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킹 처벌법 제정,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 신림동 스토킹·강간 미수 사건에 부쳐]
지난 28일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30대 남성이 귀가하던 한 여성을 집 앞까지 수십 미터를 쫓아갔다. 이 남성은 피해 여성이 집에 들어간 후에도 집 앞을 서성이며 문을 두드리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계속 눌러보는 등 반복적으로 침입하려 시도했다. 피해 여성의 신고에 출동한 경찰은 "CCTV 영상을 확보하라"는 말만 남긴 채 건물 앞에서 돌아갔다. 피해자가 스스로 CCTV 영상을 확보해 신고한 후에야 경찰은 가해자를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많은 여성들의 공분을 산 후에야 ‘강간 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여성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은 그 자체로 여성들의 일상을 침해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신고된 건수만 해도 2014년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스토킹을 ‘사랑싸움’ 정도로 취급하고, 피해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으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등에 의해 처벌되며, 범칙금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된다. 그나마도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자가 져야 한다. 또한 신고 후 보복의 위험도 높지만, 이에 대한 보호 조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스토킹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남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던 사건, 전 애인에게 온갖 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피해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됐던 사건은 스토킹이 여성 살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임을 보여준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살인 및 살인 미수 사건 중 30%가 스토킹이 여성 살해 및 살인 미수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이렇듯 스토킹은 심각한 여성 폭력 범죄이지만, 여전히 입법 공백과 경찰의 낮은 의식 속에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에 대한 법·제도적 보완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국회에 처음 발의된 이후 계류되거나 폐기되기만을 반복했다. 20대 국회에서 7건의 스토킹 범죄 관련 처벌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법무부에서 스토킹 처벌법 입법예고안을 발표했지만, 이는 ‘스토킹’을 지속적, 반복적인 단순 접근 행위로만 정의하고,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담지 못하는 등 한계만을 남겼다. 그마저도 관계부처 등의 이견으로 발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가가 여성 폭력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동안, 여성들은 일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이를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 것이다. 더 이상 국가는 여성들을 위험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스토킹 처벌법을 빠른 시일 내에 제정해야 한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190604
<제대로 된 스토킹 범죄 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