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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 영험담 모음
1. 천수대비주기도로 지리산 칠불사를 복원하신 통광스님(現 지리산 쌍계사 승가대학장)의 법문입니다.
지극한 일념의 기도는 운명을 초월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通光스님 法門))
願力을 잘 세워라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럴 때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절대자에게 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고서는 그런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는 기도라는 것을 따로 하지 않아도, 모두 기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
다 보면, 바라는 것이 있어서 잘 됐으면 하는 마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태를 살펴볼 때 모두 자기의 목적, 희망, 원력에 따라서 생활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하는 사람이 조그마한 생각을 가지면 조그마한 사업밖에 하지 못하고, 큰 원을 세우고 사업을 하면,
큰 사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시간과, 공간을 허비하는 시간은 똑같지만은 초등학교선생을 원하면 초등학교 선생이 되지만,
대학선생을 원하면 교수가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원에 따라 실천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원을 어떻게 세우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인생과 수행의 결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원을 세우고, 실천한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폐허가된 칠불사 대웅전 터에 천막을 쳐놓고,
혼자서 천일기도를 했는데 이때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때는 12시간 어떤 때는 밤샘..
이렇게 기도를 하던 어느 날 몽중일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몸은 곤하게 쓰러져 자는데 정신은 천수경 다하고, 문수보살 정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멸하는 몸 가운데 생멸을 하지 않는 몸이 있음을 체험한 뒤 기도가 신심이 붙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했습니다.
혼자 공부 할 때라서 관심 있는 경을 보다가 막히면, 이말은 선방 수좌스님들에겐 한 방망이 맞는 소리이지만 그
날 꿈속에 불보살님이나 노인의 가르침을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꼭 참선만해서 도통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을 하든 주력을 하든지 일념으로 하게 되면 마음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됩니다. 』
『1978년부터 복원을 시작했는데, 그전에 탄허스님께 칠불사 이야기를 하면
"통광수좌는 관상학적으로 보면 복이 없어 절대 칠불사를 복원하지 못하니 내 밑에서 경학연구만 해라" 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을 기도로 해서 이루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관상학적이나 운명이나 그 사람 재질이나 그 사람의 모든 역량으로 봐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불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천수경이 아닌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에 보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을 하면,
현세에 원하는 것을 다 이룬다 하여 칠불암에서 3.7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는 좌선을 하는데,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좌선한다고 앉았는데 깜빡 졸았는 모양인데 그 정신상태로 어디를 가니까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걸 보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떻게 하면 칠불사를 빨리 복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절을 자꾸 하니까
관세음보살님께서 무엇을 한 주먹 주시길래 이리 보니까 열쇠 꾸러미였습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말씀하는가 "네가 아무리 빨리 복원을 하려 해도 10년은 넘게 걸릴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어 눈을 번쩍 뜨니 깜빡 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주에 사는 허00 씨에게 그때 돈 어음 천 만원을 빌려서 나무를 계약하고 복원불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틀림없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서 몽중 가피도 없고 아무일 없으면 "이거 헛기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경전에 보면 기도는 현가(顯加) 명가(冥加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현가는 나타나게 가피를 받고, 명가는 가만히 가피를 받는 것이다.
내가 관세음보살님께 꿈에 열쇠꾸러미를 받는 것이 현가인 것입니다. 』
『그러면 기도가 틀림없이 성취되고 마는데 왜 성취되는가... ?
풀지 못할 일이나 소원이 있으면 원(願)만 세우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원이 왜 이루어지는가...
기도를 하면 왜 소원이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첫째는 "불심 충만의 법계" 화엄경에 나오는 말인데 불보살 인행시 일체중생을 무여열반으로 이루겠다는
원으로 지극정성으로 염을 한다던가 또는 관을 하면 바로 (불,보살님의) 원 때문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근데 왜 원을 세워도 빨리 성취되지 않는가.. ?
그것은 허공의 달이 일천 강을 비추지만은 흙탕물이 있는 곳에는 비추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흙탕물로 인하여
달빛이 들어나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기도할 때에 망념이 없어질 때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채널을 맞추어야 T.V를 볼 수 있듯이 번뇌망상이 없어질 때 기도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조사어록에 보면 기도를 할 때는 온갖 반연을 다 놔버리고 오직 관세음보살을 불러라 했습니다.
또 간절히 불러야 합니다. 중생감제불응 (衆生感諸佛應)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중생들이
불보살을 감동시킬 때 모든 불보살님들이 중생의 원에 응해준다는 말입니다.
간절히 끊임없는 정진을 할 때에 불보살님들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보살님과는 말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으로 같은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기 때문에
마음가운데 딴 생각이 있어서는 기도 성취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불심충만의 세계지만 성취가 안 되는 것은 마음가운데 모든 번뇌망상이 가려져서 그렇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많은 신도님들이 오셔서 기도를 하지만 더러 어째서 성취가 안되냐고 물으면 달리 할말도 없지만 어머님들이 기도하며 염불할 때 마음속으로는 "대학","대학"하고만 있지 정말로 불보살님을 염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절집안에 내려온 이야기 인데 다 짤라 버리고 한 학인이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같은 도반이 시다림(망자를 위한 염불)을 하고 있더랍니다. 근데 한 스님은 목탁을 치면서 "은행바루떼"는 내것이다 "은행바루떼"는 내 것이다... 하고 있고 요령을 흔드는 스님은 "제경행상만"은 내 것 제경행상만은 요즘말로
불교사전인데 "제경행상만"은 내 것 하더랍니다.
염불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죽은 스님 유품 중 자신들이 가지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있으므로 죽은 스님에게는
염불소리는 안 들리고 그 소리만 들렸던 것입니다.
기도는 반연도방하라 일체 원까지 놔버리고 간절히 일념으로 염불한 뒤 마지막 마칠 때 절 세 번하고 발원하고
이렇게 간절해야 기도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원이 성취되지 못한 것은 기도 중 급한 마음에 또는 느슨해져 번뇌망상이 자리를 잡기 때문이며,
성취가 되려면 모든 인연, 자신의 원마저 놔버리고 지극정성으로 일념 되게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출처: 인터넷 불교연대(cafe.daum.net/ibr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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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등잔을 살펴보았으나 깨어진 흔적은커녕 구멍 하나 없었습니다.
괴이하게 여기며 스님은 또다시 등잔에 참기름을 채웠고,
그 이튿날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자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
탁자는 천으로 가리워져 있어 밖에서는 그 밑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탁자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효성사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은사스님의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놈, 게 섰거라!"
깜짝 놀란 효성사미가 눈을 떠보니,
법당 가운데 문 앞에 키가 9척이나 되고 검은 옷을 입었는지 검은 털이 났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괴물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와 팔다리와 몸뚱이가 모두 있고 우뚝 서 있었지만, 사람은 아닌 듯 하였습니다.
고함을 치며 신중단 탁지 밑을 나간 노전스님은 그에게 앉도록 한 다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
무식한 머슴들이 제 발등에 나무를 올려놓고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팹니다.
판서 댁에서 겨울 내내 쓸 장작을 여러 머슴들이 계속 준비하다 보니,
제 발등의 이곳 저곳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이 상처와 아픔을 달랠 약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 가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께 올리는 이 등잔의 기름을 발라야만 하룻밤 사이에 아픔도 사라지고 딱지가 앉습니다.
그런데 머슴 놈들이 매일 장작을 패기 때문에 며칠 동안 계속 부처님의 기름을 바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네가 진짜 목신이라면 인간보다 힘이 셀 것이 아니냐?
얼마든지 보복을 할 수 있을 텐데?"
"보복을 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집의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이 판서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면 정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번 읽습니다.
그 힘 때문에 지기를 비롯한 어떤 기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이 판서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습니까?
이 판서가 죽고 나면 보복을 할 생각입니다."
"내가 가서 앞으로는 머슴들이 너의 발등 위에서 장작을 패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보복을 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인간들이 해를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가 먼저 해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 이상 고마울 일이 있겠습니까?"
목신은 절을 한 다음 사라졌고, 노전스님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이 판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이판서는 머슴들을 불러모아 땅 위로 노출된 은행나무의 뿌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덮도록 하고,
허리 높이 정도의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도 나무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을 차려 은행나무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뒤 쌍계사 대웅전의 등잔 기름은 훼손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3세의 사미 시절에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한 효성스님은 노년에 나(우룡스님)를 비롯한 여러 승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수백년된 목신은 힘이 없어 보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늙은 이 판서가 날마다 외우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력 때문에 어떠한 보복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어떠한 삿된기운도 이판서의 집안을 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명훈가피요. '누구라도 감히 해칠 수 없다' 는 시실불감해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워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는 것이나, '관음경'의 염피관음력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십시오. 이 판서는 아주 특별한 신심을 갖춘 분이 아니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많이 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오직 한 차례만 외웠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목신은 '이판서가 살아있는 이상 절대로 보복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입니까?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의 명훈가피를 입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 힘! 곧 염피관음력이 있으면 됩니다.
하루에 관음경 한편의 독송, 매일 단 10분의 '관세음보살'염불이나
몇 차례의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통하여 능히 명훈가피를 입을 수 있습니다.
당부드리건데, 꾸준히 염피관음력을 키워가십시오.
꾸준하게만 하면 틀림 없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어
나찰, 독룡, 아귀 등의 해침은 물론이요.
모든 재난이 저절로 피해가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원출전: 우룡큰스님저 생활속의 관음경(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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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종교인 불교에서 어떻게 그런 미신 같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실까 하며
불만이 생겼답니다. 그래도 성화선사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 스승님의 뜻을 따라
기우제를 지내는데 동참하기로 했답니다.
근데 성화선사께서 기우제 지내는 장소를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금문교(골든게이트 브릿지)'로 정하셨다네요.
당황한 우리교수님,,,왜 기우제를 그렇게 사람들 많은 데서 눈에 띄게 지내려고 할까...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창피일까....
암튼 온 대중스님들과 함께 금문교로 가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답니다. 아침부터
그 중간에 여러분들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요? 그 시절만 해도 미국 일반인들에겐 스님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대다수가 석사학위 이상을 지식층들입니다.
미국에서 불교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죠. 암튼, 이상한 복장에다 삭발까지 한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하루
종일 서서 그러니까 급기야 방송국에서 출동.... 우리교수님 내심 불안하고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방송국 기자가 그 중 한 스님과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 당신들은 누구며 무엇을 하고 있나요?
한 스님: 불교의 수행자들이며 비 오라고 용왕님께 기우제를 지내고 있지요.
기자: 용왕이라고???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어하며.... 방송국 기상대를 연결하여
'척스(일기예보하는 사람) 조만간 비가 올 것 같나요?
척스: 아니요. 전혀 기미가 없습니다. 구름도 한 점 없습니다.
기자 무시하는 듯 어이없어 하며 농담을 합니다: 척스 하늘에 용이 보입니까?
척스: 무슨 말인지???
기자 여차 저차 일기 예보자와 농담을 하며 신이 났습니다. 속으론 그랬겠죠... 이런 얼빠진 사람들이 다 있나...
정말 불교란 미신이구만....
우리교수님: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방송에까지 나왔는데 비가 안 오면 이 일을 어째....
그런 우리 교수님의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비가 올 기미는 전혀없이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은 계속되고..
드디어 절로 돌아오셨죠.
불만과 허탈감에 차서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했습니다. 밤 9시쯤이었습니다.
갑자기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 소리가.... 울 교수님 너무 놀라 창문을 여니 이게 웬일입니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얼론 내려가 티비를 틀어 일기예보를 보니 그 척스라는 사람 눈이 둥그래서 흥분해서 말하더랍니다....
아까 금문교에서 스님들이 비 오라고 기도를 하던데 이런 신기한 일도 다 일어나는 군요.
아까는 믿지 않았는데 정말 구름도 한 점 없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네요...... 흥분... 흥분...
울교수님: 나도 기우제 같은 건 믿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암튼, 오늘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가 나와 그 일기예보하던 사람은 효과가 있다고 확신을 시켰네....
출처: 나무아미타불카페 불교의 영험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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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나라 홍만(洪滿)스님은 어려서 세상에 있을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못쓰게 되었는데 이렇게 폐인이 되자
부모 형제간도 모두 불쌍하게만 여겼지 그 당시 불치병인 소아마비를 고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화주를 나왔다가 이 아이의 딱한 사정을 보고 대비주를 읽어보라 권했다.
홍만은 그로부터 3년 불철주야 대비주를 독송했다.
그런데, 하루 밤에는 어떤 스님이 병 하나를 손에 들고 꿈에 나타나 서 있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네가 항상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대비주 주력을 하여 약을 가지고 왔다.
어디 아픈 발을 이리 내 놓으라. 내가 치료하여 주리라."
홍만은 너무도 기뻐 두 다리를 내놓으니 스님은 두 무릎 위에서
두 개의 못을 빼 버리고 약병을 기울여 약을 발라주었다.
홍만은 너무도 시원하여 한참 동안 누웠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하도 희한하여 일어나 두 다리를 만져보고 걸어보니 병은 간 곳이 없고 보통 사람과 같이 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출가하여 대비보살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대비주를 많이 읽어 여러 가지 기적이 많았다.
(천수경 영험록)
출전: 불교영험설화 (한 정섭저, 法輪社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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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엄큰스님의 출가계기 이야기 (월간불광 일부전재)
일타 스님이 쓰신 '기도(도서출판 효림)'에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읽었는데 매우 신비로웠습니다.
"1944년 일본의 대판의전에 다닐 때 학도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 갔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해방 후 다리가 아파서 요양차 범어사에 갔었는데 그 길로 출가를 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스님이 뭔지도 몰랐어요. 다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수주를 외우면
다리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범어사 미륵암에서 그저 일구월심 천수 주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한 6개월 천수주를 외우니 지리천문 알게 되고, 7개월째, 8개월째 에는 수천리 밖이 보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이었는데, 법당의 신중탱화에서 신장이 튀어나오더니 환부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아파서 아이구 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보니 법당 바닥에 파편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 전까지 신비한 경계를 대할 때 하고는 또 다른 무엇이 가슴을 확 내리치더군요.
아하, 이게 마음의 힘이로구나, 마음을 깨치면 이 몸을 조복 받는 것은 물론이요,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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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수다라니로 도를 이룬 수월스님
근세의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대선사(鏡虛大禪師)의 가장 큰 법제자인 수월스님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살았습니다.
나이 서른에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출가하여 성원(性圓) 스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배우지 못한데다 머리까지 둔하여 불경을 배워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은사 성원스님은 글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땔나무를 해오는 부목(負木),
밥을 짓는 공양주(供養主)등의 소임을 3년동안 맡겼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월스님이 불공할 때 올릴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갔을 때,
마침 부전스님(기도승)이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송(頌)하고 있었습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스님은 이를 한번 듣고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머리가 좋지 않다고 구박을 받았는데,
총 442글자의 천수대비주가 저절로 외워진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밥을 짓거나 마냥 천수대비주를 흥얼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 성원스님이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다가 마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땅히 제시간에 와야 할 마지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밥 타는 냄새만 절 안에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부엌으로 찾아간 성원스님은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수월스님이 대비주를 외우면서 계속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밥이 까맣게 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솥이 벌겋게 달아 곧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대비주를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본 성원스님은 수월스님에게 방을 하나 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너에게 이 방을 줄 터이니, 마음껏 대비주를 외워보아라,
배가 고프면 나와서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마음대로 자거라. 나무하고 밥 짓는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수월스님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가마니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짝에 달았습니다.
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수대비주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방 밖으로는 밤낮없이 대비주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 나오고.....
마침내 7일째 되는 날, 수월스님은 문을 박차고 나오며 소리쳤습니다. "스님, 잠을 쫓았습니다.! 잠을!'"
이때 수월스님은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중득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을 뿐 아니라,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증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글을 몰라서 경전을 읽지도 못하고 신도들의 축원도 쓰지 못하였지만, 불망념지를 이룬 후부터는
어떤 경전을 놓고 뜻을 물어도 막힘이 없게 되었으며,
수백 명의 축원자 이름도 귀로 한번 들으면 불공을 드릴 때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수삼매를 얻은 뒤에도 참선정진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잠을 쫓았다'는 그 말대로 일평생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백두산 간도지방 등에서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음식을 제공하며 보살행을 실천했던 수월스님! 오늘날까지 자비보살이요 숨은 도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수월스님의 도력은 천수대비주 기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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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숭산스님의 천수대비주 100일 정진 이야기 (화계사 홈페이지에서 옮김)
숭산스님은 결국 1947년 10월에 계를 받아 출가를 하셨고 출가한 지 열흘 만에 100일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수계한 지 10일이 지나서 숭산스님은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원각산 부용암에서 백일 기도를 하였습니다.
식사로는 솔잎을 말려 빻은 가루로 벽곡을 하면서 매일 20시간 동안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하였습니다.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얼음을 깨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종교적인 수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엇 하러 이토록 극심한 고생을 하는가?
산을 내려가 조그만 암자를 하나 얻어서 일본 중처럼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가운데
천천히 도를 닦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밤이면 이런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선사는 떠나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마음이 맑아져서 이렇게 보따리를 싸고 풀고 한 것이 9번이나 되었습니다.
50일이 지나자 선사님은 몸이 쇠약해져 기운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무시무시한 환상이 보였습니다. 마구니가 어둠 속에 나타나 욕설을 하기도 하고 유령이 나타나
삼킬 듯 달려들면서 차가운 발톱으로 목을 할퀴기도 하였습니다.
커다란 딱정벌레가 나타나 다리를 물려고도 했습니다. 호랑이와 용이 나타나 바로 앞에서 삼킬 듯 덤벼들어서
그는 전신이 다 얼어붙는 듯하였습니다.
그 뒤 한 달이 지나자 무시무시한 환상에 이어 이번에는 즐거운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이 나타나 경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멋진 옷을 입은 보살이 나타나 스님에게
극락에 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스님이 지쳐 잠깐 무릎을 끓고 엎드려 있으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잠을 깨우기도 하였습니다.
80일째가 되면서부터 스님은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살갗은 솔잎처럼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백일 기도가 끝나기 1주일 전인 어느 날,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도량석을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11살이나 12살쯤 되어 보이는 동자 둘이 양쪽에 나타나서 선사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동자들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듯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스님은 그들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굳세어지고 완전히 맑아졌다고 느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것들이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좁은 산길을 걸어갈 때 두 동자는 뒤에서 따라왔는데,
바위 사이로 지날 때 동자들은 바위 속을 통과해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30분 동안 조용히 뒤에서 따라오다가 스님이 불단 앞에 다가가 절을 올릴 때가 되면
불단 뒤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1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100일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암자 밖으로 나와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자신이 몸을 떠나서 무한한 공간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탁 치는 소리와 자기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깨달았습니다. 바위, 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인 것이고 참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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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로 최고의 행복을 얻다
미주현대불교 5월호 / 원명화
저는 부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움이 짧기도 하지만, 사는 일이 바빠서 부처님 법을 공부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40중반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남겨진 삼 남매를 보란 듯이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내가 일을 해야 살 수 있었으므로, 절에는 그저 초파일에 등이나 달러 갈 수 밖엔 없었지요.
제가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하기 전 까지는 참 살아온 세월이 힘이 들었습니다.
3년 전 시댁 쪽에 산소를 이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산소를 이장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들 하지만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뭐 별일이 있겠나 싶었습니다.
한데, 무슨 일인지 산소 이장 이후 집안에 이런저런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자꾸 풀리지 않는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 했습니다.
온 마음을 바치며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건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좋다는 방법을 모두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스님과의 인연으로 제가 사는 곳은 서울인데 거제도까지 가서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천도재를 마치자 스님은 “여기 거제도까지 오실 수는 없으니 댁에 돌아 가셔서 마음에 드는 도량을 찾아
백일기도를 하십시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찾아보았지만 왠지 마음에 끌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제가 천수대비주 기도를 하게 된 이 도량 이었습니다.
요즘 생각하니 그래도 제가 전생에 조금 덕을 지어 놓았나 싶기도 합니다.
거제도에서 돌아와 저는 이 도량에 나와 백일을 아들과 열심히 108배와 광명진언,
천수대비주 21편을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천수대비주 백일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스님께 무어라 감사의 절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부처님을 열심히 공경하는 일 만이 스님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이었습니다.
백일을 스님께서는 목탁을 치시며 저를 위해 108편 천수대비주 기도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 말입니다. 그런 스님의 법력에 힘입어, 저 역시 백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목욕으로
몸을 정히 하고 음식도 가리며, 먼 길을 마다 않고 새벽 길을 헤치며 법당에 와 청수를 갈고 공양을 올리며
기도 하였습니다.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가정에도 안정이 찾아 왔습니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던 것도 다 물리치고, 오직 일념으로 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제게 급박한 일이 많았습니다. 돈 보다는 기도를 해야 했으니까요.
백일이 지나자 이제는 스님께서 매일 108독씩 다라니기도를 계속하라시면서 이제부터 금요일에는
1000독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분들과 함께 바로 1000독 독송에 들었습니다.
말이 천 독이지 혀도 잘 안 돌아가는 제게 처음에 천 독은 참 힘들었습니다.
아침 10반에 시작해서 다음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저는 참 죽을 맛이었습니다.
스님! 저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하고 말씀 들여도, 앞에서 스님은 꼼짝없이 같이 독송을 하시니,
어쩌지도 못하고 온몸을 꼬아 가며 꼬박 날밤을 새어가며 22시간 만에 1000독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나?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우습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25만독이라는 숫자를 채우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숫자를 꼭 챙기라고 하십니다.목표를 세워 기도하라고 하시는 거지요.
물론 숫자에 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숫자를 챙기시라는 말씀의 이유를 이제는 다 알 것 같습니다.
또 10만독, 20만독을 독송하고 나니, 이제는 또 글을 쓰라고 하십니다.
글도 제대로 모르는 저에게는 엄청난 일이지요.
“그냥 느낀 대로만 쓰시면 됩니다. 그래야 글 못 쓴다는 마음에서 벗어 날 테니 쓰십시오.” 하십니다. 그
래서 저는 또 말도 안 되지만 글을 씁니다.
신묘장구 대다라니 십만독을 끝마칠 무렵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어찌 십만독을 내가 해 내었는지 이건 나의 힘이 아닐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3000독 ,7000독 10000독을 거듭 독송하며 나는 많은 경험들을 했습니다.
조상들의 영가와 만나는 시간도 있었고, 오래도록 소원하게 지내던 친척과도 화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이루었고,
자식들의 문제들도 수월히 풀려 나갔고, 일하면서 마음에 응어리 졌던 사람과도 웃으며 만나며 아무런 미운 마음이 들지를 않았습니다.
또한 환희심이 일어 언제나 웃는 낯 이 되어 주의 사람들에게
뭐 좋은 일이 많은 가보다 라는 좋은 말을 자주 듣기도 했습니다.
또 혈색도 좋아지니 미인이 되었다는 농담도 듣게 되니,
나는 이 기도만큼 나를 변화 시킨 것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어쨋던 나는 이 기도가 평생 나를 지탱해 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도의 횟수가 십만독에 가까워오는 때 독송을 하는데 흰나비가 살랑살랑하고 날아와 앉을 듯 말듯 하면서, 신묘장구 대다라니가 노래 소리로 들렸습니다.그러더니 마음이 갑자기 설레고, 기분이 너무 좋아 춤이라도
덩실 덩실 추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십만독을 하고 나니 제 마음은 그저 흐믓하고 행복한 마음 뿐 입니다.
이제 십만독은 다시 처음의 일독으로 돌아가는 것 일뿐이라 생각합니다.
-20만독 독송을 하고나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5만독 쯤 독송하였을 때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 것일까? 자식을 위해 울리려 하는 것일까?
아님 내 자신을 위해서 종을 울리려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정진하여 20만독을 독송하게 되었습니다.
3차 백일기도 회향하는 날, 스님께서 천수대비주 21편을 독송하시는 중간에 다시 이상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열심히 기도하는 제 머리위로 까치가 ‘까악까악’ 소리를 지르면서 입에 편지를 물고 부처님 전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들의 직장문제로 걱정을 하던 때 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얼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환희로운 마음에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게
독송의 즐거움이구나! 하고 더 큰소리로 독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아들의 직장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저절로 저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되고 더욱 힘차게 기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얼마 전 4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며 바로 가행정진 열흘을 했습니다.
가행정진 열흘 동안 저는 너무도 벅차게 환희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가행정진 7일째 이고 음력 7일이라 산신기도 법회가 있는 날 이었습니다.
그날도 일찌감치 집을 나서 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지금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이 25만독이 가까워 오고 있으며
가행정진시에는 지금 까지는 1000독씩을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한계를 넘어 보라는 스님의 권유에
하루에 1500 ~2000독을 했습니다.
며칠 전 스님께서 하신 법문을 듣고, 정말 이번에는 '내가 죽었다' 하고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정성껏 마음을 모으고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다라니 21편을 소리 높여 독송하는 중이었습니다.
중반쯤 되었는데 내가 그만 죽었습니다. 죽어 있는 나를 바라보니 나는 관속에 누어있고,
아이들은 관속에 있는 나를 보며 빙 둘러 울고 있었습니다.
산신각 앞에 내가 누워 있는 관은 누런 금빛이고,
내 머리맡에는 머리에 노란 관을 쓰신 분이 주장자를 들고 계셨습니다.
그러더니 그분은 사라지고 다시 머리에 하얀 관을 쓰신 분이
너울너울한 흰옷을 입고 나타나 다시 머리맡에 서 계십니다.죽어 있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죽은 것이 너무 슬퍼 마구 소리를 내어 울며 다라니 독송을 했습니다.
다라니 21편이 끝나니 온 정신으로 돌아오며, 순간 온 몸에 힘 이 다 빠져 그만 '스님 저 쓰러지겠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억지로 참았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스님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진언에 일어섰습니다.
이번 백일기도에 괜히 처음부터 가행정진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루고저 하는 바도 있거니와, 스님께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다 좋은 일이 있다 '라는 말씀에
뒤 돌아 볼 것도 없이 그저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었습니다.
7일쯤 되니 머리가 휭하니 붕붕 떠 있는 느낌도 들고, 어지러운 듯 정신이 몽롱하였습니다.
가행정진하는 동안 눈에는 피부병처럼 무엇이 났는데 보살들이 우스게로 '우담바라' 가 피었다고 놀립니다.
정말 내 몸에 우담바라가 핀다면? 그럴 일은 조금도 없지만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좋은 일일까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날 겪은 일은 저도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입니다.
이렇게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모든 것이 좋은 일로 바뀌더군요.
그 동안 힘들게 살아오면서 간간히 아이들에게도 화를 잘 내던 나의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아는 일이니까요.
부처님의 법이 얼마나 환희로 운지 경험을 해 보셔야만 아실 것 입니다.
저는 그저 천수대비주 기도로 죽음을 맞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려운 일이 있으신 분 들이나
마음고생을 하시는 분들, “모두들 기도 열심히 하세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셔서 소원성취하시고 성불 하십시오.
덕양선원 원명화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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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이 불교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877년 14세 때의 일이었다.
꿈속에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불경을 보기 시작했고,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하였으나 부모님의 강한 만류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16세 때 해인사로 찾아가 화월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정식으로 출가하였으며,
17세 때 의성 고운사의 수월 스님을 찾아가서 소년답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나고 죽음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일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여 날로 변합니다.
어떻게 해야 생사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당대의 대고승인 수월스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먼저 천수대비주를 외울 것을 권하였다.
"지금은 숙업이 무겁고 장애가 많아 견성법을 너에게 일러주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대비주를 부지런히 외우면 업장도 소멸되고 마음도 맑아져서 저절로 길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 동안은 아무 생각 말고 대비주만 외우도록 하여라."
수월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님은 대비주를 10만번 외우기로 스스로 다짐하고 부지런히 외웠다.
9개월에 걸쳐 대비주를 10만번 외워 마쳤을 때 스님은 양주 보광사 도솔암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에는 모두 근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의문을 일념으로 생각한 지 엿새가 되었을 때,
마치 깜깜한 방에 등불이 밝혀지듯 그 근원을 확연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용성스님은 '무'자 화두를 꾸준히 참구하여 확철대오하였으며,
일제의 대처불교에 대응하여 대각교운동을 전개하고 역경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석가 세존께서 다라니를 설하실 때의 신명상서의 이적을 보고 구분하죠.
모든 대승경전이 설해지는 곳은 석가 세존의 몸에서 나오는 금빛 세계 (빛으로 이루어진 법계라는 화장세계) 라
하죠. 우리의 머리와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장소이죠.
이러한 법계에서 부처님의 가슴의 만자에서 설해진 것을 진언 (광명의 소리), 부처님의 입에서 설해진 것을
주문(광명의 말씀), 부처님의 머리 정수리 육계에서 설해진 것을
신주(육계에서 화생한 부처님의 광명인 의밀)로 분류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수경이라는 경전의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수지 독송 공덕에 대해서 석가 세존과
관세음 보살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 다라니가 수행자를 보호하며 몹쓸 병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케 하며 갖가지 고뇌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수행이 완전하지 못한 자들로 하여금 온전한 수행으로 이끈다.`
이 다라니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 언어로 창작된 신비하고 미묘한 힘을 가진 언어이죠.
신묘장구대다라니 뿐만 아니라 모든 다라니는 미묘한 신비를 가지고 있으며
부처님과 불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죠.
저는 처음에 일타스님의 가르침대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염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그 일이 저에게 행운이었죠. 내 자신의 힘이었다기 보다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우연하게도 기본적인 불교 사상과
교리를 접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합니다.
다라니를 외워 지니는 자는 모든 경전을 구해 볼 수 있다는 말씀을.
속으로 이런 부분이 알고 싶다고 생각만하고 이 경전 해설서는 한 권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만하면
얻게 되고 보게 되죠.
제 주관적인 판단과 생각보다는 사실의 서술을 위주로 하겠습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세요. 저의 경험을 올립니다.
군대 복무 시절의 일입니다. 저는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있었죠.
어느 겨울 눈 내리던 새벽이었습니다. 가끔씩 사고가 나고 하던 부대 내리막길로 차를 몰고 내려오고 있던 중이었죠.
이 정도의 눈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차를 운전하고 내려 왔죠.
그러나 판단과 달리 차는 옆으로 미끄러진 채 한없이 속력이 붙어 도저히 제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길 끝에는 10 미터 높이의 절벽이 있었고 절벽 앞으로는 조그마한 면회실이 있었죠.
그 짧은 순간에 드는 생각으로도 저 면회실을 부딪히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 운이 좋아도 내가 다치고
차가 박살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짧은 순간이 지났습니다.
제어가 불가능하던 차가 순간 조그마한 사이 길로 핸들이 돌려지며 차가 멈추어 섭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습니다.
그런 기적적인 일 뒤에는 늘 부처님 전에서 아무 탈없도록 자식을 지켜주십사 하고 기도하던 어머님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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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관음재일 법문中
천수경(千手經)에는 관세음보살님의 신통묘용(神通妙用)을 찬탄한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가 있는데 예로부터 이 다라니를 주력하여서 신통가피(神通加被)를 얻은 분이 많이 계신데 구한말 동학사 조실(東鶴寺 祖室)로 계시던 경봉 강백(鏡峯講伯) 스님께서는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들으신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얻으셔서 항상 책 없이 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면 무엇인들 못 이루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것이
꼭 떡 설게 쪄놓고 밥 설게 쪄놓고 상대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 받으려는 것과 같으니
성취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처음 시작하는 그 마음으로 끝까지 해야 되는데 높은 사다리에서 처음에는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한두 칸
남겨놓고 홀짝 뛰어내려서 발목 삐고 뒤로 홀랑 자빠지듯이 뭔가 좀 잘 되어간다 싶으면 그만
안일에 빠져 기도를 쉬어서 스스로 장애를 일으켜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기도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면밀히 이어서 해야지 조금 하고서 ‘이만하면 되겠지’하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떡이 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정성을 다하면 법(法)도 통하고 모든 세계의 관세음보살님과도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함을 항상
살피고 걱정해야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있고 없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배고파 울 듯이 전후사정 생각 없이 기도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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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 독송하니 광명 가피”
시각장애 1급 장애인 신도 시력 되찾아
BBS불교방송과 대성사 주지 법안 스님이 함께 이끌고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 1만 독송 철야정진이 불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철야정진에 참가한 시각장애인이 시력을 회복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하면서 기적처럼 시력을 회복한 주인공은 법명이 의륜(52·서울)인 김 모씨.
김 씨는 지난 92년 포도막염에 의해 시신경이 죽는 병을 얻어 시력을 상실했다.
지난 2월까지 꼬박 13년 넘게 시력을 잃은 채 살아가면서 때론 좌절하고, 때론 상실감에 쌓이기도 했던
김 씨는 우연히 불교방송을 청취하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만 독송 철야정진 소식을 듣고 2월 10일 경북 예천
서악사와 3월 18일 강화도 적석사에서 진행된 제14차·제15차 철야정진에 참가했다.
꿈에 관세음보살님을 현몽했던 터라 무엇인가 삶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철야정진에 참가해 법안 스님의 지도에 따라 일념으로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송을 했다.
그리고 철야정진을 다녀온 후 차츰 눈이 밝아지더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각장애 1급으로 장애인증까지 소지하고 있는 김 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믿을 수 없는 변화에 놀라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았으나, 의학적으로 시신경이 회복된 상황은 아니었다.
병원 측 역시 기적 같은 일이라며 의아해 할뿐이다.
이에 김 씨는 “불교방송과 법안 스님이 주관하는 신묘장구대다라니 1만 독송 철야정진에 참가한 덕에
다시 앞을 보게 되었다”며 자신의 시력회복이 신묘장구대다라니 1만 독송 철야정진 덕분임을 굳게 믿었다.
김 씨는 특히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준 불교방송 사장님께 감사드린다”며 철야정진 프로그램 운영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출처 : 나무아미타불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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