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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타운 사랑으로 중생을 제도하라
(仁理度衆生)
굉련(등인, 망경대산 자연명상원 원장)
1) 관정법사님과의 만남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을 떠난 분이시며 세상에 대해서 냉철함을 가지신 분 과연 큰 스님이시다.’
2000년 6월 13일 경기도 분당 약사암에서 큰스님을 처음 뵙고 받은 인상이다. 등원 스님이 열흘 전 경주 백운암에 가서 중국에서 오신 스님을 친견 했는데, 극락을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큰스님을 한 번 내가 직접 뵙고 싶으니 안내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여 찾아갔던 것이 첫 만남이었다.
이와 같은 나의 인상은 그 뒤 입적하실 때까지 여러 차례 만나고 가깝게 접하면서 늘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평소 사람들 만날 때 보면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 같고, 격의가 없지만 막상 법석에 앉으시면 전혀 달라져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추시고, 오래 수하여 낡고 해진 가사장삼도 일단 법석에 서면 법의에서 광채가 발산되어 드높은 수행력이 그대로 드러나신다. 참으로 법도와 위의가 몸에 자연스레 배이신 분이다.
다음해인 2001년 가을 큰스님께서 강원도 영월군 망경대산 높은 곳에 위치한 오지에 있는 우리들의 은둔 수행처를 찾아오셨다. 당시 5~명이 조용한 곳을 찾아 수행터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큰스님이 오실 때는 마침 그곳에 선방으로 쓰일 공간인 다용도 수행공간을 완성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큰스님을 바로 임법당에 딸린 방사에 모셨다. 우리가 수행시설을 마련하여 맞이하는 첫 손님이 바로 큰스님이었다. 큰스님을 모시고 온 등원 스님이 나를 소개했다.
“새로 짓는 절의 창건주입니다.”
나는 큰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그러자 절을 한 번씩 올릴 때마다 큰스님은 가르침을 내려주셨다. 특히 덕담 가운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속히 서두르십시오.” 라는 말씀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뒤흔들었다.
‘그렇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이 깊이 자리 잡았다.
큰스님을 모시면서 지금까지 해오던 수행법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수행이란 당연히 참선이었다. 그런데 일생을 참선수행을 해오시던 관정 큰스님이 극락을 다녀오신 뒤 ‘정토선’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2) 화두참구와 염불의 회통
나는 젊어서부터 참선과 명상을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작은 사무실을 내서 작품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늘 꿈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연꽃을 보았는데, 바로 꿈에서 본 연꽃을 만들어 부처님 전에 올리는 일이었다. 주거지 가까이 있는 절에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절에서 기도하는 스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런 식의 기도보다는 전생부터 하던 참선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나는 처음에는‘화두’가 무엇인지도 몰라 불을 머리에 이는 것인 줄 알았다. 스님의 간곡한 설득 때문에 어느 날 나는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았다. 스님은 나에게 참으로 긴 화두를 주셨다.
“깊고 깊이 잠들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거나 듣지도 못할 때 내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긴 화두를 자꾸 잊어버려 그때마다 스님께 묻고 또 묻기를 거듭하였다. 나는 우선 그 긴 화두를 외우는 데 신경을 썼고 어쩌다 밤중에도 잊어버리면 스님께 전화로 물었다. 그때마다 친절히 알려주셨다. 이렇게 묻고 답하여 완전히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몇 달이나 걸렸다.
나는 하루 종일 온통 화두만 생각했다. 길을 가다가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는 순간 화두는 앞사람 발뒤꿈치에 치어서 도망가 버려 이쪽저쪽 찾다가보면 어느새 입안에 들어와 있곤 하였다. 이처럼 들락날락하던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되는데 몇 개월이 걸렸다. 그 뒤엔 공 같은 화두덩어리가 내 몸에서 드나드는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나를 가르쳤던 스님은 일절 책을 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다른 화두가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주인공이 어디에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하였던 것이 지금 보면 의심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 덩어리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나는 얼마나 화두를 쫓아다녔는지 모른다. 다만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당시 교통수단이 전철이었는데 한 번 화두에 몰입하면 지하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일이 허다했고, 어찌하여 내려서도 집을 찾아가는 방향조차 찾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화두가 확실히 들려지기 시작하니 그것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였고, 내 삶 전체에 대해 저절로 진참회가 시작되고 나라고 했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화두가 파고 들어가면 업이 드러나며 저절로 참회되고, 업에 대한 원인 또한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렇게 하나가 된 화두는 나의 모든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때도, 남과 이야기 할 때도 온종일 화두와 함께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뭉게구름처럼 뼈 속을 타고 돌고 돌아 손바닥으로 나간다. 어떤 때는 얼굴의 피부 껍데기를 벗겨 내는 것 같고, 회음부 밑은 시원한 바람이 받쳐주면서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고, 손짓발짓 몸놀림이 몸속에서 나오는 리듬대로 움직이며 말의 속도도 또한 그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께서 나타나 다짜고짜 내 입속으로 깊이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깨끗한 척해도 찾으면 나온다.”
입으로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으시던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님께서는 마침내 발끝까지 찾아내려가 온힘을 다해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몸의 끝은 구렁이 같은데 몸통은 용 울음소리가 우렛소리로 ‘크르렁’대며 그 반동이 굉장하였다. 결국 두 보살님께서는 나오지 않으려는 것을 잡아 빼어 칼로 베어버린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시체처럼 벌렁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고 속에서 무엇인가 가득차서 위로 밀고 올라왔다. 머리 뚜껑이 터져버릴 것처럼 쉼 없이 밀고 올라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상태가 3일정도 지속되었다.
‘이게 터져버리면 어떡하나!’
내심 불안하고 염려되었다. 하지만 계속 밀고 올라와 마침내 밀고 올라오던 것이 ‘뻥-’하고 터져 버리면서 내 입에서 ‘관세음보살’이란 말이 천지를 진동하는 듯 큰 우렛소리로 튀어나왔다. 큰 압력으로 밀려올라오는 것을 화두가 막고 있었는데 세상에 터져버리듯 “관세음보살”이 뻥- 터지면서 어느새 화두도 산산 조각 나버렸다.
그 순간 세상이 다 터져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남 없이 그대로였다. 세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편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의 몸도 변화가 왔다. 몸이 넘어졌다 일어나며 뒤집어지는 일도 없어졌으며, 동시에 하단전에 모여 있던 것들이 온 몸으로 다 퍼져 하나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일도 부딪히면 저절로 이치를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속에 들어있던 아상(업)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관정 큰스님을 만나고도 한참 동안 염불을 하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2002년 이후 관정 큰스님이 수차례 한국에 오셨는데, 오실 때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우리 여래선원에 오셔서 머무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래선원으로 큰스님을 친견하러 오셨는데, 관정 큰스님은 친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염불을 가르치실 때 늘 목탁 대신 손으로 무릎을 치며 ‘남모 아미 따~포’라고 크고 긴 소리로 선창을 하신다. 이런 염불이 계속되는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어느 사이에 내 하단전에는 관정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어와 있었다. 염불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마치 관정 스님 전체가 하단전에 들어와 염불을 하고 있었다.
몸속에서 염불하는 자리를 관하며 계속 참구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그 염불이 무성음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소리는 나지 않는데, 염불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 수행법의 일부 과정과 관정 큰스님을 만나면서 생긴 변화에 대하여 대충 표현해 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표현의 한계가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지금은 언제든지 의도에 따라 행주좌와 어묵동정은 압축되어 볼록렌즈에 빛이 모아지듯 결국 한 점으로 모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호흡도 또한 미세해진다. 모든 것이 한 점으로 귀착되어 시간이 가는지, 아픈지, 어떤 것인지 모든 것을 떠나지만 그 경계를 해제하면 현실이 된다.
「정토선 정의」의 무념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일념의 단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3) 관정 큰스님으로 수계
2002년 여름 큰스님이 오시게 되어 인천공항에 마중 나갔다.
한 달 전 중국에 간 한국 대표단이 ‘음력 8월 15일 한국에서 큰 법회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고 초청해서 왔다’고 하셨는데 공항에서 보여주신 메모로 그 즉시 초청하였다는 한국사찰 연락처에 알아 본 바 그런 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 불자들의 중국 방문 시 현지 통역의 오해에서 일어난 해프닝 이었다. 갑자기 한국에 오신 큰스님을 망경산사에 모셨지만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갑자기 그날 오후 늦게 큰스님은 다음날 오전에 나에게 수계를 하시겠다고 하였다. 당시 나는 구족계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국내 종단에 모든 수속을 다 밟아놓은 상태인데 큰스님이 갑자기 수계를 하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게 되지만 무슨 인연인지도 모르면서 큰스님이 처음으로 수계의식을 베풀어 주시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다음날 새벽부터 도량은 몹시 분주해졌다. 원래 오전 중에 수계의식을 하기로 했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큰스님이 벌써 가사장삼을 수하시고 먼저 법당에서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이것을 안 스님들이 부랴부랴 수계의식을 준비하여 의식이 진행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큰스님이 좀 흥분된 상태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통역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수계를 한 번만 하지 않고 두 번을 잇달아 하는 것이었다.
수계의식이 끝나고 차분한 상태에서 통역을 통해서 무슨 연유로 그렇게 하셨는지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큰스님은 반드시 초저녁에 잠자리에 드시고 자정 무렵 기상하시어 선정에 들어가신다. 그날도 일찍이 주무시고 자정 무렵 기상하시어 참선하시며 선정에 들었는데, 커다란 용이 한 마리 나타나서 “화상이시여, 오늘 저에게도 수계를 해주십시오!” 라고 간절하게 청했다고 한다. 큰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엄청나게 커다란 용은 색이 거무스름했다고 한다. 큰스님이 기이하게 생각하여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자기도 처음 수계를 받을 때 허운 노화상이 똑같은 꿈을 꾸고 자신에게 계를 주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큰스님이 허운 노화상에게 계를 받은 것은 1939년과 1941년이니 2002년에서 보면 60년이 넘은 옛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스승과 똑같은 일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놀랍고 흥분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곧바로 가사장삼을 갖추고 법당에 들어 수계를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수계할 때도 나에게 두 번 계를 주었는데 한 번은 나에게 한 번은 용에게 주느라고 두 번 잇달아 수계하셨다는 설명이다.
수계의식을 마친 후에 큰스님은 품속에서 허운 노화상 사리 2과를 꺼내서 주셨다. 평소에 큰스님께서 은박지에 싼 사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셨는데 작은 구슬처럼 생겨서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당시 통역하는 강거사님도 놀랐다. 큰스님께서 스승인 허운 노화상의 사리를 간직하고 다닌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후일 한국에 다시 오셨을 때 내게 가사를 내려주셨고, 수계의식 때 전해주신 사리에 대한 증명서도 써 주셨다. 날짜는 다가올 음력 추석 명절에 맞춘 것으로 실제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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