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 윤다옥 지음, 교양인 출판
사춘기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부모가 되었다. 아니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아이는 낳아 놓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난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참 무지했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된 부모였으니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배워야 했다. 주변 어른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육아서도 읽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아이가 영아에서 유아로, 유아에서 어린이,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고비 고비마다 부모로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참는 법도 익혀야 했다. 나에겐 그 과정마다 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나에게 육아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윤다옥 지음. 교양인 출판)는 20여 년간 상담 심리 전문가와 상담 교사로 일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저자가 실제 자신의 아이들과 학생들을 만나면서 겪은 다양한 사례와 조언이 나오니 사춘기 부모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나도 사춘기 자녀를 겪으며 나름 터득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아이에게 화가 나더라도 ‘한 템포 쉬었다 반응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나 스르로 벽에 ‘욱해서 소리지르지 말자’를 써서 붙여 놨을까.
둘째가 6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평소처럼 아침에 아이를 깨웠다.
“민지야, 학교 가야지. 일어나.”
그런데 갑자기 딸이 짜증을 냈다.(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째아이가 그 나이에 짜증을 냈을 때에는 단박에 화를 냈었다. 네가 나에게 짜증을 내니까 나도 기분이 나쁘다며 같이 짜증스럽게 반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첫째를 경험해봤기에 둘째에게는 좀 더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짜증을 냈는데도 엄마가 아무 반응이 없자 눈치를 보며 조용히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아이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못할 것 같아 현관문을 나서는 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학교 잘 다녀와. 그런데 아까는 엄마한테 왜 짜증냈어?”
“... 나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엄마, 미안해.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
“많은 아이들이 욱해서 불손한 행동과 공격적인 말을 내뱉고 시간이 좀 지나 진정되고 나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아이 자신도 당황스럽고 불안한 것이다.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 약하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울 때,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면 된다(p.42)
아이의 짜증 섞인 말투와 반항은 사춘기의 한 증상인가 보다. 그런데 부모가 격하게 반응하면 더 싸움으로 치닫게 되거나 아이는 자신의 잘못보다 억울함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싸움으로 치닫지 않도록 멈출 수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다. 아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반응하며 나의 감정을 말하기보다 한번 참아주고 시간을 두고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아이의 짜증 섞인 태도를 대할 때면 일단 말을 멈추고 외면한다. 그러면 아이도 더 이상 불손한 행동을 하지 않고 멈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둘 다 진정이 되고나면 아이의 태도와 나의 기분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 아이도 대체로 수긍한다. 아이와의 관계도 인간관계나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중간에 있는 청소년 시기, 내 자식이라는 생각보다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적당한 거리두기도 필요한 듯하다.
다음으로는 사춘기 자녀에게 사랑을 더 많이 줘야 할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어릴 적 부모들은 아이와의 스킨십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초등 고학년을 기점으로 스킨십이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첫째 아이가 5학년쯤부터 점점 스킨십이 줄어들었다. 첫째는 아들인데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점점 버릇없게 말하는 모습에 미운 날도 많았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아들과의 관계가 계속 삐걱되는 듯했다. 코로나로 인해 온 가족이 집에서 복작복작대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래서 아들과의 관계는 물론 온 가족 관계 개선 프로젝트로 하루 세 번 포옹하기를 실천하기로 했다.
처음엔 포옹하기를 거부하던 아들도, 엄마의 요구에 응해 아침, 저녁,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매일 같이 포옹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잠을 잤다. 나도 처음엔 마음에서 우러나오기보단 의무감에 꼬박꼬박했다. 그렇게 7~8개월이 지났을 어느 날, 아침에 아들을 깨우러 방에 들어갔는데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의 감정에 북받쳐 올라 눈물이 차오르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들을 그동안 내가 미워했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아들에게 미안하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했다. 매일 같이 포옹을 하면서 아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말도 별로 없고 속말은 더더욱 안 하던 아들이 잠자기 전에 포옹을 하러 와서는 미주알고주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엄마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아침, 저녁으로 꼭 안아주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조금씩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가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사춘기가 손상된 자존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른이며 부모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춘기에는 아이가 느끼는 혼란을 함께 견뎌주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인정받고 수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답게, 자신이 기준이 되어 생활할 수 있게 된다.”(p.34)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없이 예쁜 날도 있지만 미운 날도 있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운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아이들도 부모의 사랑에 목이 마르다. 아이가 나의 품에서 서서히 빠져나갈 때 나는 그걸 아이가 원하는 것인 줄 알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도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고, 불쑥 나도 모르게 나왔던 행동들로 인해 부모에게 먼저 다가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때 엄마가 다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면서 아이가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떨 때는 다 큰 것 같고 어떤 때는 한참 어린 아이 같은 청소년 시기. 좀 봐 주고 얼러주고 사랑도 듬뿍 줘야겠다.
첫댓글 오, 주말을 이용해 퇴고하신 영경 샘 최고!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221592386
앗! 찌찌뽕^^
제 블로그 글 제목과 똑같아요! ‘하루 세 번 포옹의 기적’ ㅋㅋㅋ
@이영경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이상의 제목이 있을 수 없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