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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당진 81코스 역방향 제1부
유곡2교차로-파인스톤CC-백석3교-송산간척지-
삼화교-석문간척지-석문호제방-석문산단입구
20240327
1.광활한 간척농지와 눈부신 석문호 풍경
두루누비에서는 서해랑길 81코스를, 간척지를 개발하여 농경지를 늘려 식량 증산을 이루고자 추진된 개발사업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코스라 소개하고, 관광포인트는 뱅어포로 잘 알려진 당진의 명물 실치회가 유명한 '장고항', 작은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장고항초입선착장', 석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생겨난 거대한 담수호 '석문호'을 안내하고 있다. 경로는 장고항2리정류장 - 2.8Km - 석문달맞이공원 - 10.8Km - 삼화교 5.2Km - 파인스톤CC - 2.4Km - 유곡2교차로, 전체 거리 21.2km, 소요 시간 7시간, 난도 쉬움. 주요 경유지는 장고항, 마섬포구, 당진시 관광정보센터, 석문방조제라고 안내한다. 소개와 관광 포인트를 참고하여 서해랑길 81코스를 탐방한다. 탐방객의 관심에 따라 또 계절과 시각, 여유에 의하여 그 탐방 체험은 각각 다를 것이다.
서해랑길 81코스는 정코스로 탐방하면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 통정리, 삼화리와 송산면 당산리, 무수리, 가곡리, 유곡리 지역을 탐방하는 코스이다. 이번에는 역방향으로 탐방하여 송산면에서 출발하여 석문면으로 서진하였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드넓은 간척농지와 수로, 석문호 제방, 당진 발전의 현장 석문국가산업단지, 아산만 마섬포구, 장고항 등 81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쳤다. 탐방이란 발견과 탐구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서해랑길 81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 체험을 2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제1부 : 안내트레킹팀에서 서해랑길 81코스 탐방을 역방향으로 진행시킨다. 이유는 탐방 뒤의 식당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정코스 탐방을 원하지만 역코스 탐방으로 진행한다고 하니 그 탐방의 맛을 즐길 수밖에 없다. 서해랑길 81코스의 종점이며 82코스 시작점은 당진시 송산면 유곡리 지방도 제633호선 '현대제철로' 유곡2교차로에 있다. 8시 40분이 조금 넘어 트레킹팀 안내버스가 '현대제철로' 유곡2교차로에 도착하였다.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는 '현대제철로' 동쪽 '서정로' 입구에 있다. 종주대원들과 함께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 앞으로 가서 안내도 왼쪽 뒤 소나무 줄기에 걸려 있는 서해랑길 82코스 시작점 표지판을 확인한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과 함께 서해랑길 81코스 역방향 탐방을 기념하며, 81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한다. 아침 8시 50분이다.
어제까지는 봄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날이 화창하고 기온도 높다. 날씨 영향을 받아 기분은 상쾌하다. 맑은 봄빛이 반짝거리고,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당진시 송산면 유곡리 작은벌들길로 나갔다. 유곡리 '작은벌들'이 무수리를 거쳐 남쪽 멀리 삼월리로 이어진다. 이 고장 출신의 이근배(1940~) 시인이 떠오른다. 그는 명작 '한강'으로 유명하며, 2012년 11월 백두대간 이화령 복원에 붙여 쓴 그의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 시비가 이화령에 세워져 있다. 국토의 혈맥은 이화령 복원에 그쳐서는 하나 되지 않고, 남과 북이 이어질 때 국토의 혈맥은 하나가 되고 백두대간은 솟아오르게 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살다가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을 행동한 아픔을 표현한 그의 작품이 '작은벌들'에 잔잔히 흘러간다.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출신 이근배 시인의 '살다가 보면' 전문. 탐방객 또한 그러하였으리라.
'작은벌들길'은 '벌띠들길'로 이어진다. 어느 문중의 선산 옆에 사당 같은 '영막정' 건물이 있는데, 그 용도는 불분명하다. 그 앞 벌띠들길 밭에 살구꽃과 청매화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날린다. 서울에서 홍매화, 백매화, 산수유를 보았지만 올봄에 청매화꽃은 처음으로 본다. 청매의 청향이 은은하여 매향에 취한다. 매화는 사군자의 선두에 오는 꽃으로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곡조는 그대로이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을 갈라져도 새로운 가지가 올라 온다."라고 읊었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선비는 모름지기 지조와 절개를 지녀야 함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오늘날 이러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은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까? 범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에게는 중요한 행동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서해랑길 역방향 탐방은 송산면 유곡리 들녘과 가곡리 들녘을 거쳐 드넓은 무수리 간척농지로 나간다. 당진 경제 발전의 풍경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 굴뚝의 흰 연기들이 희망처럼 솟아오른다. 그리고 석문방조제 준공에 의해 형성된 드넓은 송산지구 간척농지가 펼쳐진다. 간척농지 옆에는 파인스톤 빌리지 고급 주택과 파인스톤 골프장이 조성되어, 풍요를 누리고 즐기는 당진시 지역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풍요는 앞선 세대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다.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는 땅 넓히기와 철강 산업이 당진 아산만 해안에 넓게 그리고 우뚝 솟아서 탐방객은 즐거운 기분으로 간척농지길을 따라간다.
석문호로 유입되는 백석천이 송산면 무수리와 당산리를 구분한다. 백석천의 백석3교를 건너 당산리 지역으로 넘어갔다. 당산리 지역에 들어오니 수로가 지상 위로 길게 이어진다. 농업 용수를 간척농지에 공급하기 위하여 드넓은 간척농지를 따라 수로가 이어지는 풍경은 간척농지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갯벌을 간척한 농지에 농업 용수를 어떻게 공급하고, 배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간척농지 개발의 현장에서 간척 연구자와 농민들의 힘겨운 노력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송산지구 무수리와 당산리 간척농지는 석문호 동쪽 제방까지 드넓게 맞닿아 있다. 석문호는, 당진시 중심지를 흘러오는 역천(驛川)이 석문방조제에 의해 아산만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가로막혀 드넓은 담수호를 형성하여 생겨났다. 역천(驛川)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하류 쪽으로부터 상류 쪽으로 보덕포(普德浦), 삼포(三浦), 오도(鰲島), 채운포(彩雲浦), 관음포(觀音浦)까지 배가 드나들면서 당진 지방 서쪽의 중요한 수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제 역천(驛川)의 그러한 풍경은 사라졌다. 봄날의 역천(驛川)에는 물오리들이 한가로이 유영을 즐기고 강태공들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천변에는 버드나무 잎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봄빛을 뽐낸다.
송산면 당산리에서 역천(驛川)의 삼화교를 건너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갔다. 이제부터는 석문호 서쪽 제방 아래의 간척농지 도로를 따라 제방과 동행하여 석문지구 간척농지를 한 바퀴 빙 돌아가는 7km 거리의 길이다. 간척농지는 광활하다. 인간의 힘은 위대하다. 이 길과 제방에서는 당진 경제 발전의 중심인 방조제와 간척농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 당진화력발전소와 석문국가산업단지, 이 모두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이 표지가 되어 주는 것이 우뚝 솟은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다. 석문호 제방에 올라가서 드넓은 석문호와 길게 이어진 석문방조제, 그리고 현대제철 산업단지를 바라보며 가슴이 뜨겁다. 환경 문제를 앞세울 것이냐, 삶의 풍요를 앞세울 것이냐는 양단 논법은 이제는 삶의 문제 해결에 본질이 아니다. 삶과 환경, 이 둘은 지난 시절의 문제 해법에서 벗어나 언제나 공존의 길에서 그 해결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산만 바다를 가로막은 방조제와 드넓은 호수, 현대제철 산업단지는 모두 삶의 풍요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이끌어가는 지혜는 우리 모두가 이미 문제 의식으로 지니고 있다.
석문호 제방에서 풍경을 조망하며 어느 때인가 석문방조제를 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문방조제와 석문호, 그를 연결하는 도로를 살펴본다. 첫째, 석문방조제에는 제방길 '석문방조제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석문방조제로'는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리 마섬포구까지 이어진다. 둘째,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앞을 거쳐 석문대교를 통하여 역천(驛川)을 가로질러 석문국가산업단지로 이어진다. 셋째, 석문호 동쪽 제방과 서쪽 제방에는 도로가 나 있으며, 이 두 제방은 삼화교를 통해 교통한다. 서해랑길 81코스는 간척농지길과 석문호 제방 도로를 따라 석문국가산업단지 '산단로'로 이어지기에 아산만 해안과 떨어져 걷게 된다. 그래서 아산만 해안과그 주변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석문방조제로를 따라 걷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석문방조제를 이어 송산면 가곡리 석문선착장에서 성구미포구까지는 걸어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문호 제방에 올라 풍경을 조망하며 이 생각이 깊이 새겨졌다.
석문호는 석문방조제와 석문호 제방에 의하여 형성된 담수호이다. 석문방조제와 석문호 제방에 의해 생겨난 간척농지는 역천(석문호)에 의하여 송산지구 간척농지와 석문지구 간척농지로 나뉘어 있다. 이 광활한 간척농지에는 이 땅의 가난한 농민들의 서러움과 꿈이 서려 있다. 갯벌을 메워 넓은 땅을 소유하여 농사를 짓고자 하는 열망, 그리하여 빈곤에서 벗어나 후손들은 풍요한 삶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서러운 꿈과 희망이 아프게 간척농지에 스며 있다.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자연, 바다와 갯벌에 의지한 고통과 억척의 삶의 현장은 간척 사업에 의해 사라지더라도, 삶의 풍요가 먼저였던 시절에는 간척의 어지러운 꿈들이 피어올랐다. 간척지에 배인 이 땅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고정희(高靜熙, 1948~1991) 시인은 이렇게 읆었다.
"뒤돌아 울지 마/ 육천 마디 주절주절 가난의 열매/ 흩어지지 못하게 가마니에 담는 거야/ 양파껍질 같은 그대 외로움/ 겹겹이 포개어 가마니에 담는 거야/ 빈터에 널려 있는 절망의 돌무데기/ 쓰레기 낟가리 가마니에 담는 거야/ 성실하디 성실하게 허리를 굽히고// 겨자씨보다 작은 꿈 가마니에 담아/ 볍씨보다 큰 소망 가마니에 담아/ 해바라기씨 가마니에 담아/ 어린 모차르트 하나 가마니에 담아/ 굴뚝 같은 맘 하나 가마니에 담아/ 달구지 꽃뿌리 가마니에 담아/ 재스민 향기 너머 주검과 함께/ 씨받이 검은 흙 사이사이 채우고// 아득히 물보라 해저(海底) 저 멀리/ 우리들 모둔 의지 들어앉히는 거야/ 참나무 질러 넣고/ 한꺼번에 침몰의 기둥을 박는 거야/ 스무 겹 천 겹 제방을 쌓는 거야// 굽은 등 펴고 우는 그대,/ 삼십에 지닌 언어 부질없다 우는 그대여/ 삼십에 지닌 허무 속되다 우는 그대여/ 어지러워라 어지러워라 어지러워라/ 그대 영혼 저켠으로 걸어 들어오는 땅/ 잎사귀 흐드기는 우리들의 땅/ 나팔꽃 해바라기 우거지는 땅/ 새 둥지 새벽에 알을 까는 땅/ 그대도 나도 입맞추며 떠는 땅/ 우리들의 땅 우리들의 땅" - 고정희의 '간척지 3' 전문
부질없다. 허무하고 속되도다. 어지럽다. 입맞추며 떠는 우리들의 땅이여. 간척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길손은 광활한 간척농지와 눈부신 석문호, 역동하는 산업단지의 휘황찬란한 풍경에 놀라고 감격한다. 그 빛남 속의 아픔이 현대제철 굴뚝의 흰 연기로 승화하는 것 같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거리 : 22.01km 중 14.8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8분 중 3시간 27분
당진시 송산면 유곡리 지방도 제633호선 '현대제철로' 유곡2교차로에서 '현대제철로'를 건너 맞은편에 있는 서해랑길 안내도와 서해랑길 82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간다. 뒤쪽의 아파트는 당진현대엠코타운 아파트이다.
지방도 제633호선 '현대제철로' 북쪽 방향은 현대제철과 석문방조제 동쪽 출입구 석문선착장으로 이어진다.
서해랑길 종주대원들이 81코스 인증과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 왼쪽 뒤 소나무 줄기에 서해랑길 82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서해랑길 81코스는 전체 거리 21.2km, 소요 시간 7시간, 난도 쉬움. 주요 경유지는 장고항, 마섬포구, 당진시 관광정보센터, 석문방조제이다.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와 서해랑길 82코스 시작점 표지판과 함께 서해랑길 81코스 역방향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서해랑길 81·82코스 안내도 왼쪽 소나무 줄기에 서해랑길 82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걸려 있다.
지방도 제633호선 '현대제철로'를 건너 맞은편 대신택배 앞쪽의 '작은벌들길'을 따라간다.
지방도 제633호선 '현대제철로' 유곡2교차로 맞은편 도로는 '서정로'이며, 교차로 왼쪽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충남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인 유곡리는버드나뭇재[柳峴]와 버드나뭇재 서북쪽 둔턱에 있는 '두곡(斗谷)'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유곡리(柳谷里)라 하였다. 유곡리는 원래 면천군 창택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택면 천골리, 유현리, 두곡리, 벌후리, 서정리, 원당리를 병합하여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유곡리는 약 400년 전 해주 최씨 14세손 최순형이 무수리로 낙향하면서 그 자손이 유곡리에 터전을 잡았다. 그 뒤에 파평 윤씨 26세손 윤심형이 유곡리로 낙향하였으며, 밀양 박씨 18세손 박재숙이 유곡리로 낙향하였다. 이 세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농업에 종사하며, 자손이 번창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유곡리가 1구, 2구, 3구로 분구되고 해방 후 천곡, 유현, 벌후, 원당, 두억을 유곡리로, 소두억, 오목, 서정을 서정리로 하여 행정리가 바뀌었다. 유곡리는 동남쪽으로 송악읍 정곡리, 북동쪽으로 동곡리, 북쪽으로 서정리, 남쪽으로 도문리, 남서쪽으로 무수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현재 유곡리에는 현대 제철 고로 제철소 건설로 급속도로 산업화가 확산되면서 마을 도처에 원룸촌과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송산면 유곡리 마늘밭이 펼쳐져 있고, 왼쪽 건물 뒤쪽은 유곡리 벌띠들, 그 뒤쪽은 무수리 들녘이다.
작은벌들길에서 벌띠들길로 들어와서 길을 따라가는데 살구꽃과 청매화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날린다.
살구꽃과 청매화꽃에 취하였다가 뒤돌아보니 송산면 벌띠들길 107의 영막정이 있다. 왼쪽에 묘소들이 있고 영막정이 그 옆에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문중의 사당 같은데 분명하지 않다.
앞쪽은 송산면 유곡리 들녘, 오른쪽 뒤 파인스톤 빌리지에서 중앙의 들녘 뒤는 송산면 무수리 들녘이다.
바로 앞은 송산면 유곡리, 뒤쪽은 송산면 가곡리 들녘으로 맨 뒤에 석문방조제가 있다.
들녘의 중앙을 가로질러 앞쪽은 송산면 유곡리 들녘, 뒤쪽은 송산면 무수리 들녘이다. 벌띠들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왼쪽 숲 오른쪽의 영막정에서 벌띠들길을 따라오고 있다.
들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파인스톤 빌리지 방향으로 이어간다. 앞의 도랑을 경계로 송산면 유곡리와 무수리가 구분된다.
송산면 무수리 들녘 위쪽에 축사가 위쪽에 있고 들에는 하얀 곤포사일리지들이 흩어져 있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는 동쪽에 있는 봉화산 산맥에 옥녀 탄금혈이라 하여 인혈이 있고 그 인혈이 무수형[근심이 없는 형상]이라 하여 ‘무수리(無愁里)’라 하였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는 원래 면천군 감천면 지역으로 신당을 모셨음으로 '무시올'을 음차해서 무수동이라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감천면 내화리, 외화리와 창택면 불당리를 병합하여 당진군 송산면에 편입되면서 무수리(無愁里)라 하였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로 개편되었다. 무수리는 동쪽으로 유곡리, 서쪽으로 당산1리, 남쪽으로 삼월리 등과 인접한 마을이다. 무수리는 4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미재를 중심으로 동쪽 1반은 '원무수리'라 하여 매동굴산을 위시하여 불당골, 양지말, 새터말, 송충골, 쌍생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영당과 임씨 문중의 효자문이 있다. 북동쪽 2반은 들골이라 하여 되릉골, 응골, 상돌매, 청용뿌리, 막어뿌리, 두레샘 등이 있다. 서남쪽의 3반 외화[박고잔]에는 동산, 감정산, 안산이 어우러져 있으며, 육골, 경계말, 제기지화포, 닭목골, 갈마지의 지명이 형성되어 있다. 서북쪽 4반은 내화[안고잔]에는 왕재, 박천미산, 병암산, 우두산이 어우러져 있으며, 못샘골, 도랑운, 애미시, 드렁배, 덕사리, 큰골, 꼬맹이, 정상고미 등의 지명이 형성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송산면 무수리 파인스톤 빌리지가 앞쪽에 자리하고, 그 뒤쪽에는 골프장 파인스톤CC가 있다.
도랑 오른쪽은 송산면 유곡리 들녘, 송산면 무수리 들녘의 도랑길을 따라간다. 중앙 뒤쪽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이다.
송산면 가곡리 들녘 건너편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 파인스톤 빌리지가 길게 자리하고 있고, 서해랑길은 무수들길을 따라간다.
왼쪽 뒤에 보이는 당진현대엠코타운 아파트 오른쪽 유곡2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중앙 뒤 솔숲 영막정을 거쳐 들녘을 돌아왔다.
충남 당진시에 있는 법정면인 송산면(松山面)은 당진시 2개 읍·9개 면·3개 동 가운데 북부에 자리한 법정면이다. 송산면은 당진 시내에 물자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함으로써 과거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2000년 서해안 고속 도로의 송악 IC가 완성되고, 현대 철강 단지가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송악읍에 가장 인접한 송산면은 교통 접근성에서 유리하고 산업 단지 조성으로 교통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송산면의 ‘송산(松山)’이라는 지명은 상거리, 매곡리, 삼월리에 걸쳐 있는 높이 50m 정도의 솔 모양으로 생긴 소타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소타뫼’는 소나무란 뜻의 소타와 뫼의 합성어, 즉 소타-솔-송(松), 뫼-산(山)이 되어서 ‘송산’이 되었다. 지형상의 위치로 보면 송산면의 북쪽은 서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해상 경계선으로 경기도와 접하고, 동쪽과 서쪽은 소하천으로, 남쪽은 100m 미만의 저산성 구릉지로 지형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송산면 동단은 유곡리 동쪽 끝이고, 서단은 오도리 서쪽 끝이고, 남단은 부곡리 남쪽 끝이고, 북단은 가곡리 성구미 북쪽 끝이다. 행정 구역상의 위치로 보면 송산면은 남양만, 아산만을 경계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평택시 포승읍과 당진시의 북쪽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나머지 서, 남, 동쪽 3개 방면은 동쪽은 당진시 송악읍, 남쪽은 당진시 읍내동, 서쪽은 당진시 석문면, 고대면과 당진 지역 내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교통상 위치로 보면 당진~삽교천을 지나는 34번 국도와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서 분지된 국도 38호선이 신평면, 송악읍을 지나 송산면 북단을 거쳐 산업 단지 지대를 통과하여 지방도 633호선과 교차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가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 포구를 중심으로 해안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석문방조제 동쪽 출입구에 위치한 석문선착장이 중앙 숲 뒤쪽에, 맨 오른쪽 현대제철 뒤에 성구미포구가 있을 것이다.
충남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인 가곡리(佳谷里)는 1980년 가곡 1리와 가곡 2리로 행정리가 나누어졌다. 가곡 1리는 동쪽으로 동곡리, 북쪽으로 가곡 2리, 남쪽으로 서정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가곡 2리는 동쪽으로 동곡리, 남쪽으로 가곡1리, 북쪽으로 아산만을 끼고 경기도 평택시와 인접한 마을이다. 현대 제철 산업 단지 건설로 마을 전체가 산업 단지화되었다. 현대 제철의 고로 제철소와 연관 산업 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가곡 1리 면적의 약 40%, 가곡 2리 면적의 약 90%가 산업 단지에 편입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가곡리는 마을 지형이 가사(袈裟)[승려가 입는 법의]처럼 생겼으므로 가삿골 또는 가곡리라 하였다. 또는 삼면이 바다이며 백사장과 어선이 모인 풍경이 수려하여 아름다울 '가(佳)', 골짜기 '곡(谷)' 자를 써서 ‘가곡리(佳谷里)’라 불렀다. 성구미 해안은 수심이 깊고 지형이 험준하여 한국 전쟁 이후 남파 간첩이 침투하기도 했으며, 1972년 가을에는 이곳으로 침투한 무장 공비가 도문리에서 사살되기도 하였다. 공공 시설로는 위생매립장, 가축분뇨 처리장,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재활용품 선별장, 조사료(祖飼料) 공장[TMR] 등이 있다. 가곡리에는 가삿골, 동안리, 창리, 신영개, 문째, 두멍개, 말무당, 큰골재, 성구미 등 아홉 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창리에는 큰 창고가 있어 창사령[창고지기]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관리하였다고 전한다. 성구미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서 무수2교를 통하여 송산면 무수리 파인스톤 빌리지 앞으로 건너간다.
무수2교 앞에서 송산면 가곡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를 다시 바라본다.
가곡리 들녘 맨 끝에 석문방조제가 있으며, 그 동쪽 출입구에 석문선착장, 오른쪽 뒤 해안에 성구미포구가 있을 것이다.
무수2교를 건너 파인스톤 빌리지 앞 무수들길로 들어왔다. 왼쪽으로 직진하면 파인스톤 빌리지, 왼쪽 앞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파인스톤 골프장이다. 서해랑길은 무수들길 오른쪽 파인스톤 빌리지&파인스톤CC 입구 방향으로 진행한다.
무수들길을 따라 북진하다가 바로 앞 파인스톤CC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파인스톤CC 울타리를 따라간다.
무수들길을 따라 파인스톤CC 입구로 나왔다.
무수들길 파인스톤CC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파인스톤CC 울타리 옆 무수리 간척농지길을 따라간다.
석문방조제에 의해 송산면 지역에 드넓은 간척농지가 형성되었다. 이곳은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간척농지이다. 왼쪽 건너편 능선 뒤쪽은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 우뚝하고, 중앙 오른쪽 지역은 석문면 삼화리 지역이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파인스톤CC 출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파인스톤CC 솔숲 울타리 옆 무수리 간척농지길을 따라오고 있다. 송산면 가곡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흰 굴뚝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1990년대의 당진 경제는 한보 사태와 함께 하였다. 우선 한보 그룹은 1990년부터 5조 원 규모의 당진 제철소 건설을 시작하였다. 한보 그룹은 처음에 1조 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하여 철강 사업을 시작하였고, 투자비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1997년 5월 한보 그룹은 도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은 부도 여파로 171개 영세 업체가 연쇄 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현대 제철이 한보 철강을 인수하면서 당진의 경제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또한 동부 제철의 확장과 동국 제강의 입주, 유관 기업의 입주 등으로 당진은 현재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간척농지 뒤에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 오른쪽 뒤의 석문방조제와 석문선착장을 가늠한다.
파인스톤CC 솔숲 울타리 옆 송산면 무수리 간척농지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무수리 간척농지길은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 뒤에 보이는 벼건조저장센터 건물 앞으로 이어간다.
파인스톤CC 솔숲 울타리 옆 간척농지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무수리 간척농지 너머 중앙 뒤에 오뚝 솟은 건물은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이다.
무수리 간척농지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벼건조저장센터 건물 앞쪽으로 이어간다.
왼쪽의 송산농협 벼건조저장센터 건물을 오른쪽으로 꺾어 돌아왔다. 송산면 무수리는 4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뒤쪽 지역은 무수리 서북쪽 4반 내화(안고잔) 지역이다.
송산면 무수리에서 백석천의 백석3교를 건너 송산면 당산리로 넘어간다.
백석천 건너편 중앙 뒤쪽은 송산면 당산리 뱃말골인 듯.
송산농협 벼건조저장센터와 육묘장이 송산면 무수리 백석3교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백석천은 석문호로 흘러든다. 중앙 왼쪽 뒤에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 우뚝하다.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로 넘어와 백석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의 수로는 당산리 간척농지를 가로지른다. 서해랑길은 백석천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는 수로 옆 도로를 따라간다.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간척농지 도로를 따라 수로(水路)와 동행한다.
충남 당진시 송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인 당산리의 자연 마을로 당산 마을, 오슴 마을, 장자 마을 등이 있다. 당산 마을은 당산 밑에 있다 해서 당미 또는 당뫼라고 불리다가 후에 ‘당산’이라고 했다. 당산은 당미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성황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가뭄이 있을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또 예전에 지사가 동네를 둘러보고 금계 포란형[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당산이 있다 하여 ‘당산리(堂山里)’라 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산리에는 당산 저수지 생태 공원이 있다. 당산 저수지 생태 공원에는 천연기념물 제201-2호이자 2급 멸종 위기종인 큰고니와 청둥오리 등 7~8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꽃과 금개구리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당산 2리는 환경부로부터 생태 마을로 지정되었다. 당산리에는 행정리로 당산 1리와 당산 2리가 있다. 당산 1리는 동쪽으로 백석천을 사이에 두고 삼월리, 북동쪽으로 무수리, 동남쪽으로 송석리, 남쪽으로 칠절리, 서쪽으로 오도리, 북서쪽으로 당산 2리와 인접하고 있다. 당산 2리는 동쪽으로 무수리, 북서쪽으로 석문면 삼화리, 서쪽으로 오도리, 남쪽으로 당산 1리와 인접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간척농지가 드넓다. 맞은편 뒤쪽에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 솟아 있다.
송산 지구 간척농지 송산3단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동행한 수로와 헤어져 간척농지를 가로지른다.
송산면 당산리 송산 3단지 간척농지를 가로질러 석문호 방향으로 이어간다. 대한전선 케이블공장 건물은 표지가 되어 준다.
왼쪽 뒤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있고, 송산지구 간척농지가 가곡리, 유곡리, 무수리, 당산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
송산지구 3단지 앞에서 수로와 작별하고 당산리 간척농지를 가로질러 이곳으로 왔다.
중앙 뒤쪽에 당산저수지 생태공원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리고 맨 뒤 산봉들이 보이는 곳이 당진시 시가지일 것이다.
충남 당진시 송산면 당산 2리가 생태 마을로 지정되었고, 이와 더불어 2014년 12월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과거 당진시 송산면 당산 2리 지역 일대는 인근 주민에게 붕어, 가물치 등 먹거리와 여름이면 아이들 놀이터 역할을 했으며, 평야 지역에 농업용수로 활용되어왔다. 2008년 가시연꽃과 금개구리가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고 또한 고니 등 멸종 위기종이 도래하여 월동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환경부로부터 생태 마을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 조성된 생태공원은 자연환경 보전 이용 시설로 지정되었다. 당산저수지 생태공원은 관찰 테크, 인공 식물섬, 조류 관찰관, 급수대, 야외 공원, 당산저수지 둘레길, 화장실, 주차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산저수지 생태공원의 규모는 122,095㎡이다. 당산저수지 생태공원은 2008년 겨울철에 10여 종의 새와 하루 평균 개체 수 500여 마리 이상이 관찰된다. 겨울철 수금류의 주요 월동지이며 여름 철새 백로류와 같은 새들의 휴식, 채식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식물은 100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로 선정된 가시연꽃 군락지를 비롯하여 줄 군락, 물억새 군락, 연꽃군락, 노랑어리연꽃 군락, 갈대 군락, 물피 군락, 물옥잠 군락, 마름, 붕어마름 군락 등이 개체수가 많은 우점 군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기타 종으로는 환경부 멸종 위기 2급인 삵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환경부로부터 자연환경 보전 이용 시설로 지정된 후에는 철새로 인한 지역 농업인의 손실을 보상하고 생태계 보전 활동에 대한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진시는 2015년 처음으로 시비 2,000만 원을 들여 당산저수지 인근의 논 15,420㎡에 농약을 치지 않고 벼를 재배한 후 쓰러뜨려, 겨울 철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생물 다양성 사업’을 통한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로써 논 생물 등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겨울 철새들의 도래지로 주목받고 있다. 당산저수지 생태공원은 당진 시내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 등의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송산지구 당산리 송산18단지 앞 석문호 제방도로로 나왔다. 오른쪽 뒤에 송산면 가곡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보이고, 왼쪽 뒤에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가 석문호를 가로지르고 있다.
역천이 바다로 흘러들다가 석문방조제에 의하여 석문호를 형성하였다. 석문호 건너편은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지역이다.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 간척농지가 펼쳐져 있고, 중앙 뒤의 당산저수지 생태공원, 맨 뒤쪽의 당진 시가지 방향을 가늠한다.
석문호 제방로에서 역천(驛川)의 삼화교를 건너 송산면 당산리에서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간다.
당산리 지역의 삼화교 교명주(橋名柱)에 명판이 떨어져 나갔다. 당산교라고 하지 않아서 명판을 떼어낸 것일까? 건너편 삼화리 지역의 교명주(橋名柱)에는 삼화교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삼화교 입구에서 당진저수지 생태공원과 맨 뒤의 당진 시가지를 가늠한다. 오른쪽 뒤의 지역은 고대면 슬항리일 것이다.
역천(驛川) 왼쪽은 송산면 당산리 지역, 역천 건너편 위쪽은 고대면 슬항리 지역이다.
슬항리(瑟項里)는 역천의 하류 지역으로 석문호의 최상류에 있다. 석문 방조제의 간척 공사로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되어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형이 거문고 비슷한 비파[비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비아목, 즉 '슬항리(瑟項里)'라 하였다. 슬항리는 원래 당진군 하대면(下大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대면 사암리(舍庵里), 해촌리(海村里), 마술리(馬述里)를 병합해 슬항리라 하여 당진군 고대면에 편입되었다. 역천이 고대면 슬항리 근처에서 전형적인 S자 모양으로 자유 사행(自由蛇行)[하천이 평탄한 지역을 흐를 때 흐름의 속도가 느려서 약간의 장애물에 부딪혀도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일]을 한다. 역천변 위에 놓인 오도교를 건너서 송산면과 통한다. 바위가 7개 있어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칠성 바위가 유명했는데, 1994년 도로 확장 시 제거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역천(驛川)의 하류 보덕포에서 물오리들이 봄날을 즐기고 있다. 천변 버드나무 잎들이 푸르게 반짝인다.
조선 시대 시흥도 산하 7개 속역 중 하나인 당진시 용연동에 있던 흥세역(興世驛) 옆을 하천이 흐르기에 역천이라 불렀다. ‘역천’이 음운 변화하여 ‘역내’, ‘영내이’라 불리기도 한다. 역천은 원래 아산만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당진 제2의 하천이었으나 1995년 12월에 석문 방조제가 막히면서 석문호에 유입된다. 당진시는 2013년부터 사업비 170억 원을 들여 수질 정화 습지 조성과 비오톱, 생태둠벙, 생태 어도 등을 조성하기 위한 역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완료 9㎞ 구간 가운데 오염 부하가 높은 하류부 3.5㎞를 중점 생태 복원 구간으로 정하고 생태 하천 복원 사업을 위한 역천 지방 하천 기본 계획 수립이 완료되었다. 2015년 현재 11월부터 본격적인 역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에 들어가 2018년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역천은 당진 시내 외곽을 서에서 북으로 흐르는 당진을 대표하는 생태 하천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역천(驛川)은 아산만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석문방조제에 가로막혀 있다. 아래쪽에 국도 제38호선이 석문호를 가로지른다.
삼화교에서 역천의 보덕포 상류 방향을 가늠한다. 왼쪽 지역은 송산면 당산리, 오른쪽 지역은 석문면 삼화리, 그 위쪽은 고대면 슬항리 지역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 있는 가야산 석문봉(石門峰)[653m]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서산시 운산면의 용현 계곡을 지나 고풍 저수지에 저류된 후 다시 흐르는 하천이다. 이후 서산시 운산면 운산리를 거쳐 당진시 용연동에 이르러 역천(驛川)이 되어서 정미면 모평리, 고대면 용두리의 넓은 평야지인 답작 지대를 가로질러 석문호를 거쳐서 아산만에 유입된다. 유로 연장 29.13㎞, 유역 면적 176.06㎢의 지방 하천으로 이칭(異稱)은 역내, 영내이다. 역천에 조선 시대 아산만 하류 쪽으로부터 상류 쪽으로 보덕포(普德浦)-삼포(三浦)-오도(鰲島)-채운포(彩雲浦)-관음포(觀音浦)까지 배가 드나들면서 일제 강점기까지 당진 지방 서쪽의 중요한 수로 역할을 하였다. 가항 종점(可航終點)인 관음포에서는 옥석이 산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삼화교를 건너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가 오른쪽 간척농지와 공사 현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송산면 당산리에서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와서 삼화교를 뒤돌아본다. 교명주(橋名柱)에 삼화교 명판이 붙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당진지사 석문2양수장 옆 '동지터로'를 따라간다. 도로명이 왜 '동지터로'일까?
간척농지의 수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간척농지의 수로가 위쪽으로 이어진다.
간척농지 도로에서 역천 제방으로 올라와 역천(석문호)을 가로지르는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 석문대교를 조망한다.
오른쪽의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가 석문면 삼화리 간척농지를 가로질러 위쪽에 있는 석문국가산업단지로 이어진다.
간척농지 도로를 따라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 석문대교 아래를 통과한다.
석문호 제방 아래의 간척지 도로를 따라 제방과 동행하여 드넓은 석문면 삼화리 간척농지를 한 바퀴 돌아간다.
드넓은 삼화리 간척농지를 오른쪽으로 돌아서 왼쪽 뒤에 보이는 한국가스공사 LNG터미널 공사 현장으로 이어간다.
삼화리 간척지 중앙 뒤에 석문국가산업단지 건물들, 그 맨 뒤에 하얀 연기가 솟아 오르는 당진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당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는 한국 동서발전(주) 당진화력발전소이다. 한국 동서발전(주)은 1996년 6월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당진 화력 발전소 1호기를 준공한 이래 2016년 현재 8호기가 완공되어 총 4000㎽의 설비 용량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건설을 추진 중인 1000㎽급 9호기와 10호기가 준공되면 총 설비 용량 6000㎽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발전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전에 뒤이은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현대제철과 동서발전(주)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 피해는 인근 지역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화력발전소의 증대는 송전 선로의 추가 건설로 이어졌다. 현재 당진 지역에는 15개 송전 선로 189㎞ 노선에 526개의 철탑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강력한 전자파가 노출되어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한 형편이다.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삼화리 제방에서 석문호로 흘러드는 역천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 석문대교를 뒤돌아본다. 서해랑길은 건너편 송산면 당산리 제방길을 따라 올라가 역천을 가로지르는 삼화교를 건너 삼화리 석문지구 간척농지로 내려왔다.
송산면 가곡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앞을 거쳐온 국도 제38호선 북부산업로가 역천(驛川) 위의 석문대교를 가로지른다.
석문호 제방에서 석문호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조망한다. 제방 위를 계속 걷기가 마른 넝쿨식물 때문에 어렵다.
왼쪽의 석문방조제에 의해 석문호가 넓게 형성되었고 그 동쪽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1990년대의 당진 경제는 한보 사태와 함께 하였다. 우선 한보그룹은 1990년부터 5조 원 규모의 당진제철소 건설을 시작하였다. 한보그룹은 처음에 1조 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하여 철강 사업을 시작하였고, 투자비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1997년 5월 한보그룹은 도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은 부도 여파로 171개 영세 업체가 연쇄 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당진의 경제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또한 동부제철의 확장과 동국제강의 입주, 유관 기업의 입주 등으로 당진은 현재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석문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석문호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석문방조제 동쪽 출입구 뒤에 석문선착장이 있다.
석문 선착장은 석문방조제를 가기 전에 가볍게 들리기 좋다. 선착장을 따라 뻗어있는 길로 쭉 걷다 보면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으며,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며 편히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석문선착장은 낚시 명소로 알려진 곳이라 선착장 군데군데 낚싯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곳에서의 여유를 즐긴 후에 석문방조제에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석문방조제는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리를 잇는 방조제로 10.6km의 길이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석문호 제방에서 오른쪽 송산면 가곡리에서 왼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석문방조제(石門防潮堤)와 석문호를 조망한다.
충남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리를 잇는 방조제는 서남해안 간척농지 종합개발 사업의 일부분으로서, 당진시 석문면, 송산면, 고대면 등 3개 면의 연안 일대에 안정 영농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완성되었다. 방조제와 배수 갑문은 1987년 7월 시작하여 1995년에 준공되었다. 2005년에 전체가 완공되었다. 석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거대한 담수호인 석문호가 송산면과 석문면 사이에 생겼다. 또한 농경지와 국가 공단 부지가 확보되었다. 석문방조제 건설로 인하여 송산면의 어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당산리, 삼월리, 무수리, 가곡리까지 해안가를 따라 걸쳐 있던 염전이 모두 폐업되었다. 당진군의 지도를 바꿀 정도의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송산면과 석문면 사이의 해안선이 24㎞나 줄어들었다. 당진시는 담수가 시작되면서 퇴적층이 발생하고 수질 기준이 등급 외로 떨어져 오염이 가중되고 있는 석문호를 대규모 생태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당진시는 총사업비 356억 원을 들여 50㏊ 규모의 습지를 조성하고 수초 저류지[60㏊]와 인공 식물섬 11개소, 파라교와 관찰교 17개 등을 만들 예정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석문면 삼화리 간척농지가 드넓다. 제방 아래 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왼쪽 뒤 석문면 통정리에 석문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석문면 삼화리 간척농지 뒤 통정리에 석문국가산업단지가 있고, 맨 뒤에 석문면 교로리 당진화력발전소 연기가 솟아오른다.
충남 당진시 석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화리(三花里)는 마을의 세 군데가 곶[串]으로 되어 있어 이를 ‘삼곶[三串]’이라 했다. '곶'이 다시 경음화되어 '꽂'이 되었고, 이를 한자로 차용(借用)한 것이 ‘삼화(三花)’로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마을 내에서 방(方), 박(朴), 백(白)의 삼성(三性)이 크게 번창하여 인근에서 볼 때 세 가지 꽃이 핀 것과 같다 하여 삼꽃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삼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당진현 외맹면(外孟面)의 송당리(松堂里), 찬동(讚洞), 외창리(外倉里), 삼화리(三花里), 고산면의 유치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래 마을 이름대로 ‘삼화리’라 해서 당진군 석문면에 편입되었다. 삼화리는 석문면사무소가 있는 통정리로부터 약 1~4㎞가량 떨어져 있다. 지방도 615호선, 당진시도(唐津市道) 9호선과 14호선이 마을 중앙을 가르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지나가고 있다. 마을의 동쪽은 송산면 무수리, 서쪽은 고대면 성산 1리와, 남쪽은 고대면 성산리와 접하고 있으며 고대면과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다. 북쪽은 석문면의 면소재지 마을인 통정리와 접하고 있으며 마을 북쪽 일부가 석문 국가 산업 단지의 주거 단지로 편입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송산면 당산리에서 삼화교를 건너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와 역천(석문호) 제방 아래의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오고 있다.
석문-송산 간척지에는 조사료 전문 재배단지가 구획되어 있는 것 같다. 조사료가 무엇일까?
조사료(租飼料)는 목초, 건초, 사일리지, 옥수수, 파, 씨있는 과일의 껍데기 등 섬유질로, 에너지함량(가소화양분함량)이 적은 사료. 가축, 특히 초식동물의 사료. 반추위를 갖는 가축에서는 생리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은 유지되어야 한다. 또 근채류는 그 자체가 수분함량이 높기 때문에 조사료(租飼料)로 취급되고 있지만, 건조하면 농후사료로 취급된다. 농후사료(濃厚飼料)의 반의어. 농후사료(濃厚飼料)는 부피가 작고 섬유소가 적으며 가소화(可消化) 양분이 많은 사료. 곡류 ·겨류 ·깻묵류가 이에 속한다. 이 사료는 가소화 성분은 많으나 그 성분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많으며, 성질도 각각 다른 것이 많으므로, 실제 사료를 배합할 때에는 여러 종류의 농후사료를 배합하여야 한다. 농후사료는 주로 비육(肥肉)하는 가축과 젖 ·알 등을 생산하는 가축에게 많이 쓰인다. - 지식백과
석문면 삼화리 드넓은 간척농지 뒤쪽에 고대면 장항리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 표지처럼 우뚝 솟아 있다.
충남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는 당진~석문 간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며, 장항천 주변 원장항 남쪽에는 하천변에 넓은 벼농사 지대가 전개된다. 마을 남쪽을 장항천이 동류하면서 역천에 유입된다. 장항리는 마을 지형이 긴 목처럼 생겼다 하여 진목, 긴목, 즉 장항리(長項里)라고 하였다. 장항리는 원래 당진군 고산면(高山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항리 일부 지역에 고산면 삼거리(三巨里)와 선교리(船橋里) 및 속사리(束射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그대로 장항리(長項里)라 하여 당진군 고대면에 편입되었다. 고산봉[149.7m]에는 조선 시대 고산 봉수가 있었다. 고산봉 산록에 고산사가 있었는데 폐찰되고 부도 1기가 남아 합덕 수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선교(船橋)는 옛 당진군 고산면 선교리 지역으로, 장항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아산만과 역천을 통하여 마을의 앞뒤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여 배다리라고도 부른다. 장항 1구를 크게 선교와 진목으로 나눈다. 선교에는 건너말, 속두말, 도랑말, 아랫말이 속하고 진목에는 속두말이 속한다. 부대앞은 고산 초등학교 입구, 즉 옛날 고산봉에 주둔하던 미군 미사일 부대 앞동네를 말하는데 현재는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옛 동산 염전 자리에 대한 전선 당진 공장이 들어서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991년에 준공된 10.6km의 석문방조제가 이어지고, 넓은 석문호가 형성되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건너편에 있다.
1980년대 당진 경제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통한 농경지 확대와 방조제 건설로 요약된다. 방조제 건설은 1976년 12월 24일 착공하여 1981년 10월 25일 완공된 3,360m의 삽교천 방조제부터 비롯되었다. 당진·아산·예산·홍성 등 4개 시군의 농업 기반 조성을 위해 건설된 삽교천 농업 종합 개발은 24,700㏊의 농경지 개발과 함께 담수호인 삽교호를 건설하여 837㎞의 용수로를 갖추는 사업이었다. 삽교천 방조제가 준공되었던 1979년 10월 26일 준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삽교천 종합 개발은 당진의 전 지역에 가뭄 해갈이라는 단비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삽교천으로 둘러싸여 침수 피해에 시달리던 우평강문 평야 지대의 농민들은 큰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번째 간척 사업은 대호지구 농업 종합 개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1981년 4월 21일부터 시작해서 1984년 11월 16일 방조제 7,800m를 준공하였다. 방조제는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를 연결하였다. 전체 개발 면적은 7,700㏊에 달했고, 이 중 50%에 해당하는 개펄이 농경지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농업용수로 318㎞를 개설하여 수리 안전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간척 사업은 석문 지구 간척지 개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1987년 8월에 시작하여 1991년 11월 13일 방조제를 준공하였다. 석문방조제는 10,600m로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리를 연결하였고, 3,750㏊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로써 수많은 개펄을 메워 농경지로 만들었고 담수호를 조성하여 용수로를 개설하였으며 천수답을 완전한 수리 안전답으로 바꿔 놓았다. 하지만 지나친 방조제 건설은 생태계 붕괴와 같은 환경 파괴를 가져온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석문면 삼화리에서 석문면 통정리로 넘어간다. 석문면 통정리 석문국가산업단지 오른쪽에 한국가스공사 LNG 터미널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고, 그 왼쪽은 LG화학 당진 공장 신축 공사 현장이다.
석문면 통정리 석문국가산업단지 동쪽 출입구에 LG화학 당진공장이 신축 중에 있다.
석문면 통정리 간척농지가 펼쳐져 있고, 중앙 뒤 오른쪽은 석문면 면소재지 통정리 시가지이며 그 앞쪽에 석문면 통정리 석문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중앙 뒤는 고대면 성산리, 맨 왼쪽 뒤는 장항리 지역으로 그 표지는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이다.
충남 당진시 석문면에 속하는 법정리인 통정리(通丁里)는 조선 시대에 외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통못가가 되므로 통못, 통정이, 통쟁이라고 불리어 왔다고 전하나 확실하지가 않다. 일설에는 청주 한씨(淸州韓氏) 문정공파 중시조인 한영세(韓永世)가 낙향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 벼슬을 하고 있어서 통정 벼슬한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서 ‘통정리’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통정리는 조선 시대 때 외맹면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송내, 덕거, 유티, 웅포의 일부를 병합하여 통정리라 하여 당진군 석문면에 편입되었다. 통정리는 석문면사무소가 있는 면소재지 마을이다. 4차선으로 확장된 38번 국도가 통정리의 북쪽을 지나고, 지방도 615호선과 당진시도 9호선과 14호선이 통정 1리에서 합류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마을의 동쪽은 삼화리와 접하고, 서쪽은 고대면 성산리와, 남쪽은 삼화리와, 북쪽은 석문 국가 산업 단지와 접하고 있어 발전 여지가 큰 지역이다. 2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문면사무소, 석문 파출소, 석문 우체국, 석문면 보건지소, 석문면 예비군 중대, 석문면 의용 소방대, 석문면 개발 위원회, 신용 협동조합 등의 시설이 있고, 석문 초등학교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와 삼화리 간척농지가 드넓다. 뒤쪽에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건물은 간척농지의 표지처럼 솟아 있다.
중앙 맨 뒤 역천(驛川)의 삼화교를 건너 송산면 당산리에서 석문면 삼화리로 넘어와 제방 아래의 도로를 따라 이어왔다.
석문지구 간척농지 석문1단지 표지판을 지나 앞쪽 언덕의 무지개다리를 건너 석문국가산업단지 '산단1로'로 올라간다.
무지개다리 입구에서 석문방조제, 석문호와 제방, 걸어온 도로를 뒤돌아본다. 약 7km의 간척지 도로를 따라왔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석문국가산업단지 '산단1로'로 나간다.
산단1로에서 북쪽의 석문방조제 방향을 조망한다. 왼쪽 가림막 뒤쪽은 한국가스공사의 LNG 터미널 공사 현장이다.
산단1로에서 남쪽의 석문면 면소재지 통정리 시가지 방향을 조망한다. 오른쪽은 신축 중인 LG화학 당진공장이다. 서해랑길은 산단1로 횡단보도를 건너 LG화학 당진공장 쪽 산단8로로 가서 산단8로 횡단보도를 건너 북쪽 보도를 따라 이어간다.
석문국가산업단지 산단8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왼쪽 LG화학 당진공장 쪽으로 건너가 다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산단1로 횡단보도를 건너 LG화학 당진공장 쪽으로 왔다. 서해랑길은 다시 산단8로 횡단보도를 건너 한국가스공사의 LNG 터미널 공사 현장 가림막 옆 북쪽 보도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