해월정 아랫길 절벽에 넓은 전망대를 만들어 동해 바다와 해운대 광안 해수욕장 5~6도를 한눈에 볼수 있다. 바다와 해돋이 또는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놓으면 평생 추억이 될 것이다.
아홉째 문텐로드를 휘둘러 달맞이 언덕에 오르면 해월정(海月亭)과 계수나무 그늘이 있어 한결 정취를 더한다. 그 아래쪽 언덕 받이에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 유일의 지승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