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설총묘". 아버지 원효는 불가의 고승이었지만, 원효가 파계를 하여 얻은 아들 설총은 불가를 부정한 유가였다. ,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출생했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타계할 때 37세에 불과했으니 그의 작품 활동 기간이 짧았으리라는 사실은 바로 짐작이 된다. 게다가 고흐는 27살에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그 전까지는 선교사, 서점 직원 등으로 살았다. 그의 화가 이력은 겨우 10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고흐의 그림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게 그 화면이 떠오른다. 심지어 〈자화상〉,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은 제목까지 곧장 연상된다. 그림을 그린 시간이 10년밖에 안 되면서도 세계미술사에 큰 이름을 남겼으니 고흐는 참으로 범상하지 아니한 인물이라 하겠다.
1902년 3월 30일 나도향이 태어났다.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으로 유명한 나도향은 24세이던 1926년 병사했다. 고흐보다 13세 어린 나이에 이승을 등졌으니 참으로 애잔한 일이다. 그나마 자살을 감행한 고흐에 비해 사인이 일반적이라 그의 소설을 읽는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프다.
나도향은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백조〉라면 이상화, 홍사용, 박영희 등이 연상된다. 현진건도 같은 동인이었다. 현진건 본인은 낭만주의 경향이 아니어서 작품은 거의 〈개벽〉 등 다른 매체에 발표했다. 〈백조〉에 실었던 단편 〈할머니의 죽음〉도 사실주의 소설이었다.
나도향의 창작 활동 기간은 겨우 4년이었다. 고흐의 10년보다도 짧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따지자면 그 절반도 안 된다. 사실 4년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나도향과 고흐의 찰나 같은 생애를 알았다면 원효도 차마 그들에게는 애처로움을 느낀 나머지 ‘무애無㝵’를 쉽게 말하지 못했으리라.
원효는 “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라고 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686년 3월 30일 입적한 원효는 본인이 무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시로 보여주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誰許沒柯斧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我听支天柱!”
〈몰부가沒斧歌〉의 뜻을 ‘단번에’ 알아챈 무열왕이 원효와 요석공주가 맺어지게 만들었다. ‘일체의 걸림이 없는’ 원효는 ‘단번에’ 파계해 설총을 낳았다. 그런데 설총은 〈화왕계〉를 지어 임금의 예쁜 꽃 접근을 막았다. 불자인 아버지와 달리 유가가 된 설총은 미처 무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