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불인사 주지 송산 스님
“오체투지 한 수행자의 몸을 밟고 피안으로 건너시라!”
만행 길 끝 닿은 한림면, 공장지대 복판에 포교당
1년 만에 신도 100가구, 천일기도 300가구 ‘급증’
‘땅 한 평 사기’ 큰 호응, 현대감각 설계 멋진 법당
청정 수행자‧진실한 불자, 상호 소통에서 수행 증진
불자 인구 감소하는 시대, 스님이 더 하심해야 극복
만면에 머금은 맑은 미소, 평온 입증‧상대 포용 의사
100cm 중 1cm 내어주자, 1cm서 쉬며 희망 품을 터
우리는 있는 그대로 ‘온전’ 시절 인연 기다리며 ‘최선’
불인사 주지 송산 스님은
“나의 100cm 중 1cm만 상대에 내어주자”며
“누군가는 그 1cm 속에서 편히 쉬어가며 푸른 꿈을 꾸고
당찬 희망을 품을 것”이라고 전했다.
불인사 법당의 삼존불은 서칠교 작가가 빚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별 하나 만듭니다//
장미꽃 심어 놓고/ 나팔꽃 트럼펫이//
화단에/ 목화씨 몇 알/ 정성들여 심어봅니다//…
물레를/ 잣던 둘레길/ 무명옷이 그리워//
실 뽑아 한 올 한 올/ 마음을 열어가며//
사랑의 방방곡곡/ 원앙침 수놓으면//
찬란히/ 목화별 뜨는/ 밟아가는 산책 길
’(홍정희 시 ‘목화별 산책’)
대개의 사람이 화려한 장미꽃이나 개성 강한 나팔꽃을 좋아하지만,
시인은 어머니 품처럼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목화를 선호한다.
사랑하는 꽃을 별로 승화시킨 시인은
오늘도 내일도 ‘찬란히 목화별 뜨는 산책길’을 밟아가려 한다.
온정을 주고받는 평온한 세상을 꿈꾸고 있음이다.
현대 건축 감각 돋보이는 불인사.
가을 새벽녘. 김해 주촌면 주지봉 아래 자리한
불인사(佛印寺)의 주지 송산(松山) 스님은 법당 바닥과 벽에 두 손을 정성스레 갖다 댄다.
홍정희 시인의 ‘목화별’보다 더 무구한 ‘하얀 포근함’이 법당 가득 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법당이 목화밭으로 화해지기를 바라나이다.
이곳에 든 사람 모두 정온(靜穩) 해지고 저마다 환한 미소 짓기를 바라옵니다.’
주촌면으로 이전하기 전 김해 한림면에서 문을 연
불인사에서도 벽과 바닥에 온 마음을 담았더랬다.
운수행각 만행길에 올랐던 송산 스님은 김해에서도 외진 한림면에 들어섰다.(2012)
1층은 슈퍼, 2층은 자장면 가게인 상가 3층의 66㎡(20평)를 월세로 얻어 포교당(불인사)을 열었다.
처소는 위층의 작은 창고를 손수 깨끗이 손보아 활용했다.
김해 불교계에서는 사찰건립 불사는커녕 신도 모으기도 벅찰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찰 참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외진데다 공장지대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송산 스님은 포교당의 바닥과 벽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기도했다.
‘이 콘크리트가 모두 나무로 화해지기를 바라나이다.
하여 이곳에 든 사람 모두 숲속의 산사처럼 편안히 여기며
평온심을 찾아 밝은 미소를 짓기를 바라옵니다.’
불법을 알려 달라는 불자들의 요청이 있었다.
5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내 10명으로 늘더니 1년 만에 신도는 100가구로 확장됐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000일 기도에 들어가니 300가구로 급증했다.
2017년 1000일 기도가 회향 될 즈음 ‘땅 한 평 사기’에 동참한 신도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불인사가 앉은 김해 주촌면에 부지 1983㎡(600평)를 매입했고,
사찰건립 소식을 들은 불자들의 성원이 더해져 661㎡(200평)를 더 확보했다.
그리고 독실한 불자로부터 불인사 뒤편 산자락의 임야 2975㎡(900여평)를 보시받았다.
한림면에서의 첫 1000일 기도 회향 기념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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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장구대다라니 1000일 기도에 이은 금강경 독송 1000일 기도가 회향 될 즈음
현재 주촌면의 불인사가 세워졌고 2021년 완전 이전했다.
현대식 건축 설계로 새롭게 건립된 불인사는 총 2동으로 법당과 명상센터로 나뉜다.
법당은 1층 카페와 갤러리, 종무소가 위치하며 2층은 지대방 3층은 법당이다.
또 한 동의 명상센터는 불사 중이다. 따라서 명상 프로그램은 법당에서 진행하고 있다.
송산 스님은 미산 스님의 ‘하트 스마일 명상’ 마스터다. 4년 동안 열성을 다해 정진한 결과다.
송산 스님은 어린이‧청소년 포교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이전 불사를 마친 후 세 번째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이번엔 지장기도인데 벌써 300일을 지났다.
강한 정진력과 깊은 통찰력을 겸비한 송산 스님과 함께
기도하고 명상하는 도량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김해는 물론 부산 불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불인사 파라미타’를 운영할 정도로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아울러 가야문화진흥원의 2대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송산 스님은
가야불교의 토대를 이루는 가야문화의 원형을 찾으며 관련 콘텐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해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불인사에 대한 사부대중의 기대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한림면에서 작은 포교당을 연지 1년 만에 신도가
100가구로 늘고 이내 300가구로 폭증한 연유가 궁금했다.
그 힘으로 주촌면에 현대 건축 감각 돋보이는 사찰도 세웠지 않은가.
종교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도심 포교당에서도 녹록지 않은 불사를 해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신도 운집이나 건축 불사는 ‘해낸 게’ 아니라 ‘자연스레 된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나’에 집착하지 않는 분들의 보시가 쌓이고 쌓여 건축 불사가 회향 됐습니다.
시절 인연이 닿았던 겁니다. 인과 연이 닿는 과정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한 듯싶습니다.”
송산 스님은 “사적인 일로 포교당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도반이 오랜만에 보자고 해도 ‘신도들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며 사양했습니다.
새벽예불과 사시 기도는 반드시 지켰고 1년 365일 포교당 문을 잠근 적이 없습니다.
주지라 해도 불자님들의 신행 공간을 함부로 닫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신도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 오랫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까지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목탁 소리 이어지는 한 절로 향하는 불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는
선지식의 일언은 지금도 유효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불자들의 고민을 상담하며 해결의 실마리도 전했을 것이고,
그 소문이 퍼졌기에 외진 곳의 작은 포교당에 신도들이 운집했을 터다.
진로, 취업, 가족, 경제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온 불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마중했던 것일까.
송산 스님은 “상담하는 스님과 상담받는 불자는 서로 솔직 담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고,
어떤 자세로 듣느냐에 따라 그 말의 가치 또한 달라집니다.
상담하는 스님은 청정해야 하며 상담받는 불자는 진실해야 합니다.
서로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지혜가 발현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립니다.
이것은 상담뿐만 아니라 기도, 명상, 강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청정성과 진실함이 조화를 이룬 공간에서의 정진은 배가됩니다.
법 하나라도 더 전하려는 간절함과 가르침을 더 깊게 간직하려는 열정이 맞닿기 때문입니다.”
송산 스님은 자신의 정진 고삐를 놓지 않는다.
“나름 경전의 내용과 교리는 잘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가면을 하나 쓰고 말로만 법을 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의 행간을 읽어내지 못한 채 피상적 이야기만 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했는데,
결국 제 수행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화두를 들었던 송산 스님이 명상 수행에도 진력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의중과 가르침의 핵심을 좀 더 확실히 짚어 내려 합니다.
경전 한 구절, 선어록 한 편도 마음을 다해 새기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 올곧이 전하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고뇌다.
불인사의 대중공양은 뷔페식인데 예전에는 송산 스님의 공양은 별도로 준비됐었다.
어느 날 우연히 대중공양에 없는 반찬 하나가 자신의 공양 상에 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 말 없이 대중공양 하는 줄에 섰다.
“존중받아야 할 대상은 불자님을 비롯한 생명 있는 그 모든 것입니다.
종교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서 우리 수행자는 더 하심을 해야 합니다.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 한 구절만 제대로 알고 체득하면
무상‧무아‧적정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에도
가슴 설레지 않는 불자님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가 더더욱 철저한 수행자다운 삶을 살아갈 때, 대중은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부처님 발에 진흙 묻지 않도록 선혜는 진흙탕 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깔았습니다.
수행자가 엎드려 간청해야 합니다.
‘중생제도를 발원하며 오체투지 한 수행자의 몸을 밟고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시라!’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다면 수행자는 무슨 일이든 감내해야 합니다.”
불자들과 함께 1000일 기도를 하고, 선어록 ‘진심직설(眞心直說)’을 강의하며,
나아가 어려운 절 살림 속에서도 명상관을 열려 하는 것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함이다.
“그림 한 폭이 있습니다. 맑은 물 흐르는 시냇가에 하얀 백로가 거닐고,
미루나무 가지에 앉은 종달새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그러나 시냇가, 백로, 미루나무, 종달새 모두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하얀 종이가 마음입니다. 이것은 수행을 통해 체득해야 합니다.
명징한 체험 후에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자신의 안과 밖을 연기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인데
어느 수행법을 택하던 체득하기까지의 고난은 필연일 터다.
“저도 관세음 고성염불 100일 정진 때는
들고 있던 목탁이 무겁게 느껴져 넥타이로 목탁을 매어 목에 걸었습니다.
‘법화경’ 5자 쓰고 1배를 올려 2년 만에 회향했습니다. 힘겨웠지만 참 뿌듯했습니다.
그 환희심이 오늘날까지도 정진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신심으로 시작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빨리 이뤄보자’는 조급증은 버려야 합니다.
이 또한 시절 인연이 맞아야 하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불인사는 ‘미소 도량’이다. 불자들에게도 늘 웃으며 살자고 한다.
“미소 지으면 짜증스러운 말도 청량하게 들려오고,
미소를 잃으면 상냥한 말도 짜증스럽게 들립니다.
상대가 나에게 보이는 미소보다, 내가 상대에게 보이는 미소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미소를 짓는다는 건 내가 편안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며,
상대를 포용하겠다는 무언의 의사표시입니다.
나의 100cm 중 1cm만 상대에 내어주자고 합니다.
누군가는 그 1cm 속에서 편히 쉬어가며 푸른 꿈을 꾸고 당찬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를 청하니 송산 스님 자신이 좋아한다는 명상 일구를 전했다.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
‘목화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미소별’이 가득한 불인사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2022년 9월 7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