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환 감독은 22일 논란이 된 선수 폭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다 (사진=연합뉴스) |
사랑해서 때린다는 슬픈 변명
두 지도자가 자진 사퇴로 물러나면서 남긴 말은 매우 비슷하다. 부천의 코치는 "팀과 선수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가르침이 개인이나 팀에 해가 되어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독려하기 위함이었지만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었음을 인정한다”라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봤다. 그런데 사퇴 후 몇몇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선수를 아끼는 마음에도 한 것이다”라며 반성보다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팀을 위한, 경기력 향상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변명했다. 마치 축구적인 시선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투다. 아끼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 것이 의도와는 달리 비쳐졌다는 슬픈 변명이다. 체육계에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사랑의 매가 주먹을 이용한 직접적 폭행으로 행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K리그의 한 감독은 “제발 아끼기 때문에 폭력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묘기를 위해 동물들을 폭력으로 훈련시키는 것도 거부하는 세상이다. 하물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폭력만은 안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까지 욕 먹이는 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서 “처음엔 한대지만 그 다음엔 결코 한대로 효과가 나지 않는다. 두대, 다섯대, 열대 그렇게 폭력은 거대해지는 거다. 자극을 주는 효과를 보고 지도자는 폭력의 효과를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착각이다. 절대 그 효과가 길게 가지 않는다. 맞으면 당장 열심히 뛰겠지만 선수들은 지도자의 눈치를 보고 안 맞기 위한 플레이만 하게 된다. 창의성을 죽이는 악습 중 하나다. 구타는 경기력을 개선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지도자는 한 예를 들어 폭력의 무의미함을 설명했다. “지도자가 폭력을 쓰는 건 단기간에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후배는 자기가 선수 시절 당했던 폭력이 지겨워 고등학교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절대 애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몇 달 동안 잘 지켰다. 그런데 처음 전국대회에 나갔는데 전반에 0-2로 졌다. 본보기로 3학년 몇명을 때렸다고 하더라. 그런데 3-2로 역전승을 했다. 그 후배는 ‘형, 이 좋은 걸 왜 안 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다음 경기에서 또 전반에 지고 있어서 때렸다. 하지만 후반에 못 뒤집고 졌다. 처음엔 맞는 게 공포로 다가와서 열심히 뛰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부터 뛰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거다. 당연한 거 아닌가?”
체육계의 폭행 사건은 주체인 지도자가 물러나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사진=엲합뉴스)
폭력의 세습,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폭력은 부지부식간에 세습된다. 지도자의 선수에 대한 구타는 선후배 간의 구타로, 그 뒤에는 폭력을 경험한 선수들이 지도자가 돼 다시 폭력을 가한다. 멀리는 70년대 효창구장을 찾던 축구팬들이 잊지 못하는 기억 중 하나는 하프타임에 선수 대기실에서 나던 지독한 파스 냄새, 그리고 따귀 맞는 소리였다. 배구 대표팀에서 코치가 유명 선수를 폭행한 것은 불과 4년 전 일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늘 국민적 지지를 받는 쇼트트랙 종목도 코치와 선후배 간의 구타가 있어 수년 전 논란이 됐다. 축구와 야구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구타가 무서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구타 휴유증으로 사망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모두 서서히 잊혀졌을 뿐이지 체육계 내부의 폭력 문제는 언제 그 무서운 얼굴을 드러낼 지 모른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들이 사퇴하는 형식으로 책임을 지지만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결국 그본적인 문제인 폭력의 고리를 강제력을 발휘해서라도 끊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학원스포츠와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시 898명 가운데 28.6%에 해당하는 257명이 '폭행으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구타 가해자는 응답자의 64%가 코치를 꼽았다. 2010년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및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발표했는데 학생 신분인 운동선수의 32.6%가 ‘합숙소 등 현장에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도자의 48.7%는 구타를 가한 경험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 물론 이러한 체육계 폭력은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대다수 지도자가 박봉을 받고 성적에 따라 자리가 왔다 갔다 하는 처우에 놓여 있다. 아무리 합숙과 토너먼트 대회를 줄여도 성적지상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위해 선수들에게 손을 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순 없다. 폭력이 체육계를 비롯해 군대 등 테두리 안에 놓인 집단 안에서 자꾸 발생하는 것은 조직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규율을 강조하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논리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한계와 효율성의 논리만 앞세운 구시대적 방법 앞에서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 설득으로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그 인간들이 하는 것이 스포츠라면 폭력만이 결코 답은 아니다. 체육계 각 단체는 폭력에 대해 더 강도 높은 대처를 해야 한다. 각 종목의 관리 주체는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서 폭력의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상시 운영기구를 둬야 한다. 피해자들이 보복이 두려워 침묵하는 것을 악용해 계속 폭력을 가하고, 무마시키기 위해 괴롭히는 것은 철저히 신고 받아 지도자 자격 정지 및 관련 종목 퇴출 등의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강제성이 따르지 않고선 남은 21세기는 물론 22세기가 돼서도 체육계는 사랑을 위한 폭력이 존재하는 유일한 지옥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귀싸대기든, 꿀밤이든 맞은 상대는 아프다. 가슴에 상처를 입기는 매한가지다. 더 이상 체육계에서 폭력의 정당성, 효율성을 논해선 안 된다.
글=서호정 기자
기사입력 2014-04
출처: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452&article_id=0000000053
|