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5.
김장
쳐다만 봐도 든든하다. 김치냉장고용 김치통 8개를 가득 채웠다. 가을 추수를 마친 농부의 마음이랄까. 겨울 땔감으로 장작을 수북이 쌓은 가장과 같은 느낌이라 여겨진다. 뒷배가 든든하니 똥폼을 잡으며 주위에 거들먹거리고 싶다. 마음만 앞섰지, 아무리 둘러봐도 자랑할 사람이 없는 게 아쉽다.
텃밭 가장자리에 선다. 무 72개를 뽑아 무청은 그늘진 곳에 빨래 널 듯 걸고 무는 포대에 담아 자동차 트렁크 안쪽으로 차곡차곡 싣는다. 배추 25포기의 거칠고 푸른 바깥쪽 이파리는 텃밭에 버리고 수돗가 정자로 나른다. 배추 뿌리 쪽에 칼질 한번하고 반으로 쪼갠다. 바닷물 정도의 염도를 가진 소금물에 담갔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대야 절임통에 쌓는다. 뒤집고 헹궈 물빼기까지 하면 배추 준비는 끝이다.
맛있는 양념을 준비한다. 양파, 대파, 무, 황태 대가리, 보리새우, 멸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끓인다. 찹쌀 풀과 육수를 식히는 동안 마늘, 생강, 청각, 생새우를 갈아 붉은 고무 대야에 담는다. 식힌 찹쌀 풀을 함께 넣고 고춧가루와 육수로 양을 조절하며 골고루 섞는다. 새우젓갈과 멸치액젓, 소금 등으로 간을 맞추며 25포기용 양념을 마무리한다.
빨갛게 버무려 담는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피하기보다는 즐겨야 한다고 했다. 4쪽으로 나누었으니 100개 중에서 반은 내가 버무렸다. 허리가 뻐근하다. 양념에 범벅이 된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서둘러서 김치통 8개를 김치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았다. 긴 한숨과 함께 1박 2일짜리 프로젝트를 마친다. 쉬고 싶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혼자서 족히 100포기 이상 김장을 했었다. 맛있는 김장에는 굴도 넣고 갈치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맛이 남달라서 자랑삼아 여기저기에 몇 포기씩 나눠주기도 했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밭으로 나가서 맛 좋고 값싼 배추를 골라 오는 일이 시작이다. 마당에 배추가 수북이 쌓이면 고된 일이 두려워 나는 공부를 핑계 삼아 도망갔다. 무관심한 척 하루 이틀이 지나면 돼지고기 수육과 김장을 맛볼 수 있었다. 김장이 끝나면 어머니는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행복하셨지만, 나는 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고생스러움을 어찌 모를까. 몸이 힘에 부쳐 한계에 다다를 때는 어머니만의 방법이 있었다. 뜨끈한 구들목에 누워 넓은 등짝을 지지셨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원기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Super-woman이었다.
그리움도 병인가 보다. 김장을 마치고 나니 어머니가 그립고 따뜻한 밥술에 김장 김치 쭉 찢어 올려도 어머니가 그리우니 병이 맞는 거 같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재롱떨며 자랑질하느라 그리움을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첫댓글 어머니가 계시면 아직도 얻어 먹을라나???
글치.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