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127)
서기관들을 삼가라
(2022.10.25 화)
본문 : 누가복음20:45-47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성령님에게 이끌리시어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자신의 가야 할 길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싹을 틔우기 전에 미리 잘라버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사단의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이 이러한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예 주기도문을 통해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고 기도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러면서 결코 닮지 말아야 할 사람을 예로 들면서
왜 그들을 닮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45-47절>
45절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절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바로 “서기관들을 삼가라”(46)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書記官)은 그냥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성경 필사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전문 교사를
통해 율법을 비롯한 각종 전승 사료를 해석하는 법,
종교 수칙, 재판 관련 법규 등을 배웠습니다.
그 후 자격을 인정받으면 '탈미드 하캄'(보조교사)이란
칭호를 받았고, 계속해서 수련을 쌓아 40세가 되면
안수를 받고 '하캄'(정교사)으로 불리며 정식 서기관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서기관 가운).
이렇게 정식 서기관이 된 자는 전승을 해석하고
새로운 전승을 창출하며, 종교적인 규약을 만들고
재판관의 일원으로 민형사상의 재판에도 참여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유대의 최고 지위를 누렸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제사장들이나
장로들과 함께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주요 멤버가 되기도 했습니다(대부분 바리새인).
한 마디로 율법에 정통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권위를 인정받고 또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46)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율법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율법의 정신과 배치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내로남불).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에는 박식했지만,
바로 그 율법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서기관들을 삼가야”(46) 하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첫째, 우선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안목의 정욕’).
<46-47절>
46절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긴 옷’은 ‘길게 끌리는 도복’으로 당시 서기관들이 안식일이나
절기 때에 입는 특별한 예복을 가리킵니다.
‘예복’의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옷입니다.
예를 들어, 박사 학위 가운을 보십시오.
그 학위를 받기까지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이 되는 순간입니다
(방석집 같은 데서 받으면 안 되는 것).
학위 수여식 때 드디어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신학대학 채플 – 예배 인도를 하는 교수들이
모두 박사 가운을 입고 나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그들이 가운을 입고 가운데
통로로 모두 나가실 때까지....
모든 학생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칩니다.
존경의 표현입니다.
재판관들도 ‘판사 가운’을 입습니다.
재판하는 이의 권위를 드러내고, 재판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특별히 레위 지파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후손들을 택하셔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구별 짖기 위하여 특별히 제사장 예복을 만드셨습니다(출28).
주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목사 안수를 받을 때
감독님이 ‘목사 가운과 스톨’을 입혀줍니다.
장로님들도 안수받으실 때 가운을 입혀드립니다.
그 가운을 입으시고 성찬을 보좌하시는 것입니다.
‘서기관’들도 예배 때나 성경을 해석하고 재판할 때
마땅히 ‘서기관 가운’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옷은 발을 덮을 정도로 아래로 늘어진 옷으로
땅에 질질 끌릴 정도이기 때문에 .....
평상복으로 입기는 매우 불편한 옷입니다.
그리고 입고 다니라고 만든 옷이 아닙니다.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저는 이것도 ‘안목의 정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의식에 빠진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유난히 강조하려고 필요 이상의 사치를 하지는 않습니까?
광고 – ‘안목의 정욕’을 자극, 허위 의식을 조장.
마치 그 상품을 사야 그 수준의 사람이 되는 듯….
옷 가게 - 가격표를 더 비싸게 바꾸니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예배하기 위해 나오면서, 지나치게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 등을 하고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자랑하기 위해?).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고 나오면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외형적인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내면을 준비하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서기관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다’(47)고 합니다.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문제는 ‘외식으로’한다는 것입니다.
외식(外飾)이란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나누는 밀접한 교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종교적인 의식조차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과 방법이 잘못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우리의 뜻을 꺾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사람들 보라고 한다면,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그야말로 허공에 울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서기관들을 삼가야”(46) 하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첫째, 우선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안목의 정욕’).
둘째, 서기관들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이생의 자랑’).
46절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이생의 자랑’은 권력을 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높은 자리를 탐합니다.
시장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고 높여줄 때 만족감을 얻습니다.
또한 회당에서나 잔치에서 높은 자리,
윗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앉는 자리가 그 사람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늘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하고, 최고의 섬김을
받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자신들의 실력과
영적 지도력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반석하고는 구별되는 상석에 앉아야 자신의
권위가 살아난다고 믿습니다.
자리가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서기관들은 어떤 장소에 가든지
앉을 자리에 신경을 씁니다.
같은 서기관이라 할지라도 자리를 놓고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높은 지위, 상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조차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성도님들에게 섬기고....
나누며, 자신을 낮추라고 요구하십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한 자세로 성도를
섬기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왜 “서기관들을 삼가야”(46) 하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첫째, 우선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안목의 정욕’).
둘째, 서기관들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이생의 자랑’).
셋째,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육신의 정욕’).
47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에서 가장 힘이 없고, 연약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❶ 나그네입니다. ❷ 고아입니다. ❸ 과부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공동체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과부에게는 죽은 남편이 남겨놓은 집이 전 재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서기관들이 탐욕스럽게
삼켜버린다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본래 랍비는 율법을 무보수로 가르치고, 생계를 위해서는
손으로 하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이론이고, 실제로는 랍비를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 가장 큰 경건이라고 그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런 가르침에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과부들이었던 것입니다.
즉 연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다니면서 잘못된 가르침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단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납니다만,
기성 교회에서도 지나친 헌금 강요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엄중한 심판>.....
주님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47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왜 그렇습니까? ‘알고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눅12:47)입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의 전문가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외식 주의자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은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저 자신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목회자가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맺는 말씀>
그러나 목회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다고 했습니까?
45절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 앞에 분명히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뜻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저와 성도님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서기관의 잘못된
행동을 거울삼아.....
오늘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날마다 말씀의 검으로
나를 새롭게 다듬어 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