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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 속.. 그 가운데.. 나는 혼자였다. <군중 속의 고독>, 1960년대, 예술하는 젊은이들이라면 가슴 속에 누구나 하나씩 품고 다니던 '비장의 무기' (?)였습니다. 어두운 밤, 골목길 찾아 일부러 쏘다니기도 하고, 두 손, 바지 주머니 속에 찌르고 역전 앞 광장에 서서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가슴이 휘휘 소용돌이치다가 이윽고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의 세 싯구는 수선화가 아니라 사람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올림픽공원에 와서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소마미술관] , 미술관 옆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화강암을 깎아 만든 큰 조각작품이 나타납니다. 올림픽공원이 벌이고 있는 [ 9경 스탬프 투어 ] 중 네째 코스에 있는 조각작품, <대화> 입니다.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추천한 올림픽공원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9곳 [ 9景 ]" 을 '구경하는" 이 투어는, 안내센타에서 9경 팜플렛을 받아 거기에 나온 명소를 차례차례 찾아가 구경하고 스탬프를 찍으면 기념엽서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입니다. 가족, 연인과 함께 멋진 추억 만들기의 하이라이트답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너와 나' 를 넘어 '우리' 가 되는 유일한 길 - 대화 라는 주제를 증명이나 하듯, 알제리의 조각가 모한 아마라가 제작한 가로 6 m 세로 1.8m 높이 3.3m 크기의 두 남자는, 상대의 말을 잘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서로 얼굴이 맞닿으려 하는 형상을 띈 조각작품입니다.. 하반신도 생략하고 두 팔도 없앤 토르소 기법을 사용하여 ' 대화 '라는 주제를 극대화시킨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 모한 아마라는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경하기투어> 를 기획한 공원측은 작품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찬찬이 바라보면 쌍동이 형제에게 남은 것은 성한 입뿐입니다. 머리도 없고 눈도 없고 코도 위쪽이 떨어져 나갔고, 어깨부터 가슴으로 신이 내친 벼락처럼 갈라져 내린 선명한 상흔[傷痕].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입을 통해 나오는 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귀가 없으니 말을 해도 말을 들을 수 없는 막막한 처지입니다.. 여기서 피터 드라코의 명언 한 줄을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의사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분명하지만, 말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쉬울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진정성[眞情性]이라고 할까요, 진심이라고 할까요. 얼굴이 포개질 정도로 가깝게 다가가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로 재어야 맞다고 봅니다. 내가 그를 진심으로 대할 때 그도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이심전심 [以心傳心]의 이치, 자주 잊어서 그렇지 우리는 벌써 잘 알고 있지 않나요 ?
< Dialogue 6) > 118.5x99cm / 2007 * < Dialogue (대화) > 291×218cm, 2011 - 이우환
이우환 화백(75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 Dialogue (대화) > 라는 제목의 연작 그림 중에서 고른 두 점, 하나는 가로 세로 1m 안팎의 동판화인데 파란 사각형, 빨간 사각형 하나씩 위 아래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명상의 방'에서 맨발의 여인이 보고 있는 그림은 가로만 3m 가깝게 긴데, 청회색 사각형 하나만 한가운데 걸려 있습니다.
캔버스 가운데 청회색 점 하나 찍은 것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 백남준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생존 작가로 첫 회고전을 연 작가 . 점 하나 찍은 그림들이 10년 동안 국내 경매에서 467억 넘게 낙찰된 작가. 점 하나 찍는 데만 40일 ~50일 걸린다는 그의 그림은, "선(禪)적이고 명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종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공중으로 무한대로 퍼져나가듯, 점 하나에서 시발[始發]된 의미가 캔버스의 하얀 여백에 가득 차 있으니 우리는 그 여백에서 보물찾기하듯 의미를 주워 담는 어린 아이의 순진한 심성을 지니기만 하면 됩니다. < 대화 >의 진정한 주제는 말 주고 받기의 단계를 넘어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진심을 주고 받는 관계, 바로 김춘수의 <꽃>의 세계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신의 노여움을 사서 불구가 된 쌍동이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도 얼굴 기울여 가깝게 다가가면서부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뜨거운 연민이 눈 내린 이 추운 겨울을 따스한 솜이불로 바꾸어 놓았다고 돌려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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