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돈이고 식사 후에 섭취하는 당분이 다이어트의 주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 그러나 어쩌다 여러 사람과 커피를 마시러 갈 때는 곧잘 한턱을 낸다.
그저 동료와 함께하는 브레이크타임이 즐겁기 때문이라는 듯이. 1만~2만원밖에 안 되는 한턱이지만 동료들은 그가 동료애도 남다르며 돈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더치페이를 할 경우 누군가 “1만원이 모자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선뜻 1만원을 건넨다. “내가 내지 뭐.” 이런 일이 두세 번만 있고 나면 그는 돈 잘 쓰는 구원투수로 인식된다. 사실 그가 낸 돈은 다른 사람이 낸 것보다 1만~2천원 많을 뿐인데도 말이다.
단돈 1천~2천원으로도 생색내게 돈 쓰는 법을 알고 있는 그.
그는, 신용카드 스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득이 있음을 안다.
사소하게 돈 내야 할 때 내지 ‘못’한다고 여겨진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실 때 카드밖에 없는 그에게 잔돈을 내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 대신 3백원짜리 커피를 여러 번 얻어 마셔도 가끔 3천원짜리 커피를 카드로(!)사주게 된다면? 푼돈이라도 카드로 긁으면 왠지 큰돈이라고 느껴지게 마련.
아직 사람들 정신이 멀쩡한 1차에서 생색 제대로 내며 쏜다.
그는 1차에서 쏜 사실만 사람들의 기억창고에 저장될 거라는 걸 안다. 더불어 뒤로 갈수록 술의 강도는 높아지고 술값은 더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1차를 맥주로 시작하더라도 2,3차에서는 데킬라나 앱솔루트 보드카로 마무리하지 않는가.
몇 백원 때문에 벌벌 떨 정도로 궁색하게 굴진 않지만,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지 않을 알뜰한 소비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이를테면 웬만해서는 편의점에 있는 ATM기에서 돈을 뽑지 않는다. 이런 소비 습관이 있는 사람이 한 번 쏠 때 크게 쏘면 사람들은 그를 ‘돈을 제대로 잘 쓰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더 많이 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그는 평소에 세심하게 선물을 챙겨주지 않더라도 이사한 날, 졸업한 날 등 특별한 날에 한 건 하면 그 파장이 크다는 것을 안다.
대학 졸업한 동생에게 슈트 한 벌을, 이사한 친구에게 화장대를 선물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별한 날에 선물함으로써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많은 이들도 그가 멋지게 돈 쓴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기본 요금 인데 뭘’ 하며 택시를 타는 일은 없다.
오너 드라이버임에도 출퇴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나 여러 명이 움직일 때는 택시를 잡아 타고선 택시 값을 쏘고(조수석에 앉아 뒷자리 사람들에게 몇 천원씩 택시 값 내라는 것만큼 쪼잔해 보이는 일도 없다!) MT갈 때는 자기 차를 가져가 여러 동료를 편하게 모신다.
잔돈 잘 빌려가는 얄미운 직장 동료에겐 매번 돈을 빌려줄 필요는 없다.
“동전이 없어서 그러는데 커피값 3백원만” 하는 동료에게는 “미안, 잔돈이 없네” 라고 응수하면 그만. 대신 갑작스레 큰돈이 필요한 동료에게는 선뜻 큰돈을 내어준다. 3백원씩 1백번 빌린 건 기억 못해도 30만원을 한번에 빌린건 기억하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꼭 갚게 되어 있다.
점심 먹고 난 후엔 커피 한 잔이 필수.
근무 도중 수시로 군것질 거리를 사다 나른다. 밥은 혼자 먹어도 간식은 혼자 먹을 수 없는 법. 간식메이트 노릇에 충실한 동료에게 매번 커피를 사준다. 혹은 “편의점 단올 건데 뭐 필요한 사람~!” 하며 다른 사람의 군것질 거리를 나르는 경우, 우유 한 팩, 초코릿 한 개를 사다주면서 돈 받기는 뭐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발생하고 만다.
더치페이를 할 경우 선뜻 나서서 걷는다.
다 걷은 후 돈이 모자라면 말없이 자기 돈을 채워서 낸다. “4천원 모자라는데, 내 돈을 보텔게” 라고 말하는 건 너무 치사해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자기 돈을 더 썼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경우를 당하곤 한다. 쓸데없는 봉사 정신 발휘하다 돈만 새는 케이스.
현금쓰는 사람은 항상 잔돈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래서 커피 값 몇 백원, 택시 값 몇 천원은 그가 내곤 한다. 그러나 푼돈 쓴 걸 고맙다며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택시 값 몇 천원 낸 것 보다 크게 한번 카드로 점심 ‘쏜’ 사람을 기억할 확률이 높다. 푼돈을 여러 번 썼지만 카드 한 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것.
술 마실 때 돈 낼 타이밍을 놓친다.
1차에서 얻어먹고 2차에서 또 얻어먹다가 ‘3차만큼은’이라는 양심 때문에 돈을 내기 일쑤. 그러나 다음날,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1차에서 쏜 사람뿐이다. 당신의 양심은 보상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3차엔 이미 대다수가 술에 취해 누가돈을 냈는지 알 수 없게 마련이니까.
굳이 잔돈까지 아끼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5분만 가면 은행에서 한 푼 들이지 않고 인출할 수 있는데도 편의점 들르는 김에 돈 뽑아야겠다며 서슴없이 1천원이 넘는 수수료를 지불한다. 편의점에서 인출하는 걸 꺼리는 동료가 그에게는 쪼잔해 보인다. ‘겨우 몇 백원인데 뭘’ 이 모토인듯한 소비 생활을 꾸린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작은 선물을 주위 사람에게 나눠주길 즐긴다.
책 좋아하는 부장님에겐 신간 에세이집을, 새 차 구입한 대리님에겐 방향제를, 멋쟁이 동료에겐 스카프를 선물한다. 받는 사람은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게 감동하겠지만 사람들에게 돈 잘 쓰는 사람으로 공히 인정되기에는 약하다.
집 밖에 나서자마자 언제나 “택시!” 를 외쳐대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가까운 거리는 ‘기본 요금 인데 뭘’ 하는 마음으로 먼 거리는 버스 타면서 체력을 낭비하느니 돈이 조금 나가더라도 체력을 비축해두는 게 낫다는 타당한(?)이유로 택시를 탄다. 그에게 택시는 곧 ‘마이 카’요. 가장 친숙한 교통수단이다.
잔돈 잘 빌려주는 동료는 사소하게 돈 빌리는 직장 동료의 표적이 된다.
동전 없어서 커피 값 3백원, 점심 값 모자라서 1천원, 담배 값 깜박해서 2천5백원… 그의 쌈짓돈은 얄미운 직장 동료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일쑤. 그러나 잔돈은 잔돈일 뿐, 푼돈 빌려가서 갚은 사람을 드물다. 심지어는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