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법정 스님]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물을 그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이런 우려가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 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同伴者)들 속에 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는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유희와 환락이 있다.
또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아주 지극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생각 없이
무엇이나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가(出家)한 처지에
아직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집에서 사는 재가자(在家者)도
그런 사람들이 흔히 있다
남의 자녀에게 집념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진 코빌라나무*처럼
재가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코빌라나무는 흑단(黑檀)의 한 종류.
재가자의 표적은 머리, 수염, 흰옷, 자아식품, 향료 및 처자와 하인이 있는 것.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 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 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는 행복을 기린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친구와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金細工)이 잘 만들어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팔찌가 하나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개 이상일 때는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난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 잘잘못이 생기고 번거로우니 혼자서 정진하라는 뜻.
이와 같이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니라.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러놓는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마음대로 숲 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임[集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잠시 동안의 해탈*에 이를 겨를도 없다.
태양의 후예가 하신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잠시 동안의 해탈은 세간적인 선정(禪定)이란 뜻.
그것을 얻었을 때만 잠깐 번뇌에서 놓여 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태양의 후예는 부처님을 가리킴.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道)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강론
관계의 과감한 가지치기
며칠 전 태평양을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구절들을 읽으며,
혼자서 길을 떠난 나그네의 홀가분함을 거듭 체험할 수 있었다.
국제선 여객기 안에서는 대부분 혼자일 경우가 많다.
저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거느리듯이
삶의 무게와 빛깔을 지니고 묵묵히 허공을 난다.
잠을 자는 사람, 영화를 보는 사람,
창 밖에 눈을 주어 구름이나 별을 바라보는 사람,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
또는 책을 읽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이지만,
일상을 벗어난 나그네들임은 마찬가지다.
사람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어간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온갖 관계를 지니고
여러 형태의 삶을 살고는 있지만
‘속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뿐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같은 생각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여기 소개한 ‘무소의 뿔’은 주로
출가 수행승을 대상으로 말한 것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반인들도 귀를 기울일 만한 뜻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면서도
한편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소란 뭍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 코끼리 다음가는 큰 동물인데,
코 위에 뿔이 하나 솟아 있다.
그래서 ‘코뿔소’라고도 한다.
이 ‘무소의 뿔’ 장(章)은,
주석서에는 독각(獨覺)을 위해 말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즉, 홀로 수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타인과 섞이거나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수행하는 모습을,
코뿔소가 하나의 뿔을 지닌 것에 비유한 말이다.
후렴처럼 되풀이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형식은
인도 고대의 서사시에도 흔히 나타나 있다.
“혼자서 가라.”는 표현은 그렇게 행동하고 그와 같이 살라는 뜻이다.
이번에 길을 떠나올 때
읽으려고 구해놓은 몇 권의 책을 짐 속에 꾸려왔다.
그 중 리처드 바크의 《영혼의 동반자 Soul Mate》를 감명 깊게 읽었다.
오랜만에 밤이 이슥하도록 책을 대할 수 있는 아주조촐한 복을 누렸다.
리처드 바크는 우리 기억에 친숙한 작가이다.
그는 《갈매기의 꿈》을 통해서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내다본다.”는 메시지를 우
리에게 전해주었으며,
또 《환상幻像》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사명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라고 일깨워주었다.
그는 기대를 갖고 영혼의 동반자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우리를 가르쳐온 그 숱한 선각자들,
그들은 어째서 한결같이 홀로 살았을까?
왜 그들 곁에는 모험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정신적인 아내가 없었을까?
이 세상엔 왜 그런 놀라운 부부가 없을까?
이른바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리석은 제자들과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파묻혀 있다.
병을 고치거나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만이 그들 곁에 있을 뿐이다.
그들 곁에 멋있고 신비한 여인, 영혼의동반자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깨달았다는 사람들, 내 생각에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들 선각자들은 인간적인 욕구를 넘어섰기 때문에
영혼의 동반자 따위는 소용없었던 것일까?
그는 마침내 레슬리 패리시라는
아주 아름답고 슬기로운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의 아름답고 신선한 시간은
우리에게도 사랑의 기쁨을 전해준다.
그러나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레슬리에게서 자꾸 떠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독백을 한다.
‘혼자다, 나 혼자뿐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서 살아가는가,
난 정말이지 내가 누군가에게 집착하는게 싫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한다.
“한 인간에게 크나큰 희망을 투자했다가 실망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를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믿다가도,
어느 순간 그녀가 전혀 딴사람이라는 걸 발견한다.
결국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 자신말고는 내가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솔 메이트, 영혼의 짝이란
서로의 자물쇠와 열쇠가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내 자물쇠에는 그 열쇠가 맞고,
그의 자물쇠에는 내 열쇠가 맞아야 하는 그런 사이다.
솔메이트는 우리의 인생을 인생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리처드 바크의 이 자서전적인 소설은 오늘처럼 삭막하게 바닥이
드러난 어둡고 살벌한 세상을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기적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 나오는 가르침의 일부는
《진리의 말씀法句經》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실려 있다.
생각이 깊고 총명하고 성실한
어진 반려가 될 친구를 만났거든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마음을 놓고 기꺼이 함께 가라.
그러나 생각이 깊고 총명하고 성실한
어진 반려가 될 친구를 못 만났거든
정복한 나라를 버린 왕처럼
숲 속을 다니는 코끼리처럼 홀로 가라.
나그네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
투철한 자기 자신의 질서를 지니고
이 세상을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여럿 속에 섞여 복잡 미묘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때로는
숲 속의 은자(隱者)처럼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상 얽히고 설키면 인간의 신선한 뜰이 시들고 만다.
한 그루의 나무를 기를 때도 불필요한 가지는
미련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하듯이,
우리들의 삶에서도 서로에게 득이 되지 못하는 관계는
끊고 고쳐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러놓는다.”
그러니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우환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이 가르침은,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이다.
홀로 있다는 것은 온전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있을 때는 부분적인 나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세상을 혼자서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아니다.
그러니 이런 '무소의 뿔'이라도 거듭거듭 외우면서
홀로 있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영화 <7일간의 사랑>에서는
나나 무스크리의 음성으로 이런 노래가 은은히 들려온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가을날처럼 맑게 갰다.
이것이 이 고장의 겨울 날씨란다.
산타모니카 비치에 나가
태평양 너머로 해지는 광경을 보고 와야겠다.
영화에서 우리에게 눈물을 뿌리게 하던 바로
그 이별의 바닷가…….
출처: 맑고 향기롭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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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법정스님의 말씀은 잔잔한 호수같습니다...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무소뿔처럼...
"나그네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친구를 가지려 하지 말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살려 주시는 겁니다. 부처님께 맡기면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