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경방에 올렸던
영화 감상문인데
조금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흑인노예들의 비참한 실상이 폭로되며
남북전쟁의 기폭제가 된 책.
사악한 주인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던 톰은
"내 몸은 당신에게 팔려왔지만
내 영혼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외치며
비참하게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때리는 악마같은 주인을 용서한다.
저항하기보다 순종하고
증오하기보다 용서했던 톰은
언뜻 보기에 답답하고 유약한 것 같지만
땅에 뿌려진 한 알의 밀알이
새로운 생명을 틔우듯
남북전쟁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며
역사를 바꾼 거대한 수레바퀴 역할을 했다.
그의 순종과 용서가
노예제라는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미워하거나 증오할 수 밖에 없는
누군가를, 혹은 그 무엇인가를
과연 용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이다.
---------------영화 <오두막>-------------------------
영화 <오두막>은
'용서'와 '치유'에 대한 대답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주인공 맥에게 있어 <오두막>은
인생의 상처를 경험하는 곳이자
하나님을 만나는 곳,
삶의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의 변화가 바로 그 증거이다.
맥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시로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는 엄마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뿐
엄마를 지켜주지 못 한다는
자괴감으로 고통받던 어린 맥은
어느날 아버지의 오두막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이 곳은 허리에서 벨트를 풀어
맥에게 채찍질을 하던 아버지의
폭력으로 분노가 이글거리던 곳이었다.
맥은 재빨리 아버지의 술병 안에
살충제를 넣었고 아버지는 그의
눈앞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오직 맥 자신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맥의 마음 깊은 밑바닥에 가라앉은 듯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시작된 오두막에서의
크나 큰 불행으로 인해
맥은 깊숙이 묻혀버린 줄만 알았던
지난 날의 상처와 조우하게 된다.
신앙심 깊은 아내와 귀여운 자녀들과 함께
누구보다 행복했던 맥.
어느날 아이들과 떠났던 캠핑장에서
막내 딸 미시가 실종되면서
단란했던 가족에게 들이닥친 비극은
평온했던 그들의 일상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려버렸다.
결국은 버려진 오두막에서
미시가 살해된 증거를 발견하게 되면서
맥은 감당치 못할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간신히 유지하던 그의 얕은 신앙심조차
이 사건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악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
괴로움의 수렁에 빠져 헤매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맥을
하나님은 오두막으로 초청하신다.
우편함에 들어있는 초청장을 발견한 맥은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 치부하며
무시하려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다.
맥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인생의 고비에서
좌절하고 낙심하여 쓰러질 때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몸부림 칠 때
이런 초대장을 받지 않았었을까?
어쩌면 그 초대장을 받았으면서도
번번이 거절하며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맥은 반신반의하면서 그 초대에 응한다.
처절하게 무너진 그의 삶을 다시 회복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하나님은 왜
맥을 오두막으로 초대하셨을까?
오두막은 맥 자신도 잊어버고 있었던
아니, 잊은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의 잠재의식 안에서 무거운 짐으로
또는 풀어야 할 매듭으로
남아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숨기고 싶은 죄의식과 상처는
감출수록 안에서 곪아가며
나를 갉아먹고 파괴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창문을 열고
밝은 빛을 쐬어야 하는 것이다.
피하여 숨지말고 오픈하며
그것과 당당히 직면할 때
치유와 회복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맥은 그렇게 상처의 진원지였으며
동시에 회복의 공간인
오두막을 마주대하게 된다.
오두막은 '비극과 영원이 만나는곳'
하나님은 가장 절박한 순간에
왜 미시를 버리셨나요.
나는 그 앨 떠난 적이 없어.
자신의 고통만 볼 땐 날 못 보는 법이지.
왜 악을 벌하지 않으시죠?
악은 내가 벌 줄 필요 없어.
죄 자체가 벌이니까.
너무도 불완전한 그림만 보고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그래서 나를 선함으로 인식하지 못 하는 거야.
맥은 사람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과
대화하고 때로 심오한 토론을 하면서
점차 선과 악, 사랑과 용서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간다.
캠핑장으로 떠나며
맥이 딸, 미시에게 들려주었던
인디언 부족의 이야기는
영화 전체의 맥락을 아우르는
상징성을 띤다.
어느 인디언 부족에게 전염병이 돌아 많은 이들이 죽게 되자 그 부족의 예언자는 추장의 딸이 희생하면 전염병이 사라질 것이라 예언한다.
이 말을 들은 추장의 딸은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마을에는 전염병이 그치게 된다. |
"아빠, 왜 추장의 딸은 죽을 수 밖에 없었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니라
희생하기로 '선택'한거야.
딸은 부족 사람들을 정말 사랑했거든."
인디언 부족 이야기는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대신 말해준다.
분노와 원망의 덫 안에 갇혀
사로잡힌 짐승처럼 고통스러워 하던
맥은 드디어 그 사랑을 깨달으며
그 사랑 안에서 붙잡고 있었던
악의 목덜미를 놓아줄 수 있게 된다.
목덜미를 놓아준게 아니라
자신의 붙잡힌 목덜미가 놓여난 것이리라.
참으로 신비롭게도 이러한 놓여남은
말로 표현 못할 기쁨과 자유함을 안겨준다.
맥은 마음 안의 오두막에 웅크리고 앉아
상처와 슬픔을 곱씹으며
미움과 원망을 되풀이하던 것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진 잣대는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것이기에
세상의 악을 심판할 수는 없다.
악으로 악을 이기려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만이
용서와 사랑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마음의 감옥인 오두막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의 오두막에 거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용서는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평안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첫댓글 감동 입니다
안녕하세요~
영화를 본듯
감상평을 보면서
주인공의 심리가 느껴 집니다
주인공의 심리를 보면 상처와 회복의 흐름을
느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