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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사공부방(일본 불교사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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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스크랩 간사이 최고봉. 영봉 이시즈치산(靈峰 石鎚山) 순례기 #.4
박영빈 추천 0 조회 205 15.07.31 23:5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이시즈치산(石鎚山)또는 이시즈치야마.


시코쿠 산지 서부에 위치하는 해발 1,982m의 산으로 긴키지방 서쪽의 서일본 최고봉이다. 에히메현 사이죠시(西?市)와 구마고겐쵸(久万高原町)의 경계에 위치한다.

 石?山, 石?山, 石土山, 石槌山. 혹은 이요의 높은 산(伊予の高嶺)등으로 표기되었다.『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槌山」이라고 기록되었고, 연희식 신명장(延喜式神名帳)에는?神社」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에가미지(前神寺)와 요코미네지(橫峰寺)에선 샤쿠마잔(?山)이라고도 부른다. 


 - 일본 위키피디아. 石鎚山 항목 개요中



해발 1,400고지에 있는 중궁 성취사((中宮 成就社). 옛날 이곳을 개산한 수행자 엔노죠쟈(役行者)가. 이시즈치산의 정상을 노리고 이곳에서 수행을 거듭하였으나 정상에 오르지를 못하였다. 이에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던 중 할아버지 한분이 도끼를 열심히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도끼를 갈아 무엇하려 하느냐고 묻자.


"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오.(磨斧作針)"


이에 엔노교쟈는 자신의 수행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다시금 산을 올라 수행한 끝에 수행도량으로써 이시즈치산을 개산하게 되었다. 정상을 내려온 엔노교쟈가 이곳에서 정상을 되돌아보며.


"내 원은 성취되었다.(吾が願い成就せり。)"


라고 선언한데서 이곳의 지명을 죠쥬(成就)라고 하고 신사의 이름이 성취사(成就社)가 되었다.


이시즈치신사 중궁 성취사. ('15.07.07. 촬영) 


먼저 신사를 참배하기로 했다. 신사의 참배구역은 크게 본전(本殿)과 요배전(遙拜殿)으로 나뉜다. 본전에는 이시즈치산의 신인 이시즈치히코노 미코토(石鎚比古命)를 모시는데 신사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시즈치히코노 미코토는 일본을 만든 신이라고 알려진 이자나기(伊邪那岐), 이자나미(伊佐奈美)의 둘째아들이라고 전한다.


이 이시즈치히코노 미코토의 신덕(神德)을 셋으로 나누어 각각 3분의 신으로 모시는데 구슬을 들고 있는 모습(仁), 거울을 들고 있는 모습(智), 검을 들고 있는 모습(勇)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교와 슈겐도에서는 앞서 말하였듯이 아미타 3존을 본지불로 하여 3분의 장왕권현으로 모시고 있다.


케이블카 밑의 사당에 모셔져있던 신상. 각각 신의 智, 仁, 勇을 상징한다.


이시즈치 장왕권현 3존


본전의 바로 옆에 있는 요배전은 큰 통유리로 멀리 이시즈치산을 바라 볼 수 있게 해두었다. 우리나라의 적멸보궁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이시즈치 신앙에서는 이 이시즈치산 자체가 신이기 때문에 따로 장치를 두지 않고 산을 향해 예배할 수 있게 해둔 것이다.


요배전 내부


참배를 마치고 숙소를 잡기로 한다. 친구가 검색해서 알려준 제일 "싼" 숙소. 싸다곤 해도 일단 산 위이니 물가가 비싼건 당연한거고... 식량도 다 떨어졌으니 어쩔수 없이 식사를 포함해서 묵어야 한다.


타마야 료칸(玉屋旅館).1박 2식 포함 8,000엔...... 노숙을 못할 것은 없으나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로 노숙했다간 동사하기 쉽상이고 산위의 날씨가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큰맘 먹고 들어간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주인분이 이시즈치산의 법라를 만드는 장인이면서 이곳 슈겐도의 슈겐쟈(슈겐도 수행자)라는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들었기에 또 어떠할지 기대를 가지며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보랏빛 작업복을 입은 주인 아저씨가 나오신다. 


"오늘 여기서 묵고 싶은데 방 있나요?"

"예, 있습니다. 오헨로인가요?"

"네, 요코미네지에서 걸어 왔습니다."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보니 기둥 하나에 후다가 몇 장 붙어있다.


"요코미네지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오헨로가 종종 있나요?"

"흠... 그러네요....가끔씩 있는데... 대부분은 외국인 헨로들이 많아요."


일단 배가 고파 우동을 하나 시킨다. 유부우동 하나에 650엔.... 비싸다.... 그래도 먹어야 살거 같으니....

아저씨가 주방에 들어가 뚝딱하고 만들어 오신다.


 

"한국에서 3번째? 그건 대단하네요. 이시즈치는 처음인건가요?"

"네, 힘들긴 한데, 그래도 와서 기쁘네요."

"하긴.... 그 길이 좀 험하니까요. 이마이먀부터는 험하긴 해도 신사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하는데 말이죠"

"복구 되었다고 듣고 왔는데 벌써 좀 길이 무너졌더라구요."

"오는 길에 비는 안맞았어요?"

"안그래도 비가 오긴했는데. 숲이 빽빽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우동을 다 먹곤 정상을 향하기로 한다. 짐은 여관에 맞기고 12:30. 등산로 입구인 신문을 통과한다.



신문을 통과하자 바로 내리막이 나타난다. 갑자기 내리막이라니....내려간 만큼 또 올라가야하는 것을 알기에 한숨 부터 나왔다. 그렇게 내리막을 10분가량 내려가자 커다란 나무 도리이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다시금 오르막. 다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여기까지만 참배하고 돌아가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요배소로 세워져 있는 도리이.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오르막이 이어진다



멀리 정상이 보인다.


정상까지의 오르막은 모두 계단으로 되어있다. 덕분에 오르기는 쉽지만 또 역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그렇게 계단으로 이루어진 오르막을 30분 가량 오르자 쇠사슬이 나타난다. 시험의 사슬길(試しの鎖)이다. 시험의 사슬길은 요컨데 이 앞으로 나타나는 1, 2, 3의 사슬들을 오르기 전에 이 사슬로 한번 시험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사슬에 도전해 보라는 길이다. 물론 시험의 사슬과 함께 모든 쇠사슬길에는 우회로가 있다.


이 시험의 사슬길은 1, 2, 3의 사슬길 보다 더 위험하기로 유명한데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길이가 길고(74m) 또 가장 경사진데다, 다른 사슬들은 사슬을 잡고 올라가기만 하면 등산로와 연결되나 이 시험의 사슬은 사슬을 잡고 올라가서 다시 사슬을 잡고 내려와야만 등산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의 사슬길


이시즈치산에 왔으면 응당 이 사슬을 하는것이 마땅하겠지만 먹은 것이 부실한데다 이미 반쯤 기진맥진이라 다음에 인연이 있겠거니....하곤 우회로로 올라간다.


이러한 사슬길은 슈겐도 영산에 으례 한, 두곳씩 걸려있으나 이곳 이시즈치처럼 길 자체가 사슬인 곳은 없다. 제 1사슬(33m), 2사슬(65m), 3사슬(68m)로 이어지는 이 길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779년 사슬이 끊어져 다시 걸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걸려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우회로를 올라가니 작은 가게가 하나 나타났다. 파란 슬레이트로 지은 가게 인데 간단한 식음료를 팔고 있었다. 이야기를 여쭤보니 지금의 할아버지가 3대째. 벌써 7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가게로 예전엔 물건을 헬기로 날랐는데 지금은 그냥 등짐을 져서 나르신다고 한다. 집은 산 아래 있는데 등산로가 열리는 시즌에 여기서 묵으시면서 가게를 운영신단다.


이곳 이후로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제2사슬까지 없다. 물통에 물을 가득채워주는데 300엔이라는 엄청난 물가....


가게 내부. 전기같은 시설은 없지만 사는데 불편함은 없으시다고

 

잠시 앉아서 땀을 들이고 다시 출발한다. 난마이다(なんまいだ), 난마이다(なんまいだ).... 계단길을 오르고 오른다. 올라가는 길 옆으로 군데군데 오지샤(王子社)가 보인다. 오지샤 마다 작은 돌사당과 왕자들의 모습을 새긴 석주가 서있다. 


 33번 하야타카 오지샤. ('15.06.19. 촬영)


여러 오지샤들 중 하야타카(早鷹)오지샤에는 텐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옛날 산 아래 사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6살된 손녀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너무 올라버려 이곳 산에서 하룻밤을 지새게 되었다. 

마침 이 하야타카 오지가 있던 곳에 불을 피우고 자려는데 할아버지가 땔나무를 주으러 간 사이 손녀가 사라졌다. 밤새도록 손녀를 찾아해메고 또 마을 사람들과도 찾았으나 손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날 손녀가 비단옷을 입고 집에 있는 것이었다. 놀란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그간의 사정을 물어보자 할아버지가 땔나무를 주으러 간 사이 날개가 달리고 코가 긴 붉은 얼굴의 사내가 나타나 데려가선 입고 먹는 것을 돌봐주고 공부도 시켜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손녀가 초경을 하게 되자. 


"이제 몸에서 피가 나오니 더이상 이 산에 너를 둘 수 없구나." 


하곤 눈을 감았다 뜨라 했더니 집에 와있었다고. 이에 마을 사람들이 산에 사는 텐구가 손녀를 돌보아 주었음을 깨닫곤 더욱 산을 공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성취사 요배전에 걸려있는 텐구탈 


텐구(天狗)는 본디 아마츠이누(天つ狗)라하여 하늘을 달리는 개, 즉 유성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후에 공중을 나는 산의 요괴를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게 된다. 산악신앙의 입장에서 슈겐도에서는 신의 사자 혹은 산신의 화신으로 모셔졌는데 이게 또 애매한 것이 살아 생전 교만했던 승려나 슈겐쟈가 죽어 텐구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높은 코와 짙은 눈썹이 바로 그 교만의 상징이라고. 아무튼 텐구는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벌을 내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 이시즈치산에는 호키보(法起坊)라고 하는 텐구가 살며 작은 텐구들을 거느린다고 전한다.


그렇게 15분 가량 오르자 요아카시도게(夜明かし峠)에 도착했다. 옛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멀리 정상을 보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하여 요아카시(夜明かし)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요아카시도게에서 바라본 정상


요아카시도게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멀리 정상이 보인다. 꾸역꾸역 오르기를 15분. 제 1 사슬이 나타났다. 

오야마 비라키때에는 이시즈치신사의 신자들과 슈겐쟈들이 이 사슬로 오르겠지... 하면서 역시 우회로로 빠진다. 제 1사슬을 옆으로 다시 20분 가량 오르막을 오르자 2, 3사슬이 나온다. 2사슬은 다른 등산로와도 만나는 지점으로 츠치코야(土小屋)라고 하는 곳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츠치코야를 통해 올라오는 길은 옛날 64번 절인 마에가미지가 신문을 독점하여 이 길 이외에 이시즈치산을 오르는 길이 없다고 하자 당시 슈겐쟈였던 48번절의 주지스님과 다른 슈겐쟈들이 개척한 길이라고 한다. 


제 1사슬


제 2사슬


사슬들의 옆으로 올라가는 우회로는 가파른 쇠계단인데 안전장치라곤 손잡이로 있는 쇠봉하나 뿐. 비가오거나 하면 위험하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올라간다. 2사슬이 끝나는 지점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바로 제3 사슬이 나타난다. 이 3사슬은 정상의 이시즈치신사 정상사(頂上社)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제3 사슬을 보자 이제 곧 정상이겠구나 하는 흥분과 기대가 몰려온다.


제 3사슬 ('15.06.19. 촬영)


제 3사슬을 옆으로 계단길을 올라간다. 5월 중순인데도 아직 산벚꽃이 남아있다. 역시 고지대는 고지대인가보다. 듣자하니 4월 초까진 눈이 남아있다고 한다. 





14:40. 드디어 이시즈치신사 정상사에 도착했다. 요코미네지 아래에서 출발한지 9시간 만이다.신사 바로 아래있는 정상산장은 이제 막 문을 열어 헬기로 짐을 들이고 있어 정상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활기찬 느낌이었다. 신사앞에 서서 신토식으로 예를 올리고 불교식으로 예불을 한다. 말하지면 슈겐도에서 참배하는 방식이다. 


"여기까지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사 사무소로 가 납경장 여유 페이지에 주인(朱印)을 받고 멀리 정상인 텐구가다케를 바라본다. '저기까지 올라야하는데....' 하지만 등산로의 입구인 신문의 폐문시간이 오후 5시. 서둘러 내려가야한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내려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번 순례에 여기까지 올랐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이시즈치신사 정상사.


정상인 텐구가타케를 배경으로.

새카맣게 탄데다, 옷도 때가 뭍어 행색이 꾀쬐쬐하다.



헬기로 짐을 나르고 있다. 덕분에 휙하고 날아갈뻔 했다.



이시즈치신사 정상사 주인.


다시 산을 내려간다. 오르는 것에 비해 내려가는 것은 한숨에 내려가진다. 내리막에 계단이라 그냥 살살 걸어도 다리에 속도가 붙어서 내려가진다. 그래도 무릎과 허리에 부담이 가는 건 사실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해서 주저 앉기 직전. 성취사에 도착한다. 16:40. 총산행 11시간 만에 하루가 끝났다. 

여관에 들어가니 주인 아저씨가 시원한 설탕물을 내오신다. 씻고나서 세탁을 하고 나니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근사한 전골이 한상 떡하니 나온다. 역시 8천엔....  밥을 먹으며 내일 일정을 계산해 본다. 다시 저 길을 내려가 요코미네지 까지 올라야 한다. 주인아저씨에게 길을 좀 상의해보기로 한다.


"아, 어차피 나도 내일 장보러 산을 내려가야하니, 요코미네지까지 차로 태워다 드리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오래간만에 만족한 위장을 가지고 두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내일은 걱정 없다. 지친 몸을 달래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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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8.01 06:52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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