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상업의 대성당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백화점이 탄생한 순간 여인들의 욕망도 탄생되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백화점의 발전상에 따른 사회적 명암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낸 기념비적 소설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에밀 졸라의 숨겨진 걸작
에밀 졸라 일생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마침내 국내 초역으로 출간되었다. 그간 19세기 유럽 사회사나 풍속사 등을 다룬 각종 책에서 언급되어온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졸라의 작품 중에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일함’을 지닌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세계 문학 사상 아마도 유일무이하게, 백화점이 배경의 역할에 머무르는 것을 뛰어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기능하는 소설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당시 《목로주점(L'Assommoir)》(1877)과 《나나(Nana)》(1880) 등의 성공으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던 졸라가 처음으로 ‘사회의 진보’라는 문제에 관해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며,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소설의 가장 강력한 장치로 활용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 중 유일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을 뿐 아니라, 삶과 행위의 기쁨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졸라가 주창한 자연주의 소설의 경향이나 그의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삶의 비참함과 빈곤, 우울함 등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또한 졸라의 작품 중 가장 시의성이 강한 소설이기도 하다. 고전이라고 일컫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새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1864~1869년)이 아닌 출간연도(1883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130년 전의 파리에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대적’ 백화점이 존재했다는 점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은 그 사실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현장 답사를 토대로 탄생한 제2의 주인공 ‘백화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2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소설 속의 백화점 ‘오 보뇌르 데 담’(‘여인들의 행복 속에서’라는 뜻)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삶과 그 혁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작가 졸라는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백화점에서 당시의 상업과 소비문화는 물론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하고는 예의 주시했다. 그리하여 백화점을 배경으로 한, 전무후무한 장편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목로주점》, 《제르미날(Germinal)》(1885), 《인간 짐승(La B?te Humaine)》(1890) 등에서 각각 파리 변두리 노동자들, 프랑스 북부 탄광촌 노동자들, 초창기 철도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바 있는 졸라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집필을 앞두고는 그의 부인이 단골로 다니는 ‘봉 마르셰’나 ‘루브르’ 그리고 ‘플라스 클리시’ 백화점에서 한 달 내내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머무르며 자료를 수집했다. 그렇게 작가 노트에 모인 자료는 무려 384쪽에 달했으며, 그 정보들은 고스란히 대작가 졸라의 손을 거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라는 값지고 흥미로운 소설로 탄생되었다. 본서에서도 2권 말미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과 관련된 컬러 자료들을 실어 더욱 풍부한 독서가 되도록 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럼 세상을 팔아치울 수도 있다니까요!“
‘소비의 신전’, ‘현대 상업의 대성당’, 졸라의 백화점이 보여주는 마케팅 기법의 원형
정가제, 바겐세일, 미끼 상품, 반품 제도, 카탈로그 통신판매, 직원 성과급제, 고객 음료 서비스, 신문 광고, 포스터 광고, 비수기 전략인 백색 대전시회, 아동 마케팅, 경품 증정…….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백화점의 전략들은 실제로 봉 마르셰 백화점의 창업자인 아리스티드 부시코가 처음 도입한 것들로서 봉 마르셰를 모델로 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자세히 묘사된다. 빅토리아 시크릿, 코카콜라, 맥도널드, 도미노 피자, 니만 마커스, 이케아, 반스&노블, 페덱스, 월마트, 프라다 등 유명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의 원형이 이 소설 안에 모두 담겨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뿐만 아니라 졸라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백화점 안팎의 모습, 백화점의 혁신적인 건축양식과 실내장식, 매장들의 분위기와 판매원들 간의 관계, 다양한 쇼핑객들의 모습과 고객과 판매원과의 관계 등도 상세히 묘사했다. 소설의 이런 다큐멘터리적인 면모로 인해 독자들은 19세기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거대 자본과 소상인의 갈등, 노동 문제, 쇼핑 중독으로 인한 가정과 사회의 문제 등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소설
졸라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백화점의 눈부신 발전상만을 그리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진보 지식인으로서 그는 백화점이라는 ‘화려함’ 뒤의 그늘에도 공평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슈 보뒤, 부라 영감 등으로 대표되는 백화점 주변 영세 상인들의 몰락은, 대형 마트가 들어선 이후 동네 상권이 붕괴하고 있는 2012년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들을 보듬고 감싸는 것은 이상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여주인공 드니즈다. 수습 직원에서 사장의 파트너로서 백화점 여주인의 위치에까지 오르는 그녀는 백화점 편에 서 있지만 백화점의 이익만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또한 백화점 근로자들의 지위 향상이나 노동 환경의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2권 206~209쪽 참조). 이런 점들 덕분에 이 소설은 현재 우리에게 단순한 문학적 고전을 넘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줄거리
발로뉴 출신의 스무 살 처녀 드니즈 보뒤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힘겨운 생활 때문에 두 남동생들을 데리고 큰아버지를 찾아 파리로 무작정 상경한다. 직물 전문점을 하고 있는 큰아버지는 가게 맞은편에 백화점이 생긴 이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조카들을 맡아줄 수 없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드니즈는 맞은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여성 기성복 매장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에 지원해 수습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고, 고된 노동과 매장 직원들의 따돌림에도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편 정력과 야망이 넘치는 백화점의 사장 옥타브 무레는 그녀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조금씩 끌리기 시작하는데…….
서평
책의 매 페이지마다 대가의 강력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대는 이 책의 출간을 진정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_조리스-카를 위스망스가 졸라에게 보낸 편지 중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14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상업을 노래하는 열네 편의 노래이다! _폴 알렉시스
전체와 디테일의 조화와 짜임새 있는 구성, 개연성 있는 상황들, 사실적인 캐릭터,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문체. 이 소설에는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이 모두 모여 있다. _앙리 바우어
영롱하게 빛나는 천들과 욕망을 안으로 감추며 미소 짓는 여인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원들, 현대적 행위로 가득 찬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는 차분하면서도 가르침으로 가득한 철학이 곳곳에 스며 있다. _알베르 르루아
책속으로
“이걸 5프랑 60상팀에 팔면 밑지고 파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엄청난 여타 비용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거니까요. ……다른 데서는 모두 7프랑을 받고 있고요.”
그러자 무레는 벌컥 화를 내더니 손바닥으로 예의 실크를 두드리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우리 고객들한테 선물을 하려는 거란 말일세. ……자네는 말이지 친구, 여자들을 너무 몰라. 여자들은 이 실크를 서로 차지하려고 머리채를 잡고 싸우게 될 거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무레의 동업자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할수록 우린 더 손해를 보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제품 하나당 고작 몇 상팀 정도 손해를 보겠지, 그래. 그런데, 그다음을 생각해봤나? 그로 인해 수많은 여자들이 몰려와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우리 제품 앞에서 넋을 잃고 정신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면, 그건 반대로 우리한테 축복이 되는 거라고.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란 말일세. 중요한 건, 친구, 여인들의 욕망에 불을 지펴야 하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들을 유혹하는 미끼 역할을 할 대박 상품이 필요하단 말일세. 그런 다음, 다른 제품들을 다른 데만큼 비싸게 받고 파는 거야. 그래도 고객들은 우리 백화점에서 더 좋은 가격으로 산다고 믿게 될 거라고. 그래, 우리의 주력 상품인 퀴르 도르를 보라고. 7프랑 50상팀짜리 이 태피터는 다른 데서도 다 이 가격에 팔리고 있지. 그런데도 고객들은 여기서 훨씬 더 싸게 산다고 믿게 되는 거지. 그럼 파리보뇌르로 인한 손실쯤은 거뜬히 메울 수 있는 거라고……. 두고 보게, 내 말이 옳다는 걸 곧 알게 될 테니까!” (1권 7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