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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일기10] 뭍에 가는 길....
4343. 3. 13(흙)
주의보가 해제됐다. 8시 40분께, 노고만례 선생님허고 선착장에 갔다. 차를 대놓고 대합실로 가자, 다른 분들은 이미 다 와있었다. 박, 나, 두 여선생님은 걸어왔단다. ‘같이 가잔 말을 헐 것을....’ 두 사람 다 두터운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고 있다.
미리 끊어둔 표를 받고 쾌속선으로 향헌다. 발걸음이 개봅다. 배가 물찬 제비 맹키로 떠있다. 쾌속선 아래 배통아지는 텅 비어있고 양 옆으로 썰매 날 같이 생긴 날개를 달고 있다. 어쩌면 힘차게 날개짓 하는 가오리 같이도 보인다.
배에 오른다. 시간이 되자, 배가 푸른 도화지 위에 흰 동그라미를 그린다. 안내방송을 헌다. 파고가 높단다. 윤선배님이 멀미를 헌다고 해서 미리 비위를 다스려드렸다. 흑산도하고 오리섬 사이를 지나는디 대체나 배가 우알로 솟았다가 푹 꺼지기를 되풀이헌다. 나는 얼른 맨 앞자리로 갔다. 바이킹 타는 것보다야 못허제만 솔찬허다. 근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초등학교 5~6학년 쯤 돼 보이는 애가 맨 앞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서서 굼실거리는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땡>
[흑산 일기11] 다시 흑산도로....
4343.3.14(해)
월요일에 들어갈라고 했다. 핑계를 대자믄, 담임도 아니고, 수업도 3교시부터 있기 때문이다. 근디 14일 4시 발로 주의보가 내릴 지도 모른단다. 그래서 허는 수 없이 3시 30분 배로 갈라고 했다. 근디, 그 배가 안 뜰지도 모른단다. 어쩔 수 없다. 1시 배를 타야 헌다.
12시 40분께 목포 연안여객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예매를 했단디 사람들이 안 보인다. 개찰구에서 이선생님한테 전화를 건다. 안 받는다. 교무부 장관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차를 인자 대고 있단다. 윤선배님이 표 끊는 데서 손짓을 헌다. 가서 표를 끊고 배에 오른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서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이미 자리잡고 앙거들 있다. 윤선배님이 멀미를 헌다고 해서 손바닥에 칠해드렸다. 배가 물을 가르고 미끌어진다. 고하도 근처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골리앗 맹키로 치솟아 있다. 암매도 다리를 놓을 모양이다.
1시 30분이 못 되어 왼쪽으로 섬 하나가 나타난디, 갯가 팻말에 ‘안좌도’라 씌여있다. ‘안좌중학교, 안좌종고가 있는 섬이구나.’했다. 갑자기 흑산도가 별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50여분 만에 비금도 선착장에 도착헌다. 몇 사람을 푸고는 이내 뱃머리를 돌린다. 파도가 높다고 멀미 대비허라고 안내방송을 헌다. 지난번에 탔던 배들은 앞 유리창이 투명했는디 이 배는 희건 뺑끼칠을 해놔부렀다. 짐을 챙겨 들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는 앞 쪽이 막혀있다. 앞은 선장실인갑다. 허는 수 없이 선장실 칸막이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앙겄다. 테레비가 바로 앞이다. 파스타 재방송을 헌다. 오늘 받은 소리 복습헐까 허다가 내가 좋아허는 공효진 씨 볼라고 두어 칸 뒤로 물러 앙겄다.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떴다. 벌써 흑산도다. 오리섬허고 흑산도 사이, 검푸른 바닷물은 끊임없이 굼실거리고 파도는 쿨렁쿨렁 희건 거품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땡>
[흑산일기12]쇠똥개, 똥꼬바우....
4343.3.15(달)
아침시간 교무실. 누가 문을 빼꼼히 열고 이 쪽을 쳐다본다. 그러다 문을 닫는다. 그러더니 이내 또 그만큼만 열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눈높이로 봐서 3학년 광명이 같다. 들어오라고 했더니 멋쩍은 듯한 표정을 허고 학생부장 앞에 선다. 멀크락 길이 땜시 확인 받을라고 온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눈썹에 닿으믄 안 된다는 둥, 귀를 덮으믄 안 된다는 등의 야그를 헌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위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교칙대로 헌단다. ‘내 보기에는 암시랑토 안 헌디..’, ‘전제고 아그덜에 비허믄 모범 중의 상모범인디..’허는 생각이 들었다. ‘벌점, 징계’허는 야그에 아침부터 짜증이 뽀르작뽀르작 일어날라고 헌다.
광명이가 교무실에서 나가자, 내가 그랬다. “저 정도믄 단정허지 않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나무랄 데가 없는디요, 이?” 그러자, 작년에 학생들이 스스로 정해놓은 규정이란다. 그래서 그것은 작년 규정이고 올해 규정은 새로 만들어야 허지 않느냐고 했더니 학칙에 대해서 다시 논의해 보잔다.
4교시 1학년 교실. 은기가 안 왔다. 아프단다. 보건소 가서 치료 받고 집에 있단다. 학교 끝나고 애란이랑 같이 가보기로 했다. 4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옹게 책상 우게 소포가 와있다. 미선이가 보냈다. 손전화 알리미, 목도리, 손전화 고리들이 들어있다. 날개 단 천사 전화기에 달고, 밥 묵으로 감시로 차에 들렀다. 조수자리 앞 유리창에 알리미 매달아두었다.
5시다. 애란이가 교무실로 온다. 재권이는 2학년 아그덜허고 항꾸네 걸어가부렀단다. 애란이랑 소연이랑 항꾸네 끌미(예리)로 간다. 소연이가 가다가 해태 마트에서 내려도라고 헌다. 뭣을 사묵는단다. 좀 참았다가 때 되믄 저녁밥 묵어라고 헝게 그런다고 헌다.
“소연 씨, 배고프믄 물 마셔요.” “네에~.”
소연이 집 앞에 내려주고 우체국 근처에 차를 댄다. 애란이가 앞장을 선다. 태욱이 할머니집 가는 길로 접어든다. 애란이 걸음이 참 빠르다. “애란이 너, 걸음 무지 빠르다, 이? 내 걸음도 솔찬히 빠르다고 헌디....”허자, 히죽 웃는다.
“참, 막내가 다섯 살이냐, 여섯 살이냐?” “다섯 살이에요.”
“쌍바지?” “예?”
“쌍바란 말 몰라? 쌍둥이를 진도에서는 쌍바라고 헌단다.”
갈색 털복숭이 개가 우리를 따라오더니 앞장선다. ‘음마? 쟈가 어치고 우리 길을 알고 그란댜?’ 오르막 길로 접어들더니 길 한 쪽에 비켜선다. 애란이가 조금 더 가서 왼쪽 집에 들어선다. 오른쪽 문간방 문을 열더니 은기를 부른다. 애란이가 은기한테 야영 안내장을 건네고 뭔가를 설명한다. 동의서를 내란 얘기일 터이다. 애란이가 말을 마치고 나오자 은기가 보인다. 인사를 헌다. 인자 봉게 몸이 겁나게 야실야실(가늘고 약함)허다.
좁은 방 한가운데를 침대가 점령하고 있고 아버지인 듯헌 분이 비스듬히 누워있음시로 눈인사를 헌다. 왼 쪽에 있는 분은 어머니 같은디 모습을 안 내비친다. 은기한테, “몸은 어짜냐, 칠해 볼래, 어짤래?” 헝게 안 해도 된단다. 하릴없이 물러나올 밖에....
“애란아, 나 저 우게 가서 좀 둘러볼란다. 내일 보자. 안녕~!”
동네 끝집을 지나자 밭둑 사이로 좁은 길이 나있다. 비탈 여그저그 밭들이 고만고만허게 자리잡고 있다. 여그는 독뎅이가 별로 없는지 양철때기 같은 것으로 바람막이를 해놓은 데가 군데군데 있다. 몰랑에 올라선다. 바람이 분다. 한 젊은 아짐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녘에서 온다. 가볍게 인사를 허고 그 아짐이 온 길을 더듬어 간다. 근디 아짐이 감시로 뭐라고 중얼중얼 해싼다.
갯가를 따라 비스듬히 오솔길이 나있다. 후박나무며 동백나무들이 늘씬늘씬 늘어서 있다. 동백나무에는 붉은 꽃망울들이 슬픈 듯 맺혀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축사가 나온다. 파란 함석으로 된 외양간이 두 채다. 소가 이상 여러 마리 있다. 그러믄 개가 있을 터? ‘허걱, 개가 있으믄 나는 깨갱인디.... ;;' “휴우~” 다행히 개는 없었다.
숲 너머 갯가에서 무서운 소리들이 몰려온다. “쿠우르르릉.... 쏴아..쏴아...” 어쩌믄 소가 여물 뜯어묵는 소리 같이도 디킨다(들린다). 한 사내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타난다. 인사를 허고는 이곳 개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자기도 모른단다. 나이 드신 분들한테 물어봐야 헌단다. 바다를 봉게 바우가 물에 떠있는디 꼭 개가 뭍으로 헤엄쳐 가는 모양이다. 이름하여, 개바우!
멀리 영산도가 안개에 쌓여 희미하게 보인다. 이름 모를 새가, “휘이~, 휘이~, 삐이~, 삐이~”소리를 낸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자 또 축사가 보인다. 스레트 지붕에 함석 담이다. 발자국 기척을 들었는지 황소가 고개를 한번 내밀더니 그 뒤로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신청도 안 헌다. 허는 수없이 허름헌 축사허고 그 소 몸땡이만 손전화로 찍고 발길을 옮겼다.
시야가 툭 트인다. 개가 둥그렇다. 근디 갯가 언덕에 소똥들이 여그저그 널려있다. 온통 쇠똥 전시장이다. 내가 이름 붙였다. ‘쇠똥개!’, ‘쇠궁댕이개(갯가 모양이 소 궁댕이 맹키로 펑퍼짐허니 생김)!’
삼거리다.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곧장 가는 길이 있다. 시간이 아직은 넉넉헌 듯해서 갯가로 난 길(둘레길?)을 따라 더 가보기로 했다. 몇 걸음 안 떼자 이상헌 팻말이 눈에 띈다. 분묘이장 공고다. 이곳에 경비행장을 짓고 부대시설을 헌단다. 좀 더 가자 몽돌로 된 바닷가가 나온다. 한 300미터 쯤 되는 몽돌해안이 왼통 쓰레기 천국이다. 몽돌로 달려드는 파도소리들이 저 쓰레기 좀 치워주라고 소리치는 것 맹이다. 눈물이 날라헌다. 신안군수는 뭣허고 있는가 모르겄다. 선거철이라 없는가? 참말로, 허도 너무 히다!
쓰레기 몽돌 바닷가를 뒤로 허고 산길로 접어든다. 길이 끊겼다. 진도 강계에서 헤매던 일이 생각난다. 길을 찾는다. 산길 구색을 갖춘 데가 나온다. 그 젙에 메똥이 있다. 다행이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어느 조상님인지는 모를 묘 젙에 발을 딛는다. 안심이다. 근디, 아까 봤던 그 작은 팻말이 거그에도 꽂혀있다. 그 일대에 있는 무덤들에는 모다들 그 놈이 꽂혀있다. ‘이 많은 조상님들 다 어디로 가라고 이런댜?’
제법 넓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있다. 그리 곧장 올라갔다. 몰랑에 거의 이르자, 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반긴다. 꼭 우리 고향 뒷산에 있는 그 나무 맹이다. 크지 않은 키에 몸땡이가 조까 오른쪽으로 굽어있다. 어릴 적, 재 너머 이웃 마을 뒷산에 가서 꼴망태에 솔낭구 검불 지고 올라치믄 지친 몸땡이를 그 느티나무가 늘 반겨주었다.
5시 59분. 몰랑을 채자 산등성이로 길게 길이 나있다. 찻길이다. 찻길 너머 분묘들이 있는디 아까 아래에서 보았던 그 팻말들이 여지없이 거기에도 꽂혀있다.
「2009년 11월.
신안군청 경제투자 사업단. 240-****~*
분묘조사자 (주) 건국공영 代 1577-****」
왼쪽으로 갈까허다가 좀더 보고 갈 셈으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이 난리라도 난 듯 “쒜에엑~, 쒜에에엑~”발광을 해싼다. 어떤 솔낭구에는 ‘수간주사’란 글베가 붙어있고, 어떤 솔낭구에는, ‘솔껍질깍지벌레 방제’란 글귀가 만장 맹키로 붙어있다.
그 봉우리 맨 꼭대기에 이르렀다. 큼지막헌 무덤이 몇 개가 한꺼번에 모여있는디, 여그는 등치가 이상 크다. 흑산도 봉분의 특징은 밋밋허들 않고 높다. 근디 여그도 편히 쉴 곳은 못 됭갑다. 그 팻말이 저승사자맹키로 백혀있다.
내려오는 길.... 동백나무 몇 그루가 질 가상에 붉디붉은 꽃잎들을 흩뿌려 놓고 있었다. 아니, 어쩌믄 머지 않아 닥쳐올 불행에 피를 토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흥타령을 나직이 읊조린다. 그 소리 바람에 날린다.
“푸른 풀이~~ 우거~진 골짝 내~ 사랑이~ 묻혀있네
신이여~ 내 사~랑아~ 자느냐~ 누웠~느냐~
불러~봐도 대답이 없네 어여쁜~ 그 모~습은 어~디 가고
땅 속~~에 뼈만~ 묻혀 아무런 줄 모르네 그려~
잔을 들어~~~ 술~~ 부~어~도~ 잔을 ~ 잡지~를~ 아~~니~ 허네
아 하이~고~~ 대~고 허허~~ 어~어으~~~ 성화~~가~~ 났~네 헤~~~~ ”
6시 12분. 소 한 마리가 풀밭에 한가로이 서있다. 근디 이 놈은 눈길을 안 돌리고 계속 나를 쳐다본다. 가차이 가서 사진 한 방 박았다. “고맙다.”허고는 한길로 나서서 뒤를 돌아보는디 저만치서 송아지 한 마리가 궁댕이를 보이고 서있다. 사진 찍은 놈이 어미였는갑다. 암매도 지 새끼 해코지 허께미 경계허니라고 나한테서 눈을 안 떼었는지도 모르겄다. 어미소가 낮게 뭐라고 소리를 내싼다. “으르르음~~ 어으르으으음~~~”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바다가 부채 모양으로 확 트였다. 바람이 세차다. 희뿌연 안개바람 저 멀리 쌍둥이 바우섬이 붙박이로 꽂혀있다. 허거걱~!! 파도가 핥아쌓는 해안은 두껍디 두꺼운 쓰레기옷을 입고 있다. 여그에 비허믄 쇠똥개, 쇠궁댕이개는 새발의 피다. 조금 더 지나자 발 아래 소나무 건너 편으로 우뚝 솟은 바우가 나타난다. 바닷물로 금방 뛰어드는 바다사자 모양을 허고 있다. 근디 한참을 더 가서 그 바우를 돌아봉게 영락없는 똥꼬 바우다. 깨를 할딱 벗은 사내가, 그것도 방댕이가 허벌나게 큰 사내가 자맥질험시로 똥깨를 하늘로 처든 형상이다.
저 멀리 진리 앞 섬이 보인다. 끌미가 가까워옹갑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왼쪽으로 감아 돈다. 오른쪽에는 신호대 숲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신호대 마른 잎새들이, “사라락, 사르르..”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쳐들고를 되풀이 헌다.
6시 30분. 끌미(예리항)가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에 선다. 그 곳에는 제법 큰 표지판이 흑산 사람들을 위협허듯 엉버티고 있다. 메똥들을 협박허던 팻말에는 없던 공고기간도 나와있다.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월 31일까지란다. 세상에 경비행장을 얼마나 크게 만들라간디, 끌미항 언덕배기부터 몇 십 만 평은 족히 넘을 섬을 다 파해친다고 허니....
‘제 정신이믄 그라고 못허제, 암만!’
비탈을 내려선다. 끌미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해있는 어선 세 척에서 노란 전등불빛이 흘러나온다. 그 배 너머, 멀고 먼 진리마을에도 불빛들이 하나, 둘 눈을 뜨고 있었다.<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