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곧 집을 옮기신다. 오늘 계약을 마쳤다. 단독 주택은 관리가 힘들어 아파트로 가신다. 자식들은 넓게 쓰시라고 잔뜩 버릴 기세인데 엄마는 7단 서랍 말고는 버릴게 없다고 하신다. 나도 오늘 자리를 옮겼다. 또 옮긴 거다. 같은 층에서 네 칸 옆이다. 이젠 자리를 옮기는 일이 수월하다. 짐이란 짐은 죄다 버렸다. 지금 책상에 남아 있는 집기는 노트북, 무선 키보드 마우스, 머그컵, 충전기, 계산기, 가족사진, 달력이 전부다. 서랍안도 비교적 깨끗하다. 치약 칫솔, 명함, 노트뿐이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두면 책 한 권이 보태진다.
얼마 전에 퇴사, 전배, 휴직하는 동료들이 겹치면서 부서 내 업무 조정이 있었다. 그 때 옮긴 이후로 딱 한달 만이다. 올해만 여섯 번 정도 옮긴 것 같다. 년 초에 조직이 개편되면 또 옮길 것이다. 옆 동료는 지난 번 이사하면서 종이박스 두 개에 짐을 담았다. 두 개중에 하나는 아예 포장을 뜯지 않았다. 나머지 하나도 다 풀어보지 못했다고 멋쩍게 웃는다. 짐을 다시 꾸리지 않아서 좋다는 건지 잦은 이사가 싫다는 건지 모호한 웃음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 박스는 그대로 버려도 사는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작년까지 나도 박스 하나에 모니터가 한대 있었다. 박스에 있던 짐은 필요한 것만 남겼다. 망설여지는 집기는 버리는 쪽을 택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모니터는 우연한 기회에 정리됐다. 출장 중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어 회의실에 미리 옮겨 두었는데 돌아와보니 사라졌다. 자료를 양쪽에 띄우고 비교 분석하는 업무가 많아서 한동안 불편했는데 폰트 사이즈를 줄이고 화면을 분할해서 극복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주위에서 좋은 모니터를 챙겨주어도 욕심내지 않는다. 몇 개 키우던 화분도 정리했다. 동료들에게 나눠 주고 집으로 옮겼다.
이사가 잦아지면서 짐을 줄이는 것만이 답이었다. 선배라고 샘플 관리하는 책임을 벗게 해준 후배들 덕분이기도 하다. 멀리 나는 새는 날개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다. 경험해보니 자주 나는 새도 마찬가지다. 내려 놓으니 힘들지 않다. 어깨에 진 짐은 물론 마음의 짐도 내려 놓으면 힘들지 않다. 비우는 만큼 채워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비워진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지 않다. 많이 버렸다는 생각에 꽤 비워졌을 거라고 믿었는데, 비운 지금이 꽉 차 있는 상태가 아닐까 반문해 본다.
그릇이 크고 작음을 탓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욕심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욕심 부리면 넘칠 것이고, 욕심이 없으면 주위에서 힘들어 한다. 욕심은 탐을 내는 것이고 그 대상은 원래 내 소유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이 되는 과정에서 내가 탐을 낸 것이고, 때로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짊어진 짐이기도 하다. 탐내서 얻은 건 껍데기가 많고 져야 할 짐은 한 보따리다. 어떻게 하지 못하고 시름짐 옆에서 끙끙대는 것이 삶인가 보다.
부모님 댁에 내가 맡겨 놓은 짐이 한보따리다. 당장 우리집에서는 이미 버린 세발 자전거가 이곳에는 남아 있다. 끔찍하게 아끼는 막내 원이가 찾는 것이 이유다. 이번에는 버리자고 해야겠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자식 걱정이라는 시름짐이다. 이사하는 김에 버리고 갔으면 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기껏 한달에 두세번 찾아뵙는 걸 생각하면 시름 보따리라도 있어야 심심해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감이 안 온다. 꽉 차서 이러는 것인지 너무 비워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퇴근하면서 불렀던 정태춘의 <애고 도솔촌아>로 마무리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고개 넘어 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벌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기차나 탈 거나 걸어나 갈 거나
누가 이깟 행차에 흥난다고
봇짐 든든히 쌌겄는가
시름짐만 한 보따리
첫댓글 제 자리는 짐이 한 가득. 대부분 없어져도 모르는 것들인데 왜 버리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는지.
저도 물건을 잘 못 버려요. 언젠간 소용이 있을거 같아 남겨두는 편이에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