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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도위와 임소병이 사귀는 사이가 아닙니다.
(남궁도위→임소병 일방적인 연정)
※ 다정함과 순애를 베이스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강압적이라고 느낄 만한 연출이 존재합니다.
※ 기루 / 기생에 관련된 요소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모브-소병 간의 스킨십 (접문 이상을 기준으로 둡니다.) 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기생을 사거나 하룻밤을 청하려 하는 방식의 연출이 존재합니다.
이에 관련된 연출 및 서사가 불편하신 분들은 열람에 재고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방종
放縱
: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
“이제 좀 후회되십니까?”
의기양양한 음성이 속내를 긁는 듯했다. 남궁도위는 곧은 눈썹을 찡그리며 음, 하고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 것이 퍽 시시하다고 임소병은 생각했다.
두 사람이 어쩌다가 기루에 와 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임소병은 그저 부채를 펼쳐 얼굴 절반을 가린 채 히죽 웃을 것이며, 남궁도위는 귀 끝이 벌개진 채로 더듬거리며 상황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저물녘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하산하려던 이를, 때마침 홀로 수련하던 남궁도위가 붙들었다. 밤중 산길 무서운 줄 모르고―아무래도 산적이니까―내려가겠다고 우기는 낯짝이 평소보다 파리하기에 재차 막아섰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하는 말이 “그쪽은 가 봤자 후회만 하니 적당히 좀 빠지십쇼.” 였다.
그 대꾸에 남궁도위는 별안간 심사가 꼬여서 기어코 함께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란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후회할 일’이라니? 정말 후회할 만한 일은 따로 있는데, 새삼스럽게!
그 이후로 임소병은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며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남궁도위는 물 샐 틈 하나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같이 가자.” 하는 말을 댓 번쯤 반복하고 난 뒤에야, 결국 임소병은 어디 당해 보라는 표정으로 동행을 허락했다.
차디찬 낯빛의 녹림왕이 남궁 소가주를 데리고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기루였다. 남궁도위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을 잠시 짓고 말았으나, 필시 그런 저를 비웃을 임소병을 생각하니 오기가 끓어 돌아가지도 못했다.
“대체 이런 곳에는 왜 오는 겁니까?”
“응?”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지는 음식 앞에 앉은 임소병이 뱀처럼 길쭉한 눈을 접어 웃었다. 촥 펼쳐 살랑살랑 흔드는 부채질이 부지런하기도 했다.
“뭘 새삼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그러시오? 내가 도사도 아니고, 중도 아니고. 흔한 사파 새끼가 호주머니에 넘쳐나는 돈으로 술과 사람 좀 사는 데 무슨 문제라도?”
되물어오는 어조가 너무도 매끄러워서 남궁도위는 드물게도 말문이 막힌다. 그는 대답 대신 죽엽청을 한잔 가득 따라 목구멍에 부었다. 달큼하면서도 톡 쏘는, 그리고 홧홧하게 불을 붙이는 듯한 독한 감각이 오감을 지배했다. 마치 제 앞에서 성격을 긁어대는 누군가를 꼭 빼닮은 꼴이었다.
“실망하셨습니까?”
임소병이 사과를 사각사각 씹어대며 물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초리에 남궁도위는 술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
“쯧쯧. 세가 도련님이 이런 곳도 안 오고. 실전 한번 안 겪어보는 방중술에 무슨 의미가 있답니까? 병법서만 달달 외면 강호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닐진대.”
남궁도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세가의 이들이 기루에 드나드는 것은 그리 잦은 일까지는 아니어도, 따지고 보면 또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일. 딱 그 정도였다. 특히 가주쯤 되는 이들은 여인을 한 번쯤 안아보는 것이 유치한 자랑거리처럼 여겨지곤 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남궁세가는 예외였다. 남궁황은 애처가로 그 이름이 높았고, 남궁도위는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검에만 관심이 있었다. 몇 차례 혼담이 오가던 집안의 사저와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비무 대회 이후로 그런저런 이야기마저도 뚝 끊겼으니 알 만했다.
배운 것만 많은 숙맥. 임소병은 남궁도위를 딱 그렇게 평했다.
“시시하기는.”
임소병은 사내가 발끈하기도 전에 옆에 매달린 유리 종을 울렸다. 댕그랑, 맑은소리와 함께 휘장 너머에서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눈두덩이 붉고 반짝거려, 꽃잎을 짓이겨 물들인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녹림왕이 여인에게 명했다.
“값은 상관없고, 사내든 여인이든 적당히. 하룻밤을 꼬박 보낼 것이니 어쭙잖은 놈들은…….”
말꼬리를 슬쩍 올리자 여인이 까르르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장 잘나가는 아이들로 부르지요. 곁에 두시기에 좋은 녀석들로 고르겠습니다.”
“그래. 좀…….”
임소병은 딱딱하게 굳은 남궁도위의 표정을 힐끗 살피더니 이죽거렸다.
“살랑살랑하고 애교 많은 놈이 좋겠어. 뚝딱거리는 건 영 지겨워서.”
그의 도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여인이 정말로 예쁘게 차려입은 기생들을 불러모았을 때 남궁도위에게 보란 듯 “하나 고르시지 그럽니까. 값은 내가 내지요.” 같은 제안을 하고 만 것이다.
“역시 세가 도련님이니 여인이 나을까? 저 아이는 어떱니까? 눈매가 함초롬하니…….”
“…….”
“에이, 그렇게 고집스레 따라오고서는 대답도 없고.”
남궁도위가 한쪽 눈썹을 까딱하며 물었다.
“익숙하신 모양이지요?”
“비루먹을 절맥 인생, 한기 쫓는 데 이만한 게 없거든. 그러니 나는 사내로 하리다. 그쪽.”
“예, 도련님.”
“이리 와 술이나 한잔 따라 보거라.”
기생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 보일 정도로 키가 큰 사내 하나가 냉큼 다가와 임소병의 곁에 앉았다. 정확히는 임소병과 남궁도위의 사이에 앉아, 어깨를 임소병의 쪽으로 돌린 꼴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기생들은 재빨리 가져온 비파를 뜯거나 과일을 조금 더 가져오겠다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오늘은 거나하게 취할 작정인지 술잔을 기울이는 속도가 빨랐다. 임소병은 앉은자리에서 술 한 병을 냉큼 비웠다. 삐딱하게 앉아 한쪽 팔은 기생의 어깨에 턱하니 걸쳐두더니, 이내 빈 술잔을 느릿느릿 흔들며 남궁도위의 성미를 긁어대는 것이다.
“내가 제일 고운 놈을 독차지해 혹 아쉬우신 건 아니지요? 이놈은 양기가 없으면 요절하는 팔자를 타고났으니 소가주께서 이해하시지요. 그래도 고운 이들만 모여 장사하는 곳일진대, 입맛에 맞는 놈 하나 없겠습니까? 어때요. 지금이라도 좀 더 불러오라…….”
“됐습니다.”
남궁도위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였다. 누가 거들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술을 들이킨 듯 귀 끝이 조금 붉었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감정을 억지로 가두는 듯 엄격했다.
“그런 취미 없습니다.”
“그렇게 잘라 말하면 내가 뭐가 됩니까? 사람 서운하게.”
임소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침묵 속에서 조용히 묻는 듯했다. 당신이 선택한 일이라고. 그리고 내가 왜 끝내 수락했는지 알지 않느냐고.
그래,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약이 바짝 오르는 것이다. 이 창백하고 영리한 남자가 얄미워 미칠 것 같았다. 뱃속에 고인 취기가 제 이성을 불쾌하게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이제 좀 후회되십니까?”
그래서 그 질문에 남궁도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제 진심을 답했다.
“저는 달리 후회할 게 있어서, 이런 것으로는.”
“어라, 그러기에는 상당히 약 오르신 듯하온데.”
“그건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렇소? 그럼.”
의기양양해진 임소병이 옆에 앉은 사내를 끌었다. 기생은 손짓 하나에도 곱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치 그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남궁도위는 텁텁해진 입맛을 다시며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얇은 쇠막대로 속을 바득바득 긁는 기분이었다.
쾅!
결국 사내의 다부진 손이 탁자를 후려쳤다. 한평생 팔뚝보다 길고 무거운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이였으니, 탁자가 반으로 쪼개지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노곤하게 풀려 있던 방 안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기생은 제 어깨너머를 곁눈질하더니 예의 바르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런 일에 익숙한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처세술이었다.
“안되셨습니다, 녹림왕.”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남궁도위가 씹어 뱉듯 말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였겠지요.”
“…….”
“하나, 사내를 사는 것. 그러나 방금 놈이 나가면서 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
“둘. 적당한 핑계를 대어 날 당신에게서 떨어뜨리려는 것.”
그의 한쪽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이런들 저를 떼어낼 수는 없을 텐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쉬우시겠습니다?”
“글쎄.”
임소병이 물러나지 않고 대답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소가주께서 지금 나가시면, 방금 그놈에게 다시 들어오라 말하면 되니 하나쯤은 이룰 수 있겠소만.”
“……하.”
“혹여 나와 무슨 관계라도 됩니까? 내 그런 기억은 없는데.”
남궁도위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이야 애초부터 알았다. 임소병은 눈치가 빨랐다. 저를 향한 호의나 적개심, 호기심이나 거부감, 연정이나 증오 따위는 손금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풋내나는 정파 도련님은 평생 누굴 마음에 들여본 적이라고는 없는 건지, 누굴 좋아하는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였으니 달리 노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남궁도위가 임소병을 연모한다. 마음을 건네는 이도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고, 그 마음을 받는 이도 썩 모른 척하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정파와 사파는 하늘과 산만큼의 거리감이 있다. 산꼭대기가 아무리 높이 치솟는다 한들 창공에 닿을 리 없듯이, 물과 기름이자 뭍과 바다 같은 그들이 섞이지 못할 운명인 것은 자명했다. 천우맹이라는 기적적인 보금자리 아래 어쩌다 함께했을 뿐이지, 이 얄팍한 공통점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 어디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마주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쯤 물러나는 게 둘 모두에게도 가장 무난한 해결책이라 믿었는데, 별안간 남궁도위가 실컷 뻗대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왜요. 그놈의 절맥을 치료해야 하니까? 양기가 필요해서?”
아, 그래서 그렇게 얼굴이 파리하셨군. 그렇게 비아냥대는 얼굴이 임소병 자신을 닮아 있어서, 어느새 사내에게 어깨가 붙들려 탁자에 몰아 붙여진 임소병은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든 상관없으니 창기를 골랐겠지. 그럼 내가 채워 드리리다. 어떻습니까?”
“……이봐요, 소가주. 침착하시고.”
“침착? 침착은 무슨, 빌어먹을.”
남궁도위가 이를 갈며 대꾸했다.
“난 그쪽을 마음에 둔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침착해져 본 적이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당신을 좋아하지 말걸, 이렇게 밉살스러운 이에게 연정 따위를 품지 말걸. 그걸 후회하느라 바빠서 다른 걸 돌이켜 곱씹을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당신은 한사코 내 맘대로 되어주는 법도 없고, 내게 친절하지도 않고, 도리어 내 마음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산 오르던 발로 밟기 일쑤인데 나는 도대체 왜 당신 같은 사람이 예뻐 죽겠다고 이런 곳까지 따라와서는, 제기랄!”
남궁도위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녹림왕. 당신은 날 초라하게 만들고 싶은 거지.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그쪽이 내 연심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래, 멋대로 해보자고요. 그쪽은 양기를 채워줄 수 있으면 아무나 좋을 것이고, 나는 내 앞에서 그쪽이 다른 놈과 뒹구는 꼴은 못 보겠고.”
거칠게 웃은 사내가 임소병의 멱살을 쥐었다. 아래에 납작하게 깔린 이가 바둥거리며 팔을 휘저었다. 음식이나 안주 따위가 가득 담겨 있던 그릇과 술병, 술잔 따위가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휘장 너머로 누군가 어른거렸던 것도 같았으나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남궁도위는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걸치고 있던 비단옷 몇 자락은 손짓에 맥없이 찢겨 나갔다. 넝마 같은 꼴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를 황급히 만류하려 했지만, 남궁도위의 눈은 이미 초점이 나간 뒤였다. 사태를 파악한 임소병은 재빨리 옷을 벗어주는 척하다가도, 남궁도위가 고개를 까딱이며 틈을 보이는 순간 재빨리 선기를 날렸다.
적당히 피를 보면 정신을 차리겠지.
“…….”
희게 쏘아져 나간 빛이 뺨을 스쳤다. 소가주는 눈을 가만히 내리깔아 싸구려 독처럼 느리게 퍼져 가는 고통을 헤아렸다. 그러다가 대수롭지 않음을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무인 중에서도 대검을 다루는 이였다. 길을 지휘하는 이가 길을 여는 이를 어찌 악력으로 이겨 먹을 수 있겠는가. 버둥거리던 손목이 머리 위에 잡혀 짓눌리고, 번쩍 들린 다리 사이로는 사내의 단단한 몸이 들어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막아냈다. 임소병은 정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양기가 필요한 건 맞았지만, 저 좋다는 놈을 상대로 하룻밤 놀아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아무리 남궁도위의 연정을 풋내 나는 충동 따위로 치부했기로서니, 설마 그를 이런 식으로 취하려고! 사람이 입장이라는 게 있지!
“소가주, 잠…… 읍.”
하지만 남궁도위는 틈을 주지 않았다. 입술이 깊이 맞물리고, 저도 모르게 놀라 벌어진 입 안쪽으로는 뜨거운 혓덩이가 침범했다. 입천장과 치열을 가볍게 쓸다가 혀를 빨아들일 때는 눈앞이 아뜩할 지경이었다.
임소병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콰득 씹었다. 어찌나 거셌는지 결국 피를 봤다.
“이, 미친…….”
“…….”
“이봐요, 잘난 정파 양반. 지금 사파 새끼를 상대로 겁탈이라도 하는 겁니까?”
“겁탈?”
남궁도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지독하게 건조한 말투였다.
“녹림왕께서는 양기가 필요하시고.”
꾹 맞물린 아랫도리에서 열기가 홧홧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문질러 올리자, 임소병은 어처구니없게도 이 와중에 반응하고 있는 제 몸뚱이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제 혀까지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몸도 적당히 달아오르신 듯하고.”
“…….”
“내게는 당신 하나쯤은 다 먹이고도 남을 양기가 넘치는데.”
“…….”
“이게 왜 겁탈입니까?”
사내가 가만히 웃었다. 아래로 가지런히 내려간 눈썹과 비스듬히 올라간 입매는 그의 서늘하면서도 견고한 외견을 돋보이게 했다.
솔직히 조금, 재수 없었다.
“정 싫으시다면 여기서 그만두지요.”
입만 살았다. 임소병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잘난 척 말하면서도 머리 위에 고정된 손은 놓아줄 기미가 없고, 아래를 문질러오는 자극은 숨이 막힐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러면서 그만두자고? 그만두자는 놈의 덜미를 붙들어 탁자에 짓누른 게 누군데?
빌어먹을. 사내는 그늘진 소가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을 않는다더니, 영락없이 그 꼴이다. 솔직히 그의 말이 옳았다. 양기를 채울 수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어 기루에 왔다. 변덕에 따라 사람을 골랐고, 하룻밤을 채우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누구였든, 어떻게 웃었든,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걸 좋아했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원하는 걸 받았고 모자라지 않게 값을 치렀다.
이번도 썩 다를 것 없다. 저를 연모한다니 더 싸게 먹히면 먹혔지 까다로울 것도 없었다. 약간의 거북함이야 있었겠지만,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굴어대고 있지 않은가.
아,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머리를 아무리 굴린들 저 몸뚱이에서 빠져나올 방법 같은 건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굴러간 임소병은 남궁도위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르는 듯하더니, 이내 이를 드러내어 크게 씹었다. 큭, 하고 낮게 앓는 소리가 울렸다. 다만 피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감내해 주겠다는 포부라도 되는 건지. 임소병은 비소하며 남궁도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요, 좋소. 대신.”
“…….”
“이 하룻밤으로 날 가졌다고 착각하거나, 우리가 뭐라 된다고 멋대로 믿거나, 어딘가에 오늘 밤에 관련된 일을 흘린다던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궁도위가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내가 녹림왕의 뭐라도 되는 것처럼 배부른 착각에 빠져 사는 일도, 세간에 추문을 퍼뜨려 당신이든 나든 얼굴에 먹칠하는 꼴도 없을 겁니다.”
“거, 말이 잘 통해서 편하네.”
임소병이 짜증스럽게 웃었다.
자리를 옮기지 않고 후딱 해치워 버리자는 점에서 두 명의 의견은 일치했다. 남궁도위가 잠시 숨을 고르며 떨어지는 동안 임소병은 남은 것을 탁자 아래로 마저 쓸어 버리고는 마른 가슴팍을 대고 엎드렸다. 그대로 바지와 속곳을 한꺼번에 끌어 내리고는, 천연덕스러운 손짓으로 제 둔부를 벌려 그를 이끄는 것이었다.
“아, 혹시 혼자서는 다 못 세우시나? 그것도 도와 드려야 하면…….”
남궁도위가 코웃음 치며 그의 골반을 잡았다.
“눈요기로 충분합니다.”
“허.”
그의 말은 다소 시건방지기는 해도 거짓된 구석은 없었는지, 실제로 밀부에 닿아 오는 양물은 반쯤 기립해 있었다. 그대로 마른 살갗에 몇 번 뭉근하게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열이 몰렸는지, 어느새 팽팽하게 곤두서 제 존재감을 내뿜기까지 하는 것이다.
남궁도위는 일전에 익힌 방중술을 어설프게나마 응용했다. 사내든 여인이든 길을 내지 않으면 다치는 것은 뻔하니, 향유는 없겠지만 급한 대로 풀기라도 해야 피를 보는 일을 면할 것 같았다. 답지 않게 머뭇거리던 그가 밀문을 검지와 중지로 짚은 순간이었다.
“…….”
남궁도위가 사납게 웃었다. 고운 눈썹이 찡그려지며 모여들더니, 이내 깊은 그늘이 졌다.
미리 풀어두었다고? 여기에 오기 전에? 오늘 아주 제대로 작정을 하고 오셨군. 이걸 요망하다고 해야 할지, 철두철미하다고 감탄해야 할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향유를 듬뿍 써 부드럽게 풀린 입구 근처를 더듬는 손길에 임소병이 웃었다.
“아픈 걸 즐기는 취미는 없는지라.”
“…….”
“어때, 초보에게는 썩 달콤한 배려 아니오? 소가주가 누릴 몫은 아니었소만…….”
남궁도위가 그의 말을 잘랐다.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 아니겠습니까.”
“오호라, 그런 말도 하실 줄 알고.”
“시시한 사내 짓은 그만둘 때도 된 듯하여.”
“꽉 막힌 샌님보다 짐승이 낫지, 침상에서는.”
여길 침상이라고 불러도 좋으려나? 비죽 웃은 임소병은 손을 뒤로 뻗어 남궁도위의 양물을 더듬더듬 쥐었다. 손아귀에 겨우 들어올 정도로 굵고 뜨거워서 잠깐 놓칠 뻔도 하였으나, 이내 다시 여유를 찾고 제 입구에 정확히 대고는 살살 문질렀다.
이쯤 되면 아무리 풀어놨더라도 부담이 상당하겠다. 여태 받았던 어떤 사내보다 크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입 밖으로 그 말을 구태여 내뱉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흣.”
아니나 다를까,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둔통이 상당했다. 임소병은 낮게 신음하며 탁자에 열띤 뺨을 바짝 붙였다. 와득, 소리와 함께 나무 모서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힘 조절에 실패한 남궁도위가 탁자마저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우그러뜨린 모양이었다.
“좁, 습니다, 녹림왕. 힘을 조금만…….”
“흐윽, 흐…… 아, 으.”
납작 엎드린 몸이 바르르 떨렸다. 비좁은 길을 꿰뚫듯이 들어오는 것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힘을 풀고 깊이 안내할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생리적으로 왈칵 차오른 눈물과 침이 탁자를 적시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닳고 닳을 만큼 구른 건 아니라도 경험이 없지는 않은데, 이렇게까지 삽입이 힘들 줄은. 그러나 이미 붙어먹기로 마음먹은 이상 무를 수도 없으니 최대한 꾸역꾸역 삼켜낼 수밖에 없다. 임소병은 끙, 하고 짜증스럽게 앓다가 다시 뒤로 손을 뻗었다. 한계까지 벌어져 검붉은 살덩이를 억지로 머금은 접합부를 만지작대다가 그의 치골을 살살 쓸며 보챘다.
“차라리, 읏, 단번에…… 넣으십쇼. 쇠뿔도 단김에 뽑……. 흐윽.”
남궁도위는 임소병의 말을 잘 들었다. 지나치게 잘 듣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의도를 파악하고는, 그대로 골반을 잡아 제 것을 뿌리 끝까지 쑤셔 박았던 것이다.
임소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커다란 꼬챙이에 꿰뚫린 것처럼 발꿈치를 들고 벌벌 떨기만 했다. 뿌리까지 삽입당한 충격으로 절정에 이르러서 허벅지와 아랫배가 축축하게 젖었다는 것조차도 한 박자 늦게 알았을 정도였다. 밭은 숨을 몇 번이고 내쉬고, 기어이 마른 목에서 콜록거리는 기침이 터져 나오고 나서야 까맣게 가라앉았던 시야가 조금 돌아왔다.
그가 조금 정신을 차리자마자 남궁도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썩, 소리가 날 때마다 화답하듯이 탁자가 끼익 기울어졌다. 물론 기방의 세간살이에 관심을 둘 이는 없으니, 이대로 그 가여운 가구가 반으로 쪼개진다고 해도 자세나 바꾸고 말 일이었다.
“아흐, 으, 흣……. 아, 아아.”
둔부에 살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움직이던 남궁도위는 그의 안이 생각보다 좁고, 뜨겁고, 습하며 기분 좋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뻑뻑한 안을 기어코 열고 들어서면 촘촘하게 짜인 주름이 한껏 벌어지며 침입자를 삼켜댔다. 부드럽게 움찔거리는 것이 조금씩 더 안으로 그를 인도할 때마다 홀린 듯이 허리를 움직였고, 기어이 임소병의 발이 허공에서 떨어져 힘없이 덜렁거릴 때까지 몰아붙였다. 향유로 진득하게 풀린 안에서는 야살스러운 울림이 퍼지고, 도톰하게 부은 어느 지점을 누를 때마다 제게 짓눌린 몸 아래에서는 환락에 신음하는 소리가 새었다.
절맥이라더니, 거죽 안은 사내를 다 녹여 먹을 양 뜨겁기만 한데. 남궁도위는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른 등을 바라보다가 날갯죽지에 입술을 묻는다. 삽입을 이어갈 때마다 움찔움찔 튀어 오르는 애처로운 움직임을 입술로 꾹 눌러 제압하다가, 얇은 살가죽에 이를 세워 보기도 했다.
“……악!”
그가 고통에 몸을 굳히면 안이 비좁아졌다. 금방이라도 양물을 끊을 듯 조여오기에 남궁도위는 달래듯이 등줄기를 따라 입맞춤을 쏟았다. 퍽 다정하고 귀여운 몸짓이었으나 허리 아래쪽의 사정이 폭급하여 받아들이는 이는 그저 혼란 속에서 나풀거릴 따름이라, 임소병은 그저 눈앞이 하얗게 바랬다가 까맣게 점멸하는 것만을 느끼며 추삽질에 따라 속절없이 절정했다.
언제인지 모르게 남궁도위는 임소병의 안에 파정했다. 축축하고 뜨거운 것이 뱃속 깊이 쏘아졌을 때 그는 못 참겠다는 듯 바르작거렸으나, 틈 없이 맞물린 몸 때문에 티조차 나지 않았다. 제 목덜미에 닿은 입술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커다란 짐승이 저를 끌어안고 그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제 영역이라고 과시하듯, 여전히 열감이 남은 양물을 안에다 대고 문지르며 파정한 것을 깊이 욱여넣었다. 손으로 빼기도 힘든 위치인데. 임소병은 멍한 정신을 몇 줌 겨우 그러쥐며 제가 여인이었으면 이 한 번으로 회임했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을 주워섬겼다.
남궁도위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한 번뿐일지도 모를 이 기회를 그저 날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밤은 길고, 무인의 몸은 튼튼하고, 그들이 있는 방 근처로 기생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잠시 고민하다가 냉기가 조금 남아 있는 몸을 바짝 안아 들었다. 그대로 길쭉하고 푹신한 의자에 걸터앉더니, 제 허벅지 위로 임소병의 몸을 올린 것이다.
“무…… 무슨.”
“저만 재미를 본 듯하여.”
다부진 손이 임소병의 양물을 쥐었다. 제 것보다 확연히 작았으나 이 정도면 사내 구실은 하겠다―물론 그렇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싶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 차례 파정했는지 흰 액체가 곳곳에 얼룩져 있었다.
허벅지를 가볍게 쓸어내린 손끝이 양물을 보태 쥐고, 양손으로 살살 흔들기 시작하자 임소병의 아랫배로 열기가 고였다. 요령도 좋게 옮긴 탓에 여전히 뒤로는 사내를 받은 채였다. 임소병은 아예 눈을 질끈 감고는 남궁도위의 어깨를 끌어안고 이마를 내렸다. 어르는 듯한 입맞춤이 귓가에 닿더니 낮게 웃었다. 그를 상대로 드물게 우위를 점한 것이 마음에 드는 듯 남궁도위가 기꺼이 웃으며 속삭였다.
“그대로 계십시오.”
수음을 할수록 임소병은 몸이 달았다. 손길이 한없이 느리고 부드러워 절정까지 밀려 올라가던 것이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허리를 달싹이며 그의 손바닥에 제 양물을 문질러 보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멋대로 굴지 말라는 듯 단단한 엄지가 끄트머리를 꾹 막고 압박하는 것이다.
“양기를 채우러 왔으면.”
수음으로 실컷 재미를 본 주제에 그렇게 속삭여대고 있었다.
“뒤로 받으며 즐기셔야지요.”
하, 탄식하듯이 웃은 임소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이 혼몽하게 흐려졌으나, 몸은 헤매지 않고 제가 할 일을 찾아 차분히 움직였다. 앞을 문지르는 게 아니라 허리를 들썩여 안에 품은 것을 살짝 빼냈다가, 더욱 깊이 삼키며 내려앉는다.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고 꼭 조였다가 다시 추삽질을 이어갔다. 마치 그의 양물에다 대고 스스로 움직이며 조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몸이 기대감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양물이 컸기에 요령 없이 박아대기만 해도 극점은 쉽게 눌렸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쾌락의 끝까지 도달해서, 후련하게 사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허릿짓이 바지런해졌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조금만…….
“아, 흐으, 응. 하, 큭…… 하아, 아.”
“……후, 으…….”
“으응, 응. 흐…… 으으, 흣.”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허리를 들썩이면 남궁도위의 큼직한 손이 다가와 아랫배 근처를 쓸었다. 마른 뱃가죽 위로 도드라질 제 것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안에 욕심껏 넣었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어라 핀잔하려다 여유가 없어 그만둔 임소병은 사내의 말대로 ‘뒤로 받는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틈 없이 내려앉고, 부르르 떨었다가 다시 올라서고, 다리를 깊이 벌리고. 어느새 뻣뻣하게 떨리는 제 양물은 남궁도위의 손 안에서 절호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찔끔찔끔 비어져 나오는 투명한 액체 때문에 이미 그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줄줄 흐르고 있을 정도였다.
“음.”
남궁도위가 양물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대로 도드라진 골반을 양쪽으로 잡더니, 이내 쐐기를 박듯 안으로 쳐올렸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깊이 움직이자 임소병의 턱이 젖혀졌다. 언제인지 모르게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후둑, 식은땀과 함께 맺혀 떨어졌다.
“……아!”
날카로운 쾌감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한껏 고여 있던 열락이 일시에 터져 나가며 온 정신이 아찔하게 떨려왔다. 죽을 것 같다. 고작 몸 좀 섞었다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아득해질 수 있는 건가? 하기긴, 이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결실도 맺지 못할 씨가 넘실거리며 제 안을 채웠다. 양이 너무 많아 더부룩하게마저 느껴질 정도라,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뒤챘다. 그러나 녹림왕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그 빌어먹을 종마 같은 소가주께서는 이마저도 어떤 유혹으로 느끼신 모양인지 또다시 아랫도리로 힘을 받아 제 안을 빠듯하게 채우셨다.
“미친놈…….”
결국 임소병의 입술 위에 욕설이 어른어른 맺혔다. 남궁도위가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웃었다.
“한꺼번에 받아 두셔야, 한동안 사내를 사겠다며 들락거릴 일이 없지 않으십니까.”
“허.”
“화산은 산세가 험하니 구태여 힘겹게 그러지 마시고.”
그러면서 슬그머니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품을 아끼는 게 좋겠군요.”
방종한 놈 같으니.
그게 임소병이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힘겹게 떠올린 생각이었다.
<방종>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