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원(老稚園)과 유치원(幼稚園)
‘노치원’이란 말이 있다. 다소 생소한 감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단어의 의미는 물론이고, 노치원 관련 각종 정보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는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는 않다. 노치원의 정식 명칭은 ‘노인주간보호센터’이다. 좀 예의바르게 표현한답시고 ‘어르신 주간돌봄센터’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식 명칭은 문서상, 법적인 문제와 관련될 때 사용하는 것이고, 일상적으로는 그냥 ‘노치원’으로 부르고 있는 게 상례이다.
노치원(老稚園)의 의미를 한자(漢字)의 음과 훈으로 살펴보면, ‘노’는 늙은이 로(老)이고 ‘치’는 어릴 치(稚), ‘원’은 뜰(정원) 원(園)으로, ‘노인들이 어려서 모이는 뜰(장소)’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치(稚)’를 ‘어리다’의 훈으로 뜻을 새기다 보면, 노인이 어린 게 되어 이치상 모순된다. 그렇지만 유치원(幼稚園)의 경우에는 어린이 유(幼), 어릴 치(稚), 뜰 원(園)으로, ‘아이들이 어려서 모이는 곳’으로 풀이되어 의미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때 ‘치(稚)’를 조금 더 돌려서 생각해 보면, ‘어리다’는 것은 살아온 기간이 짧다는 의미다. 살아온 기간이 짧으면 세상만사를 경험할 기회가 적다. 경험이 일천하기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어리석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정리해 보면, ‘치(稚)’는 ‘어리다’는 의미에서 ‘어리석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노치원(老稚園)’은 ‘노인들이 어리석어서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노인들은 어리석다. 노인이면 세상물정을 많이 경험했을 텐데 왜 어리석은가? 인간은 태어난 직후에는 무지몽매(無知蒙昧)의 극치다. 갓난애는 불이고 물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뜨거운 물그릇에도 덥석 손이 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학습에 의해 사리를 분별하게 되고 똑똑해 진다. 인간의 지혜가 살아갈수록 계속 축적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사람이 일정 나이 이상을 먹으면 지혜가 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던 지혜마저 감소한다. 기억력도 줄어든다. 그리고 천수(天壽)를 누릴 경우, 막바지에는 치매(癡呆)가 불청객마냥 찾아오기도 한다. 경험과 학습으로 쌓아온 지혜와 지식은 모두 망각의 늪에 잠겨들고, 함께 살아온 가족도 몰라보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정도까지 가게 된다. 몸은 쇠약해져 혼자의 힘으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정신은 어린 아기의 수준에 이른다. 즉 늙어서 어려지는 ‘노치(老稚)’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노치원과 유치원은 유사한 점이 많다. 조석으로 하는 등원(登園)과 하원(下園)의 경우, 승합차가 집 앞까지 이들을 태우러 온다. 또 이때는 보호자가 함께 대동하여 승차와 하차를 확인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시설에서의 일과를 보면, 노래, 율동, 그림그리기, 종이접기 등 활동 프로그램이 유사하다.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휴식 시간에는 교우관계도 갖는다. 둘 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리석음을 갖고 있어 혼자서는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고, 또 체력이 약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구성원에서, 한 쪽은 노인이고 또 한 쪽은 어린 아이이다. 노인은 시간이 지나면 현재보다 지혜나 체력이 감소하는 반면, 어린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혜도 늘고 체력도 좋아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인의 희망은 점차 사라지고 절망과 포기만이 남으며 장래의 계획은 위축되고 왜소해 진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희망과 꿈에 부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짜고 실천하기에 바쁘다. 이 극단적인 차이의 두 과정을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모두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다.
인생은 달과 참 닮은 점이 많다. 초승달이 생겨나 점차 크기를 더해 최대 절정, 보름달이 된다. 그러나 보름을 넘긴 달은 점점 위축되어 그믐달이 되고 급기야는 그 모습이 사라진다. 옛날 나라의 운세를 달에 비유한 기록이 있어, 삼국통일 직전에 백제는 만월(滿月)이고 신라는 반월(半月)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한다. 보름달은 찼기에 이젠 기울 일만 남았고, 반월인 상현달은 곧 보름달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름달인 백제는 망하고 상현달인 신라는 융성해진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흥망성쇠를 달로써 예언한 기발한 착상이 예사롭지 않다. 이 발상은 사람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 유치원의 아이들이 상현달이라면 노치원의 어르신들은 하현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현달인 유치원생도 오래지 않아 하현달인 노치원생이 되고 만다는 사실에 삶의 비극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의학의 발달은 사람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하였지만, 건강한 정신의 연장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초고령자가 늘어날수록 치매환자의 수도 급증할 것이다. 이제 노치원이라는 단어도 일상생활에서 유치원이란 말 이상으로 자주 쓰이는 어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어휘는 곧 사회적 공인을 받아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2019.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